-
-
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김정현의 신작 “아버지의 눈물”을 읽으면서 비록 이 책의 주인공인 “흥기”보다는 한세대가 위신 육순을 훌쩍 넘기셨지만 그들보다 더한 아픔과 슬픔을 겪으셨을 아버지를 내내 떠올렸다. 언제나 어렵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 처음 가깝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삼겹살 집에서 아버지와 술 한잔 마시게 되면서부터이다. 행복하셨다는 우리들 키운 이야기, 이른 나이에 외할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신 부모님 결혼 이야기, 잔소리하시는 어머니 흉보기 등등 아버지와 나 둘만의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아버지와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과하신 약주에 몸을 가누지 못하셔서 내가 업어드리겠다고 하면 이 정도 술에 약해질 내가 아니다며 허리 꼿꼿이 세우고 앞장서서 걸어가시던 아버지, 그래도 부축하는 내 팔이 싫지는 않으셨는지 가볍게 기대시던 아버지의 어깨를 느끼면서 어렸을 적 그 누구보다도 든든했던 어깨가 언제 이렇게 야위셨나 하고 울컥하곤 했다. 천직으로 아셨던 일 그만두시고 자신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좌절과 가장으로서의 부끄러움에 더욱더 움츠려지셨던 어깨가 펴지신 건 내 결혼식에서 가족 사진 찍을 때였다. 의자에 야윈 어깨를 한껏 펴시고 비스듬히 앉아서 좋은 날에도 멋있는 웃음보다는 어색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오랜만에 젊으신 시절 그분의 모습을 엿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은 나의 아버지처럼 한분 한분 소중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이제는 국가의 노령인구 비율을 높이는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여겨지고 직장에서는 언제든 그만둬야 할 퇴출 1순위로 여겨지는 그런 아픈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평범한 아버지인 주인공 “흥기”와 그의 가족들, 부모님 대하여 동생에게 지극히 헌신적이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흥기의 누나와 어려운 형편이지만 흥기네 보다도 더 행복한 누나네 가족들,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 보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흥기 친구 ‘인규“, 돈과 성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한 욕망을 들어내는 흥기 친구 ”상길“과 ”종호“,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리를 제대로 못 지켜낸 걸 가슴 아파하며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한 ”병섭“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는 결코 과장하지 않은, 바로 현실 그 자체인 우리들의 아버지들과 가족들이 등장한다. 친구 병섭의 장례식장에서 "사람으로서 죽을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남은 이가 마지막 순간에도 분노를 삭이지 못해 처참해지는 그것만은 아니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순간이며, 사랑의 끝이 분노가 되어 그를 무너지도록 해서는 아니 되는 책임과 돈과 사랑, 그리고 그동안 질주하며 내달렸던 모든 것들이 결국 의미 없는 허둥거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허망해하는 흥기의 모습은 우리들 아버지들이 한 번씩 떠올렸을 그런 좌절을 가슴 아프게 이야기한다. 형과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둘째 아들 ”상우“에게 허망하도록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 앞에서 분노가 치밀어 손찌검을 하는 장면에서는 자식이 조금 못나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하는,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기를 바랐건만 탐욕을 꿈꾸는 자식을 그렇게 망쳐버린 스스로에게 원망하는 흥기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졌고 우리들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진정으로 바랐던 모습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작가의 말에서 삶에 지치면서 점점 체념이 익숙해졌지만 불안과 불편한 마음은 여전했고 허황된 몽상이었을지도 모를 희망마저 놓아 버리고 나니 진정으로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진짜 희망은 내내 곁에 있었음을, 운명처럼 책임처럼 언제나 부담이 되어 비켜 가려고 만 했던 “가족”, “우리에겐 아직 마누라와 자식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걸 거야, 우리 뒤틀려 버린 인생들의 마지막 희망, 그러나 그 어떤 희망보다도 더 소중한 희망”이라는 걸 너무 늦지 않았는지 걱정이지만 아직 기운이 남아 있으니 그들에게로 돌아가라는 것이 작가가 삶의 끝자락에서 방황하고 좌절했을 우리들 아버지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신들의 아버지들의 어깨를 짓눌렀던 책임의 무게를 덜어내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 바로 당신들 뿐이라고, 그래서 당신들은 지금 당신들의 아버지들에게 그런 희망이 되었나고 질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