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보는 곳이 작가 서문이나 작가 후기이다.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정보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책을 읽는 기대감을 한껏 올려보기 위한 목적에서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다시금 서문이나 후기를 보는 데, 감동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나 이야기가 나에게 명확히 이해가 되었는지 다시금 새겨보기 위함이다. 좀 더 관심 있는 책이었다면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는데 책의 배경이나 주인공 후일담,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 등을 작가의 육성으로 듣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또는 작품의 주인공들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상대담 - 예를 들어 유명한 다나카 요시키의 판타지 장르 소설 “창룡전”에는 책 말미에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상대담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은 마치 또 한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준다. 중앙북스의 “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는 이제는 고인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작품은 전설이 되어 영원히 우리 곁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작가들과 책 속의 주인공들이 후배 문인들에게 그들의 삶과 철학을 들려주는 그런 가상 인터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책에는 “서정주”, “이상”, “김동리” “한용운” 등의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 문인들,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아르튀르 랭보” 등 서구 문인들, 박지원의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 모비딕의 고집스런 주인공 “에이헤브 선장”, 민담 속 친근한 주인공 “도깨비 김씨” 등 주요 작품의 주인공들에 이르기까지 23인의 작가 또는 작품의 주인공들이 후배 작가, 평론가 들과 가상대담을 벌이는 형식을 띠고 있다 - 글은 총 25편이지만 카프카, 백석은 두 번씩 등장한다 - . 한편 한편이 선배 작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로 그들의 작품세계와 철학, 삶에 대해 실제 그들을 만난 것처럼 생생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중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90년 후배인 현대 평론가 “이명원”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를 소개해본다.
 

“처연한 몰락기”의 조선에서 태어난 그는 젊음의 환희나 ‘개인’으로서의 행복이 없었던 삶을 저승에 머물고 있는 지금도 못내 아쉬워한다. 조선의 처참한 몰락은 언롱이나 일삼는 그 당시 선비들의 문약과 지나의 정신세계에 종속되어 있는 중화적 식민성에서 기인된 것이며, 그 당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예술로 축소된 문학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과 역사의 반동을 힘 있게 거스르는 힘찬 언어와 실천적 삶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조선상고사”를 제국주의적 인식론이 침투한,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오히려 닮아버린, 내면화된 식민주의 잔재라고 비판하는 후배문인들에게 그는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면서 세련된 이론이 현실의 실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그당시 동아시아의 현실은 본질적으로 힘의 대소의 문제였으며, 결코 힘의 크기문제로 역사의 의미를 희석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역사란 설사 패배할 것이라 해도 어떤 정당성을 둘러싼 투쟁에서 오며, 바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조선민중의 투쟁이야말로 사는 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진정한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말년에 그 투쟁이 민족적인 차원으로만 한정된 협소함에 빠져선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민족적 국제주의자로서의 포부를 역사 속에서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후배 문인들은 그런 옹골지면서도 열린 사상적 모색을 할 필요가 있다고 고언한다. 본질적인 물음, 문학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문학이란 문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뿜어내게 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며 몸이 동반되지 않는 글쓰기란 그저 신기 취미에 불과한 “글쟁이”일 뿐이며 혁명을 꿈꾸는 사유의 근본주의자인 문사가 되지 못할 바에는 펜을 꺾어버리고 토굴에나 들어가 버리라고 따끔한 일침으로 편지를 끝맺는다. 살아 생전 제국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에게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던 신채호 선생의 꼿꼿한 지조와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그런 가상 편지였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다. 여기서 언급된 23인의 작가 중 낯선 이름들이 대부분이었고 낯익은 작가들도 그분들의 작품인생을 올곧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일천한 문학적 지식 탓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앞으로의 내 독서생활에 있어서 그 선택의 폭을 더 넓히고 그 깊이를 더욱 심화하는 그런 길잡이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훗날 이 책에서 소개한 작가나 작품을 충분히 읽고 이 책을 다시 대한다면 작가 후기에서 감동의 여운을 느꼈던 것 처럼 더한 감동으로 다가 올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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