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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통찰 -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 병자호란과 효종의 북벌을 그린 KBS 대하사극 “대명”(1981)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병자호란 후 청에 인질로 끌려가 갖은 고난 끝에 귀국하여 급사한 형 소현세자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봉림대군 효종은 우암 송시열, 포도대장 이완 등과 함께 북벌을 준비하지만 북벌을 얼마 앞두고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북벌의 꿈은 그렇게 좌절되고 만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 효종이 좀더 오래 살아남아서 북벌을 시작했다면 드넓은 만주가 우리 땅이었을 텐데 하고 어린 마음에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의 그런 아쉬움과 기억은 희미해졌고 대신 과연 드라마에서처럼 효종은 북벌을 실제로 추진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장수왕”, 공민왕“, ”이성계“, ”정도전“,”이황“, ”명성황후“ 등 우리가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위인 18인의 왜곡된 신화를 사료를 통해 철저히 벗겨내고 그들의 실제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종성의 ”한국사 인물통찰“은 우리가 그동안 그들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왔는지에 대해 뼈 아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의 의문인 ”효종의 북벌론“에 대하여 작가는 효종은 사실 공개적으로 북벌을 추진한 적이 없으며, 그가 추진한 군비 증강도 고작 중앙군 수 천명 늘린 것에 불과한 왕권강화가 실제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렸을 적 내가 가졌던 환상은 바로 여기서 처참히 깨져버린다.
그럼 왜 효종은 북벌론의 대명사로 여기지고 있을까? 실제 효종의 북벌론이 역사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건 효종이 급서하기 2개월 전 효종과 서인의 당수 송시열의 비밀 독대가 처음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군비를 증강하는 것을 의심스러워 하는 송시열에게 군비증강은 북벌을 위한 것으로 앞으로 10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의한데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송시열의 답은 ”원칙은 찬성하나 그러다 국가가 망하면 어찌하려느냐 나는 능력이 없다” 라고 단호히 거절한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드라마의 신화가 무참히 깨진다. 송시열은 결코 효종을 도와 북벌을 기획한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을 설득하려는 왕의 제의를 거절하고 비꼬는 그런 위인이었던 것이다.
북벌론의 신화는 효종 사후 예송논쟁이 벌어지면서 송시열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이를 모면하고자 비밀독대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나는 효종처럼 북벌론자“라는 허위 주장을 제기하면서 부각되었고 결국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명(明)과의 의리를 강조하는 송시열의 논리가 현재의 한미동맹을 옹호하는 보수적 지식인들의 정치논리와 부합되어 쉽게 깨지지 않는 신화가 되어버렸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효종의 북벌론이 허구였다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있었겠지만 역사드라마나 소설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가 각인된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작가는 역사적 사료들과 각종 논문들을 바탕으로 환상을 철저히 깨뜨린다.
가장 논쟁거리가 될 이야기이자 실제 작가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조선 개국의 영웅 ”이성계“ 편은 이성계는 우리 한민족이 아닌 여진족일 가능성이 높으며 조선전기 역사적 특이사실들, 즉 그 당시 여진족 중 과반수가 조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밀어붙인 이유 등을 이해하는 데 단초가 된다고 해설하는 부분 또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 18인의 이야기를 담으려니 충분한 사료와 역사적 근거를 담기에는 다소 전문성이 미흡하지만 오히려 그런 쉬운 설명이 일반 독자들이 마치 거대한 음모론의 베일을 들춰보는 것처럼 흥미 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소개되지 않은 다른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담긴 후속작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끝으로 개혁군주로 유명한 “광해군”편에서의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정권 개혁 세력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지만 그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갖는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며 현 정권에서 왜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개혁가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이 애정에 이끌리기 쉽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비판해야 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개혁에 실패할 경우에는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조건은 개혁 이전으로 회귀하고, 개혁으로 인해 잠시 혜택을 누린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는 더욱 더 불행해지며, 개혁을 지지한 선의의 인재나 대중이 신상의 불이익을 겪게 된다.(중략). 실패한 개혁을 주도한 지도자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한 개혁가도 엄밀히 말하면 역사의 죄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