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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사들
마이클 셰이본 지음, 이은정 옮김, 게리 지아니 그림 / 올(사피엔스21)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위대한 탐정 “셜록흠즈”의 말년에 대한 애처로움과 회상을 문학적 감수성과 추리소설적 재미를 더하여 그려낸 “셜록홈즈의 최후의 해결책”의 저자이자 플리처 상 수상 작가인 “‘마이클 세이본“이 이번에는 유대인 노상강도 두 명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그린, “순전히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썼다는 조금은 엉뚱한 소설을 펴냈다. 우리가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도 멋스럽게 부르는 것처럼 노상강도를 지칭하는 “길위의 신사들(Gentlemen of the Road)” 이 바로 그 소설이다.
허수아비처럼 호리호리하고 새다리처럼 연약한 정강이를 가진 프랑크인 “젤리크만”과 구리주전자 같은 광택나는 피부의 근육질 아프리카인 “암람”은 중동 아란 왕국 어느 선술집에서 내기 돈을 딸 목적으로 사기 결투를 벌이고 돈을 챙겨 도망가려는 중에 애꾸눈 코끼리 조련사 “마하우트”에게 딱 걸리고 만다. 마하우트는 두 사람에게 어린 소년을 맡기면서 이 아이를 외가쪽 친척이 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으로 무사히 데려다주면 큰 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소년은 하자르 왕국의 전사왕(그 나라말로는 "베크“라고 부른다)의 아들로 부하장군 불잔의 쿠테타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왕자 ”필라크“였다. 이 임무를 수행하느냐로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마하무트는 불잔이 보낸 추격단의 화살에 죽어버리고 엉겁결에 ”길위의 신사“(노상강도)”이자 유대인인 두 남자와 왕자 필라크는 아란왕국에서 하자르 왕국까지 이르는 긴 모험에 나서게 되고, 노르드인의 습격, 불잔에 대항하는 반군결성과 전쟁, 수없이 붙잡히지만 다시 극적으로 탈출하고 하자르 왕국의 황제 카칸과의 만남 등등 수많은 우여곡절과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필라크에게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아주고 다시 정처 없는 모험길을 떠난다.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중세 중동 국가인 하자르 왕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모험 활극으로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황량한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과 모래가 입안에 서걱 서걱 씹히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으뜸이다. 특히 어미가 짧은 현대 소설과는 달리 문장을 길게 늘여 쓰고, 곳곳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아랍어 단어들 - 책 말미에 “옮긴이 주”로 세세한 설명이 겻들어져 있다. 아쉬운 것은 생소한 단어가 나오면 책 말미를 계속 펼쳐 봐야 하는 불편함인데 차라리 단어가 나오는 책 하단에 표기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각 장(章)마다 등장하는 옛스런 삽화 등은 마치 “돈키호테”나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후기에서 작가는 유대인하면 떠오르는 비호감의 이미지. 즉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르며 펜싱 검이나 휘두르는 왜소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랜 기간 동안 각자의 조국을 위해 투쟁해온 감을 든 유대인 전사의 이미지와 수 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길고 긴 모험의 전통을 결합시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냈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 못지않게 기발하고 색다른 두 주인공의 모험은 작가의 의도대로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인 모험소설의 재미와 새로운 유대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주인공의 삶과 모험을 다 담아내기에는 너무 짧은 분량은 읽다만 것처럼 너무 아쉽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두 주인공의 모험이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부디 다음 소설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