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오래전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해맞이(일출)를 본 적이 있다.
6월 중순임에도 쌀쌀한 날씨에 들고 간 외투를 걸쳐 입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이제나 저제나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고 있던 중 드디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쪽 짙푸른 코발트 빛 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자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금새 솟아오른 태양이 온 하늘을 밝고 연한 파란색으로 하늘빛을 바꾸어 놓고 같이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지만 일출의 감동과 여운에 쉽게 발을 떠나지 못했고 결국 태양이 한참 솟은 후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서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안가에 늘어선 이쁜 집들을 보면서 저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해맞이를 아침마다 맞이하겠구나 나도 훗날 내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저런 이쁜 집에서 아침 해맞이에 눈을 뜨는 그런 삶을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십 수년이 지났지만 내 삶은 아직도 여유롭지 못하고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 베란다 전망에 만족하고 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힘들거나 지칠 때면 양양 해안가의 작은 별장처럼 이쁜 그 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그저 꿈으로 끝나버릴 내 희망을 먼저 이룬 부러운 사람이 생겼다. 파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의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그 풍경이 좋아 여기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강원도 동해시 바닷가 작은 집에서 살았고 겨울 바다 추위를 피해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집을 짓고 3년째 살고 있는 작가 박정석이다.
작가는 TV, 전자레인지, 인터넷도 없고 온수를 쓰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허름한 바닷가 낡은 오두막집, 창문을 열면 파란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면 햇살, 바람, 바다 모든 것이 맑고, 파랗고, 고요한,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곳에서 여름, 가을을 보내고 처음 경험해보는 쓸쓸한 겨울 추위에 인근 마을 바다와 산 중간쯤, 바다까지는 걸어서 2킬로미터 정도인 곳에 집을 한 채 짓고 본격적인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대단한 것이라고는 식욕뿐이지만 언제나 생기로 터질 것 같은 첫 애완견이었지만 결국 실종되서 큰 아픔을 준 비글 “이달고” ,독일식 이름을 붙여가며 키우기 시작한 닭들, 이웃집 할머니와 함께 하는 봄 나물, 가을 밤 채집. 5월 오솔길 산딸기 채집, 그리고 감성돔 낚시에 푹 빠져 사는 미용실 원장님,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면서도 한결같이 묵호 거리를 지키고 있는 잡화점 아저씨, 잘모르는 남의 도움을 받아본 적도 청한 적도 없이 수줍어하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3년여 만에 작가는 강원도 바닷가 작은 도시에 어느새 오래된 풍경처럼 자연스레 동화 되어 간다.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누구라도 부러워 할 그런 삶을 감상적인 글들과 이쁘기만 한 사진으로만 담아냈다면 오히려 식상했을 그런 시골생활을 낯설고 불편한 점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결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루 하루 일기장에 꼭꼭 눌러 쓰듯이 자신이 살아온 그 자체를 담백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어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는 “어지간해선 안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라는 그녀의 어머니 말씀처럼 앞으로 그 곳에서 더 머물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바닷 바람 한번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리는, 그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곳에서 앞으로도 그녀는 계속 머물 것 같다.
나는 언제쯤 그녀처럼 삶의 고단함을 훌훌 털고 어느 여름 해맞이를 보면서 빌었던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바다 살이는 아직 이 도시에 미련이 많은 나로써는 언제쯤일지 기약을 할 수 가 없고 그저 여름 휴가철 잠시 머무는, 어쩌면 영원히 이루지 못할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멈출 수 없는 나만의 비밀스런 희망으로 앞으로도 계속 꿈꿀 것 같다.
이번 여름에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최고의 학벌과 직장을 훌훌 던져버리고 오래전부터 꿈꿔온 시골 생활을 위해 5년 전 훌쩍 경상도 영주 산골로 들어가 살고 있는 선배를 찾아가봐야겠다. 그래서 그에게 언제가도 물어봤던 그 질문을 다시 해야겠다. 행복하냐고. 그럼 그는 언젠가처럼 행복하다 답하지 않고 그저 환하게 웃을 것이다. 행복은 결코 한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계속 키워나가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의 환한 웃음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