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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월드컵 열기에 잊혀질 뻔한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도, 다수당의 오만과 횡포로 자칫 잃어버릴 뻔한 우리의 대통령을 다시 그 자리에 돌려놓은 것도, 허울뿐인 경제논리에 국민의 건강을 아무렇지도 않게 팔아 넘기는 정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도 거창한 사회운동이나 언론사의 특종보도가 아닌 작은 숨 바람에도 금세 꺼질 듯 흔들리는 연약한 촛불들이 하나 둘씩 모여 어두운 장막 속에 가리워진 진실을 밝게 비춰낸 결과였다. 특히 지난 2008년 봄 여중고생들로부터 시작해 전국을 환하게 밝혔던 100일간의 촛불 집회는 한때 경직된 운동권들의 전유물이자 폭력적이기만 했던 시위를 교복 입은 중고생들,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온 어머니들. 두손 꼭잡고 밝게 웃으며 행진하던 젊은 연인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 흰머리가 멋지셧던 8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전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신명나고 즐거운 집회로 승화시킨 일종의 축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김선우의 “캔들 플라워”는 어느 해 보다도 뜨거웠던 2008년 여름 광화문 촛불집회를 생생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 사는 15세 소녀 지오가 어렸을 적 헤어진 쌍둥이를 찾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 온 2008년 5월 17일에서 자신의 나라로 귀국한 6월 21일까지 한달여 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절정이었던 서울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청년 실업난으로 인해 사회의 불의에 대한 분노를 잊어버린 대학생들과 고단한 삶에 지쳐 더욱 소심해져가는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든 여중고생의 밝고 건강한 외침에서 시작한 촛불집회가 하나둘씩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들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진 촛불의 물결이 서로가 어깨동무하고 같이 소리치고 노래 부르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그 신명을 더해가는 순간순간들을 마치 그 당시 집회 현장 곳곳을 누비며 인터뷰하고 카메라로 담아 생중계했던 인터넷 방송을 다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지오와 그의 주변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뻔뻔하고 오만한 정부의 일련의 정책들과 사회모순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 한국 학생들의 현실에 놀라 되묻는 지오의 물음 “표정, 몸매, 향기가 날마다 달라지는 나무들과는 언제 놀고? 새들과는? 사슴과 너구리, 꽃과 약초들, 곰과 토끼랑은? 수영은 언제하고 요트는 언제 타고? 산책은? 날마다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신기한 구름모양의 구름들은 언제 바라보지? ” 는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진기한 모험 시간이어야 하는 공부가 일종의 족쇄처럼 한국 청소년들의 어깨와 발목을 옥죄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자칫 촛불집회 현장을 중계하는 다큐멘터리에 흐를 수 있는 이야기에 지오와 주변 인물들 이야기를 감수성을 한껏 살려 문학적 생기를 불어넣고, 촛불은 단지 배경일 뿐인 감상적인 멜로소설로 빠질 수 있는 이야기에 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의이야기를 곁에서 바로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살려냄으로써 현장의 생동감과 문학으로서의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촛불집회를 주제로 한 이렇게 멋있는 소설을 써낸 작가의 글솜씨가 새삼 감탄스럽다.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오래전 일처럼 잊혀지기 시작하는 그 여름날의 촛불들에 대해 작가는 “정치꾼들의 정치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정치는 변하고 있는 걸.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언젠가 변하게 될거야. 우린 자연이니까. 촛불을 경험한 연둣빛 소녀소년들이 푸르른 이십대가 되는 때가 곧 오는 걸”이라며 아직 촛불은 끝나지 않았고 그것을 경험했던 소년소녀들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2008년 여름의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한송이 아름다운 꽃, “캔들 플라워”로 영원히 남아 언제가 다시 이 사회에 어둠의 장막이 진실을 가리울 때 다시 한번 아름답게 타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