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을 잘 못 눌러 심호흡 한번 길게 내쉬시고는 전화버튼을 조심스레 눌렀지만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귀하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라는 차가운 기계음만 들려왔을 때, 언제쯤 오나 하고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감전된 듯이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보고 혹시나 싶어 대문 옆 우체통에 몇 번을 손을 넣어 보지만 잡히는 건 전기료, 가스료 지로 영수증 뿐이고 오늘은 안오겠지 하고 불안한 마음에 외출하고 오면 어머니 손에 들려있는 구겨진 내 성적표을 보았을 때, 큰 맘 먹고 산 로또 “제발”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추첨 생방송을 지켜보지만 어찌 그리 내가 적은 숫자는 그리 잘 피해 가는지 홧김에 쓰레기 통에 집어 던졌지만 쓰레기통에 튕겨 나와 "그거 하나 제대로 못버려"하고 마누라에게 핀잔 한소리를 들을 때, 정말 그런 날에는 정말 내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나 영혼을 팔아도 좋으니 악마라도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슈가와 미나토의 단편집 “오늘은 서비스 데이”는 나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그런 이야기를 악마가 아닌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단 하루의 선물, 삶에 있어서 일종의 보너스와 같은 “서비스 데이”로 재밌게 그리고 있다. 

노스탤직 호러 -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전후 복구 시기이자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였던, 우리에게는 베이비 붐, 보릿고개 시절로 기억 되는 1950~60년대 쇼와시대를 배경으로 한 호러물을 일컫는다고 한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것도 추억으로 느끼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일종의 복고 유행이라고나 할까? - 대표 작가라는 슈카와 미나토는 전작인 “도시전설 세피아”는 호러물이면서도 너무 무섭거나 기괴하다기보다는 기발하고 참신한 상상력이 주는 재미와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묘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었는데 이 책 또한 그러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오늘은 서비스데이”는 원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뤄지는 마치 요술램프와도 같은 꿈같은 유쾌한 하루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후배를 직장 상사로 모시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 명예 퇴직 선고를 받아 6개월 안에 그만둬야 하는, 전철로 2시간이나 걸리는 도쿄 외곽에 작은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늦은 시간 집에 귀가해도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은 악마와 천사에게서 내일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단 하루 뿐인 “서비스 데이”라는 말을 듣는다.  꿈이겠더니 하는 마음에 시작한 하루, 무관심했던 가족들이 모두 반갑게 출근인사를 하고, 만원 전철은 마치 예약해놓은 것처럼 빈자리가 있고, 갑자기 친절해진 식당 주인 등등 아침부터 기분 좋은 일들이 연속이 된다. 꿈인줄 알았던 “서비스 데이”가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근무시간에 놀러 나가고, 꿈도 못 꿀 그런 미인에게 작업을 걸어보고, 불가능한 계약도 성사시키는 등 서비스 데이를 맘껏 즐기지만, 맘속으로 가볍게 내 뱉은 자신의 소원이 수 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즉 서비스 데이가 얼마나 '무서운 날'인지 깨닫게 되고는 자신의 서비스 데이와 수백명의 목숨을 걸고 신과 한판 거래를 하고 결국 서비스 데이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사라진 서비스 데이는 그에게 새로운 행운을 가져오고 오히려 하루하루가 서비스데이처럼 든든하고 즐거운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저 만화같이 신나는 하루를 즐기고 그 덧없음에 후회하겠거니 했던 이야기가 급반전을 이루고 마지막에는 묘한 감동을 준다. 나머지 네 편 - “도쿄행복클럽”, “창공 괴담”, "기합입문“, ”푸르른 강가에서“- 한 편 한 편도 극단적인 공포와 기괴함보다는 묘한 여운이 남는 신비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는 앞에서 언급한 ”도시전설 세피아“와 ”오늘은 서비스데이“ 외에도 두 작품이 더 출간되었다고 하니 슈카와 미나토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다.

 나에게 있어 서비스 데이는 과연 있었을까? 다른 도서 이벤트에서 질문이 “당신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뻤던 일을 소개해주세요” 라는 것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번은 정말 행운같은 그런 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서비스 데이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나에게 닥칠 미래에 어느날 일 것이라는 즐거운 믿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 날에는 나에게도 주인공처럼 악마나 천사가 와서 알려줘서 모르고 헛되이 지나가지 않게 되기를. 

자 그럼 지금부터 그날 어떤 소원들을 이루게 해달라고 할 건지 소원을 궁리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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