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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3
염운옥 지음 / 책세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40여 만 명이 강제 불임수술을 당한 1933년 독일의 "유전병 자손 예방법" 등 나치 인종청소의 사상적 배경이기도 한 "우생학"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제는 잊혀진 구시대의 사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글을 쓰게 된 동기"에서 오늘날 "사이비과학"으로 여겨지는 우생학은 "현재에도 다른 이름과 다른 형태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현실을 성찰하고 비판하기 위해 우생학의 지나간 역사를 되집어 보고 오류의 역사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라고 이 책을 집필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엳국에서의 우생학 탄생 배경과 그 이론의 발전 과정(제1장 진화론과 우생학), 우생학의 정책적 적용 방법인 "긍정적 우생학(제2장)"과 "부정적 우생학(제3장)", 그리고 그외의 "예방적우생학(제4장)"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맺는 말"을 통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우생학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먼저 작가가 이야기하는 우생학의 탄생배경과 기원에 대하여 살펴보자.
번영의 시기였던 19세기가 지나고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영국에서는 "인종의 퇴화"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인종의 퇴화란 자연경쟁이었다면 생식능력을 잃어버리고 도태되었어야 할 "인종적 부적격자" 들이 문명화의 결과로 "생존 경쟁의 작용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장치 ", 즉"역선택"의 메커니즘 때문에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하고 그 결과 종의 퇴화가 일어난다"라는 주장이다.결국 이러한 "퇴화"를 방지하고 인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자 시대적 요구로써 등장한 학문이 바로 이 "우생학"인 셈이다.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콜턴"은 1883년 발표한 그의 저서 <인간의 능력과 그 발달에 관한 연구"에서 우생학(eugenics)이란 "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요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를 사회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부적격자의 출산은 억제하고 적격자의 출산을 장려해 인류라는 "종"의 질적향상을 도모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우생학은 다윈의 "진화론" - 물론 다윈은 이런 우생학적 전제를 부정하였다 -, 지금은 너무 익숙한 "정규분포곡선"의 "통계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적 사상과 성공한 부르주아 사업가의 후손이었던 "지적 귀족"이라 불린 그의 가문적 배경을 토대로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19세기 중반 진화론과 유전에 관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던 라마르크 주의 - 획득형질의 유전. 우리에게는 용불용설로 유명하다 - 가 몰락하고 1883년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으며 환경 영향을 받지 않는 유전물질인 "생식질"이 존재한다는 바이스만의 "생식질 연속설"이 각광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20세기 초반 대영제국의 몰락과 제국주의의 대두, 세계대전, 인구감소세와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시대상황들과 맞물려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국가 정책에 반영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우생학의 실천적 방법이자 국가적 정책 시도로써 작가는 "바람직하지 않는 계층"의 출산율을 낮추는 "부정적 우생학"과 "바람직한 계층"의 출산율을 높이는 "긍정적 우생학", 두 가지 방법의 역사적 배경과 도입, 진행과정을 2장과 3장에서 각각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우생학 방법으로는 20세기 초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성수당"에서 유래한 "가족수당"의 도입으로 실행 되어졌고 - 지금이야 출산율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일반적인 복지 정책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20세기 초 당시에는 훌륭한 교육과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적격자"들인 중간 이상 계급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부적격자들인 하위 계급의 인구의 출산율이 증가하는, 일종의 계급간의 출산율 걱차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도입되었다고 한다 -, 부정적 우생학의 방법으로는 소극적 산아제한인 '피임"에서 사회적 약자들인 정신병자, 유전적 장애인들의 생식 능력을 제거하는 극단적인 "단종법" 시행 - 결국 영국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까지 검토되어진 바가 있다고 한다 . 이러한 긍정적, 부정적 우생학적 방법 이외에도 제 4장에서 작가는 성병방지를 위한 "성교육"과 "결혼전 건강진단 계획"등 어찌보면 현시대에서는 결혼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도 이미 1930,40년에 추진되었던 제3의 "예방적 우생학"의 방법의 예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맺는 말에서 그동안의 우생학이 "국가가 국민의 결혼과 출산에 개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은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유전자 검사", "인공중절시술" 등 "개인의 자발적 의지"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개인적 자발"이 결국 출산전 검사를 통한 선택적 중절, 즉 "생명의 질"을 선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우생학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의 평등한 가치"를 부정하고 개인적인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며 우생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이며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로서 "우생학이 제기하는 인간 평등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윤리적 난문을 풀어가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생물교과서 또는 역사책을 통해서나 들어 보았던 우생학에 대한 책이라 비록 200 페이지 분량의 짧은 분량이었음에도 역사적 사실이며 모두가 다 생소하고 어려웠던 책이었다. 그러나 우생학의 이론적 배경과 발전 과정, 우생학에서 비롯된 국가 정책 - 지금도 몇몇 국가에서는 시행되고 있고 가족수당 등은 급여보전이나 복지정책으로 현재에도 실행되고 있다.- 들을 공부할 수 있었던 책읽기였다 . 특히 이제는 잊혀져 버린 과거 산물이라 치부했던 우생학이 생명의 존엄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인 현대시대에서도 비록 자발적 선택이지만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 온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장애인 처우나 복지정책에 지극히 인색하고 외국인 근로자나 다문화 자녀를 멸시하는 우리사회의 풍토는 어쩌면 우리 사고 밑바닥에는 이러한 "우생학"적 생각이 이미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작가가 책 도입부에서 예로 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쟁이 "국익"이라는 거짓의 탈을 쓴 변질되고 타락한 우생학적 사고에 대한 반증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