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역사
현응 지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살(菩薩, bodhi sattva).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러 일체중생을 먼저 이상세계[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두산대백과사전)
 

탈속(脫俗)과 은둔(隱遁), 윤회(輪回)와 해탈(解脫)로 인식되고 있는 불교는 우리 민족과 1,500여년을 함께한 민족종교로서 우리의 삶과 역사에 큰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기복신앙(祈福信仰)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 그 종교적 철학의 깊이와 난해함으로 이해가 많이 부족하고 부족한 이해만큼 오해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불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깨달음”은 현실세계에서 벗어난 “탈속”과 윤회를 종식시키는 “해탈”, 즉 일종의 종교적 행위로써 오해받고 있으며 이러한 오해가 불교는 세속과는 동떨어진, 현실 참여에 부정적인 “은둔의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불교 철학서인 “깨달음과 역사”는 어렵기만 한 “깨달음”에 대하여, 그리고 이 책의 초판이 나온 1980년대 민주화 열풍과 사회관심의 요구가 거세게 일던 시대상황에서 불교의 현실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우리에게 사찰 불상이나 탱화 속 그림으로 친숙한 “보살”의 의미 - “깨달음과 역사” -를 그 철학적 근거로 제시하여 우리의 무지와 오해를 말끔히 걷어내고자 했다.
 

스님은 보살(보디사트바)란 “깨달음(보디)”과 “역사(사트바)"의 합성어로 대승불교의 실천적 주제로서 연기적 존재(空)의 이해("깨달음")를 바탕으로 삶의 자세를 정립하고 실천(”역사“)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먼저 깨달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찰나적 각성에 의해 얻게 된다는, ”혁명적“이기가지 한 철학적 사유방법인 ”깨달음“에 대하여 스님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 번뇌와 욕망을 끊어 제거하는, 즉 윤회를 종식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번뇌와 욕망의 연기성(관계와 변화성)을 깨달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이러한 깨달음은 자신만의 해탈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세를 정립하고 실천해나가는 일이어야 하며, 삶에 있어서 이러한 깨달음과 역사(실천)는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길(실천과 참여)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보살행, 즉 대승불교의 핵심이라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실천에 있어서 1980년대 이후 불교에서 제기되었던 ”민중불교“에 대해서 스님은 불교의 사회적 실천 운동으로서의 ”민중불교운동“를 주목하면서도 ”깨달음“에 소홀히 하고 ”실천“에 집작하는 민중불교의 문제점과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그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깨달음과 역사를 함께 묶어낸 대승불교 ”보디사트바“의 역사정신과 실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깨달음과 역사”라는 주제는 불교에서 유명한 여러 단어들, 즉 “돈오(頓悟)”,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주로 없을 무(無)“로 이해되어지는 ”공(空)“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석의 도구로서 설명되어진다. 특히 1970년대 성철 큰스님에게서 촉발된 한국불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이었던 ”돈오돈수“,”돈오점수“ 논쟁에 대하여 혁명적 깨달음(”돈오“)과 역사적 영역과의 상관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둘 다 그르다고 주장한 점은 참신하기까지 하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스님의 해석이 실제 불교계에서 인정받고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세속의 잣대로 스님의 철학을 견줘보려는 속좁은 세속인의 관심에 불과하다). 책 말미에는 앞에서의 어려운 불교이론 해설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단상과 법우인 현담, 법연 스님에 대한 스님의 애정어린 따뜻한 시선을 술회한 몇 편의 수필이 실려 있어 흐뭇하게 책 읽기를 마무리하게 해준다.


불교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인 “깨달음”에 대하여, 그리고 불교의 사회 참여의 논리적 근거로서의 “역사성”에 대한 주제의식이 돋보인 이 책은 스님의 일관되고 쉬운 해석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불교에 대해 관심과 기초지식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도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어려운 단어는 인터넷 검색을 해가면서 읽었지만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소 어려운 책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그저 불교 용어로서만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여러 용어들에 대하여 제대로 개념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에게 “혁명적 깨달음”과 “역사의 실천”을 행한다는 것은 요원하기만 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경 그자체를 거부하는 소승적 “아라한”의 삶과는 달리 “알맞은 도수의 안경이나 색안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사회와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승적 “보살”의 삶은 물질적 욕망에 매몰되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로운 가치 지향점으로 제시될 수 있을만 하다. 고리타분하고 현학적인 종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철학적 대안으로서 각광받기 시작한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이책은 충분한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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