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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산
문영 지음 / 삼우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초록불의 잡학다식"을 운영하는 스타 블로거인 "이문영"의 소설인 "취리산"은 서기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의 화랑 관창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665년 웅진성 취리산에서 당과 신라 문무왕의 "맹약"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그린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복신", "흑치상지", "도침", "부여풍" 등과 반대편 백제 멸망의 주역들인 "김춘추","김유신", "소정방", "법민"등 역사책의 인물들이 만들어냈던 역사적 사실(史實)들과 계백의 부장으로 "태자 전하와 왕자 전하들 간의 불화를 막고 도성을 지켜야 한다"는 계백의 유언을 수행하고자 계백이 남긴 한자 남 짓의 단검을 들고 백제 부흥 운동에 나선 "사충", 대장장이 아들 "무진"을 사랑했지만 웅진성에 이은 부소산성이 함락되면서 정혼자를 잃고 사충에게 목숨을 구원받아 그를 사랑하게 되는 "박꽃 같은 여인" 보주, 두 가상의 인물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자연스레 엮어내어 백제 멸망 이후의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역사책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 부흥 운동은 들불처럼 기세 좋게 타올랐지만 지도층의 분열로 결국 그 기치를 제대로 올려보지도 못하고 결국 막을 내렸고, 주인공 사충과 보주도 그 부흥운동의 성쇠에 따라 온갖 신고를 겪는다. 결국 백제의 마지막 왕자 "부여풍"을 고구려로 망명시키고 지수신과 함께 지키던 마지막 백제성인 "임존성"이 함락되자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사충"은 "보주" 곁으로 돌아온다. 그는 '최선을 다했어도 미련이 남았다. 칼을 남겨주신 뜻은 살아가라는 말씀이셨을 게다. 미련이 남았으니 마저 살아야 할 것이다' 결국 그는 한팔을 잃은 보주의 남은 팔이 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패자의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백제 부흥 운동을 소재로 하면서도 그들의 슬픔과 좌절을 과장된 필체로 비장하게 그리기 보다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물들인 일개 장수와 그의 여인,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담백한 필치로 그려 오히려 자연스레 그들의 치열한 삶과 슬픔에 동화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놀랄만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두개를 들 수 있는데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죽음과 백제 왕자 부여풍이 버리고 간 "보검"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춘추의 죽음은 현재까지도 "병사"냐 "암살"이냐로 여러 해석들이 많은 역사적 미스테리인데 소설적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흥미진진하고 놀랄만한 이야기를 풀어냈고 주인공인 "사충"과 "보주"가 만난 계기가 되었던 "보검"은 백제 부흥 운동의 흐름을 바꿔놓고 마지막 장 "취리산의 맹약"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만들어 내는 등 역사적 사실과 교묘히 조화를 이루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종의 "키" 역할을 한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천 삼백여년 전의 그들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시간이라는 한계를 넘어 그들과 우리 사이의 삶속에 그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요? 이 어려운 문제의 해답을 찾기에는 이 소설이 너무나 짧습니다만, 함께 그길을 찾아가 보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삼국 통일의 격변기에 살았던 우리들의 먼 조상들과 천 삼 백년 후 현대의 우리들과는 처한 역사적 현실이나 닥친 삶의 고통들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여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만큼은 그 삶의 가치나 경중을 떠나서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다르지 않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천 삼백년 전의 이름모를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당신들의 삶은 그들과 비교하면 과연 어떠한지 반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