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 강의노트
류동민 지음 /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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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저작은 이해하기 어렵다.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이나 윌리엄 페티같은 고전파의 시조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프랑수아 케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같이 현대에도 학설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의 개념들을 달달 꿰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헤겔이나 포이어바흐 같은 철학자들에 대한 이해도 핵심적으로 요구되는데다 당대의 역사적 배경지식까지도 필요하다. 때문에 맑스주의는 경제학, 철학, 사회학, 역사학 등등 여러가지 학문에서 두루 접두사로 통용돼왔다.

이중 맑스의 핵심은 자본주의에 관한 메타분석이었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내 생각을 정리하면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시간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역사성을 가지며, 경제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잉여의 몫을 두고 자본과 노동은 대립 관계이므로 계급은 중요한 요소라는 것. 결국 맑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경제학적으로 맑스를 이해하는 것을 배제할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맑스의 저작은 여러가지 배경지식을 지니고 있어야 수월하게 읽히므로 어렵다. 때문에 직접 그의 저작을 읽기보다 여러가지 배경지식들을 전달하면서 맑스 경제학에 관한 개념들을 정리한 요약서를 읽는 경우가 많다.

요약서들은 맑스의 개념적 틀을 충실히 요약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들은 부족하다. 맑스는 19세기 사람이다. 그의 저작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자본주의는 생동성이 있으므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그의 저작이 백퍼센트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맑스가 모든 걸 틀렸고 그를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맑스의 핵심적인 분석은 살리면서 기술적인 틀을 새롭게 해나가야한다. 요약서들은 이런 면에서 단순히 맑스의 개념만을 교조적으로 따르면서 비판에 방어적으로 대응하거나 단지 주류경제학을 비판할 뿐이었다.

이책은 맑스의 개념을 요약하기만 한 요약서는 아니다. 맑스의 문제의식은 가지면서 분석틀에 있어서 현대적인 발전 양태들을 다룬다. 특히 맑스 경제학에서는 비판적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수학을 통한 발전 양태를 주로 다룬다. 물론 기존의 맑스 경제학이 수학을 다루는 것을 자제하였으므로 다른 요약서들은 수학을 배제하면서 쉽게 다루려고 하는데 비해 이책은 수학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난이도가 들쑥날쑥하다. 때문에 앞서 말한 충실한 요약서들을 읽고 대학에서 요구하는 경제수학 정도는 마스터하고 이책을 읽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책의 의의는 단순히 맑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그동안의 비판과 논쟁을 수렴하면서 발전한 현재의 이론들을 다룬다는 것에 있다.

이책의 핵심파트는 아마 노동가치론일 것이다. 저자 본인도 노동가치론 파트에서는 난이도가 높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맑스의 경제학이 엄밀하지 못 하다는 의견에 대한 반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가치론은 보통의 요약서들에서는 단순히 상대가격을 의미하거나 자본가가 노동자들의 노동일을 연장하면서 착취를 하는 의미로 미시적으로 분석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노동가치론에 대한 논쟁인 전형논쟁을 통해 노동가치론의 발전을 설명하면서 노동가치론은 상대가격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고 밝힌다. 오히려 좀 더 거시적인 의미인 계급 간의 대립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사회적 노동의 배분과 그 양적 변동을 파악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밝힌다.

경제학에서 학문적 다원주의라는 개념은 상당히 부족하다. 특히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대표격인 맨큐의 경제학은 경제학이 하나인 것처럼 서술되며 행동경제학을 제외하면 반주류는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같은 학파로 분류되지만 훨씬 진보적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책에서는 반주류도 보인다. 물론 스티글리츠의 책도 반주류의 입장이나 이론을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은 맨큐와 똑같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시도한 작업은 주류가 아닌 반주류의 경제학도 엄격히 발전하고 있으며 주류의 입장에서 단순히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추가로 저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데 저자는 맑스 경제학 전공자이면서도 수리적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 주류경제학에 대해도 조예가 있으며 경제학설사도 꿰고 있는 사람이다. 일반적인 경제학설사에서 맑스는 거의 빠짐없이 다루지만 맑스 경제학의 발전은 다루지 않으며 다른 반주류 경제학은 더더욱 다루지 않는다. 저자가 가진 능력은 반주류경제학의 학설사를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꼭 반주류경제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설사를 개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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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고전의세계 리커버
데이비드 리카도 지음, 권기철 옮김 / 책세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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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카도는 비교우위를 통한 자유무역이론, 이윤론 지대론의 모델 등 유명한 것이 많은데 이는 자신의 노동가치론이 기반이다. 비교우위도 노동가치론에 기반한 상대가격으로 다뤄진다. 그러므로 리카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가치론을 이해해야 한다.

리카도가 이윤론 지대론을 전개하기 위해서 쓴 방식은 가격이 불변이라는 가정인데 이는 현실의 가격이 변동한다는 토머스 멜서스의 비판을 받게 되고 이에 리카도는 노동가치론을 통한 자신의 가격이론을 만든다. 노동가치론은 애덤 스미스가 순수한 노동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두 상품의 교환은 노동량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데서 시작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자본에 붙는 이윤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며 합산이론을 택한다.

하지만 리카도는 이를 자본주의에서도 관철 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가정을 달아야 하는데 우선 자연물은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인간의 손이 닿아야만 가치를 가진다. 자본의 경우 그 자체가 다른 상품의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중간 생산물로서 과거의 노동이 체현된 것이 된다. 노동에 있어 숙련과 미숙련의 구분은 시간으로 다뤄진다.(리카도는 이를 완전히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암시를 남기긴 했다.)

하지만 노동가치가 곧 상품의 가격이 되지는 않는다.
ㅡ노동과 자본의 비율이 상이할 때
ㅡ자본의 내구성 차이
ㅡ자본이 얼마나 긴 생산단계를 가지느냐
ㅡ이윤율과 임금률의 변화
이것들이 노동가치가 정확한 가격이 되지 못 하게 막는데 간단히 말하면 자본에 이윤이 붙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다.

노동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의 구성이 사회적 평균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고 이 상품의 이윤율로 다른 상품의 이윤율과 비교해야 노동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알 수 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과 여러가지 가정을 둬야하는 노동가치론을 계속 탐구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카도는 생산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총생산량-임금(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산물의 노동량)=이윤이 된다는 걸 밝힌다. 결국 임금과 이윤은 반비례 관계가 되는데 이는 노동과 자본이 경쟁적 관계라는 계급적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리카도는 노동의 편을 들지 않으며 자본축적을 옹호하지만 이 노동가치론이 완성된다면 사회적 평균인 이윤율과 각각의 산업의 이윤율을 알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리카도의 모델에서는 지대까지 언급되는데 지대는 노동과 자본의 몫을 가져가므로 공공의 이익과는 상반된다고 보게 된다. 정리하면 리카도의 노동가치론과 이윤론 지대론을 통해 노동자 자본가 지주 3대 계급의 갈등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노동가치론은 완벽하지 않으며 여러가지 비판을 받는데 생산적 노동만 강조한다, 이외의 비생산적 노동들은 분석이 잘 안 된다. 돌봄노동의 가치는? 재생산을 위한 노동의 가치는? 정보재의 가치는? 또한 장인의 기술이 들어간 것과 같은 희소한 상품의 가치는 아예 가격이론에서 배제된다.

또 노동시간이 가격이 될 수 있는가? 시장가격과 자연가격은 다르다고 하는대 이럴 거면 자연가격은 왜 존재하는데? 굳이 가격을 직접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통해 계산을 하므로 불필요한 우회라는 비판, 게다가 정확하게 가치가 가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결론은 너무 복잡하고 이것저것 따져야 하는데도 정확하지도 않다. 오히려 효용에 입각한 이론은 보편적이면서 직관적으로 간단하게 쓸 수 있다. 물론 이 효용가치론도 비판을 받는데 계급적 관심없이 교환에만 신경쓰므로 교환의 총량만 늘어나면 된다는 사고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계급적 관점으로 갈등을 그리는 노동가치론과는 다른 입장이 된다.

효용가치론을 따라 현대경제학은 갈등적 관점이 아니라 조화로운 교환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즉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교환관계만이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것이다. 리카도 또한 조화로운 관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노동가치론은 사회적 계급에 따른 갈등적 관점을 나타낸다. 리카도는 원리에서 '이 분배의 법칙을 규제하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주된 명제'라고 언명하는데 이는 각 계급들 사이의 몫을 어떻게 나눌까라는 의미다. 오늘날 리카도를 읽는 이유도 분배의 문제를 다시 되새기고자 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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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차경숙 옮김 / 파라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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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자와 히로후미는 일본의 근대경제학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손꼽힌다. 때문에 소개할 때 일본에서 노벨경제학상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사람이 쓴 책은 어려울 것 같지만 이책은 엄격한 논리를 따르는 논문집이 아니라 강연집이라 쉽다. 게다가 시카고대학에서 밀턴 프리드먼과 대척점에 있던 사람으로서의 그에 대한 이야기,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인재들을 앗아가 학계를 황폐히 했는지도 이야기한다. 또한 케인즈 혁명 시대의 증인이면서 서커스의 일원들과 교류한 내용도 밝힌다. 나는 환경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우자와는 경제학과 환경보호를 엮어서 이야기 한다. 내용은 쉬우나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어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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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제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차경숙 옮김 / 파라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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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자와 히로후미는 사람을 위한 경제학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런 그가 밀턴 프리드먼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베트남 전쟁이 학계에 어떤 폐해를 끼쳤는지를 이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엄격한 경제학서는 아니지만 특히 미국의 학계의 조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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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인즈의 경제학
박만섭 / 다산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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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여러 사람이 쓴 공저이고 따라서 각 장마다 관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 근원은 케인즈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나도 케인즈에 관심이 있고 또한 가격이론이나 가치론에도 관심이 있는데 이책에서는 내가 관심있는 가치론으로 보는 케인즈와 맑스의 연관성과 관한 파트가 있어 흥미를 끈다. 내가 아는 케인즈는 이 분야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고 케임브리지의 제럴드 쇼브도 케인즈는 가격이론, 가치론에 관심이 없었다고까지 했다. 여튼 좀 더 깊숙히 들어가봐야 할 것 같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의 케인즈는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추천으로 칼 맑스의 자본론을 읽었으나 경제학적 가치는 제로라며 비판한다. 그러면서 맑스의 리카도적 가치를 제거할 것이라고까지 하는데 사실 케인즈는 맑스에 대해 잘 모른다고 고백하기도 했으며, 자본론을 읽기 전부터 유효수요 이론과 반대되는 세이의 법칙을 따른 리카도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국 케인즈는 맑스에 대해서는 잘 몰랐음에다 리카도에 대한 비판적 의식으로 맑스를 제대로 못 봤을 가능성이 있다.

상당히 많은 후학들의 연구에 의하면 맑스와 케인즈는 연관된 것이 많다고 한다. 몆 가지 예를 들자면 케인즈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매우 강하게 비판하는데 맑스는 리카도와는 다르게 세이의 법칙을 거부한다. 게다가 일본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맑스의 노동가치론을 케인즈의 승수와 비슷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봤던 하나의 논문은 맑스를 포스트케인지언의 원류로서 보는 논문도 있었다. 사실 케인즈의 제자이자 일반이론의 조력자, 포스트 케인지언의 대표자인 조앤 로빈슨도 1930년대 후반 당시 유력한 맑스주의 이론가이던 존 스트레이치의 책을 읽었으나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는 맑스에게서 경제학적 관점을 봤다고 했다.

더 나아가 류동민은 케인즈를 직접적으로 노동가치론의 관점으로 본다. 케인즈는 직접적으로 전고전파가 노동단위를 유일한 물적 단위로 택하는 것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 평가는 해석을 요하지만 그가 노동가치론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반이론에서 그가 노동단위와 임금단위를 거시경제변수를 측정하기 위한 중요한 단위로 본다는 것이 이를 더욱 강화하며 또한 모리시마가 노동가치론은 1.상품의 균형 교환비율을 의미 2.서로 이질적인 산업을 집계하기 위한 변수라고 정의하고 맑스가 일반이론을 읽었다면 집계변수로 노동가치론을 썼을 거라는 의견을 인용하기도 한다.

물론 류동민은 맑스와 케인즈의 본질적인 차이점도 이야기한다. 케인즈는 노동 한 단위가 지배하는 임금의 양을 임금개념을 일관되게 사용했고, 각 노동에 주어주지는 임금률을 기준으로 노동량을 동질화시키는 방법을 제시는데 이는 자본을 물량 개념으로 파악할 때의 논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기에 노동가치론의 관점과 유사하나 이는 제한된 상황에서만 적용했으며 가치척도로서의 노동가치론에는 명백히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며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또한 둘 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적 구조를 알고 있었지만 케인즈는 좀 더 자본가의 능력을 중요시 했고 노동에 있어서도 경영을 노동으로 넣는 등 맑스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 또 본인이 이자생활자라 부른 집단에 대해서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여긴 반면 맑스는 자본가든 이자생활자든 투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므로 둘은 비슷한 관점도 있지만 차이점 또한 분명했다는 것.

맑스와 케인즈는 경제를 개인 간의 관계로서만 보지 않는데, 때문에 경제를 개인 간의 교환의 문제로서 보는 비판자들은 케인즈를 라이트 사회주의자라고 평가한다. 뭐 그들의 입장에서는 루즈벨트는 히틀러나 스탈린과 다를바없는 전체주의자일 뿐이니 이런 평가는 당연한 것일테다. 하지만 케인즈는 시장체제를 버리자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는 문제가 많지만 자본주의를 뭘로 대체할지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을 정도로 자본주의 외의 대안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케인즈의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같이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그것들을 고민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니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맑스와 케인즈는 서로 간의 관점의 유사성도 있었고 차이가 있었음도 분명하나 시장이 언제나 완전하다는 견해에는 둘 다 부정했을 것 임이 틀림없다.

ㅡ이책에는 케인즈와 맑스, 하이에크를 연결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 또한 흥미롭다. 나는 시장의 불완전성에는 공감하는데 그렇다고 이를 교정할 정부를 신뢰하지는 못 한다. 때문에 하이에크처럼 시장이 가장 나은 배분기구라는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이 시장기구 안에서 가장 나은 교정 방식을 찾고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파트는 여러가지 입장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므로 나와 비슷한 입장이라면 흥미로울 수 있을 것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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