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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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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 시적인 문체와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책.

아버지와 아들의 짧고 생략된 대화가 그 어떤 긴 대화보다 강렬했고 슬프며 아름다웠다. 죽음 외에는 답이 없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이라니, 이 작품의 뛰어남이 아닌가 싶다. 

지옥같은 세상에서 아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하다간 아버지에게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꼈다.

죽음이라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아버지와 아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사랑과 인간애에 몇 번이나 눈물이 흘렀는지...

내 앞에 길이 있는 한 -비록 그 길이 지옥일지라도- 계속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어떤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남자가 소년의 손을 잡으며 씨근 거렸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길을 따라가다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늘 운이 좋았어. 너도 운이 좋을 거야. 가보면 알아. 그냥 가. 괜찮을 거야.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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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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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제 반 정도 산 내가 과연 스토너의 삶이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삶을 끝마치는 순간까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스토너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패한 듯 보이는 그의 삶이지만 그가 자신의 삶을 산 방식은 그로서는 최선이었고 그 안에서 어떤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순간의 묘사 중, "그는 그 자신이었다"(p.391) 라는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자신이 쓴 책을 쓰다듬으며 책이 자신을 그 안에 가둬주기를, 옛날의 공포와도 같았던 설렘이 자신을 고정시켜주기를 바라며 죽음을 기다리는 스토너.

나는 죽는 순간 진정 나 자신임을 느낄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자기 자신과의 고독하면서도 찬란한 대면.

이언 매큐언의 찬사처럼 스토너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정말 최고이다.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자신의 일부가 녹아있는 책이 죽어가는 그의 가슴 위로 떨어지고 이어지는 고요함.

책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스토너는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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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블렌드 봄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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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만 있고 봄 커피 특유의 화사한 향과 깔끔함이 없습니다. 너무 맛이 없어 다른 원두와 섞어서 먹고 있는데 돈이 아깝습니다. (200g,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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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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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김중혁 작가의 책.

음악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집으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해서 읽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인데, 슬프게도 기대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 계속 읽긴 했지만 읽으면서 큰 재미는 못 느꼈다. 그러나 작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은 인상적이었다.

8편의 단편 중 <비닐광 시대>, <엇박자 D>가 좋았고 기억에 남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구절을 적어본다.

이건 정말 세상에서 하나뿐인 음악들일까. 이 사람들의 음악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디제이인 것이다.
<비닐광 시대(Vinyl狂 時代)> - P104

무선 헤드셋에서 다시 엇박자D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명은 하나도 켜지질 않았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둠 속이어서 그런 것일까.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간 생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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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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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서 우연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이 마치 달이 차고 이지러지듯 신비스럽게 펼쳐진다.

초반에는 살짝 지루했으나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과 그로 인해 뻗어 나가는 이야기의 알 수 없음(다소 황당무계한)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었다.

그러나 이언 매큐언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와 같은 독자로서 갖게 되는 애정은 생기지 않는다.

초반 주인공이 왜 자신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 절실하게 이해가 안갔고 다른 설정들도  억지스러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당황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란게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이런 우연은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대에 얽힌 우연과 그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건 작가의 힘이며 이런 점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은 13년 전 뉴욕에서 산 책이다. 폴 오스터는 뉴욕의 작가였고 뭔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나로선 꼭 읽어야 하는 작가였다. 당시 <뉴욕 3부작>도 같이 사서 먼저 읽었는데,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계속 책을 읽게는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현실 같지 않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짜증이 났었다. '이토록 멋진 제목의 책을 왜 이렇게 썼지?'라며 속으로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로 폴 오스터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급기야 한국으로 들어올 때 <뉴욕 3부작>은 갖고 오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텐데 아마도 뉴욕에서 힙한 그의 작품을 이해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었던거 같다. ㅋㅋ

지금 다시 읽는 다면 그 때와는 다를까?

 

좋아하는 작가도 아닌데 폴 오스터의 책은 2권이 더 있다. <부루클린 풍자극>, <우연의 음악>.

당연히 안 읽었고 올해 안에 한 권 더 읽어 볼 생각이다. 그 때가서 <뉴욕 3부작>을 다시 읽을지 결정할거 같다.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단락.

나는 마지막 남은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그 해변에 서 있었다. 내 뒤쪽으로 라구나 해변 마을이 귀에 익은 세기말의 미국적 소음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해안의 굴곡을 바라보고 있을 동안 한 집 두 집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언덕 뒤에서 달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돌처럼 노란 둥근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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