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총총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로열 호텔>이란 작품으로 149회 나오키 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1965년 홋카이도 출생으로 처음듣는 작가인데, 어떤 분의 서평을 읽고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고, 도서관 신착 도서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쓰카모토 지하루라는 기구한 운명의 한 여인을 중심으로 세 여인의 삶을 9편의 단편으로 보여주는 연작소설이다.

나는 연작소설을 좋아한다. 짦은 이야기들이 알게모르게 연결되면서 퍼즐을 맞춰나가듯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작품이 재미있는 점은 책 전체로 봤을 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루가 각 단편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 정도로 나온다는 것이다. 총 9편의 단편마다 중심인물이 있고 지하루의 삶은 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살며시 등장하는 것이다. 각 이야기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지하루의 삶은 오직 그들의 관점에서만 그려진다.

 

타인의 눈에 비친 지하루는 어딘지 아둔해보이고 두번 째 시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향우라고 하면 온종일 우향우만 하고 있을 것 같은 여자'이다. 자존감도 낮아 청혼을 받았을 때에도 "저같은 사람이라도 괜찮으세요?"라며 불안해 하고 진지한 남자의 모습에 "고맙습니다"라며, 청혼을 받은 여자들이 보통 보이는 설레임과 기쁨의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아 남자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가녀리고 작은 몸에 비해 유난히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아둔해 보이면서 싫다는 말도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그녀이기에 쉽게 이용하는 남자도 있고 결혼을 하는 남자도 있지만 모두가 그저 그녀의 기구한 삶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지하루의 삶은 그 자세한 내막은 나오지 않지만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충분히 초라하고 애처롭다.

 

첫 번째 이야기<나 홀로 왈츠>는 지하루의 엄마인 사키코가 주인공이다. 미혼모로 낳은 딸 지하루를 방치하고 '사랑의 허상' 좇아 물 흘러가듯이 사는 사키코. 중학교 1학년인 지하루는 당연히 그렇겠지만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때만 해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조금은 표현할 줄 아는 지하루였다. 엄마와의 쇼핑이 너무 즐거웠다고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살면 안되냐고 슬쩍 묻기도 한다. 사키코가 좋아하는 야마씨는 지하루가 좀 맹하지 않냐는 사키코의 물음에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저 눈빛은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이야.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어른들을 관찰하고 있어."

사람들을 골똘히 관찰하는 지하루. 이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지하루였는데 무책임한 엄마로 인해 지하루의 삶은 그녀의 뜻과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이야기 <바닷가의 사람>에서는 고등학생인 지하루를 임신시킨 무책임한 아들의 미래를 위해 지하루를 병원으로 교묘하게 데려가 중절수술을 시키는 엄마, 이쿠코가 주인공이다. 지하루를 위하는 척 하지만 아둔한 불쌍한 아이 정도로 하찮게 본 이쿠코. 그런 아이때문에 아들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하나로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짓는다. 아무말 못하는 지하루가 답답하지만 약자에게 세상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세번 째 이야기부터는 이런 아픔을 겪은 지하루가 여기저기 전전하며 스트립댄서가 되기도 하고 결혼도 2번 하게된다. 두번 째 결혼에서는 딸 야야코도 낳지만 갓난아기인 딸을 놔두고 집을 나가 문학강좌에 갑자기 나타나는 등 그야말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이 40대까지 이어진다.

 

첫 이야기는 지하루의 엄마인 사키코로 시작하여 마지막 <야야코>에서는 도서관 사서가 된 딸 야야코가 신간 서적으로 온 책들을 검토하는 중에 지하루의 굴곡진 인생을 담은 <별이 총총>이라는 책을 집어 들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역시나 엄마인 지하루로부터 버림받은 야야코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할머니 기리코의 따뜻한 보살핌 덕분에 엄마와 외할머니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 야야코. <별이 총총>이라는 엄마의 삶을 담은 책을 들고(물론 엄마의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의 별들을 떠올리는 마지막 엔딩은 참으로 서정적인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깊이 동감하며 읽은 부분은 <트리콜로르> 중 다음 글이다.

 

p.188

기리코는 아들이나 며느리만큼 아기 돌보기를 힘들게 생각한 적은 없다. 어린 생명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고집 따위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손녀 딸 지하루를 거둬들여 키우기로 마음 먹는 시어머니 기리코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생명이 스스로 설 때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만약 지하루가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면 그렇게 주변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외할머니가 같이 살긴 했지만 지하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진 못했기에 지하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 아닐까.

 

p.193

야야코는 기리코를 발견하고 울었다.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울 수도 없었지만 기리코라는 존재를 얻으면서 우는 것과 외로워하는 것을 배웠을까.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울 수도 있고 외로움도 느낀다는 말, 너무나 공감이 갔다. 매사에 무관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삶 조차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하루. 철저히 혼자였기에 우는 법도 외로운 줄도 모르고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구도자처럼 여기저기 물 흐르는대로 살아갔던게 아닐까...

더이상 불행해질 수 없는 그녀에게 이제는 그 누군가가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줘야한다고 내가 이어서 마무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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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0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열 호텔> 재밌게 보고 나서 이 작가
의 책을 찾아서 읽어야지 싶었는데...

생각만 하고 실천에는 미처 옮기지 못하
고 있네요. 언제고 읽어 보게 되겠지요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