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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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1997)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와 <휴먼 스테인>(2000)으로 이어지는 '미국 삼부작(The American Trilogy)'의 출발을 알린 작품으로 작가,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필립 로스는 1933년 뉴저지 뉴어크(Newark)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스는 초기 작품에서 주로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뤘는데, 90년대 후반 발표한 '미국 삼부작'에서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네이선 주커먼(Nathan Zuckerman)이라는 화자를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다룬다.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 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은 유대인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비극을 유대인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찾음으로써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비판한다. 이 점이 필립 로스를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고 역자는 말한다. 


<미국의 목가>는 미국 역사에서 혼란스러웠던 시기 중 하나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총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기억 속의 낙원', 2부 '몰락', 3부 '잃어버린 낙원'의 소설 속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목 '미국의 목가'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이 소설에 목가적인 평온함은 없다. 단지 목가적인 삶을 꿈꾸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한 순수한 인물이 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시모어 어빙 레보브(Seymour Irving Levov)로 일명 '스위드(Swede;스웨덴 사람)'라고 불린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파란 눈의 금발 머리, 건장한 체격의 그의 외모가 마치 '바이킹 가면'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만능 스포츠 맨으로 유대인 공동체의 자랑이자 희망으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스위드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적 번영 속에서 미스 뉴저지 출신의 아일랜드계 카톨릭 여성과 결혼하고 아버지의 장갑 공장도 물려받는다. 또한 집안 대대로 살던 유대인 공동체를 떠나 진짜 미국 주류들이 사는 외곽 지역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목가'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 나간다.  


화자인 주커만은 스위드의 동생인 제리와 동기로 학생 시절 그 역시 스위드를 숭배했는데, 세월이 흘러 노년의 유명 작가가 된 그에게 어느 날 스위드의 편지가 도착한다. 스위드는 편지에서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기리는 글을 쓰고 싶다며 주커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두 사람은 몇 달 후 만난다. 그러나 정작 만났을 때 스위드는 세 아들과 가족에 대한 자랑만 늘어놓을 뿐, 편지 속에서 언급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일 일들'(1권-p.35)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달 후 주커만은 45주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제리를 우연히 만나는데, 비극적인 사건으로 한 순간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스위드의 이야기와 함께 며칠 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시절 위퀘이크의 유명한 대표 선수였던 스위드가 우리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운명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인가' (1권-p.141) 

주커만은 제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 모두의 영웅이 아니라 '얼마든지 괴롭힘을 당할 수 있는 평범한 남자'(1권-p.144) 로서 스위드의 삶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작가의 시선으로 '비극적 추락이라는 당혹스러움 안으로'(1권-p.142) 들어가 스위드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탄 내고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를 한 편의 '사실주의적 연대기'(1권-p.144)로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가로서 큰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필립 로스는 <미국의 목가>를 통하여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이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던 시기의 여러 사건들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과 반전 운동, 1967년 뉴어크 폭동, 1972년 개봉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 영화인 <Deep Throat>가 불러운 사회적 파장,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계기가 된 희대의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1972~1974)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부패와 위선, 폭력과 집단 광기, 계급과 차별 등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런 미국 사회의 위기는 주인공인 스위드에게도 위기로 다가온다. 그는 미국의 꿈을 내면화한 인물로 유대인 사회가 아닌 진정한 미국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유대인의 태도를 버리고 '한 명의 평등한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1권-p.139)이 되고자 했다. 동생 제리는 이런 스위드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지른다.


["미스 아메리카를 원했어? 그래, 형은 미스 아메리카를 얻었네.(...)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2권-p.73)]


<미국의 목가>에서 역사는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미국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면서 스위드의 딸 메리가 반전 운동에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스위드가 바라던 완벽한 가정은 그야말로 '박살'이 난다. 1967년 흑인 폭동으로 삼대째 내려오던 뉴어크의 장갑 공장은 '최악의 도시에 남은 마지막 공장'(2권-p.59)으로 전락한다. 주커만은 스위드의 몰락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역사를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다.'(1권-p.141) 라고 생각한다.

필립 로스는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공격 앞에서 인간의 꿈, 노력은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한지를 한 남자의 삶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준다. 스위드가 꿈꾼 '미국의 목가'는 '비극의 목가'였다. 마지막에 작가는 주커만의 목소리를 빌어 삶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 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2권-p.288)]


<미국의 목가>는 삶과 죽음, 노년의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예리한 사유를 보여준 <에브리맨>(2006)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이다. 짧은 소설인 <에브리맨>에서는 못 느꼈던 집요함과 끈기가 느껴지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커만의 관찰과 묘사로 한 남자의 삶을 파헤치는 구성이기에 작가가 더욱 악착 같이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계속 이어지는 긴 문장이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그런 흐름에 일단 적응이 되니 문장의 강렬함에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었다.  


영화 'American Pastoral'(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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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11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영화로도 있군요? ㅋ 저 필립로스 읽은지 오래되서 그런지 가물가물한데 쿨캣님 글 보니까 딱 기억이 나네요~!!

다음 작품으로 약간 결이 다른 <죽어가는 짐승> 추천합니다~!!

단편ㅡ장편ㅡ단편 흐름으로 읽으시면 좋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3-04-11 08:25   좋아요 1 | URL
네~영화가 있더라구요. 넷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짐승> 새파랑님 추천으로 사뒀는데 꼭 읽어보겠습니다. 필립 로스하면 새파랑님이 떠오릅니다. 😆

자목련 2023-04-14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에 <미국의 목가>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쿨캣 님의 리뷰.
언젠가 읽겠지요? ㅎ

coolcat329 2023-04-14 12:19   좋아요 0 | URL
저도 필립 로스 책들이 유난히 책장에 오래 있었답니다. ㅎㅎ
미국의 내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는 독서였어요. 자목련님 언젠가 당연히 읽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