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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평점 :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작가는 주로 초자연적인 호러물을 발표해 '공포의 제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2021년 발표한 <빌리 서머스>는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다른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범죄 소설이다.
주인공은 마흔네 살의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다. 그는 미 해병대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저격수로 그동안 의뢰 받은 열 일곱 번의 암살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베테랑 킬러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악인만을 처단한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고 그 원칙에 위배되면 일을 수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문학을 사랑하는 지적인 킬러로 이야기 사이사이에 많은 문학 작품을 인용하지만 의뢰인 앞에서는 철저히 '바보 빌리'로 행세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소설은 빌리가 열 일곱 번의 임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한 시점에서 마지막 암살 의뢰를 받는 데서 시작한다. 저격 대상은 현재 살인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프로 저격수로 성공 보수는 200만 달러. 그야말로 '마지막 한탕'이다. '마지막 한탕은 항상 문제가 생긴'(p.27)다는 징크스에 께름칙하면서도 빌리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거부할 수 없어 마지막 의뢰를 수락한다.
빌리는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법원 근처 한 건물에 잠복하여 재판일에 올 저격 대상을 기다린다. 의뢰인은 그에게 작가로 위장하여 잠복할 것을 제안하는데, 의뢰인 앞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겨 왔던 그는 순간 당황하지만,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 즉 수기를 써보기로 결심한다.
위장을 목적으로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빌리. 그의 수기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빌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잊고 있었던 고통스러운 과거와 대면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 애인에게 무참히 맞아 죽은 어린 여동생, 그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첫 살인, 위탁 가정에 보내져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보낸 청소년 시절, 해병대에 입대하고 이라크 전에 파병되어 겪은 전쟁의 참상 등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이 빌리의 마음을 헤집어 놓으며 급기야 자신의 본업인 저격보다 글쓰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이렇게 아플 줄 어느 누가 알았을까? (1권-p.110)]
빌리가 글쓰기에 빠져들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만나는 과정은 글을 쓴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자신의 과거, 그 당시의 감정과 조우한 빌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 글을 씀으로서 자기 내면의 진실에 눈을 뜬 빌리의 변화는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과, 무엇보다 2권에서 함께 곤경을 헤쳐 나가는 동반자 앨리스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는 몰랐고 심지어 고민한 적도 없는 부분이었건만, 그것이 글쓰기가 매혹적인 이유 중 하나다. 나를 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고 있잖아. 옷을 벗었어. 나를 드러내고 있어. (1권-p.158)]
청부 살인업자로 고독한 삶을 살았던 빌리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서 작가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기능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빌리의 입을 빌어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의 작가 팀 오브라이언이 '소설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로 가는 길'(1권-p.233)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점을 언급한다. 빌리는 글을 쓰면 쓸수록 작가는 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책임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며,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쓴다는 것도 일종의 전쟁이라는 생각,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1권-p.340)을 한다.
<빌리 서머스>는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아동 학대, 무책임한 부모, 여성 폭행 등-과 함께 반전(反戰) 메시지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글쓰기에 관한 작가의 고민과 생각을 담고 있는 특이한 범죄 스릴러 소설이다. 주인공이 문학을 사랑하는 킬러이기에 이야기 중간마다 여러 책들과 작가 이름이 나오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마지막에 빌리가 네브라스카의 옥수수밭을 바라보며 앨리스에게 책을 추천하는데, 스포가 되어 그 상황을 말할 수 없지만, 그 장소와 그 상황에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이렇게 책을 추천하는 빌리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읽어 봐. <핏빛 자오선>." (2권-p.410)
3월의 첫 책은 빌리가 추천한 <핏빛 자오선>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