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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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읽은 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20대에 프랑스어를 배워 소설을 발표,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여기 또 그런 사람이 있다.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 폴란드 태생으로 1874년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남부 항구 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상선 선원이 된다. 20대에 영국 상선 선원으로 일하며 영어를 배우기 시작, 1886년 영국으로 귀화하여 30대 후반에 영어로 소설을 써서 발표한다. 그리고 영문학사에서 위대한 영국 작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되었으니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1899년 발표한 <암흑의 핵심>은 그가 1890년 벨기에 기선의 선장으로 (1866년 선장 자격증 취득) 고용되어 아프리카 콩고에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콘래드는 콩고에서 아프리카 원주민을 문명화한다는 명분하에 유럽 제국이 저지르는 잔혹한 식민주의를 목도하는데, 이것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남게된다. 아무 생각이 없는 '한 철저한 짐승'에 불과했던 자신이 콩고를 체험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p.178 작품해설)고 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이런 사유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템즈 강에 떠 있는 넬리(Nellie) 호는 템즈 강 하류로 나아가기 위해 조수가 썰물로 바뀔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정박한 배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 중, 선원으로서 세상 경험이 많은 말로가 콩고에서의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어린 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미지의 땅 아프리카, 마침 벨지엄령(領) 콩고의 무역회사에 선장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말로는 숙모의 도움으로 그 선장직 자리를 얻게 된다. 말로는 항해 30일이 지나서야 콩고 강 하구에 다다르고, 마침내 중부 주재소에 도착하지만 타고 가기로 했던 기선은 난파되어있고, 그곳에서 몇 개월을 체류하며 배를 수리한 뒤, 다시 콩고 강 상류 오지로 배를 몰고 가서 내륙 주재소 소장으로 있는 커츠라는 사람을 만나 데리고 나온다는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말로는 커츠를 만나러 가는 동안 몇몇 직원들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그는 '천재'이자 '연민과 과학과 진보', '가장 귀한 직원', '비범한 사람' 등으로 칭송받고, 무엇보다 '다른 모든 교역소에서 수집한 상아를 모두 합친 것만큼 많은 상아를 보내'오는 그야말로 회사 입장에서는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다.

말로는 커츠라는 인물을 만나기 전부터 궁금해진다. 커츠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우러러 보는 것일까. 그냥 '일 자체가 좋아서 일에 집착하는 그런 멋진 녀석'(p.73)일까...


그건 내 항행(航行)의 끝이요 내 체험의 절정이기도 했지. 그 체험은 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의 사상 속에, 일종의 빛을 던져주는 듯했어. 또 그것은 참으로 어두웠고 연민의 정을 일으켰으며 그 어떤 면에서도 비범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분명하지도 않았지. 그래, 아주 분명하지가 않았어. 그런데도 일종의 빛을 던져주고 있는 듯했다구. (p.17)


말로는 처음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로는 콩고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빛을 보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또한 커츠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말로가 커츠를 향해 콩고 오지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의 마음도 온통 이 신비스러운 인물에게 기울어진다. 커츠라는 인물을 쫓아 책장을 넘기면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나 또한 암흑의 세계로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런 두려움을 동반한 호기심이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했다. 


내용을 떠나서 콘래드의 문장은 나를 사로잡았고, 작가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 오지의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묘사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아>라고 하는 낱말이 허공에서 울리고 있었어.(...) 백치같은 탐욕의 색채가 마치 시체 썩는 냄새가 확 풍기듯이 모든 것 속에 번지고 있었다네. (...) 그런데 밖을 바라보면, 대지 속의 그 작은 공지(空地)를 둘러싸고 있던 말없는 밀림은, 마치 악이나 진실처럼, 무언가 위대하고 정복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내게 엄습해 왔으며, 이 어처구니없는 침입이 종식되기를 참을성있게 기다리고 있는 듯했어. (p.52,53)


울타리 저편에서는 밀림이 달빛을 받으며 유령처럼 서 있었고, 그 희미한 떨림 사이로,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뜰에서 들려오는 그 연약한 소리 사이로 대지의 침묵은 그 신비로움, 그 웅대함, 그리고 그것이 감추고 있는 생명의 경이로운 실체를 우리의 가슴에 절실히 와닿게 하고 있었다네. (p.59)


이 생명체의 정적(靜寂)은 평화로움과는 조금도 닮지 않고 있었네. 오히려 그것은 어떤 헤아리기 어려운 의도를 감싸고 있는 달랠 수 없는 세력이 지닌 정적이었어. 그래서 그 정적은 마치 복수라도 할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 (p.77)


우리는 어떤 선사시대의 대지, 그것도 어떤 미지의 유성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대지 위를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우리는 마치 어떤 저주받은 유산을 멋모르고 소유했다가 결국은 깊은 고뇌와 잇따른 고통을 대가로 치른 후 굴복하고 만 최초의 인간이 된 기분이었네. (p.81)


콘래드가 묘사하는 자연은 어머니처럼 편안하고 마냥 선하지 않다. 사람의 왕래가 없는 길은 어둠 속 오지로 뻗어있고 조용하다. 그것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고,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 '상아'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인간의 탐욕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밀림은 복수의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소설은 시종일관 이런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

시적이면서도 그림같은,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문장은 내 눈앞에 어떤 그림을 펼쳐보였고 나는 그 암흑 속으로 더듬대며 한 발씩 걸어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민음사 번역이 몇 군데 이해가 안가 을유문화사의 <어둠의 심연>을 함께 읽었는데, 이 책에 1897년 발표한 <나르시서스호의 검둥이>의 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서문에서 콘래드는 예술가의 '창조적인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왜 내가 이토록 콘래드의 문장에 강하게 압도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설은-만약 그것이 예술이 되기를 조금이라도 갈망한다면-본성에 호소합니다. (...)효과적이 되기 위해 그런 호소는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인상을 주어야 하며, 사실 호소는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 감수성은 설득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성취하려는 작업은 글의 힘에 의거해서, 당신들이 들을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무엇보다도 '볼 수 있도록'-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성공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공과에 따라 그곳에서 격려, 위로, 공포, 매력 등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어쩌면 당신이 깜빡 잊고 요구하지 못한 진실도 살짝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르시서스호의 검둥이>서문, 을유문화사 p.227)


독자가 듣고 느끼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이며, 감수성이란 설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콘래드의 말은 내 가슴에 그대로 들어왔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대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느낀 이미지를 글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는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두려움, 공포,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런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인상'만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고 콘래드는 믿는다. 작가가 '제시하는 비전이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피할 수 없는 연대 의식'을 일깨운다는 그가 작가로서 가진 신념을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암흑의 핵심>을 이야기할 때 보통 서구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작품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는 했으나, 영국의 식민주의를 다른 유럽의 식민주의와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본 점, 또 미치기 전의 커츠를 서구 제국주의가 표방하는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한 점으로 볼 때 콘래드를 완전한 반제국주의자로 보기 어렵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소설에서 콘래드가 제국주의에 대해 보여주는 입장은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그래서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누아 아체베는 이 작품을 향해 "한 보잘것없는 유럽인의 정신적인 와해를 위한 소도구로 아프리카를 전락시키는 이 허무맹랑하고도 그릇된 교만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둠의 심연>작품해설, 을유문화사) 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한 어떤 비평가는 이 작품을 거론하면서 '제국주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던 콘래드가 원주민들이 유럽의 지배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국주의가 종식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야말로 작가의 비극적 한계'(작품해설, 민음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콘래드가 이 소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몇 군데에서 양가적인 태도를 취하고 아프리카 인을 야만적으로 묘사하기는 하나, 19세기 후반이 유럽의 식민지 경쟁이 한창 무르익었던 시기임을 감안할 때 작가가 이런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자도 해설에서 20세기의 정치적 잣대로 19세기 말의 한 지식인 작가의 정치적 소신을 가늠하는건 공평하지 않다며, '콘래드는 여러 편의 <정치 소설>을 썼지만 그의 목표는 <정치>에 있지 않고 <소설>에 있었다'(작품해설, 민음사)고 말한다. 


콘래드가 이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야기는 제국주의 비판이 아니라 커츠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본성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 다시 말해 '암흑의 핵심'을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상황을 이용해 보여준 것이고 그것을 어둠, 암흑의 이미지로 뛰어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역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을유의 <어둠의 심연>이 훨씬 읽기 편했고, 제목도 '어둠의 심연'이 소설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콘래드의 또 다른 대표작 <로드 짐>과 <비밀요원> 읽기를 앞두고 꼭 이 작품을 먼저 읽고 싶었다. 고지식한 편이라 시대순으로 읽어야 마음이 편하고 중편이라 먼저 집어든 책이 이렇게 나를 심리적으로 짓누를 줄은 몰랐다.(좋은 의미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용보다는 작가의 분위기를 끌고 나가는 압도적인 문장이 너무 좋았고, 눈에 보이는 세부적인 묘사가 아닌 작가가 실제로 체험한 그 인상을 이렇게 문장으로 보여준 점이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쯤 읽게 될 그의 나머지 두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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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31 2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같은 소설을 읽어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나봐요. 저도 너무 좋긴 했는데 이렇게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덕분에 정리해 볼 수 있네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

coolcat329 2021-04-01 08:04   좋아요 1 | URL
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할 말이 많았는데 제가 글 쓰는 힘이 약해 다 쓰지 못했네요. ㅠ

scott 2021-03-31 2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역쉬 예리!! 민음사 번역보다 을유 勝!! 콘래드의 문장 묘사에 탐복 쿨캣님에 리뷰에 감탄을 ^ㅎ^

coolcat329 2021-04-01 08:09   좋아요 2 | URL
에고...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4-01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을유문화사 버전으로
보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네요...

coolcat329 2021-04-01 08:15   좋아요 2 | URL
방금 을유 <어둠의 심연> 레삭님 리뷰 읽고 왔습니다. 2009년에 읽으셨더군요. ㅎㅎ 기억이 안 나실만 하네요.ㅎㅎ 이 책은 정말 ‘다양한 텍스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에 동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