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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문맹>은 '자전적 이야기'로서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을 특유의 깔끔하고 절제된 언어로 보여준다.
그녀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4살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쓰기를 좋아했던 영특한 소녀였다. 어린 동생에게 넌 주어온 아이라며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 인생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복한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찾아온 시기는 부모님과 오빠, 남동생과 헤어져 낯선 도시의 기숙사에 들어간 후부터라고 한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소녀 시절, 작가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었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p.34)
<문맹>은 이렇게 어려서부터 이야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가가 스위스로 망명하면서 자신의 모국어를 상실하고, 일 외에는 할 일도 어떤 희망도 없는 삶 속에서 오로지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미지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는 그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 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p.52)
스위스 난민 생활 5년 후 그녀는 학교에 나가 프랑스어를 배운다. 그동안은 말만 했을 뿐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읽지 않고 5년을 살았는지 그녀는 이상하다.
2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은 그녀는 자신이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 프랑스어로 글은 못 쓰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p.112)이라고 다짐한다.
낯선 타국에서의 삶은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삶이었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말로 글쓰기도 힘든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끝까지 썼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작가는 이 짧은 '자전적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비장한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p.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