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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오네긴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7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푸시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어릴 적엔 푸시킨의 동화를 듣고 청년기에는 그의 시를 읽고 자란다고 할 정도로 푸시킨은 러시아에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국민작가이다. 또한 문학적으로 성취한 그의 업적은 방대하고 모든 장르에 걸쳐있어 훗날 많은 러시아의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시킨과 동시대를 살았던 평론가 벨린스끼가 "러시아 생활의 백과사전"이라고 칭송한 운문소설, 즉 시의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냥 소설을 쓰기도 힘들텐데 소설의 서사를 시적 형식으로 표현한 점, 무엇보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거의 8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점을 볼 때 푸시킨은 이 작품에 많은 열정과 자부심을 가졌던 듯 싶다.
총 8장으로 구성, 각 장에는 40~60개의 연이 포함되어 있다. 또 각 연은 14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책을 펼쳐 보면 소설이 아니라 긴 시처럼 보인다.
이 운문 소설은 귀족 청년 오네긴과 러시아 시골 귀족의 딸 따찌야나의 엇갈린 사랑을 기본으로 한다. 사랑 이야기를 기본 골격으로 그 위에 푸시킨의 러시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생각, 문학에 대한 평, 그 외 사적인 이야기들이 덧붙여 전개 되는데, 나오는 작가, 예술가만도 수십여 명에 여러 책과 그와 관련된 인용문들 등, 기본 스토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런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와 러시아의 정서와 문화에 낯선 나에게는 어렵고 지루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면 1장에서 화자인 '나'(푸시킨)는 무도회에 간 오네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방탕한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은 러시아 귀부인의 '앙증맞은 발을 사랑한다' 며 30연에서 34연까지 발에 대한 찬양을 한다. 또한 2장에서 따지야나의 부모가 나오는데, 러시아 전통문화를 지키며 소박하게 사는 노부부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그들은 평화로운 삶 속에
그리운 옛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름진 버터 주간에는
러시아 식 블린을 구웠고
일년에 두 차례씩 단식제를 지켰고
둥그런 그네 타기와
접시의 노래와 윤무를 즐겼다.
사람이 하품을 하며 기도문을 듣는
성 삼위일체 축일에는
땅두릅의 작은 다발에
자못 경건하게 세 방울쯤 눈물을 흘렸다.
끄바스는 공기 같은 필수품
손님을 대접할 때는
관등순으로 요리를 돌렸다.
-2장 35연(p.74)
버터 주간, 블린, 단식제, 접시의 노래, 세 방울 눈물, 끄바스같은 말들은 주석이 없이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다 러시아의 풍습과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며 이 노부부가 러시아의 전통 속에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매번 주석을 읽어야 하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러시아 문화와 풍습을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러시아 사람이 우리나라 판소리 소설을 읽으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오네긴은 페테르부르그 출신, 귀족 계습으로 유창한 프랑스어, '최신 유행의 모범적인 추종자', '댄디 같은 런던 식 의상'으로 사교계에서 멋진 청년으로 통한다. 여자들을 다루는 데도 능숙, '하루에 세 시간은 거울 앞에서' 보낼 정도로 멋쟁이, 그야말로 돈많고 시간 많은 전형적인 바람둥이이다. 그의 사고방식과 옷차림은 유럽 스타일로 그의 몸치장을 위한 내실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사치스럽고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들여온 호박 파이프,
탁자 위의 도자기와 청동상,
섬세한 감정에 기쁨을 더해 주기 위해
크리스털 병에 담겨진 향구,
머리빗과 손톱 다듬는 철제 줄칼,
쭉 뻗은 가위, 구부러진 가위,
손톱을 소제하거나 이를 닦는 데 쓰는
서른 가지나 되는 각종 솔들.
1장 24연 중 (p.26)
그는 매일같이 이렇게 몸치장을 하고 새벽까지 오페라 극장, 무도회를 옮겨 다니며 화려하지만 무의미한 삶을 산다. 그러다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급기야 우울증에 걸리는데 푸시킨은 그것을 '영어식으로 말해 스플린, 혹은 간단히 러시아 식의 우울증' (1장 38연) 이라고 말한다.
이런 우울한 모습으로 살롱을 드나드는 오네긴을 푸시킨은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에 등장하는 '차일드 해럴드'에 빗대서 묘사하는데, 차일드 해럴드는 세상에 대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오만하고 자유분방한 인물로 푸시킨은 이런 낭만주의 작품 속 인물을 오네긴으로 패러디 함으로써 당시 귀족 청년들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7장에서 동생 올가가 결혼해서 떠나고 홀로 남아 외로운 따찌야나는 떠나고 비어있는 오네긴의 집에 가게 된다. 바이런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그의 서재에서 오네긴의 책들을 보면서 따찌야나는 그가 '무슨 생각과 사상에 매료되어 있었는지' 느끼며, 오네긴의 실체를 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나의 따찌야나는
다행스럽게도
차츰차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전능한 운명의 신이
탄식의 대상으로 정해 준 사내의 정체를.
슬프고 위대한 기인,
천국, 혹은 지옥의 피조물,
천사, 아니면 오만한 악마,
그는 과연 누구인가? 모조품,
보잘것 없는 유령, 아니면
해럴드의 망토를 걸친 모스끄바 인,
아니면 타인의 변덕이 만들어 낸 해석,
유행어로 가득 찬 사전.....?
결국 그는 하나의 패러디 아닌가?
-7장 24연 (p.212)
소설을 좋아한 따찌야나는 공상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과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시골의 순박한 귀족 처녀였다. 그런 그녀가 처음 오네긴을 보고 사랑을 느끼고 소설 속 주인공들과 그를 동일시하는 모습은 시골에서 공상 속에서만 사랑을 꿈꿨던 그녀에겐 어찌보면 당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실연의 아픔을 겪고 성숙해진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잠 못 이루게 했던 이 청년이 사실은 '하나의 패러디'이자 '보잘 것 없는 유령', '모조품'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따찌야나도 당시 귀족의 자녀처럼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부모는 러시아의 풍습과 전통을 지키는 소박한 귀족이다. 따찌야나라는 이름도 세련된 이름이 아니라 촌스러운 러시아식 이름이며 그녀의 모습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모습이다. 또한 그녀는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녀의 내면은 '러시아적인 정서'로 가득 차 있다.
(자신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러시아적인 정서로 가득 찬) 따찌야나는
러시아의 겨울을
그 차가운 아름다움을 사랑하였다.
-5장 4연 중
차가운 러시아의 겨울을 사랑하는 따찌야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간 전설이며 꿈이며 카드 점이며 달님의 예언 같은 것'을 믿는다. 그녀는 오네긴이 나오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 마르틴 자데카가 쓴 해몽책을 보면서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본다. 이 책은 서적 행상인에게 산 책으로 '슬플 때는 언제나 위안을 주고 잠자리에 들 때는 동반자'가 되는 애독서일 정도로 그녀는 러시아의 전통을 의지하고 믿는다. 이러한 미신을 믿는 그녀의 모습은 세련된 프랑스 교육을 받은 귀족이 아닌 순박한 시골 여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러시아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 사이에서 균형잡힌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따찌야나의 모습은 마지막 8장에 가서 올바르고 정숙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미숙한 '하나의 패러디'에 불과한 오네긴과 대조된다. 뒤늦게 사랑을 고백하는 오네긴에게 따찌야나는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그의 허영심을 지적한다.
저는 당신의 사랑을 얻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저를 쫓아다니시나요?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에 들게 되었나요?
(중략)
당신은 사교계에서
유뷰녀를 정복했다고
자랑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8장 44연 중
따찌야나는 위선으로 가득한 화려한 사교계를 벗어나 '책장과 황량한 정원이 있는 초라한 고향집'으로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성실과 책임을 다 해야 하는 자신의 의무를 언급하며 마지막으로 오네긴에게 말한다.
아, 행복은 손에 잡힐 듯
그토록 가까이 있었건만......! 그러나 제 운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중략)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
-8장 47연 중
소설에 심취해 비현실적인 공상 속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시골 소녀에서 기품있고 도도한 사교계의 공작부인으로 거듭난 따찌야나. 이런 외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자신의 본분과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강인함과 고결함을 지닌 여인으로 성숙하는데, 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오네긴과 분명히 대조된다.
푸시킨의 소설은 <벨킨 이야기>만 읽어봤는데, 이번에 만난 <예브게니 오네긴>은 처음엔 이해하기도 힘들고 큰 재미도 없었지만, 중간중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어보니 푸시킨이 이 소설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쏙쏙 숨겨놓은 거 같아 작은 재미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출발을 알리는 러시아 국민작가의 작품이니 그것만으로도 뜻깊은 독서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