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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ㅣ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루쉰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평점 :
<아Q정전>은 루쉰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정신 승리법’으로 유명하다.
올 가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의 ‘혁명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에 주목하며 읽었다.
아Q는 집도 가족도 없는 날품팔이 하층민이다. 그러나 자존심 하나는 강해서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하지 않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혈질에 현실인식도 부족, 시비가 붙을 때마다 얻어 터지지만 ‘자식 놈에게 맞은 셈’이라며 정신적으로 늘 승리한다. 이런 아Q는 신해혁명(1911) 당시 노예근성에 젖어있던 중국 민중을 대표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대국 의식에만 사로잡혀 나라가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방관자적인 민중들은 이런 위기를 인식조차 못했으니 루쉰이 자신의 첫 작품집을 <납함(呐喊)>-외침-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만하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평생을 혁명에 투신한 쑨원이 겨우 혁명을 일으키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 책 속에서도 혁명당이 성내로 진입했지만 ‘관직 이름만 달라졌을 뿐 그대로’이고, 기득권자였던 거인 영감은 또 무슨 벼슬자리를 얻기까지 하니까 말이다. 민중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혁명이고 기득권 층 내에서만 변화가 있을 뿐이다.
아Q가 생각하는 혁명은 또 어떤가? 평소 혁명을 반란으로 여기며 혐오하던 그가 혁명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원하는 여자를 마음껏 취할 수 있는 길임을 안 순간 그는 돌변한다. 혁명이 뭔지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자오영감과 자오수재, 가짜 양놈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은 또 어떤가? 혁명군의 바람이 마을에까지 밀려오자 얼마나 발빠르게 움직이는지 모른다. 변발을 자를 용기도 없어서 틀어올리는 자들이 혁명의 의미를 알까? 변발이 잘릴까 두려워 성내에도 못 들어간 자오수재는 평소 친하지도 않은 가짜 양놈에게 돈을 주고 혁명당을 상징하는 은 복숭아 뱃지를 달고 다닌다. 이를 본 아버지 자오영감은 ‘과거 급제했을 때보다 훨씬 더 거들먹거렸다‘ 고 하니 이들이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최고다.
청나라 시대에는 민중 위에 군림하다가 상황이 변하자 혁명군 측에 붙어 또 민중을 억압하니 루쉰이 봤을 때 이런 민중이 얼마나 안타깝고 절망스러웠을까...
루쉰의 첫 소설집 제목인 <납함>, 외침! 루쉰이 살아있는 동안 속으로 얼마나 외쳤을지...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노예근성에 젖어 나라가 존망의 위기 앞에 있는 줄도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고, 제발 우리의 패배를 자각하고 다시는 같은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는 루쉰의 외침이 소설 속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고상한 뜻이나 대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양심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지배층과 그들을 뒷받침해 주는 뜻을 같이 하는 다수의 민중이 있어야만 세상은 조금이나마 변함을 새삼 다시 느꼈다.
이 책에는 아Q정전, 광인일기, 고향 세 단편이 실려있는데,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루쉰의 작품 <고향>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글을 마칠까 한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또한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없었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