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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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다. 7월에 읽은 책인데 이제야 후기를 쓴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과 슬픔이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절절하게 베어 나오는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첫작품으로 당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가난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가난에 대한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의 심리를 매우 인상깊게 보여주는 9급관리 마까르의 편지가 한 때 돈으로 인해 피폐했던 나의 삶도 생각나게 했다. 빈곤함의 정도야 물론 마까르를 따라갈 수는 없겠으나 타인과 비교되는 나의 초라한 모습, 그에 따라 더욱 고개를 쳐드는 알량한 자존심과 주위 시선에 대한 의식, 그럼에도 또 다시 찾아오는 박탈감은 가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젠 아무도 저를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거예요."(p.144)

 

"바렌까, 제 목을 조이는 것은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제 목을 조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사람들의 수군거림, 야릇한 미소, 비웃음입니다." (p.153)

 

마까르는 가난 그 자체도 힘들지만 그 보다 더 힘든건 가난으로 인한 주변의 멸시와 조롱이다. 이런 마까르에게 바르바라는 너무 예민하다며 주위를 의식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는 현실에서 차디찬 모멸감을 숱하게 느끼고  부자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가난에 무덤덤할 수가 없다. 늘 주변의 시선에 긴장해야 하고 자존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까르가 바르바라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만이 자신을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저를 존중해 주시는 당신의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게 가장 소중하다는 것입니다."(p.123)

 

내가 마까르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은 같은 하숙집에 사는 그야말로 가난해도 이보다 더 가난할 수 없는 극빈자 고르쉬꼬프를 마까르가 도와주는 장면이다. 이 책에서 가난의 냄새가 가장 짙게 베어나오는 부분인데, 바르바라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마까르가 얼마나 가난한지 그 가난이 독자로서도 지긋지긋한데, 이 고르쉬꼬프가 마까르게에 돈을 빌리러 온 것이다! 현실적으로 도와주면 안되는데 지금 본인 앞가림도 힘든 상황인데 마까르는

은화 한닢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고르쉬꼬프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빌려준다. 그래봐야 푼돈이지만 그것이 그에겐 전부였다는게 중요하다.

 

"저는 서랍에서 20꼬뻬이까를 꺼내서 그냥 다 주어 버렸습니다. 나의 소중한 이여, 좋은 일 아닙니까! 에이, 빌어먹을 가난 같으니라고! 저는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p.179)

 

현실적으로 답답하지만 나는 마까르라는 인물이 더 이상 비루하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전 재산을 빌려주고 또 그의 가슴 아픈 사연에 귀 기울여주는 마까르가 인간적으로 참 아름답게 보였다.  동정,연민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의 동정심이 떠올랐다.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토마시가 테레사를 떠나지 못한 것이 동정심 때문이었는데, 마까르에게도 이 동정심이 저런 행동을 낳은 것인가...그렇다면 동정심이야말로 쿤데라의 말대로 최상의 감정이 아닐까...

 

마까르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부유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어 문학적인 소양이 풍부한 바르바라와 꾸준히 서신을 교환하고 그녀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정신적으로 성장해간다.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나면서 당신은 제 어두운 인생을 환하게 비춰 주었고, 제 마음과 영혼에 밝은 빛이 들게 되었던 겁니다. 저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저도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저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도 있고 생각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p.161,162)

 

실제로 그의 편지글은 뒤로 갈수록 문장력이 향상됨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한 거지아이를 보고 연민을 느끼며 이렇게 쓴다.

 

"머지않아 더러운 벌레같은 질병이 꿈틀꿈틀 그 아이의 가슴을 파고들테고, 죽음은 어느새 그 아이의 어둠침침한 머리맡까지 와서 기다리겠지요." (p.173)

 

죽음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그의 글은 처음에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썼던 그의 문장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자신이 다니는 거리묘사,사람들 바라보며 느낀 생각들, 더 나아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비교하며 철학적인 사유까지, 어설프지만 자기만의 시선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그의 발전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제 문장력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여 주고 싶어서입니다. 당신도 알아차렸겠지만, 얼마전부터 저의 문체도 좋아지고 있거든요.(p.175)

 

글쓰기와 책읽기 그리고 바르바라와의 우정과 사랑 덕분에 그는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비록 현실은 이들의 고난을 감싸주진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희망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동정과 연민이야 말로 암울한 세상의 빛과 같은 것...

 

"'하느님을 위해서 한 푼 줍쇼' 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안 주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롭습니다." (p.174)

 

"저는 고르쉬꼬푸를 진심으로 동정합니다.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p.180)

 

"그는 세상에서 버림받아 갈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p.181)

 

읽을 때마다 가슴을 적시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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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3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죄와 벌을 읽고 천재라고 생각한 작가예요.
슬프고 처참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죠.

coolcat329 2020-09-13 19:39   좋아요 1 | URL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는 그런 인물들이 늘 나오나봐요. 다음에는 <죄와 벌>을 읽을 계획이에요. 댓글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9-1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이기 도끼 선생의 데뷔작이지
싶은데...

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고
나서 도끼 샘의 책들을 닐거 보겠다
작정만 하고서는... 뭐 그런 거죠.

coolcat329 2020-09-18 20:52   좋아요 0 | URL
네 첫작품 맞아요. 일단 도쿠가와를 끝내셔야 할 듯요 ㅎㅎ.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