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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발자크의 거대한 프로젝트 <인간극> 중 '철학연구'의 첫번 째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발자크를 작가로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욕망'이다.
인간은 한정된 시간을 살다 가기에 수명은 점점 줄어들지만 욕망은 그와 반대로 멈출줄 모르고 끊임없이 늘어만 간다.
이런 삶의 딜레마를 앞에 두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이 소설은 던진다.
1830년 7월 혁명 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부르주아 계급이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함으로써 경제력, 돈이 중요했던 시대에 욕망이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발자크는 특유의 장황한 묘사로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진실-욕망과 삶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파멸하지 않기 위해 욕망을 억제해야 하는가,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나의 욕망에 최대한 충실해야 하는가라는 뻔한 선택보다는 그 사이에서 질척대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또 쓰러지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발자크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 그 가운데서 방황하고 몰락하는 인물들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발자크가 그렇게 살았듯이 말이다.
5,6년 전에 읽었던 <고리오 영감>은 참 재밌었는데, 이 작품은 그 보다 초기작이라 그런지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느껴졌고 그로 인해 묘사가 다소 과장되고 장황해서 살짝 지겹기도 했다. 그러나 발자크 인간극의 재미인 '인물 재등장 수법'으로 <고리오 영감>에서 남부 촌놈이었던 라스티냐크를 다시 만나 반가웠고, 고리오 영감의 나쁜 딸들도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역시 <고리오 영감>에서 의대생이었던 비앙숑이 의사가 되어 나오는 등 곳곳에 깨알같은 재미가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