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1 - 이기원 장편소설
이기원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신분의 벽을 넘어 의사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

구한말, 조선은 시대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거리에는 전에 없던 낯선 광경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얼굴색이 다른 외국인과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양반 못지않은 지위를 가진 중인들이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들이었다. 외국인들의 출현으로 세상은 더 넓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과거 농업에 비해 천대 받았던 상공업은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한 수혜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갔다. 알량한 명예보다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더 중해지는 시대로 사람도 세상도 함께 변하고 있었다.

시대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행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신분제도와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었다. 신분제에 따라 양반은 항상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그 아래 평민이 있고, 평민의 밑에는 사람 취급조차 않는다는 천민이 있었다. 천민들은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그들만의 부락을 이루며 살아야 했다. 가축 도살이나 종살이가 그들의 주된 일이었으며 이는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천민이란 꼬리표 탓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살아야 했던 그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신분의 벽을 넘어선 자가 있었다.

황정은 원래 소근개라는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을 지닌 백정이었다. 어느 날 그는 위협에 못 이겨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목숨만은 살리고자 도망자 신세가 된다. 하루아침에 쫓기는 처지가 됐지만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양반의 신분을 얻은 그는 백정이 아닌 양반으로 새로운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가 몸담기로 결심한 일은 바로 ’서양식 의료’였다. 부상당한 그를 치료한 방법이자 자신의 어머니가 받았던 의술이기도 한 신식의료는 단박에 그의 눈을 사로잡았고,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갖게 한 대상이었다.

그가 신분을 감춘 채 서양인 의사의 보조가 되고, 열심히 의술을 연만할 때만해도 행운은 늘 그의 편인 듯했다. 하지만 살얼음 걷는 것 마냥 위태로웠던 그의 하루하루는 결국 그의 신분이 노출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그동안에 배운 서양의술에 대한 지식으로는 조선인 중에서 가히 으뜸의 실력자가 된 그였지만 신분의 벽 앞에서는 철저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 황정은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걸 체념한 뒤 몸이 불편한 아버지 곁에서 다시 백정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한낮의 꿈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그의 미래. 현실은 가혹하리만치 냉혹했다.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는 없을 거라 단념하는 순간 뜻밖의 일이 그를 ’의사의 운명’으로 이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며, 낯선 서양의술을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려 했고,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도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 충분히 보여줬던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제중원의 원장 헤론이 다시 뜻을 펼칠 수 있게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황정이란 진짜 이름을 가지고 다시 진료를 시작한다.

제중원의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황정은 무리 없이 해나갔다.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가 있었으며 조금도 쉬지 않고 많은 환자들을 돌봤다. 신분이 바뀌었음에도 백정이라는 편견으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던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갖은 모략을 일삼았지만 황정을 오로지 의술만으로 편견의 벽을 깨려고 노력했다. 인명의 귀함에는 양반도 노비도 따로 없다는 신념아래 철저히 평등하게 진료했던 황정. 그는 조금씩 서서히 완벽한 의사가 되어갔다.

평등한 진료와 완벽한 치료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지만 조선이란 땅에서 그의 의술을 마음껏 발휘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남녀가 유별해야 한다는 의식은 그로 하여금 진료의 한계에 부딪히도록 만들었으며, 금기를 깨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또한 조선에 야욕의 손을 뻗던 일제의 검은 마력도 그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다. 악전고투가 따로 없는 의료행보였지만 그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숱한 위기에서 살아남아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념했다. 혼신을 다해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한 황정, 그는 다 쓰러져가는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오니
펄 벅 지음, 이지오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의 끝은?

소설 <피오니>는 중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유대인 집안에 중국인 소녀 피오니가 하녀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팔려온 몸이었지만 놀라운 적응력과 친근함으로 낯선 유대인 가정에 자리를 잡았으며, 집안의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피오니가 점차 나이를 먹고 여자의 모습이 갖춰지자 그녀를 향한 안주인의 눈길은 날카로워져만 갔다. 또한 피오니 역시도 어린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주인과 하녀의 냉정한 관계를 자각하면서 이 집안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여자로서 피오니는 주인집 아들인 데이빗에 호감을 갖지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고 거리를 둔다. 그저 데이빗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하인으로서 그에게 다가가고, 그 틈을 이용해 짧은 만족을 맛볼 뿐이었다. 데이빗도 그런 피오니에게 좋은 감정이 있었으나 응석받이로 자란 그에게 피오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어머니나 누나가 남동생에게 해주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피오니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해 연정을 품게 되고, 그의 성격처럼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이 유대인 집안의 안주인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에즈라 부인은 부쩍 처녀티가 나는 피오니를 유심 있게 관찰하는 한편 유대인 집안의 남자로서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아들 데이빗을 잡아 이끈다. 그녀는 유대인들끼리의 끈끈한 유대와 순수한 혈통을 위해 랍비의 딸을 며느리로 삼으려 하지만 의외의 사건으로 그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아들 데이빗은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게 되고, 피오니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외국인이 아닌 같은 중국인 여자와 데이빗이 결혼한 데에 안심한다.

데이빗을 향한 피오니의 헌신과 사랑은 그가 유부남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데이빗은 물론 그의 반려자인 쿠에일란에게까지 정성을 다했으며, 가질 수는 없어도 오래 지켜볼 수는 있는 이 사랑에 만족해했다. 답답하리만치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피오니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하녀의 신분인 그녀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또래이자 이성으로서 사랑을 느낀 유일한 남자인 데이빗에게 그토록 헌신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펄 벅의 감춰진 작품 <피오니>는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소재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가슴 아프지만 완성도 높은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견뎌내야 했던 신분의 벽과 가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 결국 비구니가 되는 운명으로 그녀의 사랑은 끝을 맺지만 한 남자를 향한 그녀의 순수한 사랑만은 슬프도록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다. 가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은 끝은 처음 그대로 님을 향한 헌신과 배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를 리뷰해주세요.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과학과 역사를 통해 파헤친 1,500년 기후 변동주기론
프레드 싱거.데니스 에이버리 지음, 김민정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미국 대기연구센터에서 또 하나의 우울한 정보가 나왔다. 북극의 기온이 2000년 만의 최고 온도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징후들은 지구의 미래를 더욱 더 암담하게 만든다. 하지만 걱정은 한순간일 뿐, 에너지 소비와 열대림의 파괴는 여전히 증가일로에 있다. 이따금씩 불어 닥치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고 할 수 있다. 선진국들의 실익과 개도국들의 현실 앞에 이 엄청난 문제는 그저 뒤로만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구온난화에 속지마라>는 제목의 책을 만났다. 어이없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이 책과 비슷한 주장을 펼쳤던 또 다른 책이 생각났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구온난화를 명목으로 내세워 기업들에게 '환경세'를 더 걷기 위해 온난화 문제를 부풀렸다고 주장했던 내용의 책이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객관적 근거들을 문제 삼은 점은 비슷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속지마라>는 배후세력의 이익문제가 아닌 새로운 이론을 통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통념을 깨고 있다.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지구의 기온은 적어도 백만 년 전부터 1500년(+/-500년)을 주기를 가지고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기온 상승 역시 그 주기에 따른 변화일 뿐이며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다른 모든 주장들은 억측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새로운 주장은 시추한 빙하 코어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며 약간의 오차가 있긴 해도 전체적인 주기에는 어긋남이 없다고 주장한다. 보면 볼수록 솔깃한 이론, 과연 저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솔직히 저자가 문제 삼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여러 지표나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이론의 근거들을 내가 가진 정보로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연구결과며 학식 있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내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척 수동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 속에서 몇 가지 오류점과 평소의 내 생각과 어긋나는 대목들을 발견하고부터 책읽기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이것들을 저자가 내세우는 주장에 반박하는 내 나름의 근거로 삼고, 저자를 앞에 둔 것처럼 전의를 불태우며 책을 읽어나갔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려는 현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충분한 양의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풍차를 설치하고, 태양력 발전소를 만들어야 하므로 다시 수억의 산림과 황무지를 파괴해야 할 것이다." 알맞은 바람이 불고, 충분한 태양력을 모을 수 있는 곳이 꼭 울창한 산림이라는 주장은 다소 지나치다. 게다가 산림파괴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대륙의 경우는 대체에너지를 위한 개발이 아닌 소고기와 사료를 위해 거대한 숲이 파헤쳐지고 있다.

"비료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비료가 없다면, 우리는 세계의 남아있는 숲들을 갈아 없애고 농경지를 늘려야만 생산량이 적은 농작물로 현재 식량 소비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화학비료로 대별되는 현대기술이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이것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역시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양껏 사용하는 관행농법과 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토양미생물을 활용한 자연농업을 비교했을 때 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수확량을 거뒀다는 보고가 있다.

더불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학비료 없이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고, 수확량이 적은 유기농법으로 충분한 곡물을 수확하기 위해 더 많은 숲들이 농경지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화학비료의 사용이 식량증대의 유일한 길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유기농법의 수확량이 적다는 믿을 만한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생산자가 적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아 상태에 빠지는 건 분배의 불공정(다국적 식량기업의 횡포)이나 자연환경 때문이지 화학비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저자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집요한 기술 중심주의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감은 이 책의 가치를 많이 희석시키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후변화주기설' 역시도 저자의 그런 지나친 비약과 미숙한 근거들 때문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저자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조치가 많은 지구온난화 대응책들에 대해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공업화 과정을 거쳐 지구온난화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게 선진국들이지만 저자는 이게 무척 못마땅한 것 같다.

저자는 교토 의정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미국과 다른 선진국들에게 기후 대책을 위한 모든 짐을 떠맡기는 안들로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3세계 나라들은 비후 변화보다는 지금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가진 자의 사악한 방종이 아닐 수 없다. 기후변화는 원인에 의한 결과물이다. 지금의 지구온난화 역시도 어떤 원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 선진국들의 공업화가 그 원인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니 그 책임도 큰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구의 기후변동에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이론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전적으로 그 주기에만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류는 실로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연료사용으로 인한 오염이나 파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열대림도 더불어 대단위로 파괴되고 있다. 이는 전에 없던 광경이며 무서운 사실이다. 어쩌면 인류는 저자가 주장한 그 주기마저 흔들어버릴 만큼의 파괴를 했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무시무시한 경고가 빈번히 찾아오고 있는 이때에 그 주기를 믿고 안심하기는 어렵다. 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지구의 온기를 낮춰주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지구인의 낭만어린 작업실 풍경

<지구 위의 작업실>의 저자 김갑수 씨는 평소 평론가로 알고 있었지만 다양한 TV프로에서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전집을 파는 홈쇼핑 채널에서부터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가 진행하는 인문학 열전이란 프로까지 평론가라곤 하지만 그는 비교적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와 뿔테 안경은 그가 글 쓰는 일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게 해주었지만 TV에서 보이는 모습 이외에 그가 구체적으로 무얼 하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들고 나온 책 <지구 위의 작업실>은 무척 반가웠다. 비로소 그의 정체를 파악케 해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특색 있어 보이는 그의 작업실, 음침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에 빠져 있는 중년 작가를 생각게 하는 그 공간이 과연 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궁금해졌다.

<지구 위의 작업실>은 작업실의 풍경을 묘사하며 이따금씩 작업실을 거쳐 갔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풀어놓는다. 벽면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는 LP음반과 그의 커피 취향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커피기구들, 그 음침한 지하세계는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의 집합소였다. 그 곳에 찾아왔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놀랄 만큼 그 공간은 자기만의 꿈과 낭만이 깃든 아득한 장소였다.

하지만 책은 너무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지극히 개인적인 면모만을 보여준다. 그 공간은 단순히 한 개인의 낭만을 위한 작업실일 뿐,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뭔가 심오한 내용을 있을 것이라는 처음의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신변잡기식 작가의 글에 결국에는 지치고 말았다.

책 표지의 뒷부분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작업실에서 무슨 작업을 하지? 하는 의문의 해답은 내려지지 않는다. 다만 작업실 바깥의 세상 사람들을 향해 '제발 조금씩은 미쳐달라'고 저자는 소망한다." 평범한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는 작가인 그에게 그가 가진 작업실에서의 창조적인 작업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작가는 그런 대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도 너만의 세계를 만들라'라고 하니 좀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열정을 찾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지내는 현대인들에게 분명 그의 작업실은 부럽고 멋져 보이는 공간임에 확실하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단순히 개인의 낭만을 즐기는 데만 그친다면 그 또한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 책 속에는 LP세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노인들이 죽으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음반들이 대량으로 중고시장에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참으로 씁쓸하지 않은가? 그토록 열정을 바쳤던 일이 어느 순간 싸구려 중고품으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지구 위의 작업실' 혹은 '줄라이홀'이 어느 순간 폐품더미가 되지 않고 끝까지 멋진 작업공간으로 남아있길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득의 심리학 2 - Yes를 끌어내는 설득의 50가지 비밀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노아 J. 골드스타인 외 지음, 윤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원본 이미지를 보시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누군가를 설득해서 내 목적을 이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만하다가 지레 포기하고 마는 넘기 힘든 벽이기도 하다. 더욱이 잘못된 말하기로 설득에 실패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까운 동료에게 다가가 말붙이는 것조차 무척 버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필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나보다 더 역량 있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매출이 하락한 신제품의 판매율을 높이고, 애인과 가족 또는 친구와 더욱 원만한 관계를 맺기 원한다면 ’예스’를 끌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설득의 도구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득의 심리학2>는 다양한 사례로부터 ’과학적으로 입증된 설득의 기술’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추가 어느 쪽으로 쉽게 기우는지, 또 그것에는 어떤 심리적 기제, 문화적 통념이 자리하고 있는지 살짝 귀띔해 준다. 우선 책에서 밝히는 50가지 비밀은 앞서 출간되었던 <설득의 심리학>의 6가지 법칙에 기초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해보면 사회적 증거의 법칙.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호감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권위의 법칙이 그것이다. 이들 법칙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미묘한 심리적 작용들이 깔려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법칙에 맞는 행동을 한다.


원본 이미지를 보시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 유독 눈에 띄었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먼저 문구 하나로 전혀 다른 결과를 얻었던 ’다수의 행동이 선이다’라는 제목의 장이다. 부정적인 사회적 증거를 제시하지 말고, 어떤 행동은 하고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주였다. 만약 참석률이 저조한 모임이 있다면 불참한 사원이 많다는 것 확인시키기 보단 참석자의 수가 더 많다는 걸 강조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실이 표면 위로 올라와봤자 긍정적인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마술’이란 장의 내용도 퍽 인상적이었다. 부정적인 속성을 제시한 뒤 이와 연관된 다른 긍정적인 면을 내비치면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식당은 작은 편이지만 분위기가 아늑하고 아담한 매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긍정적인 속성만 자랑하듯 나열한 경우나 먼저 제시한 부정적인 속성과 뒤이어 제시한 긍정적인 속성이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보다 확실히 이 경우가 보다 큰 설득력을 지니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저자가 이번 장의 마지막에 남긴 다음의 말은 그 어떤 사례들보다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신이 우리에게 레몬을 주었다면, 우리는 레모네이드를 만들 궁리를 해야지, 엉뚱하게 사과주스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원본 이미지를 보시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이밖에도 책에는 ’단순한 게 좋다’, ’말에 리듬감을 주어라’ 등 우리의 주위에서도 흔히 확인할 수 있는 친근한 내용들도 많았다. 물론 저자는 경험에 의한 단순한 도출보다는 여러 가지 실험과 그것을 통해 증면된 사례를 통해 설득에 담긴 비밀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 내제되어 있는 기술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특정한 사람들에 한정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비밀은 알게 모르게 실험에 참여한 한 무리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명확히 증명되었고, 이 실험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 녹아 있는 평범한 진리였다. 설득력 있는 행동이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 지는 책의 말미에 잘 소개되어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 책에서 배운 비밀로 설득의 달인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원본 이미지를 보시려면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