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니
펄 벅 지음, 이지오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의 끝은?

소설 <피오니>는 중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유대인 집안에 중국인 소녀 피오니가 하녀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팔려온 몸이었지만 놀라운 적응력과 친근함으로 낯선 유대인 가정에 자리를 잡았으며, 집안의 모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피오니가 점차 나이를 먹고 여자의 모습이 갖춰지자 그녀를 향한 안주인의 눈길은 날카로워져만 갔다. 또한 피오니 역시도 어린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주인과 하녀의 냉정한 관계를 자각하면서 이 집안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여자로서 피오니는 주인집 아들인 데이빗에 호감을 갖지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을 알고 거리를 둔다. 그저 데이빗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하인으로서 그에게 다가가고, 그 틈을 이용해 짧은 만족을 맛볼 뿐이었다. 데이빗도 그런 피오니에게 좋은 감정이 있었으나 응석받이로 자란 그에게 피오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어머니나 누나가 남동생에게 해주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피오니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해 연정을 품게 되고, 그의 성격처럼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못한다.

이 유대인 집안의 안주인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에즈라 부인은 부쩍 처녀티가 나는 피오니를 유심 있게 관찰하는 한편 유대인 집안의 남자로서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아들 데이빗을 잡아 이끈다. 그녀는 유대인들끼리의 끈끈한 유대와 순수한 혈통을 위해 랍비의 딸을 며느리로 삼으려 하지만 의외의 사건으로 그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아들 데이빗은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게 되고, 피오니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외국인이 아닌 같은 중국인 여자와 데이빗이 결혼한 데에 안심한다.

데이빗을 향한 피오니의 헌신과 사랑은 그가 유부남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데이빗은 물론 그의 반려자인 쿠에일란에게까지 정성을 다했으며, 가질 수는 없어도 오래 지켜볼 수는 있는 이 사랑에 만족해했다. 답답하리만치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피오니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하녀의 신분인 그녀가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또래이자 이성으로서 사랑을 느낀 유일한 남자인 데이빗에게 그토록 헌신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펄 벅의 감춰진 작품 <피오니>는 이루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소재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가슴 아프지만 완성도 높은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견뎌내야 했던 신분의 벽과 가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 결국 비구니가 되는 운명으로 그녀의 사랑은 끝을 맺지만 한 남자를 향한 그녀의 순수한 사랑만은 슬프도록 아프게 가슴에 와 닿는다. 가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은 끝은 처음 그대로 님을 향한 헌신과 배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