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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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답은 너에게 정해져 있다

기록일 2015.10

  아무런 솔루션도 제공하지 않은 괴짜 의사와 노출증 간호사가 벌이는 유쾌한 힐링 드라마 라고 소설을 한마디로 평하는 바이다.

최근 오쿠다 히데오가 신작을 냈다길래 새롭게 조명하게 된 <공중그네>를 책꽂이에서 빼내 읽기까지 나는 이 소설을 전혀 몰랐었다. 요즘에 거의 2~3일에 한권씩 끝내고 있는데 이 책은 거의 하루만에 다 읽은 책이었다. 첫번째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 이거 재밌네?' 했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정말 재미있었다.

  정체가 수상한 뚱보 정신과의사 이라부는 조폭은 무서워하지도 않으며 다년간 연습한 곡예사의 일터에 함부로 놀러가서 자기도 공중그네를 타보겠다고 설레발을 치기도 하고 프로 야구선수에게 캐치볼 상대가 되어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소설가에게 괴발새발 쓴 소설을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는 엉뚱하다못해 기괴한 의사이다. 이라부가 공통적으로 하는 처방은 환자의 팔에 비타민 주사를 놓은 것인데 실제로 비타민인지 어떤 위약효과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의 조수 마유미는 미니스커트 차림에 병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여자이다. 적재적소에 나타나 환자들의 마음을 쏙 빼놓길래 아 그래서 환자가 모두 남자로 설정돼 있냐보다 했더니 마지막 '여류작가' 편에서는 실제로 대사를 하면서 대중적 소설과 자기만의 예술세계에서 갈등하는 소설가의 아픔을 싹 씻어주는 중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들이 마유미를 순식간에 좋아지도록 장치해 놨다. 또 작가는 여러편의 연작들을 통해 의사 이라부의 인간적인 면과 함께 괴짜같은 처방을 구경시킨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병원에 찾아온 모든 환자들이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혹여 세상을 살면서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워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세계 속에 내 의지들이 살아갈 때 이라부처럼 나를 객관화 시켜서 바라보게 하고, 나의 고민이 가장 1차원적이며 스스로 해결할 돌파구가 진작부터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줄 의사 또는 친구가 곁에 있었으면 내심 바라본 그런 소설이었다. <공중그네> 후속편 격인 <면장선거>과 <인터풀> 도 빠른 시일내에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오랫만에 유쾌한 아주 근사한 소설을 읽었다.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도 생각났었는데 나미야는 판타지인데 비해 <공중그네>의 이라부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기묘해서 꼭 한번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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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인테리어 소품처럼 꽂혀있다.

15년째 1권만 읽고 있는 중이시다.

책을 엄청 좋아하면서도 결론이 빨리나는 것을 좋아하는 의지박약의 산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정글만리 세권을 선물 받았다.

선물해준 사람이 한달만에 읽었으니 나는 삼주만에 독파를 해 보자

해 놓고도 읽어야 하는 책이 많아서 미루다가 1권을 집었는데 금방 집어 삼켰다.

그래도 집에서 책만 읽을 수 없는 독자는 일이 바빠서 5일이나 1권을 읽어야만 했다.

그런데 2권은 이틀만에 완료.

3권은 아직 못 들어갔다.

이 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성인독서회를 하고 있는데 이번주 선정도서를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사람이 왜 선물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이 책을 마구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이 정말 너무 재밌어.

나는 하루에 다섯시간을 채 못자는데 책을 끊어야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읽고 싶어서 요즘 잠이 안 오기 때문에 그냥 읽어야 그나마라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빨리 독서회 선정도서를 읽어치우고 조정래 작가가 만들어 놓은 정글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아야겠다. 오늘도 일찍 자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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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에 살면 유명인사의 강연을 가끔 듣는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들을수록 가슴을 울리는 강연들이 많이 있다.

유명하고 저명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그래서 가슴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2015.11.9.월, 정호승 시인을 만났다.

단재문화예술재단에서 주최하고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후원하는 맛있는 인문학 두번째 강연이었다.

첫번째 강연인 강신주편도 들어보고 싶었는데 수업때문에 못가고 (ㅠㅠ시험기간)

두번째 강연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가리라 마음 먹었는데 마침 급한 녀석들 시험이 딱 끝나주었다.

7시부터 9시 15분까지 쉼없이 진행되었던 강연이었다.

정시인님이 중간에 시노래를 틀어줄 때 목을 축이는 시간 말고는 한 숨도 쉬지 않고 흘러내려간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시를 읽고 시를 느끼고 시를 안고 시를 썼다.

 시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들뜨게 하는가. 문학소녀의 시절을 지나 문창과를 나왔지만 시간이 너울너울 흐르는 동안 남의 글을 더 많이 뜯어보느라 내 글은 만나보지 못했던 오래된 나의 감성을 깨운 것은 쪼개고 분석해 가르쳐야 하는 교과서나 문제집 속 시가 아니라 오늘 내가 직접 만난 시였다.

 오늘 소개 된 시는 <여행>, <풍경소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산산조각>, <수선화에게> 였다. 오랫동안 내 책장에서 잠자던 시집을 꺼내들고 가서 앉았는데 옆 사람도 앞사람도 빳빳한 신간을 사 들고 왔길래 조금은 부끄러워 책을 수첩 밑으로 숨겼는데 시인이 낭송하는 그 시들이 내 책에 두 편이나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옆에 아주머니 내 책 힐끗 보고 자기 책 목차에서 찾다가 한 숨쉬고 덮는 것 보았다. 괜히 흐뭇한 못된 DNA는 무엇인가.)

외려 설레고 좋아서 쫘악 펼쳐서 줄을 좍좍 그었다. 의미없이 자리를 차지하던 시집이 내게 어느 신간보다 설레이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의미있는 몇 권의 책에 자리하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이 친절하게 내 이름을 적어서 싸인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거기 모인 300명이상의 사람, 50여명의 싸인 득템자에게 모두 의미없는 책일지라도 나에게 지금 당장은 내꺼중에 최고!

  그저 있던 책에 갑자기 생명이 불어 넣어진 것처럼 오늘 흔한 30대 여성의 잠자던 감성에게도 그린라이트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심리학 책을 읽다가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깨닫는 적이 있는데 오늘은 정시인의 강연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 특히 절대적 사랑에 대해 좀 더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아무리 깨닫는다 한들 그것은 단기일 뿐이고 절대적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 오늘 특이했던 것은 절대자가 주는 사랑이 어미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었나? 또 어미가 된 나는 내 자식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사랑을 주고 있는가. 사랑의 본질은 다섯가지가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진정 그런 사랑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론은 관계가 어려울 때는 사랑을 선택하라는 그 말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의. 그것이 타인으로부터의 배신이요, 심한 모욕이요, 상처난 자존심이요, 회복할 수 없는 아픔이라도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 내가 그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내게도 절대적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고 마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듯 절대적인 사랑이 내게도 존재한다는 것. 그러기에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다시금 나를 다잡아 줄 수 있는 그런 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면서 그렇게만 살기는 어렵겠지. 나는 아직 정신세계가 약하고 의지가 어리고, 고난의 빈도가 적었으니까. 성인도 군자도 못되니까. 그렇지만 살면서 때로 관계가 약해질 때 어려울 때 힘이 들때 슬플때 서운할 때 위로받고 싶을때 이해해야 할 때 보듬어야 할 때 양보해야 할 때 나약해질 때 아플 때 서러울 때 외로울 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숨이 탁 멎을 것 같을 때에도 나의 선택은 사랑이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청춘의 젊은 날은 화살과도 같고 나의 30대는 벌써 세 해를 훌쩍 넘겨버리고 있지만 벌써가 아니라 아직도 서른 셋의 가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벌써부터 사랑을 깨달아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 좀 더 희망을 품으면서 어둡기만 한 인생이라도 항아리 속 한 줄기 빛을 받아 다른 친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던 생쥐를 기억하면서 좀 더 활기차게 살아 갈 수 있는 겨자씨가 될 것 같아서 이 농부는 심히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도 잘했다. 이 발걸음. 쓰담쓰담. 그리고 다시 한 번 다른 곳에서 시인 정호승을 만나보고 싶다. 그의 시를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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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집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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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어디서부터가 소설인가

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작가를 알고 또는 알아보고 읽기도 하고 시대, 문화적 배경을 먼저 살피기도 한다. 작가의 서문이나 서평을 보고 읽으면 이해도 쉽다. 영화 예고편처럼 글에 대한 소개 글을 보기도 하고, 광고로 접하기도 한다. 이런 외부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글을 읽는다하더라도 보통 글의 종류 정도는 알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이다. 허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초대된 것처럼 얼떨떨하고 어색하게 파티장에 입장했다. 그리고 글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서야 이 파티의 종류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뭐야, 이거 소설이야?”

2.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나

다소 특이하게 시작된 이 소설은 뤼미에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지극히 이국적이고 낯설기만 했다. 국내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데 소설 속엔 온통 외국문화였다. 지역적 배경이 되는 프랑스 파리의 부촌은 여행 책이라든가 문화 책에서 나오는 모습은 아니었다. 약간 지루하게 묘사되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 들이 읽을수록 그의 인생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로 폭발되었다. 서술자의 엄청난 관찰력이 마음을 흔들었다고나할까.

건축을 하려면 무엇이 먼저 필요할까? 설계도? 시공사? 아니면 재료. 뤼미에르라는 남자에게 건축의 시작은 ‘하고자하는 마음’ 이었던 것 같다. 상업적으로 돈 버는 일만 매달렸던 건축가에게 든 회의(悔意)는 ‘나를 위해 집을 짓자.’ 였다.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족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일하고 있는 우리는 ‘나’를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편리’ 한 어느 날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자기를 위해 집을 짓고자한 뤼미에르의 결정은 매우 어렵고도 힘든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짜 자신을 위하려면 이윤 따위는 당연히 버려야하고 경제적으로 축소하는 것 따위도 버려야한다. 오직 나를 위해 지어야하는 집이 존재할 수는 있는 걸까? 사람이 만족할만한 인생은 있는 것인가.

3. 어떻게 전개되는가

잠결에 한통의 전화를 받은 뤼미에르는 건축가로 자기를 위한 집을 찾고 있다. 가진 돈은 적지만 눈은 한 없이 높다. 평소 멋진 집을 눈여겨보던 그는 오래전에 지어진 낡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고 구매를 시도한다. 하지만 워낙 땅값과 집값이 비싼 동네라 반신반의 하던 중에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만남은 일사천리로 성사되었지만 집 주인과는 만날 수가 없었다. 집주인의 대리인은 집에 애착은 없어보였지만 충실해보였다. 그런데 집주인은 바로 판매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몇 가지 테스트를 한 후 집을 팔겠다고 이야기한다. 뤼미에르는 당황했지만 그 집에 너무도 끌려서 스위스에 있는 집 주인을 만나러 길을 떠난다. 예고없이 무작정 기차에 오른다.

예고없이 기차에 오르는 것은 지극히 소설적인 감성이다. 현실에서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가는 큰 낭패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그런 용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의 인물이 무작정 모험을 즐기기를, 무모한 일들을 벌이기를 내심 기대한다. 그것이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머무르기만 하는 내게 즐거운 간접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뤼미에르는 나대신 밤기차에 몸을 실어준다.

그가 도착한 곳은 차로 올라가기도 어려운 비탈에 위치한 요양병원이다. 그를 태워준 방쌍씨가 말한대로 호화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별한 것은 확실하다. 독자가 가진 온갖 미적 감각과 관찰력을 동원해 뤼미에르의 서술을 머리에 그려보면 매우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병원의 입구가 그려진다. 문에게도 표정이 있다고 설명하는 그의 표현력에 감탄하면서 그가 문을 열 때 나도 그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다시 정원이 펼쳐진다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햇살과 땅을 뒤덮은 초록의 잔디를 상상하니 진한 풀내음이 얼른 코 끝을 스친다. 진짜 이런 집이 있나? 이거 어디까지가 허구지?

4. 무엇이 숨어있는가

작가는 이제부터 추리게임을 시작한다. 독서에 가속이 붙으니 머릿속이 빙빙 돈다. 사선으로 된 좁은 벽이며 벽에서 금방 튀어나오는 벌, 병원과 함께 더욱 신비한 병원장과 환자들. 마치 뤼미에르가 나인듯 내가 그인듯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속에 야릇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게 이미 100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린 곳은 중세의 도서관 안이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어도 이상한 로망이 생기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중세’ 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같은 개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가장 꿈꾸기 좋은 청소년 시절에 자주 읽던 문학의 배경이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괜히 그렇다. 뤼미에르가 어렵게 문을 열고 들어간 중세의 도서관에는 애타게 회복을 기다리는 피터가 아닌, 건축주이자 위대한 설계가인 왈쳐도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일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전에 원장이 가지 말라고 했던 그 종탑 아래에서 그녀의 무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녀가 중요한 인물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그 인물을 탐색하다가 자못 실망하고 말았다. 그 쯤 돼서 그녀가 누군지 설명해주면 좋으련만 작가는 독자에게 또 추리를 하라고 다그쳤기 때문이다.

뭐 결론적으로 그녀의 이름은 아나톨 가르니아. 간단히 말해서 지금 병원에 누운 위독한 환자 피터의 양어머니이다.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남편을 의지하며 세 아이를 키우다가 화재로 가족을 잃은 그녀는 가족들이 그리워서 왈처의 집에 그러니까 자기의 옛 집에서 가정부 노릇을 하게 된다. 그녀는 몸이 앞으로 굽었고 굉장히 우울하다. 매일 밤 흐느끼며 가족을 그리워한다. 그런 그녀를 몰래 신경쓰던 왈처는 그녀를 위해 집을 개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죽은 막내 아들이 죽기전에 허브냄새를 많이 풍겼다고 하여 현관을 개조해 그 향기가 나게 하는 것은 마술에 가까웠다. 딸의 방에서 나는 장미향을 만들어 내는 것과 나무 실로폰 소리를 나게 하는 것은 거의 마법이었다. 그렇게 왈처는 가족을 만들어내고 결국 아나톨을 사랑하게 되는데 우연히 집 앞에 버려진 아기 피터를 만나게 된다. 왈처가 지고지순하게 아나톨을 사랑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신의 선물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나톨은 곧 죽는다. 그리고 뜻밖에 아기엄마가 등장하면서 피터는 그 집에 남겨지고 왈처는 떠나고 만다. 모든 사실을 알고 난 독자는 매우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왈처가 떠난 후 아버지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 때문에 늘 불행 속에 살았던 아들 피터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만약 뤼미에르 같은 건축가가 없었더라면 아예 알아내지도 못했을 일 아닌가. 일종의 모험이었다. 자기 아버지의 비밀을 캐 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기는 한번도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피터의 생모에게도 분노했다. 버릴 때는 언제고 다시 나타나서 잘 키워진 아들과 엄청난 크기의 집까지 선물 받았으면 애가 자라는대로 ‘너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다’ 고 말해주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피터가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해주었다. 분노로 중얼중얼거리다 몇 번씩 책을 탁탁 치니 옆에 있는 남편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그러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 이건 소설이지. 허구지, 이야기지. 하다가도 아 진짜라잖아. 건축가가 겪은 이야기라잖아. 아 들은 이야기라잖아. 조금만 허구라잖아. 아 몰라 몰라 계속 읽을래. 혼자 정신분열을 경험하고 있었다.

5.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소설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많은 세세한 것들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소설은 이야기일 때 가장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만나고 엿보고 엿듣는 것은 늘 재미있다. 수많은 소설가가 글을 쓰지만 재미와 감동과 기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 있다고 해도 치우친다. 이 소설이 혹 건축에만 치우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야기도 탄탄하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다만 한가지 못마땅한 점은 결말부분이었다.

뤼미에르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피터는 뤼미에르에게 집을 선물한다. 나는 이제 피터가 죽는 줄 알았다. 그전에도 요양병원에서 살고 있었고, 몸이 매우 아팠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장과 짜고 거짓말 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80이 넘은 할아버지(1921년생) 가 아닌가? 뤼미에르가 그 집을 싹 고쳐서 피터의 가족과 피터에게 양보하고 나서도 15년이 지나서 피터는 살아있다. 뤼미에르가 15년 후에 건축의 거장(?)이 되고나서도 인사를 하러 가는데  초고령의 노인이 다락방까지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사실은 매우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좀 별로였다.

뤼미에르가 집을 양보하고 나서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는지도 사실 명확하지 않다. 건축에 대한 다른 의미를 떠올리고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도 그의 삶이 그렇게 변한 것 같지가 않다. 피터의 도움으로 엄청난 거장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아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위인이 되어 있든지 뭔가 변화가 일어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 있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내가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 곳에 ‘나’의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이었다.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오직 나를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있을까? 아직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나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론을 짓는다. 뤼미에르가 특별한 경험을 했던 것도 그것에 대한 엄청난 부와 대가를 포기하고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자기를 위해서다. 결국 남이 볼 때는 그 결정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본인이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기에 약삭빠르지 못한 뤼미에르씨는 ‘나’를 위한 집짓기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니 소설도 성공이다. 장수노인의 엄청난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 놓자. 그게 나를 위한 소설이다.

6. ‘보이지 않는 집’인가

라디오에서 작가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작가는 일부러 겉표지에 제목을 넣지 않았다면서 독자가 스스로 책의 이름을 정해보라고 이야기했다.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책의 부제를 무엇이라고 정할까? 당신은 제목을 무엇이라고 정하고 싶습니까?

<여적(餘滴)>책 읽는 청주

나는 두 번째 ‘책 읽는 청주’ 선정도서를 경험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책을 추천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서 기쁜 마음으로 읽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책 읽는 청주’ 의 취지인데 ‘모든 시민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자.’ 는 것이다. 정말 모든 청주시민이 한권이라도 같은 책을 읽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바쁜 일과 중에 책 한권을 완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선정 도서만 정해 놓고 정책으로 반영하는 척 하면서 제대로 읽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어제 라디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저녁 7시 30분부터 cjb에서 ‘보이지 않는 집’을 읽어주고 있었다. 매일 읽어주는 것인지 일주일에 한두 번 읽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정독을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노력하는구나. 정말 취지대로 시행하고자 노력하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먼저 읽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앞으로도 책 읽는 청주 프로그램이 잘 활성화 되어서 모든 시민이 한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바쁜 사람도 힘든 사람도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 읽는 청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디오에만 나오지 말고 TV광고에도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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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전장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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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만약에 나는

커다란 구둣발이 개미를 누른다면 그 개미는 새끼 개미들을 부둥켜안고 개미굴로 들어갈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순순히 죽음을 맞이할까. 그도 아니면 구둣발바닥 미끄럼방지에 숨어 살기를 기다릴까.

2. 내가 만난 사람

인물은 둘 뿐이다. 죽어도 관계없다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자 하기훈. 죽어도 살아야겠다며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자 남지영.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다르게 비슷한 그 둘이다. 둘은 기석이라는 남자를 사이에 둔 가족이다. 기훈은 기석의 형이고 지영은 기석의 아내인데 둘은 모두 기석을 지키지 못한다.

지영은 기석과의 결혼생활이 시원치 않았다. 지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기결혼이었고 위선이었고 기회포착이었을뿐 남편에 대한 애정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지영은 남들에게 연애박사라는 말이 듣기 싫어 기석을 이용한 것뿐 오히려 그것이 죄책감이 되어 기석을 멀리해 먼 지방으로 자진해서 떠나는 악처이다.

기훈은 컴니스트를 자처하는 백수에 불과하다. 사회운동을 하는 건지 제 멋에 빠져 으스대며 다니기만 하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끝까지 멋진 척만 하는 것 같다. 딱 내 스타일이 아니다. 기훈은 바람둥이이고 자기가 사랑에 빠진 것을 부정하는 비겁한 남자다. 단 한번 비겁하지 않은 적이 있는데 솔직한 자기 모습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그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만다. 나는 이사람이야말로 허무주의자라고 생각한다.

3. 글과 나 그리고 전쟁

지영은 38접경지대까지 자원해 여학교에 취직을 한다. 연고도 없고 사명감도 없다.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도 없고 다만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편지 한 통 없이 속절없는 세월을 보내는 지영을 남편 기석이 찾아오지만 매몰차게 돌려보내고 지영은 왜 남편이 그토록 싫었는지 장문의 글을 쓴다. 하지만 그 편지를 부치기 전에 한국전쟁이 터진다.

지영이 남편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연민에서 기인한 것이다. 결혼을 떠밀리듯이 했지만 그 남자에게 정을 주기는 싫었던 나르시즘 때문에 되려 남편을 미워한다. 그리고 핑계대기를 남편이 남의 밭에서 감자를 캐오는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싫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는 친정 엄마에게도 불만이란다. 친정 엄마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자기의 빈자리를 기석과 가족이 실감했더라면 자기는 가정에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편지를 적은 다음날 아침 전쟁이 터지고 지영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당도한다. 지영이 애초에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더 쉽게 단결했을 가족이지만 그래도 지영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을 나가서 가족의 얼굴 따위는 떠올리지도 않았고, 전쟁이 터져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둥 이북으로 잡혀가면 더 아름답겠다는 둥 시덥잖은 말들로 독자를 기만하던 지영에게 인간미는 전혀 없었다. 찬바람만 쌩쌩이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났을 때 가족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쏟는 장면에서 어느새 지영을 향한 동정을 마구 던지고 있었다.

기훈은 컴니스트로 뚱뚱한 변절자를 처단하기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화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이상한 사랑이긴 하다.) 그리고 그 변절자를 처리하고자 총구를 빼들기도전에 그가 계단에서 굴러 스스로 죽어버린다. 이에 허무한 마음을 느낀 기훈은 자기와 동고동락했던 석산선생을 죽이고 공산당의 거물이 되어있었다.

(사실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갑작스럽다. 빠른 전개가 좋기는 하지만 얼마나 지난 것인지 이해가 안될 때도 많았다.) 자기 일이 바쁘면 여자를 잊고, 자기가 울적하면 여자를 찾고는 우는 여자를 더 몰아붙이는 냉혈한이다. 그러나 어린 애들을 소중히 여기고 조카를 예뻐해서 수시로 드나든다. 그러나 기훈의 존재는 어린 조카들의 아비를 빼앗는 냉혹한 삼촌일 뿐이었다.

서울은 순식간에 인공치하가 된다. 그리고 인민군을 환영한 어느 사람들은 소련치하 친일파를 척결하듯 부자들을 약탈한다. 빨치산을 모집해 인민군을 돕도록 한다. 지영은 인민군을 도울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지만 눈치가 보여 부역을 나간다. 강을 메우는 일을 하며 피로에 지쳐 잠이 들기 때문에 아이들과 노모는 잘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 기석은 친구의 권유로 공산입당원서를 쓰고 만다.

서울은 수복되었다. 인천에 연합군이 들어왔고, 국군과 유엔군이 주둔 하던 어느 날 군중들은 다시 빨갱이 색출에 나섰다. 서울은 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기석은 빨갱이가 되어 끌려간다. 남편을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던 지영은 남편을 구호하기위해 별짓을 다하는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의 간절함이 무감한 독자의 가슴을 울리고 기석이 제발 살아 있기를 바랐다. 멀쩡하던 도시가 날아가듯 기대는 날아가고 지영은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래도 지영은 빨갱이 누명에서 벗어났다. 씩씩한 여자였다. 어떻게서든 집으로 돌아왔다. 여리디 여린 여학교 교사가 장을 부수어 리어카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두려워서 나 혼자 도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 리어카에 들어갈 바람이 없어 피란길은 좌절되고 만다. 전쟁 속에 무수히 피고 지었을 좌절들이 눈앞에 어리는 것 같아 몇 번씩 한숨을 쉬었다.

전쟁을 맞이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어설펐다고 한다. 그렇다. 그 누가 죽음에 익숙하겠는가. 그것이 자기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가 능수능란하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꼬박 3년을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새끼들은 어쩔까. 죽어가는 서방을 찾으러 나가면서 늙은 어미의 손에 천에 둘둘 말은 가락지 몇 개를 넘겨주고 가는 지영의 뒷모습에서 연약한 여자의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곧 지영은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

지영의 엄마 윤씨가 죽을 때 왜이리 슬펐는지 모르겠다. 어버이 날이어서 그런건지 홀로 있는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그런건지. 내 생각에 윤씨도 이제야 자식을 진짜 사랑하는 어미가 된 것 같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배급인 줄 알고 좋아서 따라나간 그 곳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그가 안고 있던 것은 피로 물든 쌀 주머니였다. 그에 그렇게도 슬퍼 눈물이 났다. 평생 애증하였던 어미. 시집 갈 때도, 가서도, 살면서도, 전쟁 중에도 답답했던 엄마. 그렇지만 엄마의 죽음이 지영에게는 남편을 잃을 때보다 더 아픈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울고 있을 시간조차 없이 급박하게 도망쳐야했을 파리한 목숨줄 지영 그리고 분신같은 아이들. 그들 모습이 아파서 여러번 푹푹 한숨을 쉬면서도 책장은 넘어간다. 넘어가면서 쉴새없이 지영에게 남은 희와 광만은 죽지 않기를 정말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결론은 이것이다. 지영은 끝까지 서울을 지키려고 했지만 삶의 터전이었던 집이 공습으로 무너지자 이웃집으로 옮긴다. 장터에서 남은 옷을 팔아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실망하던 차에 친척이 찾아온다. 이모부는 허세가 대단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것 같다. 끝까지 피란길을 책임져준다. 지영에게도 이제 살길이 열렸다.

기훈은 지리산 속에 숨어 살면서 오랫동안 목숨을 유지한다. 하지만 컴니스트가 되어 찾아온 가화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변절자가 되어서 슬쩍 살아갈 수 없는 기훈은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지만 가화의 죽음은 원치 않는다. 그에 독자는 이제야 로맨티스트가 된 기훈에게 인간의 냄새를 좀 맡아보려는 찰나 가화가 그의 발 앞에 죽고 만다. 그리고 역시 허무하게 기훈은 오리가 되어 물로 떠나는 책임감 없는 결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든다. 지영이 살았기 때문이다. 지영은 이제 억세게 살아갈 것이다. 전장에서 살아남았으니 시장에서 더 잘 살아남겠지. 광을 검사로 키워내고 희를 의사로 키워낼 것이다. 미제 그릇세트를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껴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밤마다 울지도 모른다. 하늘을 보며 남편에게 편지를 보낼지도 모른다.

4. 시장과 전장

전장과 시장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 사람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폭격이 휩쓸고 간 그 자리에 장터가 선다. 남편을 잃은 아낙들은 시집올 때 가지고 왔을 법한 외국산 식기들을 내다판다. 부인네들은 가지고 있던 양장을 팔아 떼거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부리나케 돌아가 이른 저녁 밥을 해 먹고 밤이 오기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밤만은 무사하길 기도한다. 땅을 흔들고 하늘을 부수고 비행기가 지나가도 용케 살아나면 또 남은 것들을 팔기위해 장터로 나가는 그 모습이 서글펐다. 그리고 그 곳에 돈을 버는 이가 있고 주머니에 구겨 넣을 지폐가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전장에 사람이 죽고 그와 맞닿은 시장에서 사람이 살아난다.

빌어먹을 놈의 세상, 살이 살을 무니 뭣이 될 거여. 우리 농사꾼이 밥을 달라했나 옷 달라 했나. 땅 파먹고 죄 안 짓고 선영 모시고 자식 기르며 살아왔는데 대국 놈들이나 쳐들어왔다면 몰라도 이 좋은 땅에 한 물줄기를 타고 태어난 우리 백성들이 서로 잡아죽이고 뜯어죽여야 쓰겠소?

일본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는 그래 미워할 사람이라도 있었지. 조선땅 팔아먹은 매국노 잡아 죽일 때는 그래 명분이라도 있었다. 학살로 노랭이로 빨갱이로 이유도 없이 사그라진 520만 목숨이 무색하게 여전히 갈라선 채로 뚱보의 기분에 맞추어 눈만 흘긴 채 평생을 사팔뜨기로 살아야만 하니 얼마나 애통한가.

누우렇게 익은 보리밭도 있고 아직 파릇한 보리밭도 있다. 그저께 밤에 내린 비로 논에는 물이 넘실거리고 더운 유월바람에 물결이 인다. 꺼멓게 잘 썩은 채마밭에는 둥글배추, 짙푸른 부추, 양파, 유월 뜨거운 햇볕 아래 풍성하기만 하고. 그 풍성한 땅을 두고 짐을 짊어진 농부들은 피란민과 합류하여 목적도 없는 길을 떠난다.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목적도 없는 길을 떠날 수도 없을 것 같다. 뚱보가 가진 큰 공 하나 쏘아올리면 우린 모두 죽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 땐 지영처럼 주변에 있는 것의 평화를 일일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을 것이다. 어? 전쟁이 일어났네? 하기도 전에 죽어버릴테니까. 그래도 겨를이 있다면 이렇게 적어볼 것이다.

오랫동안 호흡하면서 함께 걷던 나무들이 그대로이다. 하천에 벌거벗은 바위들도 역시 있다. 아스팔트의 더운 열기도 혀를 쑤욱 빼고 흐물흐물 걷는 무거운 가방의 초등학생들도 여전하다. 초저녁이면 가득차던 우리동네 주차장도, 내 아이들이 걷고 뛰던 학교 운동장도 그대로이다. 우리 가게로 오라 손 흔들며 춤추던 현수막들도 켜진 이래 단 한번도 꺼지지 않은 신호등들도 그대로 일 것이다. 그러나 오직 그 곳에 우리들만이 없다.

5. 붓 끝에 남은 먹물

이 소설이 우리나라 전쟁의 모습을 가장 잘 그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사실적인 이념적 표현과 불사의 존재가 된 듯한 홍길동 하기훈, 금방 푹푹 쓰러지던 가화가 컴니스트가 되어 지리산 산골까지 흘러 온 설정들이 지나치다고 평가된다고도 한다. 그리고 전쟁을 마치 투영해보듯 쓴 표현도 혹평 중 하나이다. 문학적 잣대가 그렇다면 감각적 잣대는 어떻게 대면 좋을까. 한편의 긴 전쟁 느와르를 끝내고 이렇게 추욱 슬픔에 젖어있는 이 대단한 작품을 놓고 나도 작가처럼 엉엉 울어버렸으면 좋겠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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