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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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호세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이 말하길 '언어는 언제나 과잉이다' 라고 했단다. ('말은' 일지도 모른다, 찾아보니 나오진 않는다)

말은 내가 전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그것이 오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가질 것이다' 라고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말이었는데 내가 잘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문득 어제 읽었던 이 소설이 생각났다. 노라와 모라. 7년을 같이 살았지만 서로를 절대적으로 몰랐던, 자신의 상처만 보느라 서로에게 소홀했던 외로운 두 소녀의 모습이 겹쳤다.

말에 아무리 과잉이 있다지만 한 번이라도, 한 쪽이라도 자기 마음을 털어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이 소설은 절반은 노라의 이야기고, 절반은 모라의 이야기다. 그리고 벤다이어그램처럼 가운데가 정확하게 겹치는 두 사람의 7년이 있다. 둘 중 하나의 이야기를 고르라면 모라를 고르겠다. 모라의 이야기를 읽다가 울었기 때문이다. 노라보다는 모라가 상실감이 심했다. 지금 당장 모라보다는 노라가 더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상처의 강을 건너는데 한 명을 뭍으로 나왔고, 한 명은 아직도 덜 건넜다. 그리고 강이 얼기 시작했다. 속상했다.

노라의 이야기는 초록색 글씨로 전개된다. 작가가 원했는지 편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글씨 색으로 나눠주니 읽기는 좋았다. 서술자가 교차하거나 여러명인 소설인 경우에 소제목을 달아주지 않으면 누구 이야기인지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모라는 검정색이다)

노라는 홀어미 슬하에서 자랐다. 어느날 아버지가 죽었고, 다소 거칠고 모진 말을 일삼는 엄마에게 상처도 입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춤바람이 났고, 남자를 데려왔고, 남자에겐 노라와 동갑인 딸 모라가 있었다. 여러가지로 공통점이 많다며 엄마는 좋아했지만 살림을 합치고서도 모라에게는 잘 안해주고 노라에게만 용돈을 쥐어주는 기행을 보였다.

노라는 모라와 등하교를 같이 했지만 서로 같은 방을 썼지만 서로 엄청 친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라와 양아버지가 왔을 때처럼 그렇게 떠났다. 엄마는 지금도 이혼이 자기의 재산을 지킨 길이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노라는 어려웠던 회사생활을 그만 두고 종묘상에서 일하면서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20년전에 헤어진 모라였다. 모라의 아버지가 객사를 했는데 장례식에 와달라는 전화. 7년간 같이 살았지만 두툼한 손 이외에는 별 생각나는 것이 없는 엄마의 옛남자. 노라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월차를 내고 모라를 만나러 간다.

모라는 진짜 힘들게 살았다. 어릴 때 엄마가 비디오 틀어주고 나간 후로 여태 연락 두절이고, 소문을 피해 아버지는 여섯살짜리 딸을 시골 친척집에 맡겼다.

홀로 1년을 상실과 모멸에 몸부림치던 모라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노라 모녀와 함께 살게 된다. 노라엄마가 대놓고 하는 차별을 견디며 또 버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어느날 너무 무서운 마음에 딱 한 번 노라의 이불 속에 파고든 경험 이외는 노라 모녀에게 사랑받거나 보호받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는데 그마저도 7년의 세월이 지나자 끝난다. 아버지는 늘 모라를 두고 떠났고, 결국은 죽은 채로 돌아왔다. 모라는 아버지를 혼자 보내기 싫어서 노라를 불렀고, 자기가 얼마나 노라를 미워했었는지 상기했다.

이 소설 속 두 여자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적다는 생각이다.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 아마 이 두 아이들도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엄마 사먹으라고 노라에게 쥐어주던 돈은 늘 1인분 값이었으며, 노라는 모라의 아버지에게 한 번도 아버지라는 말을 안했다는 것들에서 모라에게는 채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자리지만 노라에게는 그다지 불필요한 아버지라는 존재였다는 것. 그 아버지의 자리는 노라에게 이름을 지어준 노아무개씨 뿐이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한 명이라도 따지고 들었으면 어땠을까. 여타의 다른 집 애들처럼 머리라도 끄잡고 싸워봤더라면 말이다. 한 명이 한 명에게 '너는 왜 내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하지 않냐.' , '너는 왜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왔냐.' , '너는 왜 하교길에 나를 피하냐.' , '너는 왜 나에게 다 털어놔서 나를 비참하게 하냐.' 는 식의 속풀이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켜켜이 쌓은 응어리를 털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때로는 터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자존심을 뭉개는 게 아니라 먼지처럼 부유하는 오해와 자조들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알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는 가까이 하지 못하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 버린건 아닐까.

안다, 너무 어렸다는 것을. 안다,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하지만 성인이 돼서 만났을 때 만이라도 서로 옛이야기를 주절거릴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나 자기만의 마음의 방이 있을테다. 어떤 이는 누가 훅 열고 들어와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조금의 노크도 마뜩찮게 여길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외려 활짝 열고 언제든지 들어오라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아예 빗장을 걸고 없는 척 하며 살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기 마음이지만 처음부터 닫아거는 사람일수록 즐거움이나 행복에서 가까운 사람을 보질 못했다. 나의 모든 것을 오픈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누군가에겐 나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도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좋은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은 시절이 조금 더 많았던만큼 노라가 좀 더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 같다. 결국 노라는 자기만의 방에 빗장을 건 모라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의 의미는 독자들이 파악할 몫이지만 먼저 내밀 수 있는 용기는 조금이라도 사랑받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개인적으로 노라와 모라가 다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오랜기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자매처럼, 오래전 산 밑 집에서 함께 살 때 새 소리를 흉내내던 그 엷은 미소의 어느날처럼. 모라는 노라의 손을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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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속마음,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 - 한권으로 인간 심리세계를 통찰하는 심리학 여행서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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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서 시장을 보면 말 시리즈가 유행이다. 명사(名士)의 말을 엮은 책들은 그의 저서를 모두 읽지 않고도 그의 사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책들 중에 양서를 골라 읽기도 힘든데 양서는 또 너무 많아서 다 읽지 못할 때 나도 종종 골라 읽곤 하는 책이 바로 말 시리즈다.

이번에는 심리학자의 말들을 담은 책을 골랐다.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 같다. 같이 사는 남자는 물론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기 힘들고, 섣불리 넘겨짚고 나와 맞지 않다고 타박한 적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럴 때 궁예처럼 관심법이라도 해보든가 (물론 뻥이지만), 철학자들처럼 세상 모든 이치를 터득한 듯 시크하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지극히 평범한데다가 간혹 욱하는 나는 끙끙 앓거나 아예 포기해버리기 일쑤다. 누군가 심리학적으로 내게 접근했다간 거의 손절각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돼야 하거늘 방법을 몰라 끙끙댈 때 가끔 나는 심리학 책을 빼든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이트나 융, 아들러의 심리학은 그들의 저서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해한 바를 엮은 [미움받은 용기] 이런 책도 읽어봤고, 그냥 심리학자들이 쓴 - 내담자의 상황과 이론을 접목시킨- 에세이들도 많이 읽어봤다. 그래도 때론 저명한 학자들의 이야기도 알아보고 싶었다. 나같은 심리학 초보 -아니면 중보?- 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다섯파트로 나눠져 있다. 

 

첫번째 파트는 우리가 잘 아는 프로이트와 융을 포함해 얼마전 [타인의 해석]이라는 책으로 베셀의 위용을 드러낸 말콤 글래드웰, 내가 잘 모르지만 저명해 보이는 고든 올포트 같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마음 속에 숨겨둔 무의식과 잠재력에 관한 명언들이 담겨있다.

 

두번째 파트는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반 파블로프나 아들러 같은 행동 심리학자들을 포함해 역시 잘 모르는 폴 에크만, 대니얼 샥터 같은 사람들의 명언이 수록돼 있다. 사람은 아무리 이성적인 것처럼 굴어도 결국 본능의 동물 아닐까?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명언으로 드러내 놓았다.

 

Apple SD Gothic Neo", "맑은 고딕", "Malgun Gothic", 돋움, dotum, sans-serif; vertical-align: baseline; word-break: break-word; overflow-wrap: break-word; white-space: pre-wrap; background-color: #ffffff;">세번째 파트는 사회심리학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과 집단은 원하는 바가 다 다르다. 사회는 너무나 다원적이고 아무리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결국 소수는 존재하는 법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사회안에서의 우리의 역할을 명언들로 자세히 적어두었다. 이 파트는 내가 좋아하는 파트인데 '나와 쟤는 왜 다를까?' 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명언들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네번째 파트는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필요한 파트다. 결국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심리학의 목표기 때문에 기제는 이제 봤으니 솔루션이 필요했다. 이 시점에 거장들의 심리치유 말하기를 보면서 내 맘에 차는 말은 쏙쏙 골라서 듣고 실천하면 된다. (뭐 모든 말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니 걸러서 들으면 된다. 어차피 한 명이 아니니까!! )

 

Apple SD Gothic Neo", "맑은 고딕", "Malgun Gothic", 돋움, dotum, sans-serif; vertical-align: baseline; word-break: break-word; overflow-wrap: break-word; white-space: pre-wrap; background-color: #ffffff;">마지막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정말 단계적으로 편성되어 있다. 우리 심리의 기제를 알았으면 치유하고 그 후엔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결국 인간관계는 우리의 행,불행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부부 사이의 관계, 부모 자식간의 관계, 회사, 학교, 단체에서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내가 잘 모르지만 배려해야만 하는 세상 모든 관계에 대한 명언이 독자를 깨우친다. 심리학자들을 모두 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나에게 도움 되는 문장들을 몇 개라도 가슴에 새기고 실천 할 수 있다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만 있다면 20000원도 안되는 이 책이지만 백만금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우리는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어색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엔 명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엮은이가 파트별로 본인의 생각하는 바를 담아두었다. 저자가 알게 된 심리학자들의 이야기 방식에 대한 설명도 넣어두었다. 저자 김태현은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과 현명의 방법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한다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탐구에 왕도가 있냐마는 이 책을 보니 많이 노력하시는구나 싶어서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영어로도 써 놓아서 읽어보면 뜻밖의 상식을 갖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지고 있으면 정말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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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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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고골처럼 시대를 비출 수 있는 한국 작가는 누가 있을까?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한 적 있다. 조금 전으로는 성석제, 김영하, 김훈. 요즘은 장강명, 한강, 황정은 작가가 우리의 물망에 올랐다. 더 있을 테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적겠지만.황정은 작가의 책을 도장 깨기처럼 읽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서평이니 리뷰니 관심이 없어놔서 그냥 읽은 것에만 의의를 뒀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적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내면 있으려나.


실로 오랜만에 황정은 작가의 책을 꺼낸 것은 단지 빨간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얇은 책들도 찾으면 있겠지만 굳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언젠가 읽어야 할 소설이었기 때문이고, 글 다운 글을 읽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당연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것은 내 나라, 내 사회, 내 이웃의 일들이기 때문일까.


표지에 연작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제대로 안 보고 장편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야기가 끝나서 응 뭐지? 하고 다시 보니 연작 소설이네. 다른 소설처럼 단편이 여러 편 있는 게 아니고 중장편 두 개가 별다른 연쇄 없이 묶여있다. 겹치는 것은 세운 상가와 촛불시위다. 세운상가는 첫 번째 소설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촛불시위는 두 번째 소설에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한다. 첫 번째 소설인 <d>부터 살펴볼까.


제목이 왜 [디디의 우산] 인고 하니 주인공 d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인물의 이름을 짓지 않고 알파벳으로 이름을 표기할 때가 왕왕 있는데 보통은 대문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끝까지 d는 그냥 d다. 왜 d 인지도 궁금하지만 왜 소문자로 명기했는지 궁금했다. 아무튼 d는 우연히 dd를 사랑하게 된다. dd의 우산은 우중(雨中)에 d가 dd를 바래다주고 빌려 쓰고 온 우산이다. 소중한 것을 대여한 느낌이랄까, 안전을 보장받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dd가 죽는다.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죽는다. d는 거의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진다.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 집안의 온갖 사물을 부순다. 몇 달을 칩거하며 현대인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을 거부한 채 상실의 고통을 마음껏 탐닉한다. 바깥으로 나왔을 때 모두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매몰된 슬픔을 이야기 하는 것은 황정은 작가가 단연 최고인 것 같다. 읽을수록 너무 슬프다)


dd와 살던 집을 처분하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세운상가에서 택배 일을 한다. d는 dd가 그립지만 예전처럼 폐인이 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이다. 황정은 표 인간극장 같은 느낌. d가 만나는 사람의 생애가 전개되는데 우리나라 전후 사회를 비추는 모습이랄까. 집주인 김귀자 할머니의 생애, 세운상가에서 음향기기를 고치는 여순녀의 삶, 길거리 리어카에서 음반을 판매하는 동창 박조배의 삶 같은 나지막한 읊조림이 생각 없이 2020년을 누리던 나를 1960년으로, 1970년으로, 2000년대로 사정없이 패대기친다. 아무렇게나 쏟아놓은 빨랫감을 분류하듯이 점차로 시대별 장면이 분류된다. 전쟁통에 남편과 자식을 잃은 젖먹이 어미의 삶으로, 변화하는 것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삶으로, 그렇지만 곧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삶으로! 모든 젊은이가 부르짖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생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도시 빈자들의 삶으로 나는 점점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황정은 소설의 매력이다. 오랜만에 마주치고 나니 또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나는 왜 읽기만 하는가 하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잘 쓴다. 글쓰기 책도 아닌데 심장이 벌렁거린다.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지 진짜. 독자의 마음을 마구 흔들려고 쓰는 거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려고 쓰는 거지. 소설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몇 번 말해야 해?


두 번째 소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좀 더 사회 반영적이다. <디디의 우산>의 d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했는데 두 번째 소설의 '나'는 좀 더 사회적 동물로부터 출발하는 느낌이랄까.

1996년에 연세대에서 그런 시위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 중학생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로 만들어져야 관심 좀 가질까. 지나간 것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나마 시험에 나와야 좀 외우지. 1996년대 나온 가요는 알아도 민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그런 전근대적인 학대와 폭력이 자행됐었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째서 우린 이렇게 편하게 살아오며, 지나간 모든 희생을 이렇게도 쉽게 잊을까? 83년에 맡던 최루탄 냄새를 96년에도 맡고 있었다. 말해 무엇하랴 2014년에는 학생들을 실은 배가 뒤집혔고, 모두 구조했다고 거짓말했고,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라 하고 도망 나왔는데. 농성하는 노인에게 물 대포를 쐈는데, 불과 몇 년 전에도!

그런데도 안락과 즐거움만 찾아서 그저 머무르기만 했던 내가 너무 미안했다. 책을 읽으면 내내 그렇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열심히 읽을까. 불편한데도.


나는 왜 이런 책을 좋아하고 읽을까 생각해봤다. 그건 미안해서다. 미안하니까 알고 싶어서. 알리고 싶어서.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기에. '너 알았니? 우리나라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너 알았니? 나는 몰랐어. 그래서 미안해. 내가 어른이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서 이제는 알려고. 알게 되었으니 좀 더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고 말이야.'


두 번째 소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무기력에 관한 이야기다. 어차피 무언가 말하려고 할수록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지 말자.'라고 반대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d는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는 움직였던 사람이고, 움직이려는 사람이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게 정의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d와 '나'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시대를 비추는 각각의 인물상이다. 소설을 끝맺을 수 없는 '나'. 읽고 싶은 책이 많지만 점점 눈이 멀어가는 '나'. 사회가 말하는 디폴트가 되지 못해서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 기준은 누가 정했느냐고 소리치고 싶지만 나 역시 이미 정해진 기준대로 40년 가까이 살아와서 그런지 그게 편하다. 미안해. 나도 아직은 어쩔 수가 없나 봐.


두 번째 소설은 '나'와 김소리와 서수경의 이야기만 걷어내면 거대한 서평집 같은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섞어놓은 책 이야기가 놀랍다. 작가가 책을 엄청 읽는 사람이구나, 서재 이야기는 자기 서재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인용하는 책을 많이 읽어두어서 이해도 쉽고 좋았다. 못 읽어본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빨간색 책인 줄 알았더니 엄청 다채로운 색의 소설이다. 다만 좀 더 조도를 낮추고 채도를 내렸다. 좀 더 어둡고 습하다. 그렇지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찾을수록 너무 안온하게만 살아온 나를 반성하게 되는 회초리 같은 소설이다. 읽지 않은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 또 한 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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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17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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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서재에서 신간소설이 나왔다. 늘 그랬듯이 청소년 소설이다. 열두살 딸이랑 같이 읽었다. 그런데 청소년보다 어른인 내가 더 감동받았다. 재밌었다. 어려운 소설만 읽다가 만나서 그랬는지, 갑자기 나도 앞길이 창창한 청소년이고 싶었는지 정말 재밌게 읽었다.

하얀운동화, 파란대문, 빨간 우체통, 비밀, 중2 둘과 고2 둘, 문제



이 소설을 이해하는 몇가지 키워드다.

주요등장 인물은 넷 . 주인공이다. 선미와 강민, 자영과 이수.



네 명의 학생들은 모두 하얀운동화를 우연히 만나 신고 등교길에 할머니를 한 분 만난다. 할머니는 놀랍게도 이 들의 가벼운 인적사항을 알고 있으며 금요일 5시까지 오라며 하얀운동화의 비밀을 알려준다.



모르는 어른은 다 조심해야 하는 요즘 아이들의 의심은 당연하다. 아무리 웃으면서 인자하게 말해도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쉬이 따르기 어렵다. 하지만 기묘하고 놀라운 일들은 벌어지고 만다.



솔직히 말하면 타임리프 같은 거야말로 진짜 허황된 이야기다. 그렇게 가능하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재밌겠는가.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과거로든 현재로든 미래로든 내가 원하는대로 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인생에 신중할 필요도, 후회하다가 깨닫고 발전하는 일도 없겠지. 가고 싶은대로 가면 되니까.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건 없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텐가.

이 책에서 가장 재밌었던 설정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이었다. 서울에서 두 명, 경기도에서 두 명. 등교길에 만난 파란문이지만 열리는 곳이 다르다. 그런데 들어오면 같은 집에서 만나는 것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제각기 다른 고민과 상황과 여건 속에서 살아간다. 그 모든 일들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럴 때 누가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면 어떨까? 따뜻한 음식과 나를 기다리는 안온한 공기와 나를 반겨주는 어떤 이가 있다면 살기가 좀 퍽퍽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아예 시간이 멈춘 것처럼 행복할 것 같다. 그런 꿈의 공간이 바로 이 시간의 집이었다. 가장 부럽고, 가장 재밌는 설정.



작가 김하연은 따뜻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 같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전개에 이야기를 멈출 틈이 없지만 읽고난 후에도 계속 따뜻한 감성이 남아있다. 학원물이 아니지만 학원물 같다. 세태를 잘 아는 것도 같았다. (이야기가 좀 세기는 했다) 소설가가 구축한 세계 속에는 뉘우침이 있고 화해가 있다. 게다가 미래도 있다. 그래서 재밌다.
스포방지를 위해서 내용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찌질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이 땅의 청소년들도 저런 아름다운 관계를 만나서 무슨 일을 결정함에 있어 용기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보았다. 용감하기 정말 힘든 요즘 청소년들. 수 많은 고민 중에 있지만 아무도 만져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하기 어려워서 반항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판타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그 따스함이 돼줄 수 있을까.



중2를 견디고 있는 나의 아이도 두려운 어떤 상황을 만난다면 홀로 표류하지말고 뜻밖의 안온한 공기를 만나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를 용감하게 견뎌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 읽어볼 시간 없나 자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 이런 깨달음은 자주오지만 청소년 소설로 인생을 배웠으니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돼봐야지!

어른판도 있으면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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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아 2.2 을유세계문학전집 108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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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사회가 본격 도래하게 되면 사라지는 직업군 중에 작가도 있다지? 에이 되겠어, 싶다가도 김주하 아나운서랑 똑같이 생긴 AI 아나운서를 보면서, AI가 적었다는 기사문을 읽어보면서, AI가 그렸다는 그림을 보면서 아 진짜로 오겠네. AI작가가 오겠어, 싶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아이퍽10] 이란 러시아 SF소설에서 마침내 그것이 도래한 미래사회를 만난 적이 있다. 그 AI는 추리소설가인데 실제로 인간처럼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조사하고, 탐정처럼 파헤쳐서 소설로 쓴다. 그 AI는 어벤져스의 비전처럼 현실성이 없다. 두렵기만 하고.

그런데 [갈라테아2.2] 은 도래한 인공지능이 어떤 일을 벌인다기보다는 '사람이 기계에게 언어를 훈련시킬 수 있을까?' 라는 전제로 출발하기 때문에 두렵고 무섭다기보단 기발하고 궁금하게 만든다. 



주인공 리처드 파워스는 작가의 이름이 그대로 투영된 작가 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설적인 요소는 많이 들어가 있지만 그의 사랑과 문학에 대한 그의 고뇌는 일정부분 사실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여기서는 파워스라는 말 자체보다는 이니셜 P라고 지칭한다. 



 


이 소설을 끌어가는 커다란 이야기 주축은 셋이다.

첫번째는 획기적인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왜 만드냐는 물음에 외로워서라고 답하는 렌츠 박사의 엉뚱함과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상처와 추억에 젖은 P의 고독함이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헬렌이 탄생하고 교육이 진화하는 과정이 이 글의 핵심이다.


두번째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마치 현재를 잠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연인 C와의 사랑과 이별도 이 소설을 끄는 핵심이 된다. 그 안에는 사랑과 더불어 P가 늘 고뇌하던 문학에 대한 갈망이 엿보인다. 또, 렌츠의 숨겨진 아내 요양원에 살고 있는 오드리의 등장도 독자에겐 놀라운 사건 중의 하나였다. 렌츠는 대체 왜 이런 AI를 발명하고자 했을까에 대한 해답. 


마지막은 인공지능 시대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론으로 과는 과정이다. 이 부분이 사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진다. 혼자 말하기엔 어렵고 여러사람과 논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P는 사랑했던 연인 C와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온다. 모교인 U대학에 취직했다가 고등과학연구센터에서 렌츠박사를 만난다. 렌츠는 영문학 석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다른 과학자들은 어렵다고 이야기해서 결국 내기를 한다. 1년 동안 인공지능에게 영문학을 가르치고 인간처럼 시험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그 시험지가 인간과 비교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면 렌츠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P는 얼떨결에 튜링테스트의 전개와 인공지능 학습을 맡는다. 그리고 임플리멘테이션 A에서 H까지 진화하는 네트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네트는 점전 발전한다. 결국 언어를 알고 책을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문학을 가르치던 P가 인간적으로 인공지능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헬렌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사람인양 대한다. 헬렌의 대사를 보면 이미 사람같았다. 모양은 그냥 컴퓨터인지 몰라도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이미 컴퓨터이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업뎃 된 얼굴은 그녀를 속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라면 헬렌의 원래 얼굴- 그러니까 컴퓨터- 를 보여주면서 이거야. 할 것 같다. 아니면 그 요구 자체를 묵살하던가. 그러나 P는 더이상 헬렌을 그저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P는 헬렌에게 거의 인성을 부여했지만 렌츠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완벽한 진화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헬렌을 절단했다. 일각에서 대두되던 '기계인권'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나도 어벤저스에서 비전 죽을 때 많이 울었다) 과연 사람과 흡사한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죽게 하는 것이 도덕성의 결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각도로 생각해봐야겠지만 인형의 목을 잘라 놓는 것도 잔인해보이는데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었고, 나의 가르침을 사사한 인공지능을 자르고 붙이고 심지어 죽이는 (p.490) 건 부도덕이 아니더라도 정신적 건강을 해칠 것 같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오다니.나는 이 책이 너무 어렵다고만 생각해서 며칠을 끌었다. 헬렌을 만드는 과정들이 지난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헬렌과 P의 유대가 드러나는 순간 너무 재밌어졌다. 전개되고 밝혀지는 내용들이 흥미진진했다.결말은 좀 슬펐다. 모든 것을 깨달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한 일에 깜짝 놀랐다. 사람이라고 생각해 봤을 때 옳은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ㅠㅠ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책 [갈라테아 2.2] 였다. 1995년에 출간된만큼 지금하고는 25년의 차이가 있지만 다분히 현대적이라는 생각이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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