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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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끄러운 날 최은영을 만나면 등장인물과 같이 줄줄 울고 속이 시원해지는 걸 경험한다. 얼떨결에 획득한 후 한번도 버린 적 없었던 어떤 자리를 보전하느라 위장에 구멍이 날 정도로 힘들었던 독자에게 너 이리와 같이 울자, 하며 건넨 이야기 때문에 멈춰서서 같이 펑펑 울었다. 그러고나니 어느새 반투명한 유리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아직 투명까지는 되지 못했으나 눈물 닦고 바라보니 지독한 불투명만은 아니었다. 이 상황이, 이 무게가. 그러니까 영원히 가닿지 못할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털어놓다보니 깜깜하지만은 않더라는 걸 기꺼이 같이 눈물 흘려줄 밝은 낮이 있더라는 걸 알게 됐다. 최은영 소설은 나한테 그런 존재다. 무거운 마음의 궁둥이를 누가 턱 받혀주는 느낌. 실제로는 소설이 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이룬 회복인데 왜 나는 소설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위로를 받는가! 신기하다. 삐걱삐걱 음이탈을 낸지 오래된 늙은 악공이 젊은 조율사를 만나 튜닝받는 기분이기도 하다. 연주할 힘이 차올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단편집이지만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가족 이야기 세편은 부모자식이 아니지만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꽤나 슬펐다. 각기 다른 먹먹함으로 오래도록 멈춰있던 기억이 난다.

또, 앞의 세 편은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무엇을 배우기 위해 만난 사람, 학창시절에 알게 된 사람, 직장 생활에서 만난 사람. 잠깐의 유대가 열린 마음으로 향하게 했는데, 따뜻함을 기대하게 됐는데, 소소한 오해가 커져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그점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다가와서 그러려니 해야하는 비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은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쓸쓸했다. 자식이 나에게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데 타인에게 도움을 바라는 것을 볼 때의 서운함이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 마이크가 할머니의 희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이크는 할머니를 닮았다. 그 다정함을 가지고 매정하고 사나운 부모 밑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고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을 자꾸 응원하게 된다. 그 응원을 그들이 들을리 없지만 자꾸 그렇게 힘주어 잘살길 기도하는 이유는 인물 면면에 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관계의 합주에서 자꾸만 음이탈을 내는 부족한 내가 보여서는 아닐까. 하지만 어느새 마음을 다잡고 한음씩 더 노력하는 나를 본다. 위로의 심포니가 이 소설에 있다. 합주는 근사하게 마무리 되었다.

너무 좋았다. 곧장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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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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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청소년에서 일 냈다. 아니, 이꽃님 작가가 일낸건가. 표지부터 내지까지 시각과 촉각으로 사로잡고 내용은 읽길 잘했다고 셀프 칭찬! 눈물빼는 한 장면은 덤이었네. 선물 같은 책,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



남의 마음을 듣는 찬과 나의 마음과 싸우는 지오의 지독한 여름나기가 시작된다. 아직은 보호받아야 하는 열네살 어린 학생들이 세상이 위로 못할 큰 상처로 방황할 때 서로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절실하게 다가오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청소년 소설 속에서 아이들의 상처는 어른들이 만들고 나몰라라 하기 일쑤인데 이 소설에는 어른들도 팔에 흉터가 나고 말았음을, 어른들도 죽을 힘을 다해 애쓰며 살았음을 보여줘서 어른인 나도 위로 받았다.



여름과 학창시절은 찬란하고 눈부시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여름은 절대 황홀하지 않다. 누군가의 여름은 화마의 뜨거움과 상처로 점철된 고통의 귀퉁이일수도 있다. 학창시절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다. 특히 혼자 남은 사람의 상처는 홀로 극복하기 너무 어렵다. 하지만 이꽃님 작가의 소설에는 기어이 팔꿈치를 스치며 나란히 걷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온갖 상처와 눈물로 범벅이 됐지만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체득하고 용서를 결심하며 회복의 길로 접어든다. 지독했던 여름의 화기는 서로 한 입씩 베어 물믊으로 조각나서 사라진다. 타인을 이해하면서 어른의 세상으로 성큼 진입한다. 말 안해줘도 알 수 있는 마음을 마주하러 타인의 흉터 속으로 손잡고 나간다. 착한 사람이 한 선택도 나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그러나 나쁜 선택도 당시엔 간절함 그 이상이었음을 옅게나마 이해함으로 아이들의 세계는 넓고 안온해진다. 소망을 품을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움푹패인 상처를 치유할 슬픔이 흐뭇하게 흘러나온다. 나의 슬픔에만 골몰하느라 다른 사람의 고통은 생각할 수 없던 과거의 나를 사정없이 메어치고 나를 지켜주겠다고 새롭게 결심한 친구에게 손을 뻗는다. 시간의 심판대 앞에 승리한 아이들의 팔이 힘껏 들려 올라간다. 목에 건 화해의 매달은 비로소 빛난다.



정주라는 마을에서 펼쳐지는 태양을 피하는 뭉클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이야기를 덮은 후에도 여전히 이어질 인물들의 세계를 응원했다. 유도는 넘겨뜨림으로 점수를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이상 잃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해 굴레를 자빠뜨리는 소년소녀의 이야기가 나는 너무 좋았다. 게다가 츤데레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유도 안하는 외지인에게도 잘해줬으면!!

아무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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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5
장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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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책을 덮었다!
와 이렇게 끝난다고?
책은 너무 재밌다 깔깔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내용이 지루한 게 아니라 나아지지 않는 애 넷 딸린 은협의 삶이 지겹고 짠내났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고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고 싶으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은협의 삶이 난감해사였다.
더군다나 다소 재력있어 보이는(?) ‘나’는 왜 물심양면 은협을 돕는단 말인가? 뭐 때문에!!
그렇지만 이야기 전개가 너무 재밌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마지막은 진짜 충격적이다.
끝까지 능청스럽지만 어딘가 슬프지만 우습다. 인생 자체가 호러인 것도 같고. 마지막은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자마자 뺨을 맞는 기분이기도 했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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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열림원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호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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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전집이나 고전을 좋아하면서 의외로 읽기 싫은 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다자이오사무의 [인간 실격]이었음을 고백한다. ‘자살’이라는 키워드가 심어 놓은 냉소와 환멸과 허무와 염세가 읽기 전부터 불편하고 자기 살해로의 천착과 처연함과 우울을 마주하기가 싫어서 요리조리 피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열림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했고 그 중 세번째가 이 책이었고, 서평단을 모집했으며, 책 표지도 예뻤고 무엇보다 번역가가 소설가 이호철 선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명 노작가님이 번역을?!) 그러니까 읽을 이유가 한번에 밀어닥치면서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면서 오해만 쌓고 두려워 한 이웃의 덩치(?)와 차한잔 하는 기분으로다가. 에라, 못 읽겠으면 덮지 뭐.



하루키 소설로 단련이 되어서인가, 읽어보니 생각보다 무섭거나 어렵지 않았다. 난해하거나 덮고 싶을 정도의 환멸 같은 건 만나기 어려웠다. 그냥 나약하고 어린 한 남자의 방황 같은 거였다. 나라는 안팎으로 나쁜 일을 일삼고 삶의 이유를 하나도 못 찾은 부잣집 도련님의 권태가 연관이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간이기를 실격당한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렇게 나 살고 아무런 책임 없이 흘러가는 대로 마음대로 망가뜨리는 한 남자 요조에 대한 이야기. 소년기부터 갖지 못한 정체성. 완성의 기회 없이 끊임없이 좌절되는 자아. 서슴없이 해결하는 욕구, 그러나 별다른 욕망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죽이는 중인 남자의 이야기. 발전가능성은 신뢰하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사는 것에 자신만만한, 눈이 마주치는 여자는 모두 꾀여낼 수 있는 호색한. 그것이 얼마나 짙은 허무의 발로인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실격’이 아니라 아예 참가조차 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았다. 다자이오사무 자신도 그랬을까?



소설가 이상 생각도 살짝 났는데 공교롭게도 시기가 겹쳐서 행동하지 못한 지식인들이 비슷한 좌절을 겪었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가 누군가의 수기를 건져서 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반자살을 실행하다가 자기만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 같은 자전적 스토리가 담겨있는 걸 보니 지극히 작가 개인의 마음이 풀어 놓은 소설이었을 거란 확신과 함께 마침 읽게 돼 서 독서인생의 큰 숙제 하나 해결한 기분이다. (이를테면 까라마조프 같은...?)



드라마 <인간실격>을 볼 때 누군가가 이 소설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당시에 주인공을 너무 좋아해 평소에 잘 안보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거였고, 이 소설은 읽은 적도, 대강의 줄거리를 아는 것도 아니어서 누군가 올려 놓은 글을 보고 ’관계없다‘고 답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요조의 삶과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인생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구나 싶다. 다만 요조는 지극히 개인의 선택으로 -상황에 떠밀렸다고 보지 않았음- 이 모든 실격이 일어났고, 결과적으로도 아무런 의지도 장착하지 못한 반면, 드라마 속 남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떠밀리듯 선택한 일들이 다소 ’실격‘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왕좌왕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소설과 드라마의 큰 차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관계가 없지는 않다, 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자기 혐오와 자기 살해의 욕구와 작은 좌절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사람에의 소망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신뢰다. 모든 사람에게 돌이킬 수 있는 용기와 신뢰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실격당하지 않을테니까. 자기 신뢰를 쌓을 세상이, 맥없는 고독과 허무의 지옥도가 사라지는 세상이 더 많아지길 꿈꾼다.

“저는 애당초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뭐니 하는 도덕에는 그다지 관심을 못 갖고 있는 겁니다. 저에게는, 서로 속이고 있으면서도 하루하루 맑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어 보이는 인간들이 난해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내게 그런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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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홍라희 컬렉션 - 강력하고도 내밀한 취향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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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인 유한준은 컬렉터의 단계를 애지자(사랑하는 사람), 지지자 (아는 사람), 간지자(볼 줄 아는 사람), 축지자(모으는 사람)으로 나눴다. 그러면서 그 관계를 이렇게 적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러 다니게 되고, 보면 모으게 되니, 그렇게 되면 그저 모으는 사람과 다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이건희는 그림 보는 기쁨을 나누고자 한 ‘공지자‘이기도 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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