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빠는따뜻한 신발을 신고 눈길을 걸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따뜻한 신발을 신고 길을 걷다보면 낯선 곳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내 말을 들은 오빠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절레절레 흔들었다. 따뜻한 신발 덕분에 오빠는 자신감이 넘치는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가 되었다. 따뜻한신발을 신고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하던 나는 뭐가 되었을까?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을 때 저자 소개를 먼저 읽고 시작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읽다보니 본인이 대전과 조치원 사이의 시골에서 자랐다고 말하길래 깜짝 놀랐다. 지금은 그 곳이 세종 특별 자치시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는지!

천지개벽한 그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훨씬 이전에 태고의 순수를 간직한 목가적인 마을에서 천재 시인이 탄생했었다니 우야둥둥 적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서평을 쓸 때 책의 소개는 잘 하지 않는 게 좋다지만 이 책은 좀 소개를 해야 할 것 같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에세이는 원래 1989년에 이미 출간된 바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90년대와 2000년대 기록을 추가해 4부로 편집, 난다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된 거였다.

본인을 게으르다고 말하지만 부지런히 고독할 줄 알았던 시인 최승자는 고려대 독문과를 나와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할머니 손에 자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학을 갔다.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했는데 수재였던 모양이다. 의식 있는 엘리트이기도 했다. 문학작품을 번역했다고 하니 문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시인 본연의 감수성에 내장된 단어들 역시 남달랐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우울함이 내포되어 있지만 타인의 고통과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글에 휘감을 줄도 알아서 읽는 동안 비감이 느껴졌다.

1-3부는 순수한 시절의 에피소드, 갑자기 도시로 이사하게 되면서 겪은 고독감, 시를 만나게 된 과정, 목도한 죽음들과 개인의 고뇌들이 담담한 필체로 다소 솔직하게 적혀있다. 글에서 검열 따윈 없다. 붓가는 대로 쓰는 게 이런 걸지도 몰라. 멋있으면 언니라는데 이 언니 멋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히 있으니 오해 말라)

4부로 가니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서전은 아니다보니 아주 상세히 적혀있지는 않지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야할 정도로 피폐해진 어떠한 이유와 생의 고통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겅중 뛰어 있지만 여전히 그 정신분열이 치료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안타깝다. 절필까지는 아니지만 본인의 시가 이제 명을 다했노라 말하기도 하는 최승자 시인. 미안하게도 그의 시는 본 적이 없고, 나는 그저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든 것 뿐이어서 아쉽다. 조만간 그의 시집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p.14

작가 정신은 반드시 있다.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소중한 시인 최승자의 에세이에는 그가 평생 붙잡고 살아간 작가정신이 박제돼 있다. 시보다는 에세이가 좀 더 울림을 준다. 그러나 이제는 시를 보지 않고는 그를 다 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젊은 시인의 뜨거운 마음이 어디로 흘렀는지는 시선(詩線)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출판사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쩜 때가 딱 맞는지. 많은 글에서 한해가 지나는 것에 대한 회한을 많이 다루었다. 페이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한해가 간다는 것은 또 한해가 온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한해가 간다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맞는 말이라서 곱씹으면서 웃었다. 최승자 시인의 문장은 곱씹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이라는 표현을 1989년에 썼다. 소확행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최승자 시인에게 있다는 생각에 또 혼자 웃었다.

최승자 시인은 멋있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 중에 엄지를 치켜 들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시를 왜 쓰냐는 사람들에게 놓아 주는 일침, 도덕에 관하여, 떠나는 것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들이 좋았다.



"한 해의 끝에서 녹초가 된 몸, 녹초가 된 정신과 더불어 고요히 떠오를 그러한 질문에 합당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또 한 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6)

흠집이 나버린 정신 건강이 빨리 좋아져서 말년이 행복하시길 바라본다. 인생의 고락과 쓰디쓴 고뇌의 산물을 시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못 박아 두었으니 이제는 편히 쉬라고 전해 드리고 싶다. 그만 쓰자, 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 2021-12-2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에서 쓰인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신조어이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이 모든 현상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過보다 공功에 속하며, 우리 시단에 실失보다는 득得으로 작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그것들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주류를 이룬 마당에는, 이제 그것들은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만큼 사실은 우리가 잃은 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산문화라는 한 요인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그 모든 부정적인 현상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그것은 서정성의 회복일 것 같다. - P1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별나게 내 탓도 아닌데 마치 내 탓인 것 같아서 온 생애 전체를 잠식하는 어떤 사건이 있다. 소설에서 곧잘 선보이는 문제적 개인과 더 문제적인 사회의 모습은 멀고도 가까워서 아무리 픽션이라도 안심하긴 어렵다. 언제 어느 때 내게 닥칠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대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시련이다. 그래도 소설가가 창조한 세계에 흠뻑 빠져 ‘만일 나라면‘ 은 고민해 볼 수 있잖아. 그러면서 더 좋은 내가 되기 위해서 좀 더 나가는 거지. 인식하는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동안 또 한 권의 사랑스러운 소설 [완벽한 생애]를 만났다.



쇼스타코비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었다는데 요즘 나도 한국 소설을 포악하리만큼 열심히 읽는 중이다. (그러면서 내내 나는 절대 소설가는 되기 힘들겠구나 좌절한다. 좌절이라면서 왜 행복한지는 모른 채!)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 군(群)에 조해진 작가가 합류하게 된 것은 [환한 숨]이라는 단편집을 읽고나서부터다. 그 전에는 조해진 작가를 잘 몰랐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읽었는데도 그랬다;;;) [환한 숨]에 완전히 사로잡혔으면서도 그 무렵 추천받은 [단순한 진심]을 위시에 올려놓고도 다른 책에 빠져 등한시 했다.

그러다가 신작이 나왔고,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초대손님으로 온 조해진 작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 책을 먼저 읽고 싶다 생각했다. 단숨에 읽었고, 읽고 나서 여운이 남았고,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읽길 잘했다.



이별이라는 것은 생의 한 부분을 찢어내는 일이다. 어떤 이별은 다른 것으로 찢어진 부분이 꿰매지는 반면, 어떤 것은 계속 덧나고 곪는다. 불현듯 마주치는 슬픔의 감각 앞에서 인간은 저도 모르게 자기 탓을 하며 비관한다. 남 탓보다야 겸손해 보이지만 결코 미덕이 아니다. 왜 혼자만 아파야 해, 왜!!



짜내고 약을 바르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이 지독한 환부로 신음하는 세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셋이지만 나는 다섯을 보았다. 누가봐도 주인공인 윤주, 미정, 시징과 함께 주변인물인 보경언니와 선우도 완벽한 이별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조해진 소설의 등장인물은 죄다 너무 안타깝다. 경중과 상관 없이 모두가 안쓰럽다.



단 한번의 모의재판으로 법조인의 길을 포기해 버린 미정은 단지 법에 대항하여 무력했기 때문에 그 길을 놓아버린 것이 아니다. 사유하지 않은 죄에 대해 변호하기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가 걸림돌. 혹자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비약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가슴 아프게 이해가 됐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는 거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신념 없는 활동가로 사는 게 나쁜 거냐‘ 는 물음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신념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고 없으면 인간 말종 취급을 한다. 외려 잘못된 신념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근본적으로 악한 일임을 겪었으면서. 신념이 없어도 함께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박수칠 일 아닌가?

아무튼 난 미정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 결국엔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들이 끝내 사랑으로 이루어진 거라 너무 좋았다. 보경언니를 힘들어 하는 그 마음까지도 정말 이해가 됐다.



미정이 좋았지만 감정 이입은 오롯이 윤주에게였다. 이유는 끝내 놓아버리지 못한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 윤주의 모습에서 왠지 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피디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되지 못했고, 차선으로 선택한 것은 비난을 샀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놀림받았을 때 과감히 버리고 떠나버린 그 용기도 멋졌다. 그리고 6년만에 완전한 이별을 경험하는 과정도 좋았다. 역시 가장 강력한 이별은 강제로 포기하게 되는 어떤 순간의 목격이다. 자꾸만 끈이 풀리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 하는 것을 함께 경험한 선우가 혼자 슬리퍼로 갈아신고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본 윤주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었음을 깨닫고 그를 놓아준다. 근사했다.



시징은 3개월의 뜨거운 사랑만 남기고 떠나버린 은철을 찾아 서울 영등포로 온다. 윤주가 제주도로 떠나면서 한달가량 방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윤주의 방에 머물면서 홀로 지독한 이별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생명이 다해버린 사랑에 대한 애도는 끝까지 공허해 보는 것이 아닐까. 은철에 대한 시징의 사랑이 세 가지의 은유로 빚어지는 것에서 아름다운 미술품을 보았을 때의 환희같은 걸 느꼈다. 소설가는 마법같이 빛나는 회화 한 점을 내게 선물했다. 근사하게 맞아 떨어지는 퍼즐 같기도 했다. 이 소설이 그다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절절하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나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은 진정 필력인가!! 무지 놀랐다. 멋지다. (이거 말고 쓸 단어가 없어서 섭섭하다 ㅠ)



그리고 끝내 내게 울음을 터트리게 한 것은 보경언니다. 아, 작가님 진짜 나쁘다 ㅠㅠ결국 울렸어~~

주변인물인 보경언니, 선우, 그리고 미정의 아버지까지도 슬프고 슬픈 인물이다. 그러나 끝내 살아내는 그 인생들이 결국 완벽한 생애가 아닌가 싶다.



배경으로 작동하는 역사적 사실들도 궁금하게 했다. 홍콩의 이야기, 우리나라 민주화 이야기,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여러가지 사건들,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부당함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운이 길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