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키슬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12월
평점 :
<당신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다면, 당신은 중독자일 수도 있다>
어제 제 페이스북에는 커다란 술병사진을 올렸습니다. 위스키와 버번의 중간쯤 되는 미국 술의 사진. 그건 제가 연말 모임에 가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지도 않습니다. 술이 짝으로 들어오고 술에 취한 누군가가 난장판을 벌이고 행사가 끝나는 집안의 딸. 저는 매우 알코올에 강한, 술자리에서 술의 상당량을 해치우는 유전자를 가졌지만 절대로, 혼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건 제가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입니다. 술이 죄가 되지 않는 집에서 자라, 잘 마시는 유전자까지 타고났으니 저는 술에 손을 대는 순간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저자인 키슬님은 중독자는 부정부터 하고 회피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가족력은 있지만 아직은 아닌, 주의를 요하는 상태 정도로 저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술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하.하.하.
한 인생의 기록을 담은 책을 좋아합니다. 고전이나 인문서에서, 전문가가 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관되게 기록된 한 사람의 경험은 날것이고 진실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고통에서 구조할 수 있는 망망대해의 널빤지와 같습니다. 이 책은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에게 권합니다. 단순히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전제하고 자제하라거나, 일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먹으면 문제없다거나하는 말들은 쓸모가 없습니다.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알코올이외의 깊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술에 잡아먹히게 됩니다. 인생이 망가지든, 육체가 사망에 이르든 둘중 하나이거나 둘다가 됩니다.
그러니 당신의 주변에 누군가가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라면 치료를 받게 해야 합니다. 물론 당사자는 거부할 것입니다. 스스로 병원에 갔던 저자조차, 스스로를 믿고 치료를 중단할 정도니까요.
59쪽
과한 자신감에 들뜬 나는 한 달 정도 치료받은 뒤 이제 정신과 약도, 상담도 필요없다는 자체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이게 죽음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돌아온 지 한 달 뒤에 저자가 한 일입니다. 중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일은 그대로 죽어도 좋다고 칼 손잡이를 쥐여주는 일과 같다는 것을 보호자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43쪽
현대 의학에서는 우울증을 뇌의 단독적인 질환이 아닌 염증질환의 범주로 포함시킨다. 당시의 우울증은 적극적인 식단조절 및, 생활 습관 교정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고 우울증의 발병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질병의 방치’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내 삶을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고 똑똑해서 의사와의 대화에서도 밀리지 않는 대다수의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의 배리어를 뚫고 진실을 들여다 보는 의사를 만났지만 그것도 술로 풀어버리는 저자의 일지에 뒷목이 뻐근했지만 아, 이분 생존자지! 하고 책장을 다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리얼함 때문에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버리고 심호흡을 해야 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 때문에 느끼게 되는 박탈감, 완벽 하고자 하는 욕구, 외모 지향적인 현대사회가 중독자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읽고 있노라면 중독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쉽게 인사처럼 건네지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읽고 나면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중독자가 아닐 거라고 자위하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을 술독에서 꺼내주어야겠다는 전투 의지도 생깁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행복추구의 기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일이나 성공에 중독되어 타인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에 중독되어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저자는 알콜중독자도, 행복의 방향을 찾는 데 성공했으니 이 책을 읽는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요소가 지금도 우리를 ‘내가 원하는 상태’로 데려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임계점을 넘기도록 자기 자신을 허락하고, 알고,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면 반드시 그렇게 되는 날이 온다. 내가 가능했으면, 당신도 가능하다. 나는 당신이 행복해질 것을 알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키슬님, 잘 해내셨습니다. 잘 살아오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행복하세요.
치열하게 살아남으신 만큼, 더 많이 행복하세요.
#어리고멀쩡한중독자들
#키슬
#좋은생각사람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