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뮤지엄 : 파리 - 하루의 끝, 혼자서 떠나는 환상적인 미술관 여행
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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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여행할까? "파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이다. 왜?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예술을 모른다 하더라도 왠지 그곳에 가면 낭만이 저절로 생길 것 같다.

'예술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리의 뮤지엄은 일 년에 수백만 명이 찾아와 붐비고 소란스럽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파리에만 130여 개의 미술관과 9개의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은 '7일간 파리의 미술관 여행을 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답을 준다.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자 박송이는 하루 정도에 둘러볼 수 있는 미술관 다섯 곳 오르세, 루브르, 오랑주리, 퐁피두 센터, 로댕 미술관과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은 미술관 네 곳 프리 팔레,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 마르모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박물관을 소개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상설 전시 중인 작품만 3만 5,000여 점, 한 작품당 10초씩 본다고 해도 꼬박 4일이나 걸린다. 천천히 둘러보며 즐길만한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 파리다. 그래서 파리에서 12년을 지낸 저자는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와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작품 40개를 공간별로 선정해, 머무르며 온전히 감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렘브란트는 밧세바의 내적인 고민을 어두운 실내로 표현했다. 거역하기 어려운 다윗 왕의 권력은 시종과 밧세바 사이에 놓인 고급 직물로, 그녀의 선택은 순결한 흰 천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됐고 땅에 디딘 발과 공중에 떠 있는 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p. 79)'

그림을 감상하면서 언제나 궁금하게 여긴 건, 그림 속 얼굴을 보면 별것 없는 선과 점뿐인데 많은 표정이 나타난다. <목욕하는 밧세바>의 점과 선 뿐인 밧세바 얼굴에서도 전쟁에 나간 남편과 명령하는 다윗 사이에서 또렷한 갈등을 드러내는 표정이 보인다.

'<목욕하는 밧세바>의 모델은 다름 아닌 헨드리케였다. 그녀는 렘브란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모델이 되어 캔버스 앞에 섰다. 헨드리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감수하며 렘브란트와의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교회의 말대로 죄를 뉘우치고 그를 떠날지 고민했다. (p. 81)'

재산이 많은 렘브란트의 아내는 죽기 전 유산의 절반을 렘브란트에게 남기다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재혼하면 불가하다는 조건과 함께. 핸드리케가 렘브란트와 결혼하지 못하고 동거하는 이유다. 하지만 동거는 기독교적 윤리에 어긋난다. 갈등을 겪는 핸드리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림 속의 밧세바처럼 남편을 떠났을까? 아니면 부정한 여인이라는 오명을 받아들이며 렘브란트 곁에 남았을까?


두 개의 타원형 방에 모네의 대형 <수련>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가 일곱째 날 오전에 둘러볼 곳으로 소개한 마르모탕 미술관에 모네의 작품이 제일 많다. 모네 주치의의 딸 빅토린 도놉 드 몽시와 모네의 둘째 아들 미셀 모네의 기증 덕분이다.


이렇듯 저자를 따라 뮤지엄을 둘러보며 듣게 되는 작품이나 작가, 공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저자의 감상 포인트는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나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즐거움도 좋지만, 누구한테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로 우리의 감상 폭은 더 넓고 깊어진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미드나잇 뮤지엄> 시리즈로 곧 이어질 여행지 이탈리아, 뉴욕, 유럽 그곳의 뮤지엄이 간직한 파리와는 또 다른 이야기의 감동이 더욱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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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 세상을 바꾸는 잠재된 힘
버네사 본스 지음, 문희경 옮김 / 세계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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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정도 지났을까? 최근에 재미가 배움이 되는 책 <인생 보드게임>을 출간한 박윤미 작가는 부부가 운영하던 동네 마트가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남편 혼자 마트 운영을 하려 했지만 암 투병 중인 아내 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쓸쓸하게 가게를 바라보며 담배 태우는 사장님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 박윤미 작가는 맘 카페에 짧은 글을 올렸다.
'마감 세일 10% 거절해 주세요~ 반품 안되는 음료수들 사주세요~'라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내와 한강 따라 걷기를 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눈다. '저분은 오늘 일찍 나오셨네', '옷이 깔맞춤이네', '저분은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열심히 우리의 생각을 알아내려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존재를 더 알아챌 뿐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보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p. 35)'

'저 사람들도 우리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할까?'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서로 눈길을 피하기도 하고, 버틸 때도 있다. ㅎㅎㅎ 마침 이 책과 연관된 이벤트 '영향력 유형의 테스트'에서 유사한 질문을 발견했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마주쳤다' (1번)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마주쳤다' (2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잔꾀 많은 원숭이' 아내의 대답은 1번, 융통성 없는 '심지가 굳은 미어캣'인 나는 2번으로 답했다.


사회심리학자 버네사 본스의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영향력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영향력을 우리가 이미 갖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원숭이든 미어캣이든 우리 모두는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 힘은 주위 사람들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영향력이 없다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부탁하기를 꺼려 하는 이유도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부탁할 때 굳이 뇌물을 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창피함 때문에 '노'라고 답하는 걸 불편해할 뿐만 아니라 부탁을 들어주면서 따뜻해지고자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싶어 한다.

심지어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부탁을 해도 '노'라고 답하는 게 어려워 들어줄 태세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것은 '노'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심리를 간파한 영향력의 악용이다.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권력 행사가 대표적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휘두르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자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받을 충격을 가볍게 여긴다.

'이기심은 자신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고 남의 결과는 무시하는 태도다. 이기적인 사람은 이렇게 사고한다. "나는 나의 건강에만 관심이 있고 나는 건강 위험도가 낮은 집단에 속한다.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남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관심이 없다." (...)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p. 224)'

저자는 우리가 남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도록 잘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전략 세 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내 관점에서 빠져나와 제3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이다. 그런 다음에는 타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느껴보기', 마지막으로 실제로 영향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십 년 전 TEDx 강연에서 화제가 됐던 지아 장의 '거절 치료법'을 소개한다.


밤늦게 박윤미 작가가 올린 카페 글을 본 엄마들은 영업 마감시간 전에 음료수를 싹 쓸어갔고, 100개도 넘는 구매 인증글이 올라왔다. 마트 매대 정리를 돕는 광경도 펼쳐졌다. 마법은 계속됐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포털에 메인에 소개됐고 라디오, TV에서 뉴스로 다뤘다.

박윤미 작가가 이 일을 벌일 때 이런 결과, 이런 영향력을 상상했을까? 주변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리라 미리 짐작했을까? 자존감 갑인 박윤미 그녀라며 생각했을 수도... 이 일에 동참한 사람들은 일종의 '아하'하는 순간과 함께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보고, 느끼고, 경험' 했으리라.

'남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듯이 우리의 말과 행동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의미 있게 말하고 더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p.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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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식시장의 승부사들 2 - 나는 이 회사 주식으로 부자가 됐다! 일본 주식시장의 승부사들 2
닛케이 머니 지음, 김정환 옮김 / 이레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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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퇴직금 중간 정산이 실시됐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목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간 쌓아놓은 퇴직금을 받았다. 그 이후가 문제였는데 퇴직금을 갖게 된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투자처로 주식시장을 택했다. 마침 1997년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벤처기업 육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면서 IT 버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여서 주식은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룬다.

테크놀로지 주식의 대표 주자는 새롬기술이었다. 13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했던 종목이다. 억대 부자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초보 개미들의 주특기는 끝물에 올라타기다. 그래서 낭패를 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 주식이라면 치를 떨었다.


개인 투자자 서른 명의 인터뷰를 담은 전작 <일본주식시장의 승부사들 1>에 이어 후속작 <일본주식시장의 승부사들 2>에서도 서른네 명의 투자자가 등장한다. 차이가 있다면, 대박 주식 발굴, 저평가주를 공략하는 가치주 투자법, 수익을 올리는 기본 패턴, 이익 실현을 위한 손절매 기법, 투자 시간 줄이는 효율적인 투자법, 급락장 대비법과 실패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법까지 투자에 유용한 기법을 상세히 정리해 깊이를 더해준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주식시장이 잘못한 건 없었다. 성공한 투자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퇴직금을 날려버리고 주식에서 멀어지게 된 건 잘못된 방법으로 투자한 결과일 뿐이다. <일본주식시장의 승부사들> 같은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필요했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지금 돌이켜보면 큰돈을 투자하면서 남들이 주는 정보에만 의지했는지 참 한심했단 생각이 든다.

그때 너무 뜨겁게 데인 나머지 그 이후 주식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3년 전부터 공모주가 개인에게도 허용됐다는 정보를 알게 된 후 공모주를 받아 상장 당일 파는 정도로 주식에 참여하고 있다. 쏠쏠하게 재미 보던 이마저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초장기 누리던 수익은 사라져버렸지만 말이다. 고민이다. 이제 자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남은 시장은 주식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진짜 주식공부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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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식시장의 승부사들 1 -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이 회사 주식을 샀다! 일본 주식시장의 승부사들 1
닛케이 머니 지음, 김정환 옮김 / 이레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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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80년대부터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금리가 제로에 가까웠고 저성장이 이어졌다. 우리는 2011년부터 3% 내외의 저성장에 들어섰고, 최근 금리는 미국은 물론 유럽보다도 낮아졌다. 외국인이 투자하기에 더 이상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다.

<일본주식시장의 승부사들 1>은 일본경제신문의 자회사 닛케이PB사의 매거진, 닛케이 머니가 일본의 주식 고수인 개인 투자자 서른 명을 인터뷰한 후 그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경저성장을 겪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주식투자의 반면교사로 삼기에 적절한 책이다.


투자법도 다양하다. 성장하는 종목에 투자하는 성장주 투자, 저평가된 주식을 사는 가치주 투자, 급락장에서 오히려 매수에 나서는 역발상 투자, 이벤트를 이용하는 이벤트 투자, 초단타 데이 트레이더, 해외 주식투자까지 케이스별 실전 비법을 소개한다.

60대 투자자 이마카메안은 중소형 성장주 위주의 투자로 퇴직금 2,000만 엔을 7년여 만에 약 26억 엔으로 불렸다. 모두가 호기심을 보일 초단타 사례로 닉네임 메가빈은 10년 동안의 데이 트레이딩으로 4억 엔의 자산을 만들었다. 그는 몇 달 뒤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기세 좋은 종목 위주로 하루를 넘기지 않는 매매를 했다.


며칠 전 버크셔 주주총회가 있었다. 화제는 단연 주총에 여섯 번째 참석한 열세 살 소녀였다. 소녀는 워런 버핏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열세 살짜리 질문치곤 웬만한 어른들도 하기 쉽지 않은 맹랑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FRD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겠다면서 달러를 계속 찍어낸다. 세계 여러 나라가 달러 기조에서 벗어나 달러가 더 이상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 직면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2000년대 초 베스트셀러였던 보도 섀퍼의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기억할 것이다.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유용한 경제 상식을 다룬 경제동화라 할 수 있는데, 미국은 어릴 때부터 경제와 친숙함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에게도 재테크, 주식투자와 같은 경제를 가르치는데 너무 등한시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저금리, 부동산 침체, 이제 남은 투자 대상은 주식 시장뿐인데 지금부터라도 주식 공부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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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 연시리즈 에세이 17
물결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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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떠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니 혼자였기에 만나는 이마다 친구가 될 수 있었다. (p. 13, 아침놀, 그해, 나의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여행 에세이 <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의 저자 물결은 '감사'로 에세이를 시작한다. 버스를 놓친 것도 감사할 일이란다. 왜? 그 버스에 난동 부리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니까.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감사. 왜?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 걸 알았으니까. 두 발이 지구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는 것까지 감사...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또 감사한 것은 이 책이 출간되면 저는 이제 출국할 때 직업란에 '작가(writer)'라고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당신의 극본대로 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인생을 완전히 똑같이 살겠습니다. (p. 290, 감사의 말)'

책 끄트머리 '맺음말'을 먼저 읽은 후 책 본문을 읽곤 한다. 이 책 역시 끝부분 '저녁놀'과 '감사의 말'을 먼저 읽었다. 물결 작가를 조금 알게됐다. 감사로 시작해 감사로 에세이를 끝맺는 게 절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여행 내내 운이 좋았다. 감사하는 마음을 지녔으니 당연한건지도.

'하늘색과 짙은 코발트색으로 층층이 쌓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모래사장을 소년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격도 깎아주겠다니 나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 "거북이를?" (p. 52, 53)' 운이 겹쳐서 찾아와 세 번째 거북이까지 나타났다.

방 구하기 어렵다는 쿠바 아바나에서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저자를 위해 침대 하나를 남겨놓은 호아끼나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소매치기당해 씩씩대며 쫄쫄 굶은 저자 앞에 생면부지의 할아버지가 나타나 밥도 사주며 위로한다. 아프리카 사막 로드트립에서는 차가 뒤집혔는데도 살았다. 그리고 또...

운이 너무 좋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세계 일주 여행, 여행 뒤에 저자에게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희귀난치병인 모야모야로 두 번에 걸쳐 수술을 받는다. 이마저 사유의 기회가 생겼고 책을 만들게 됐으니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세계를 돌고 수술받으며 경험은 쌓을 대로 쌓아봤으니 이제는 곰곰이 곱씹어 볼 차례다. 하고 신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내게 두 번째 수술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저 여행과 수술에서 겪은 경험을 한두 번 씹고 뱉은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깊이 사유하고 통찰을 얻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여행이 내 인생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믿는다. (p. 285, 286)'

저자는 (내 입장에서 보면) 젊은 나이임에도 참 할 말이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세계여행, 그것도 홀로 하는 여행. 생사를 넘나든 수술, 그것도 두 번. 나 같으면 울화가 치밀었을 법한 인생인데, 감사로 시작해 감사로 마무리한다. 게다가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하고 싶다니...


이제 직업란에 '작가(writer)'라고 쓰고 출국하겠지? 이번 여행에서도 운이 좋아 거북이를 또 볼 수 있기를... 물결 작가 삶의 한 부분이 또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채워지길... 그리고 그런 여행 에세이를 다시 읽게 되는 기회가 내게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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