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 연시리즈 에세이 17
물결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자라도 떠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니 혼자였기에 만나는 이마다 친구가 될 수 있었다. (p. 13, 아침놀, 그해, 나의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여행 에세이 <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의 저자 물결은 '감사'로 에세이를 시작한다. 버스를 놓친 것도 감사할 일이란다. 왜? 그 버스에 난동 부리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니까.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감사. 왜?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 걸 알았으니까. 두 발이 지구에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는 것까지 감사...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또 감사한 것은 이 책이 출간되면 저는 이제 출국할 때 직업란에 '작가(writer)'라고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당신의 극본대로 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인생을 완전히 똑같이 살겠습니다. (p. 290, 감사의 말)'

책 끄트머리 '맺음말'을 먼저 읽은 후 책 본문을 읽곤 한다. 이 책 역시 끝부분 '저녁놀'과 '감사의 말'을 먼저 읽었다. 물결 작가를 조금 알게됐다. 감사로 시작해 감사로 에세이를 끝맺는 게 절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여행 내내 운이 좋았다. 감사하는 마음을 지녔으니 당연한건지도.

'하늘색과 짙은 코발트색으로 층층이 쌓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모래사장을 소년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가격도 깎아주겠다니 나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으면 거북이를 볼 수 있어." "거북이를?" (p. 52, 53)' 운이 겹쳐서 찾아와 세 번째 거북이까지 나타났다.

방 구하기 어렵다는 쿠바 아바나에서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저자를 위해 침대 하나를 남겨놓은 호아끼나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소매치기당해 씩씩대며 쫄쫄 굶은 저자 앞에 생면부지의 할아버지가 나타나 밥도 사주며 위로한다. 아프리카 사막 로드트립에서는 차가 뒤집혔는데도 살았다. 그리고 또...

운이 너무 좋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세계 일주 여행, 여행 뒤에 저자에게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희귀난치병인 모야모야로 두 번에 걸쳐 수술을 받는다. 이마저 사유의 기회가 생겼고 책을 만들게 됐으니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세계를 돌고 수술받으며 경험은 쌓을 대로 쌓아봤으니 이제는 곰곰이 곱씹어 볼 차례다. 하고 신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내게 두 번째 수술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저 여행과 수술에서 겪은 경험을 한두 번 씹고 뱉은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황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고 깊이 사유하고 통찰을 얻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여행이 내 인생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믿는다. (p. 285, 286)'

저자는 (내 입장에서 보면) 젊은 나이임에도 참 할 말이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세계여행, 그것도 홀로 하는 여행. 생사를 넘나든 수술, 그것도 두 번. 나 같으면 울화가 치밀었을 법한 인생인데, 감사로 시작해 감사로 마무리한다. 게다가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하고 싶다니...


이제 직업란에 '작가(writer)'라고 쓰고 출국하겠지? 이번 여행에서도 운이 좋아 거북이를 또 볼 수 있기를... 물결 작가 삶의 한 부분이 또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채워지길... 그리고 그런 여행 에세이를 다시 읽게 되는 기회가 내게 오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