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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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단연코 화제다. 이를 모르면 어떤 대화든 낄 수가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40년 동안 번 돈보다 올 한 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게다가 앞으로 얼마를 벌지 삼성전자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억대 성과급을 받았다.

'지배층도 불교 논리가 좋았다. 현세에서 양껏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가, 단순한 아빠 찬스를 넘어 전생 때 '내 노력'의 정당한 대가라니. 말하자면 고대 버전 능력주의다. (p. 87 화무십일홍)'

"삼성전자 직원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능력대로 보상받는 게 공정한 것 아냐?"

신자유주의가 뿌려놓은 능력주의가 디폴트 값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한쪽에서 억대의 돈을 챙기는 순간 다른 한쪽에 많은 사람들은 소외를 느낀다.

'온전히 내 것으로 보이는 '능력(자제력, 지능, 노력 등)'엔 이전 세대가 누적해서 쌓아온 삶과 노력이 보이지 않게 녹아 있다. 온갖 마시멜로 실험들이 그 일부를 보여줬다.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토대엔 내 기여분이 전혀 없다. 토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내 성공 요인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이다. (p. 156 능력주의)'

철학과 종교학을 대학에서 공부했고, 과외 강사로 활동하면서 30년 가까이 책과 함께 살아온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대중적인 요리사이자 사업가인 백종원 씨를 예로 들면서 능력주의가 왜 위험한 이데올로기인지 설명한다.

'백종원 씨가 1870년대나 21세기 르완다에서 태어났다면... '

백종원 씨나 삼성전자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 건 그간 일궈놓은 산업적 토대가 뒷받침된 결과다. 사소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소외받은 사람들도 그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수익의 일부를 달라고 말이다.

대부분 성공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인 셈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 모양 그 꼴인 거야."라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탓을 돌리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특히 본격적으로 AI 시대가 되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어느 한 기업이 수익을 독식하는 것을 지켜보지 말고 어떻게 나눌지를 정책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다가올 AI 시대를 살아갈 방법이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시간에 풍화되어 사라진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슬그머니 인과관계가 뒤집힌 것. 그것들이 진실을 낯설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서 악이 더 악해지도록 밑밥을 깐다. 몸통을 흔드는 꼬리처럼. (p. 9)'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 이어서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통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주목하고, 기억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적어도 세상이 이상해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성공은 나 혼자 이룬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에서 공동이 노력한 결과라는 쪽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책 '영아돌연사증후군' 편에 소개된 사례다. 1997년 샐리가 낳은 첫째, 둘째 모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었다. 이를 의심한 영국 검찰을 샐리를 연쇄살인 혐의 기소했다. 확률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게 기소 이유였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살펴보면, 이 기소 사유는 말도 안 된다. 확률로 따져보면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을 확률이 영아 살해가 일어날 확률이 보다 17배나 크다. 확률로 혐의를 몰아갈 수 없는 문제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 투표에서 전국 12곳의 상위 후보 2명의 득표수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됐다. 이 논란은 부정선거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조금만 더 주목하면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한 확률이란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일 문제'를 떠올리면 된다. 또한 약 800만 분의 1일이라는 로또 당첨자가 매주 여러 명이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해도 되고. 투표수가 적고, 특정 후보에 표가 많이 쏠릴수록 득표수가 일치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
<찔레꽃>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철석같이 믿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찔레꽃이 붉은색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흰색이었다.


사소한 것에 주목할 때,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데 있지 않고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곤 하는 사소한 것에 있다.

2년 전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조이엘 작가의 깊고도 넓은 그리고 재미있는 지식의 향연에 반해 팬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그 팬심은 더 깊어졌다. <더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도 출간되려나? '더더더 시리즈'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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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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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무료 교통카드를 받으면서 '내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다는 사실 (p. 58)'을 실감했다. 아니 살아갈 날이 더 많으려나? ㅎㅎ 그렇더라도 반가움보다 쓸쓸함이 앞선다.

스콧 니어링이 100세가 된 1983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그의 자서전에서 알게 된 다음 '나도 그렇게 해볼까?'라는 마음을 먹어봤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이유는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조력사를 긍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 <기차의 꿈>으로 알게 된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바다 여인의 선물>에는 그가 간암과 싸우면서 병상에서 완성한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다. 결국 이 소설집은 그가 죽음으로서 유작이 됐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라는 쪽지도 함께 건넸다고 알려졌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억해 낸 과거에 대한 회상에 그 어떤 꾸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이 메모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 삶을 미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라본다면 기이할 것이다. 한 인생을 기리는 데는 필히 장식물이 동원된 단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아서인지 다섯 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대단치 않다.

표제작 <바다 여인의 선물>에서 노년의 광고 작가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조각조각 떠오른 과거는 맥락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 참회의 대상마저 헷갈려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잘못이 무엇인지 갑자기 알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작별 인사를 위해 전화를 걸어, 나로 하여금 진심으로 참회하며 식탁 옆에 털썩 무릎 꿇게 만든 이 여자가 버지니아인지 제니퍼인지 알 수 없었다. (p. 23)'

<아이다호의 별빛>의 알코올중독자는 재활 시설에서 아버지, 누이, 연인 심지어 사탄, 교황... 등에게 횡설수설 편지를 쓴다. 망가진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빛을 찾아 헤매는듯하다.

<교살자 밥>에서 열여덟 살 딩크는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고 수감된 밥을 감방에서 만난다. 환각상태에서 딩크는 밥에게서 살인자가 될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허튼소리로 여긴 그 말이 딩크의 인생에서 실현되고 만다.

<무덤 위의 승리>의 화자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리곤 자신이 죽은 후의 세상을 생각한다.

'아… 몇 주 전에 마린 카운티에 사는 내 친구 낸, 그러니까 죽은 로버트의 아내 낸이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무렵에는 어떨지 모른다. (p. 203)'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에 등장하는 시인 마커스 에이헌은 도플갱어와 폴터가이스트라는 초자연 현상에 빠져있다. 그런 집착의 결과는 우리 아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짜라는 생각이 이르게 한다. 이 음모론을 증명하려고 한밤중에 삽을 들 뿐만 아니라 수천 달러의 돈도 서슴지 않고 쓴다.


단편집을 읽고 난 다음, 언제 어떻게 죽을까라는 생각에 이어 죽음을 앞둔 나는 어떤 회상을 할까? 상상해 봤다.

내 과거 역시 파편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게 그 사람이었나? 헷갈리기도 한다. <바다 여인의 선물> 속 광고 작가와 다르지 않다. <아이다호의 별빛>의 알코올중독자처럼 내 삶의 망가진 부분을 그 어떤 존재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서 고쳐놓고 싶은 욕망도 내 맘속에 있다.

죽음에 초연하다가 요즘 삶에 미련이 조금 생겼다.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의 삶이 궁금해져서이다. <무덤 위의 승리> 화자의 생각처럼 내가 죽은 다음에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 모두들 잘 살겠지. 그래도 궁금하다.

<교살자 밥>의 딩크,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의 시인처럼 허황된 상념에 사로잡혀 공허한 내 삶의 한 부분을 메워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데니스 존슨은 죽음에 이르러 '산다는 게 기이한 여행을 견디는 일'이라고 여긴듯 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을 듯도 하고.

죽음을 앞두고 말이다. 내게도 데니스 존슨처럼 삶을 회상할 정신이 허락되는 축복이 따른다면... 데니스 존스과 같은 고민에 빠져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털어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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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데미안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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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행동이 어른스럽지 않고 어린아이 같을 때 '유치幼稚하다'고들 말한다. 아이들 세계에 속한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까? 그 세계 나름 그 아이들에게는 완벽한 세계다. 그 세계를 지나고 나서 보니 유치할 뿐이다.
.

'그곳에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세계의 양쪽 끝에서부터 나온 밤과 낮이. (p. 9)' 열 살 싱클레어가 사는 집에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밝은 세계에 살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크로머를 만난다. 그로 인해 생긴 두려움 때문에 사과를 훔쳤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어둠의 세계를 알게 된다. 괴로워하던 중 데미안을 만나 카인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진실을 깨닫고 크로머가 속한 세계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해 학교 선배인 알폰스 벡을 만나면서 이번엔 싱클레어 스스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가 그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가 싱클레어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어둠의 세계를 멀게 했고, 독서와 산책을 즐기게 만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 104)'

데미안이 보내온 쪽지 속 '아브락사스', 피스토리우스와 만남으로 아브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이고,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을뿐아니라, 어떤 생각도 어떤 꿈도 제외하지 않는 신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데미안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그 조그마한 사진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 꿈속의 모습이었다! 내 꿈에 나오는 얼굴이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얼굴이었다. (p. 152)'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 끝에 싱클레어 안에 존재하던 여인, 에바 부인을 만났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가 싱클레어 앞에 놓여있었다.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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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지금껏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 이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나 그 길의 끝까지 가려고 애쓴다. (p. 8)'

유치했던 나는 삶이 내게 주는 과제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풀어내려 애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여전히 남았다. 싱클레어가 만난 크로머, 데미안, 알폰스 벡,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금욕에 괴로워하는 크나우어, 에바 부인까지... 내게도 깨달음과 도움을 주는 이들 모두는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칼 융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나(Self)'를 이루는 '자아(Ego)'이다. 에고는 페르소나와 셀프를 분리해서 보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궁극에 아브락사스의 세계로까지 나를 인도하는 존재도 자아이다.
.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알은 이 세계고, 이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p. 191)'

내가 깨뜨려야 할 세계도 있지만,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내 알을 깨부셔 나를 새로운 세계에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유럽이 경험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처럼 말이다.

전쟁은 신이 살아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고, 과학이라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대마저 허물어버렸다. 합리적이라 여겼던 세계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치한 세계가 되버렸다. 숙명이 지배했던 세계에서 나의 의지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로 발을 옮기게 만든건 누구의 계획에도 없었던 전쟁이었다. 그런 면에서 <데미안>은 개인의 성장 서사이면서 인류 성장의 서사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세계라고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던져진 상태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 힘은 질문에서 나온다. '카인은 정말 악일까?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 자체가 죄악일까?'

'"... 그래서 카인 자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설명한 거야. '표식을 지닌 자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표식을 지닌 자들은 불길해서'라고 말이야. 사실 틀린 말도 아니야.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들이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니 얼마나 무섭겠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나날들을 보상받으려고 그럴듯한 별명과 전설을 붙여서 복수한 거야. 내 말, 이해하겠니?"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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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농축 디자인 스토리 - 공간의 문화적 디테일을 읽는 다섯 레슨 박진배 뉴욕 FIT 교수의 ‘공간’ 시리즈
박진배 지음 / 효형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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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merry-go-round 또는 carousel)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놀이기구다. 롯데월드 정문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앞에 화려한 전구와 거울, 금빛 컬러로 장식된 회전목마가 빙빙 돌고 있다. 회전목마는 롯데월드 아니 전 세계 테마파크의 오브제 역할을 한다.

회전목마는 목마를 탄 사람은 물론,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까지 바꿔놓는 마법을 부린다. 모두 밝게 웃는다. 기회가 되면 꼭 살펴보길 바란다. 웃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대부분 손을 흔든다. 지켜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박진배 교수의 <고농축 디자인 스토리>는 <공간미식가>, <공간력 수업>에 이은 '공간'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이 책에서는 공간의 진화와 그 속에 담긴 서사를 중심으로 5개 주제를 다룬다.

건물을 보수할 때 미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는 비계를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같은 명품 하우스는 그들을 상징하는 디자인 이미지로 통째로 포장해 공간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 주제인 자연과 교감을 통해 만들어낸 공간으로 저자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꼽는다. 나무, 물고기, 새, 너구리는 각종 야생이 살고 있는 곳으로 150년 동안 수많은 도시공원의 모델이 됐다.

어떤 바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라이터, 세계 2억 명이 갖고 있는 지포 Zippo는 세 번째 주제, 디자인과 브랜딩으로 팬덤 형성 비결을 가진 사례로 소개된다.

오브제 스토리로 앞서 이야기 나눈 회전목마 외에 책의 서사가 눈에 들어온다. 책의 기능으로서 책의 삶, 그리고 책이 각색을 통해 연극, 영화와 같은 다른 형식으로 작품이 되는 삶, 여기에 세 번째 삶이 추가된다.

'장식품 기능이다. 1970년대 가정집 거실마다 전시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필두로 1990년대부터는 도서관 테마가 크게 유행,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무대나 상업공간을 꾸미는 디자이너들은 연극의 세트, 패션 부티크, 호텔, 레스토랑, 심지어는 술을 마시는 바도 책으로 장식한다. 책이 쌓인 공간의 지적 분위기가 그럴듯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p. 262)'

다섯 번째 주제, 도시에 예술적 요소를 더해 주는 공공디자인에 관해서는 마천루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시그램 빌딩은 뉴욕 최초의 마천루다. 38층 높이에 브론즈 프레임과 갈색 유리로 조화를 이룬 이 빌딩이 현재 뉴욕 빌딩 숲을 이룬 효시인 셈이다.

전엔 63빌딩이었지만, 지금 서울의 상징이 된 롯데타워는 123층에 555미터 높이로 수직 도시라 할만하다.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쇼핑하는 등 모든 게 가능하니 말이다.

고인이 된 롯데 신격호 회장의 꿈은 하루라도 좋으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서울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 꿈은 여러 사정으로 지연돼 이뤄내지 못했다. 또 하나, 타워 모습을 파리 에펠탑 형태로 했으면 했다. 하지만 이 꿈도 붓이 타워 외관 디자인으로 결정돼 물거품이 됐다. 서울을 대표할 마천루가 에펠탑을 베낀 거라니, 우리 정서가 동의하지 못한 결과다.

마지막 주제는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이야기로 AI 시대의 교육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강의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다. 라이브 공연을 통한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지식은 책에도 있고 인터넷에도 수두룩하다. 실시간 대면 강의는 생각보다 강력한 상상력과 전달력을 지니고 있다. 평생 잊히지 않는 좋은 강의는 그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함께한다. 교수가 강단에 오르는 것은 배우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과 같다. (p. 339)'

AI는 절대 할 수 없는 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란 생각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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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이명숙.이서원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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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전세살이 할 때 집주인 사정으로 1년도 안 돼 뒤 동 아파트로 이사했다. 어느 날 퇴근하면서 먼저 살던 동으로 습관적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아차 싶었다. 문을 열고 누구라도 나오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계단으로 뛰어내려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앞에 아내가 서있었다.
"자기, 앞 동엔 왜 갔어? 거기 만나는 여자 있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멈칫했다. 때마침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벌어지는 불륜 사건이 뉴스로 나오던 때였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허겁지겁 앞 동에서 빠져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 놀려줄 작정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미리 나와 서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작심하고 계속 날 의심했다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활동하는 이명숙 변호사가 36년 넘게 접한 실제 법정 사례 가운데 43개를 뽑아 가족심리상담가 이서원 교수와 함께 들여다본 이야기가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에 담겨있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법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하한선을 규정한 공식이라면, 상담은 상한선을 끌어올려 주는 인생 공식이다. 이 책은 하나의 소송 사건을 '권리와 책임이라는 변호사의 시선'을 통해 하한선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예의와 태도라는 상담가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하면 상한선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p. 8 프롤로그)'

불륜을 감추려고 아이들을 결혼시켜 사돈이 되면서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사건은 불륜의 끝판을 보여준다. 사랑으로 이룬 가정 뒤에 돈이라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 때 그 사랑이 추악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사건도 소개됐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는 생각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가? (p. 124)'

가족폭력을 키우는 건 포기하고 침묵하는 '학습된 무력감'이다. '아이들 때문에 참는다'라고들 말하며 이혼을 망설이지만, 그 인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이 아니다.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들 뿐이다. 남편이 돈벌이를 위해 아내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사건은 남자로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대기업 승진을 앞두고 세 아이가 있는 돌싱 남자를 받아들인 안민지 씨 사레다. 아이들은 친자식처럼 키우려고 불임 수술까지 했다. 미국에서 세 아이 유학 뒷바라지까지 하며 15년 동안 헌신했지만, 안민지 씨는 자녀 교육을 핑계로 남편을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간 나쁜 아내가 돼버렸다. 남편이 재산까지 빼돌리며 이혼을 준비해 안민지 씨에게 남은 건 미국의 월셋집뿐이었다. 안민지 씨를 더 뼈아프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세 아이가 '새어머니가 우리를 학대했다'라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법은 이혼과 위자료라는 형태로 책임을 물을뿐 부부 또는 가족이 오랫동안 쌓아온 사연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법적으로 해결되더라고 상처는 남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라 더 아프고 깊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그 가족 구성원을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면 그 가정을 깨질 수밖에 없다. 신뢰가 자리 잡을 수 없다. 착각해서 앞 동에 갔다 오는 사소한 일을 아내가 불신의 눈으로 바라봤다면, 우리 가정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결혼은 천천히 신중하게, 이혼을 재빠르게.' 한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절연을 매정하게 여기는 정서가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침묵과 인내가 더 문제를 키우고 상처를 깊게 만든다. 끝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법의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삶의 길이 시작된다. 온전한 인생이란 법의 길과 삶의 길이 함께할 때 시작될 수 있다. (p. 7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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