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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무아르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1
에밀 졸라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평점 :
'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라고 한다. '35살이 될 때까지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 이 말은 마윈이 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성공한 사람인 빌 게이츠, 마윈이 말했다는 것만으로 '맞아~'라고 열광하면서 청년들 사이에 유통된다.
'부자 되세요'와 '노오오오오오력'을 강요하고 세뇌하던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자란 세대들이다. 이를 신봉하며 자란 청년들은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신세를 부모 탓도 아니고 환경 탓도 시대를 잘못 만난 탓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쉽게 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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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소무아르>는 "변두리 지역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야기되는 한 노동자 가족의 숙명적인 타락의 이야기이다. (p. 343, 작품 해설)'
제르베즈는 짐승을 도축하는 도살장과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병원 사이 허름한 봉쾨르 여관에서 파리로 함께 온 랑티에를 기다린다. 제르베즈는 한쪽 발을 절었고, 금발에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몸에 선이 고운 얼굴을 가진 스물두 살이었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랑티에와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의 엄마다.
랑티에는 에델과 바람이 나서 제르베즈와 두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세탁소에서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제르베즈는 함석공 쿠포를 만나 결혼한다. 예쁜 딸 나나도 낳는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온다. 열심히 번 돈으로 세탁소를 차릴 가게를 알아보는 가운데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쿠포를 보살피며 돈을 다 써버린 제르베즈는 자신을 좋아하는 대장장이 이웃 구제에게 돈을 빌려 세탁소를 차린다.
세탁소도 잘 되고 잘 살아가던 중 또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고주망태가 되어 목이 부러져 죽은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며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구포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콜롱브 영감이 운영하는 주점 아소무아르를 드나들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게다가 여기저기 떠돌다가 다시 나타난 랑티에를 집안에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쿠포와 랑티에는 제르베즈가 벌어온 돈을 뺏어 술과 여자로 탕진하며 제르베즈의 삶의 의욕마저 꺾어버린다. 마침내 제르베즈도 아소무아르를 찾아가 술을 마시고 폭식하며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제르베즈는 구걸하며 몸을 팔려고 하지만 목이 어깨에 묻힐 정도로 추하고 뚱뚱한 베르베즈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다. 한편 춤을 추고 악을 쓰며 이상 증세를 보이던 쿠포는 제르베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저분의 아버지가 술을 마셨나요?"
"네, 선생님.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조금 마셨어요. 술에 취한 날 지붕에서 떨어져서 죽었고요."
"어머니도 마셨나요?"
"그럼요! 선생님. 그냥 남들하고 똑같죠. 아시잖아요. 여기서 한 잔, 또 저기서 한 잔, 그렇게요. 아! 가족들은 아무 문제 없어요. 형제 중 하나가 어릴 때 경련으로 죽은 게 다예요."
의사는 꿰뚫을 것 같은 시선으로 계속 제르베즈를 바라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인도 마시죠?" (...)
부인도 마시는군요. 조심하십시오.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언젠가 부인도 죽게 될 겁니다." (p. 322, 아소무아르 2)
이따금 정신이 이상해져 쿠포 흉내를 내던 제르베즈, 굶주림에 어떤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되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제르베즈에게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더러운 일을 시켰고, 더러운 걸 먹을 수 있는지 돈을 걸며 시키기까지 했다. 제르베즈는 먹어치웠다. 계단 밑 움막 같은 곳에 살던 브뤼 영감이 죽었고 그 자리는 이제 제르베즈의 차지가 되었다.
'그녀가 정확히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하지만 사실 제르베즈는 비참한 가난 때문에, 엉망으로 망쳐 버린 삶의 불결함과 고단함 때문에 죽었다. 로리외 부부의 말을 그대로 쓰자면, 그녀는 힘이 다 빠져서 죽었다.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나자 사람들은 이틀 동안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골방으로 들어가 보니 제르베즈는 이미 퍼렇게 변해 있었다. (p. 337, 아소무아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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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죽을 때 가난은 모두 너의 잘못'이라 말했던 빌 게이츠조차 자신의 성공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한다. 원대한 비전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열세 살에 무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1만 시간의 법칙'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었고, 정보화 시대가 막 시작되는 1970년 초에 스무 살을 향해가는 나이였다는 건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제르베즈와 쿠포의 삶에는 부모가, 환경이 그리고 시대가 그들에게 주는 운은 없었다. 빌 게이츠의 삶과 사뭇 다른 여느 하층민의 삶처럼 말이다. 이 둘은 원래 게으름뱅이로 주정뱅이로 태어나지 않았다. 살면서 어떤 일을 만나면서 그렇게 되었다.
부모가 물려준 가난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부모가 물려준 유전적 유산은 지독하게도 끈질겼다.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들었다. 철거 중인 도살장 앞이었다. 건물 정면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안으로 아직도 피에 젖어 악취가 나는 어두운 안마당이 보였다. 한 걸음 더 내려가니 라리부아지에르 병원의 커다란 회색 벽이 나왔다. (...) 틈 하나 없이 단단한 전나무로 만든 문은 죽은 자들의 문으로, 마치 무덤의 비석처럼 근엄하고 적막했다. 제르베즈는 도망치듯 더 멀리 철로의 육교가 있는 곳까지 갔다. (p. 290, 아소무아르 2)'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제르베즈를 기다리는 환경은 짐승 같은 삶이 죽어나가는 도살장과 병원이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거닐었던 거리도 그 거리였다. 파리에 올 때나 죽을 때나 제르베즈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도움도 주지 않았다.
'제르베즈의 눈에는 이상한 형태의 용기들이 달리고 끝없이 긴 관이 휘감겨 있는 증류기가 왠지 음산한 얼굴처럼 보였다. 증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안에서 뭔가가 숨 쉬는 것 같은 소리, 땅 밑에서 웅웅거리며 코를 고는 듯한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흡사 엄청나게 힘센 일꾼이 말없이, 음울하게, 밤에 할 일을 대낮에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 증류기에서는 소리도 나지 않고 불꽃도 일지 않았다. 구리는 광택 없이 칙칙해 보였다. 느리게, 하지만 고집스레 물을 내보내는 샘처럼 계속 돌아가며 땀을 흘렸고, 그 알코올 땀이 술집 전체를 채우고 바깥 큰길로 흘러나가 마침내 파리라는 거대한 구멍을 다 채워 버릴 것만 같았다. 제르베즈는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죠. 저 기계를 보니까 괜히 오싹해져요.... " (pp. 70, 71, 아소무아르 1)'
산업 사회 시대를 상징하는 기계마저 음산한 얼굴을 하고 제르베르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층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몸을 쓰는 노동력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증류 기계는 아소무아르라는 술집 이름처럼 알코올로 사람을 때려눕혔다.
제르베즈와 쿠포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어김없이 '부모가 물려준 굴레'와 하층민에게만 주어진 열악한 '환경',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던 '시대'는 그들에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살만하다 싶을 때마다 불행으로 찾아왔다. 빌 게이츠에게는 적절한 때에 운명처럼 찾아왔던 부모, 환경, 시대란 행운이 제르베즈에게는 불운으로 변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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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꿈꾸던 것들이 기억났다. 마음 편하게 일하고, 먹을 게 있고, 조금 깨끗한 잠자리가 있고, 아이들을 잘 기르고, 매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 누워 죽고 싶었는데! 아, 정말 우습구나! 그 모든 소망이 어쩌면 하나같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 뭐 그리 대단 한 소원이라고! 3만 프랑의 연금을 받고 싶다든가 사람들이 날 존경해 줬으면 좋겠다든가, 이런 거창한 것도 아닌데! 아! 빌어먹을 인생은 아무리 욕심 없이 살아도 소용이 없구나! (p. 306, 아소무아르 2)'
너무나 비참한 제르베즈의 삶, 읽기 힘든 삶이었다. 깨끗한 잠자리, 아이들을 기르고, 매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누워죽는,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낭만이랄 것도 없는 그런 꿈은 끝내 제르베즈에게 허용되지 않은 삶이어서 그래서 차마 눈뜨고 보기조차 힘들어 애써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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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처지를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으로 쉽게 돌려버리곤 하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부모 탓, 환경 탓, 시대 탓을 해도 된다고... 너무 자기 탓만 하지 말라고... 가난이 내 탓만을 아니라고... '부자 되세요'나 '노오오오오오력'이란 프로파간다 쉽게 매몰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