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세트 - 전2권 (초판 한정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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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사랑의 목적은 뭘까. 사랑하는 것이다. 덜도 더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 그러니 사랑 이야기가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는 없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리더라도 그렇다. '바보같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생이라면, 사랑은 바보같이 두 사람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일이다.' 결혼은 찾아 헤맬 필요 없음을 뜻한다. 같이 살며 매일 보는데 뭐~ 찾아헤맬 일이 어디 있겠나.

인터뷰에서 조정래 선생이 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독자가 '선생님은 왜 역사, 사회 등 무거운 주제만 다루고 사랑 이야기는 쓰지 않는지' 묻더란다. '내가 그랬나?' 싶었단다. 또 다른 독자가 묻기를 '사랑 이야기를 못쓰는 것은 작가로서 불구 아닙니까?'

'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 슬픔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소설의 주제로 삼아서. (p. 13 작가의 말)'

여든 살 넘어 조정래의 마지막 장편이 사랑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고, 이왕이면 슬프고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십 년 넘게 굴린 끝에 탄생한 소설이 <서리꽃>이다.


윤소이와 이재이의 사랑 이야기는 왠지 스마트폰으로 숏츠를 보며 결혼하기도 전에 관계를 갖는 시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대사 톤도 마찬가지다. 유럽여행에서 서로 각방을 쓰는 모습에선 순수와 함께 올드한, 마치 조정래 선생 청춘시절에나 있을법한 사랑이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에 어울리는,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랑 이야기, 다시 말해 인스턴트 식으로 소비되는 사랑 이야기로는 조정래 작가 자신이 품은 사랑 이야기를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정래 작가는 <서리꽃>을 쓰기 위해 프랑스, 네덜란드로 반 고흐의 그림을 따라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 화가의 꿈을 키워지만 가난으로 그 꿈을 포기했던, 그림을 향한, 조정래 작가의 사랑을 <서리꽃>에 담았다. 이루어진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형 반 고흐가 가진 화가의 꿈을 위한 동생 테오의 희생적인 사랑도 이재이와 윤소이 관계를 통해 <서리꽃>에 담았다. 희생이 빠졌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윤소이의 꿈을 막은 가난을 보았음에도 거침없이 부를 버리고 사랑하는 이의 꿈을 택하는 이재이의 현실을 초월하는 사랑이야말로 조정래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요즘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는 그런 사랑말이다. 마치 천민자본주의와 야합하지 않는 사랑, 당신들 이런 사랑을 보기는 했어?라고 외치는 듯하다.

영원한 사랑은 또 어떻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이룰 거야 하며 당당하게 보여주는 영원한 사랑. 우리 머릿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랑이어서 오히려 신선하다.

'독자들께서 슬픈 사랑 이야기 <서리꽃>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찾아주신다면, 수술로 기력이 떨어져 후반으로 갈수록 사흘거리 몸살을 앓아 예정보다 두 달이나 늦게 소설을 끝낸 작가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p. 13 작가의 말)'

조정래 작가가 <서리꽃>에 숨겨놓은 사랑 주제를 잘 찾았는지 모르겠다. 한때 익숙했던 사랑 이야기였지만 어느새 낯설어진 사랑 이야기. 희생이 뒤따른 헌신적 사랑이었음에도 이루어질 수 없어서 슬픈 사랑 이야기, 내 마음 한편에 아직까지 조금 남아있어 아련한 사랑 이야기, <서리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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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낯설게 보기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박혜윤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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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에서 김라합 번역으로 펴낸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죽음을 떠올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곡기를 끊고 7주 후 스스로 의지로 숨을 거뒀다. 이때 나도 곡기 끊는 걸 죽는 방법으로 생각해 두었다.

철학 하는 간호사 박혜윤 교수의 <죽음 낯설게 보기>는 그때 막연했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임상과 철학을 오가며 사유한 기록이다.

'연명의료와 돌봄, 임종처럼 죽음을 앞두고 만나는 사건은 물론, 고립사와 안락사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까지 폭넓게 다룬다. (저자 소개 글에서)'


'죽음을 낯설게 보자'는 박혜윤 교수의 제안은 삶과 생명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깨우고자 함이다. 그동안 지나쳤거나 막연하게 바라보던 삶과 죽음을 좀 더 선명하게 보자는 것이기도 하고.

가족을 울리는 자살, 집에서 죽는 당연함이 과거가 돼버린 병원 임종의 현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전혀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연명치료,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다'는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존재, 뇌사 기증자까지 저자가 보여주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광경은 그 죽음 하나하나에 나를 대입해 보게 한다.

죽음을 앞둔 몸을 펼쳐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고상한 설명 대신 그저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기력이 있고 없음이 곧 존엄의 척도는 아닐까? (p. 119)'

허물어진 존엄에 더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 몸이 내 몸이라면 조력자살 또는 스스로 곡기를 끊는 단식존엄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스페인 안락사 법을 통과시키는데 강력한 동력이 된 라몬 삼페드로의 말처럼 '삶은 권리이지 의지가 아니 (p. 151)'니까 말이다.

저자가 세 번째로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 공동체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다. 삶이 고립된 고독사, 진정한 집을 상실하고 손님처럼 살다가 떠나는 현대판 객사, 비극의 사무적인 마침표인 무연고 장례가 '죽음이 마치 죽어버린 시대'가 죽음 다루는 방식들이다.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했던 박혜윤 교수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물음이지 않을까?
'당신의 죽음은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그가 제안한 '낯설게 죽음을 보는' 방식으로 대답해 보려 한다.

내가 죽는 과정에서 내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내 아내도 나로 인해 고생할 만큼 했고,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내게 줄 기쁨은 다 주었다. 당연히 연명치료도 거부한다. 타인의 의지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삶은 권리'라는 말에 공감한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고 조력자살이란 선택이 굳어졌다.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더라도 말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환경 조성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이 단점이긴 하다.

스콧 니어링은 '사람이 산다는 건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고 했다. 같은 생각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이야기 끝맺음은 내 삶을 내 선택으로 쌓았듯이 내 방식으로 마치고 싶다.

그래서 맺은 결론은 이렇다. 내 생각대로 내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곡기를 끊어 내 삶을 마감하기로. '먹지 않을 자유'까지 처벌하는 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니까. 물론 많은 행운이 뒤따라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치매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곡기를 끊을 의지가 필요하다.

내 스스로 의지로 삶을 매듭짓기를... 언제나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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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 사회적 기업가에서 버스기사로 다시 삶을 운전하기까지
강희정 지음 / 브로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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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젊은 교우의 트럼펫 찬양으로 어제 주일 예배 헌금 시간은 좀 특별했다. 왼쪽 팔뚝이 유난히 가늘었다. 그 손을 트럼펫에 묶고 다른 편 손가락으로 밸브를 눌러가며 연주했다. '전공자가 되기 위해 비장애인보다 얼마나 더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갑자기 울컥했다.

'독기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잠시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영혼을 망가뜨린다. 실패는 혼자 감당할 때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볼 때 더 아프다. (p. 147)'

저 청년도 독기를 품고 연습했겠지? 그러지 않았기를. 강희정 작가의 말처럼, 실패했을 때 주변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했을 사람들은 크게 실망할 테고, 청년은 독기를 품은 만큼 더 아프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생 2막, 두 번째 인생... '퇴직 후' 또는 '60살이 넘어서'와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앞선 다음 '두 번째 인생'이란 말이 뒤따라올 때도 있다. 이를테면 이 책을 쓴 강희정이 맞닥뜨린 인생. 인생 2막, 두 번째 인생 앞에 '사업 실패', '40살 이란 나이에'가 앞에 붙는 경우라면 대부분 자의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두 번째 인생에 들어서기란 '퇴직 후' 또는 '60살이 넘어서'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독기 정도는 품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강희정 작가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다. 사회도 바꾸고, 문화도 바꾸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Let us love,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를 실천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그 좋은 꿈이 이뤄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업은 실패했다. 생계를 위해서 두 번째 인생이란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젊은 여자가? 버스 운전을? 강희정은 물음표로 가득한 두 번째 인생을 선택했다.

'매일 같은 길을 달리는데도 하늘은 늘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출근길 풍경은 좀처럼 질리지 않는다. (p. 16)'

강희정의 에세이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는 '퇴직 후' 또는 '60살이 넘어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보다 일어서는데 몇 배나 힘들었을 강희정의 두 번째 인생 이야기다.

또한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일에 대한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다. (p. 7)'

수고하고 땀 흘리면서 삶을 다시 이해하는 이야기다. 변화를 겪는 이야기다. 굿워크플래닛이란 사회적 기업을 하다 망한 강희정이 아닌 그냥 강희정을 찾은 이야기다. 사랑이란 상대의 편에 서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달은 이야기다.

그래서 'Let us love'를 'Let me love'로 바꾼 이야기다.
'우리 함께 사랑하자가 아니라, 먼저 내가 사랑하겠다는 말.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한 명을 사랑해 보겠다는 작은 다짐 (p. 220)'을 하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담긴 강희정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그 두 번째 인생을 바라보는 60대 중반의 한 사람으로서 바람이 있다. 이번엔 독기를 품지 말기를.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는 하되, 세상을 사랑하기는 하되, 독기만큼은 품지 말기를.

예배시간에 트럼펫 찬양을 드렸던 청년처럼, 몇 배는 더 힘들게 시작했을 두 번째 인생일 거란 짐작이 들어서 그렇다. 운전석에 앉아서 수많은 풍경을 보듯, 나를 바라보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하며 바라보듯, 힘 빼고 여유를 갖기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어도 타인의 편에 서 보고 그렇게 하루하루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사회적 기업가로서 일을 계속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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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루는 차별로 가득해 - 등굣길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상 속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 하루에 만나는 세상
태지원 지음, 개박하 그림 / 데이스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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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차별하는 말이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차별을 담은 말을 내뱉는다는 건, 우리 일상이 그만큼 차별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일까? <우리의 하루는 차별로 가득해>를 읽으면 그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을 쓴 태지원 작가는 경제, 사회문화, 역사, 지리 등 과목을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제까지 출간한 여러 책에서,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다고 여길 만한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 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로 4호선 혜화역과 1호선 노량진역을 지나는 열차가 서지 않고 통과했다. 이럴 때 나도 모르게 불 멘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장애인 단체는 왜 비장애인에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요란스러운 시위를 하는 걸까? 이런 방식으로 비장애인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는 있는 걸까? (p. 19)'

잘 알다시피 '장애인 이동권' 주장을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을 모르는 비장애인은 '조용한 시위'를 요구한다. 하지만 '요란하고 시끄러운 시위' 만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차별의 상황과 말이 아침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태지원 작가는 <우리의 하루는 차별로 가득해>에서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날 선 기준을 세운 다음, 얼마나 많이 구분하고 차별하는지를 상황별로 보여준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스스럼없이 '외모 차별' 대화를 나눈다. "살이 빠졌네.", "피부가 뒤집어졌네."라는 식의 이야기다. 칭찬이고 걱정해서 하는 말인 것 같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이 말속에 ''마른 몸매가 더 낫다'거나 '피부는 잡티 하나 깨끗해야 한다'는 기준이 은연중에 숨어 있다. (p. 76)'

학교 끝나고 아파트를 지나다 보니 '무료 급식소를 즉각 이전하라!'는 현수막을 아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서명을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노숙하는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에 출입하면 아파트 품격이 떨어진다는 '계층 차별'이 밑바탕이 된 행동이다.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생각의 틀,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사고방식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어린아이 둘이 각각 한 메뉴씩 시켜 먹는 것을 불쾌해한다.

아빠가 TV 보면서 무심코 내뱉는 '요즘 애들', 아이들이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 사용하는 '꼰대', '틀딱', 이 모두 '세대 차별' 말이다. 이런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 사이 간극은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 않는다.


차별은 둘로 나누는 데서 비롯된다. 다양성이 사라질 때 차별이 모습을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 둘로 나눌 때 동성애자는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눌 때 양보는 사라지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비장애인에게만 편리한 장치가 돼버린다. 마른 몸매를 정상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으로, 우리나라 사람과 다른 나라 사람으로 나눌 때 다양성은 사라진다.

태지원 작가의 바람은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안경을 쓰는 것이다. 아이뿐일까. 어른들도 새로운 안경을 써야 한다. 모든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안경은 이제 벗어버리고 무지개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보는 안경으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p. 7)' 안경도 고쳐 썼으니, 둘로 구분 짓는 언어를 버리고 여러 생각이 담긴 말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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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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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몇 다리 건너건너 들은 배우 김혜자 씨의 일화다. 손주를 본 김혜자 씨는 손주 자랑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무들 바빠 그 자랑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돈을 줄 테니 10분 만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사정사정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털어놓을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런 사회가 됐다. 팬데믹을 겪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변호사, 판사, 그리고 칠십 대 나이에 들어선 다음, 첫 장편소설을 펴낸 늦깎이 작가 앨런 레비의 <테오>는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포르투갈 출신의 여든여섯 살 노인 테오는 부활절 즈음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도시, 골든에 머문다. 우연히 들른 카페 챌리스 벽에 아흔두 점의 연필 초상화가 잔뜩 걸려있었다. 초상화 속 모습은 연령, 인종, 표정... 모두 달랐다.

'노인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이 92개의 액자가 모두 창문이라면 어떨까? 액자 안의 얼굴들은 이 건물 바깥에 서서 카페 안의 손님들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다. 그러다 밤이 되어 카페가 문을 닫으면 초상화 속 얼굴들이 액자에서 나와 서로 삼삼오오 어울리면서 그날 누구를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 오픈 시간이 되면 다시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p. 21, 22)'

노인은 초상화를 하나씩 사기로 결심한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저녁 7시, 페더 분수대에서 초상화 속 인물들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 그림을 전해주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앞으로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말로 그들을 축복해 주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만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의 특별함이 보인다. 노인 테오는 카페 벽에 걸린 초상화의 얼굴을 보며 그 너머에 있는 상실, 후회, 사랑, 그리움, 말 못 하는 슬픔... 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낯선 그리고 어쩌면 잊고 지냈던 나의 감정이 보인다. 테오에게 초상화를 받아든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감정을 꺼내 놓는다.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때 첫 번째 기적은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고, 열린 마음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기적이 이어서 일어난다.


'그러다 점점 노쇠해 가는 아버지, 형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지아의 농장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벽에 걸린 초상화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그림들을 몽땅 사면 재미있지 않을까?" 앨런은 정말로 그 카페에서 그림을 몇 점 사와 그 그림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pp. 551, 552)'

퇴직 무렵, 집에 쌓여있던 책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맘먹었다. SNS 안에서 책 읽는 사람끼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는 걸 알게 됐다. 프로필과 책 리뷰를 읽으면 그들이 궁금해졌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가 가로막아 섰고, 그 차이로 인한 오해도 두려웠다. 글을 주고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마음을 내어주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고마운 책 친구들이 여럿이 됐다. 나 또한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게 기적이 진행 중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분함만 남아 퇴직 후 내 앞에 놓인 미래는 우울했었다.

"요즘 당신 모습이 제일 좋아 보여"
아내로부터 이런 소릴 듣게 될 줄이야. 책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오니 소설 속 주인공 테오처럼 '사심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돈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린 게 아닙니다, 애셔. 부서진 거지요. (...) 하지만 이 슬픔도 하나의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슬픔과 같이 살아가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일이 삶에 슬픔이 없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서로 잘 어울리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삶의 또 다른 신비지요... " (pp. 317,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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