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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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묻는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죄인가?......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p. 49, 인간실격人間失格)'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을 엮은 박예진 번역가는 그의 글을 '무너지며 써 내려간, 인간이라는 병의 기록'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이라는 병'을 앓다가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 다자이는 <인간실격>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한다.

이 책에 기록된 다자이의 12개 작품 속 180개 문장은 그의 고백과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얻은 글이란 생각이 든다. 글을 음미하다 보면 나도 나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그리고 왜...

'왜 거짓말을 하고, 왜 상처받으며,
왜 끝내 사랑을 갈구하는가. (p. 14, 프롤로그)'


슬픔과 고독이 가득한 다자이의 글, 과연 그의 글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박예진 번역가는 다자이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누구보다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죄인처럼 살면서도, 죽을 용기를 내지 못한 자"로서, 그는 인간 내면의 상처와 이중성, 도망과 회복, 절망과 연민을 누구보다 진실하게 그려냈습니다. (p. 14, 프롤로그)'

일본 문단은 다자이를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상실을 대변한 작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 파괴를 통해 끝내 인간을 긍정한 작가라고, 문학 평론가 나카노 시게하루는 그의 글이 상처받은 영혼에게 가장 진실한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문장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p. 27, 사양斜陽)'

몰락한 귀족임에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와 동생 나오지, 그 사이에서 <사양> 속 주인공 가즈코는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믿음을 받고 있다. 내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으로 속죄하겠다는 따위의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p. 118, 달려라 메로스)'

<달려라 메로스>에서는 인간을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앵두>에서는 상처와 고통이 따르는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또한 성장하는 삶의 일부라고 웅변한다.

'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이곳저곳에서 사슬이 얽혀 있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피가 터져 나온다. (p. 136, 앵두)'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하지 않기로 한 <비용의 아내> 속 주인공 아내를 통해 다자이는, 선택이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남편을 위한 희생을 선택할 수도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독립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간 답지 못하면 어떤가, 그래도 선택이란 도구를 앞세워 인간은 살아간다.

'일이라는 건, 별것 아니에요. 걸작도 졸작도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사람이 좋다고 하면 좋은 거고, 나쁘다고 하면 나쁜 거예요. 마치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 같은 거예요. (p. 201, 비용의 아내)'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은 차디찬 고독이다. 슬프고, 마음에 금이 가기도 하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고, 허탈하고, 소외당하며 부끄럽고, 상처받아 병이 들기도 한다. 그런 거다. 숨겨야 할 것도 고쳐야 할 것도 아닌, 삶이란 그런 거다.

도무지 모르겠다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저항이다. 저항하지 않는다면... 인간, 실격. 인간으로서 실격될 것인지,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은 작가가 남긴 문장들을 다시 짚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 끝에서 각자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괜찮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p.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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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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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가 하는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일단 대답해 놓고 속뜻을 알려고 노력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그런데 그냥 뭐 모르는 채 아니면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석하고 지내도 우리 사이에 별일은 없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뭘 이야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일단 대답해놓고 뭘 의미하는지 찬찬히 살펴봐도 되는 작품이다. 뭐 꼭 뭔지 몰라도 아니면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괜찮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기를 쓰며 두 손으로 한쪽 구두를 잡아당긴다. 끙끙거린다. 힘이 빠져 그만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되풀이된다. (p. 9)'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모양새가 내 삶과 닮았다. 기다림이 연속되는 삶. 어른이 되기를,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고, 저녁을, 아침을 기다린다. 구름이 걷히기를, 비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친구를 기다린다. 그리고 여자를 기다린다. 결혼 전 백번 넘게 선을 봤으니 그 횟수만큼 나와 결혼할 여자를 기다린 셈이다. 무수한 시간을 기다리면 난 뭘 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뭘 타고 올지, 장소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저녁을 먹었을까? 난 어제 뭘 먹었지? 어제 몇 시간 잤지? 부장이 왜 날 찾았지? 뭐 사고 났나? 나 어릴 때 허벅지 찢어진 적 있었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밑도 끝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치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렸을 뿐이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그걸 기다리면서 할만한 일이 별로 없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리는 수밖에. 뭘 한다고 해도 기다림의 대상을 기다리는 것엔 변함없다. 그래도 기다려야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내가 마땅히 할 일은 없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오지 않아서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기다림을 멈추고 자리를 뜰 수도 없는 것...

'에스트라공 : 가자.
블라디미르 : 갈 순 없다. …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p. 82)'

그런 고도는 무엇일까.
죽음...! 끝이 아닐까?

사뮈엘 베케트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 뒤다. 신을 찾았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존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이제 내 의지와 책임으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일만 내 앞에 남았다.

신조차 막지 못하는 전쟁,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도는 전쟁이 끝나는 것일 테다. 전쟁의 끝이라는 고도가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다림에도 의미가 생긴다.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 삶에도 죽음이란 끝이 있다. 희망이 생긴다. 끝이 있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차피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산꼭대기 올려놓기를 반복하지만, 언젠가 그 무의미한 일상에 끝이 있다면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가 자라고 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 언젠가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춘다는 걸 안다면, 친구가 온다는 걸 안다면, 그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기다림은 의미 있다. 나와 결혼할 여인이 온다는 걸 안다면,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다리더라도 그 기다림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고도를... 죽음을... 끝을... 지금 내 삶을 지키며 의미를 찾으면서.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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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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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가 하는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일단 대답해 놓고 속뜻을 알려고 노력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그런데 그냥 뭐 모르는 채 아니면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석하고 지내도 우리 사이에 별일은 없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뭘 이야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일단 대답해놓고 뭘 의미하는지 찬찬히 살펴봐도 되는 작품이다. 뭐 꼭 뭔지 몰라도 아니면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괜찮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기를 쓰며 두 손으로 한쪽 구두를 잡아당긴다. 끙끙거린다. 힘이 빠져 그만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되풀이된다. (p. 9)'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모양새가 내 삶과 닮았다. 기다림이 연속되는 삶. 어른이 되기를,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고, 저녁을, 아침을 기다린다. 구름이 걷히기를, 비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친구를 기다린다. 그리고 여자를 기다린다. 결혼 전 백번 넘게 선을 봤으니 그 횟수만큼 나와 결혼할 여자를 기다린 셈이다. 무수한 시간을 기다리면 난 뭘 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뭘 타고 올지, 장소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저녁을 먹었을까? 난 어제 뭘 먹었지? 어제 몇 시간 잤지? 부장이 왜 날 찾았지? 뭐 사고 났나? 나 어릴 때 허벅지 찢어진 적 있었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밑도 끝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치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렸을 뿐이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그걸 기다리면서 할만한 일이 별로 없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리는 수밖에. 뭘 한다고 해도 기다림의 대상을 기다리는 것엔 변함없다. 그래도 기다려야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내가 마땅히 할 일은 없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오지 않아서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기다림을 멈추고 자리를 뜰 수도 없는 것...

'에스트라공 : 가자.
블라디미르 : 갈 순 없다. …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p. 82)'

그런 고도는 무엇일까.
죽음...! 끝이 아닐까?

사뮈엘 베케트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 뒤다. 신을 찾았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존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이제 내 의지와 책임으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일만 내 앞에 남았다.

신조차 막지 못하는 전쟁,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도는 전쟁이 끝나는 것일 테다. 전쟁의 끝이라는 고도가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다림에도 의미가 생긴다.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 삶에도 죽음이란 끝이 있다. 희망이 생긴다. 끝이 있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차피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산꼭대기 올려놓기를 반복하지만, 언젠가 그 무의미한 일상에 끝이 있다면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가 자라고 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 언젠가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춘다는 걸 안다면, 친구가 온다는 걸 안다면, 그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기다림은 의미 있다. 나와 결혼할 여인이 온다는 걸 안다면,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다리더라도 그 기다림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고도를... 죽음을... 끝을... 지금 내 삶을 지키며 의미를 찾으면서.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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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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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가 하는 말이 뭘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일단 대답해 놓고 속뜻을 알려고 노력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그런데 그냥 뭐 모르는 채 아니면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석하고 지내도 우리 사이에 별일은 없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뭘 이야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일단 대답해놓고 뭘 의미하는지 찬찬히 살펴봐도 되는 작품이다. 뭐 꼭 뭔지 몰라도 아니면 내 나름대로 해석해도 괜찮다.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기를 쓰며 두 손으로 한쪽 구두를 잡아당긴다. 끙끙거린다. 힘이 빠져 그만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되풀이된다. (p. 9)'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는 모양새가 내 삶과 닮았다. 기다림이 연속되는 삶. 어른이 되기를,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고, 저녁을, 아침을 기다린다. 구름이 걷히기를, 비가 멈추기를 기다린다. 친구를 기다린다. 그리고 여자를 기다린다. 결혼 전 백번 넘게 선을 봤으니 그 횟수만큼 나와 결혼할 여자를 기다린 셈이다. 무수한 시간을 기다리면 난 뭘 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뭘 타고 올지, 장소는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저녁을 먹었을까? 난 어제 뭘 먹었지? 어제 몇 시간 잤지? 부장이 왜 날 찾았지? 뭐 사고 났나? 나 어릴 때 허벅지 찢어진 적 있었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밑도 끝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치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렸을 뿐이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그걸 기다리면서 할만한 일이 별로 없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기다리는 수밖에. 뭘 한다고 해도 기다림의 대상을 기다리는 것엔 변함없다. 그래도 기다려야 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내가 마땅히 할 일은 없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오지 않아서 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기다림을 멈추고 자리를 뜰 수도 없는 것...

'에스트라공 : 가자.
블라디미르 : 갈 순 없다. …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p. 82)'

그런 고도는 무엇일까.
죽음...! 끝이 아닐까?

사뮈엘 베케트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 뒤다. 신을 찾았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존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이제 내 의지와 책임으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일만 내 앞에 남았다.

신조차 막지 못하는 전쟁,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도는 전쟁이 끝나는 것일 테다. 전쟁의 끝이라는 고도가 언젠가 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다림에도 의미가 생긴다.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 삶에도 죽음이란 끝이 있다. 희망이 생긴다. 끝이 있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차피 굴러떨어질 바위를 밀어 산꼭대기 올려놓기를 반복하지만, 언젠가 그 무의미한 일상에 끝이 있다면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가 자라고 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 언젠가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춘다는 걸 안다면, 친구가 온다는 걸 안다면, 그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 기다림은 의미 있다. 나와 결혼할 여인이 온다는 걸 안다면,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다리더라도 그 기다림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고도를... 죽음을... 끝을... 지금 내 삶을 지키며 의미를 찾으면서.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p.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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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
홍익희 지음 / 책과삶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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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한 자루 받아서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곳 사람들이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받고 쌀과 집과 밭을 팔 거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여행이다. 화폐가 인간이 고안한 것 중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임을 설명하려고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소개한 일화다.

덧붙여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 화폐라는 것도 증명한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일지라도 돈에 대한 믿음은 동의한다. 종교는 무언가를 믿으라고 하는 반면에, 화폐는 다른 사람들이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하게 만든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KOTRA에서 32년간 일했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홍익희 저자는 "그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 돈이 될 수 있을까?" (p. 10, 프롤로그)'라는 물음으로 이 책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을 시작한다.

기축통화로 작동하던 달러가 점점 신뢰를 잃어감에 따라 그 시대가 저물어 간다. 그 결과, 달러를 대체할지도 모를 비트코인이란 기술이 주는 신뢰는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이 저자가 던진 물음을 성립하게 한다.

'화폐의 역사는 언제나 신뢰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이었다. 왕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중앙은행으로, 그리고 이제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비트코인은 화폐의 본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묻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짜 내실을 갖춘 가치인가, 아니면 권력이 만든 숫자인가?" (p. 9)'

미국의 금 보유량이 세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금본위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달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자산가에게는 부를 안겨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화폐는 신뢰를 잃었고 불평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항의 산물로 암호화페가 등장했다. 은행 대신 기술이, 사람 대신 프로토콜을 믿게 됐다.
'비트코인은 그래서 단순한 디지털 기술이 아니다. 신뢰가 떨어진 시대에 다시 신뢰를 세우려는 시도, 그것이 비트코인이었고, 화폐를 인플레이션의 도구가 아닌 '신뢰의 프로토콜'로 되돌려 놓으려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p. 72)'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돈은 인간의 욕망과 신념, 권력을 지배해왔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다음 소비를 부를 뿐이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속에 그 욕망의 거래가 숨어있다. 욕망을 담보한 부채가 당장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 같지만 그 자유가 곧 예속임을 목격한다.

돈은 권력과 전쟁의 승패도 갈라 왔다. 로마는 금화와 은화로 문명을 지탱했다. 네로 황제가 은화에 구리를 섞으면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뢰를 잃은 로마는 통화 시장 붕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폐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신뢰의 제도임을 역사도 증명한 셈이다.


자, 이제 기술이 신뢰를 대체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까지 신뢰의 중심에 인간이 있었다. 사람을 믿었고 국가와 법이 책임지고 보증했다. 그렇지만 블록체인과 AI가 결합함으로써 '신뢰의 권한'이 인간에서 기술로 넘어가게 됐다.

'"누구를 믿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자동으로 결정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시대가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문명적 전환, 곧 '인간 중심 질서의 약화'를 의미한다. (p. 330)'

저자는 화폐의 변천에 따라 신뢰의 역사를 탐구한 끝에 마지막 질문에 던진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p. 361)'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 '신뢰의 권한'을 다른 발전된 기술로 넘길지도 모른다. 또 언젠가 달러가 신뢰를 잃었듯이 기술도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 위에 쌓아온 우리들의 사회적 약속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돈의 가치, 교환의 가치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사이 신뢰에서 유지되 왔기 때문이다.

화폐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된다. 신뢰라는 토대 위에 화폐가 있어야만 낯선 곳으로 여행할 수 있고, 종교와 인종이 다르더라도 사회경제에 효율적 협력이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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