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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평점 :
아주 오래전에 몇 다리 건너건너 들은 배우 김혜자 씨의 일화다. 손주를 본 김혜자 씨는 손주 자랑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무들 바빠 그 자랑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돈을 줄 테니 10분 만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사정사정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털어놓을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런 사회가 됐다. 팬데믹을 겪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변호사, 판사, 그리고 칠십 대 나이에 들어선 다음, 첫 장편소설을 펴낸 늦깎이 작가 앨런 레비의 <테오>는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포르투갈 출신의 여든여섯 살 노인 테오는 부활절 즈음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도시, 골든에 머문다. 우연히 들른 카페 챌리스 벽에 아흔두 점의 연필 초상화가 잔뜩 걸려있었다. 초상화 속 모습은 연령, 인종, 표정... 모두 달랐다.
'노인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이 92개의 액자가 모두 창문이라면 어떨까? 액자 안의 얼굴들은 이 건물 바깥에 서서 카페 안의 손님들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다. 그러다 밤이 되어 카페가 문을 닫으면 초상화 속 얼굴들이 액자에서 나와 서로 삼삼오오 어울리면서 그날 누구를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 오픈 시간이 되면 다시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p. 21, 22)'
노인은 초상화를 하나씩 사기로 결심한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저녁 7시, 페더 분수대에서 초상화 속 인물들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 그림을 전해주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앞으로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말로 그들을 축복해 주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만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의 특별함이 보인다. 노인 테오는 카페 벽에 걸린 초상화의 얼굴을 보며 그 너머에 있는 상실, 후회, 사랑, 그리움, 말 못 하는 슬픔... 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낯선 그리고 어쩌면 잊고 지냈던 나의 감정이 보인다. 테오에게 초상화를 받아든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감정을 꺼내 놓는다.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때 첫 번째 기적은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고, 열린 마음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기적이 이어서 일어난다.
'그러다 점점 노쇠해 가는 아버지, 형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지아의 농장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벽에 걸린 초상화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그림들을 몽땅 사면 재미있지 않을까?" 앨런은 정말로 그 카페에서 그림을 몇 점 사와 그 그림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pp. 551, 552)'
퇴직 무렵, 집에 쌓여있던 책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맘먹었다. SNS 안에서 책 읽는 사람끼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는 걸 알게 됐다. 프로필과 책 리뷰를 읽으면 그들이 궁금해졌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가 가로막아 섰고, 그 차이로 인한 오해도 두려웠다. 글을 주고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마음을 내어주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고마운 책 친구들이 여럿이 됐다. 나 또한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게 기적이 진행 중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분함만 남아 퇴직 후 내 앞에 놓인 미래는 우울했었다.
"요즘 당신 모습이 제일 좋아 보여"
아내로부터 이런 소릴 듣게 될 줄이야. 책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오니 소설 속 주인공 테오처럼 '사심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돈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린 게 아닙니다, 애셔. 부서진 거지요. (...) 하지만 이 슬픔도 하나의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슬픔과 같이 살아가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일이 삶에 슬픔이 없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서로 잘 어울리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삶의 또 다른 신비지요... " (pp. 317,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