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
홍익희 지음 / 책과삶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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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한 자루 받아서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곳 사람들이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받고 쌀과 집과 밭을 팔 거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여행이다. 화폐가 인간이 고안한 것 중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 신뢰 시스템임을 설명하려고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소개한 일화다.

덧붙여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 화폐라는 것도 증명한다.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일지라도 돈에 대한 믿음은 동의한다. 종교는 무언가를 믿으라고 하는 반면에, 화폐는 다른 사람들이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하게 만든다.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KOTRA에서 32년간 일했고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홍익희 저자는 "그 믿음은 앞으로도 계속 돈이 될 수 있을까?" (p. 10, 프롤로그)'라는 물음으로 이 책 <세상을 바꾼 화폐들 그리고 비트코인>을 시작한다.

기축통화로 작동하던 달러가 점점 신뢰를 잃어감에 따라 그 시대가 저물어 간다. 그 결과, 달러를 대체할지도 모를 비트코인이란 기술이 주는 신뢰는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의문이 저자가 던진 물음을 성립하게 한다.

'화폐의 역사는 언제나 신뢰의 주체가 바뀌는 과정이었다. 왕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중앙은행으로, 그리고 이제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비트코인은 화폐의 본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묻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진짜 내실을 갖춘 가치인가, 아니면 권력이 만든 숫자인가?" (p. 9)'

미국의 금 보유량이 세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금본위제를 폐지했고 미국은 달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자산가에게는 부를 안겨주었지만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화폐는 신뢰를 잃었고 불평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항의 산물로 암호화페가 등장했다. 은행 대신 기술이, 사람 대신 프로토콜을 믿게 됐다.
'비트코인은 그래서 단순한 디지털 기술이 아니다. 신뢰가 떨어진 시대에 다시 신뢰를 세우려는 시도, 그것이 비트코인이었고, 화폐를 인플레이션의 도구가 아닌 '신뢰의 프로토콜'로 되돌려 놓으려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p. 72)'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도구가 아니었다. 사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돈은 인간의 욕망과 신념, 권력을 지배해왔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다음 소비를 부를 뿐이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속에 그 욕망의 거래가 숨어있다. 욕망을 담보한 부채가 당장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 같지만 그 자유가 곧 예속임을 목격한다.

돈은 권력과 전쟁의 승패도 갈라 왔다. 로마는 금화와 은화로 문명을 지탱했다. 네로 황제가 은화에 구리를 섞으면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뢰를 잃은 로마는 통화 시장 붕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폐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신뢰의 제도임을 역사도 증명한 셈이다.


자, 이제 기술이 신뢰를 대체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까지 신뢰의 중심에 인간이 있었다. 사람을 믿었고 국가와 법이 책임지고 보증했다. 그렇지만 블록체인과 AI가 결합함으로써 '신뢰의 권한'이 인간에서 기술로 넘어가게 됐다.

'"누구를 믿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자동으로 결정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시대가 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문명적 전환, 곧 '인간 중심 질서의 약화'를 의미한다. (p. 330)'

저자는 화폐의 변천에 따라 신뢰의 역사를 탐구한 끝에 마지막 질문에 던진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p. 361)'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 '신뢰의 권한'을 다른 발전된 기술로 넘길지도 모른다. 또 언젠가 달러가 신뢰를 잃었듯이 기술도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 위에 쌓아온 우리들의 사회적 약속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돈의 가치, 교환의 가치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사이 신뢰에서 유지되 왔기 때문이다.

화폐가 어떤 형태로 변하든 화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된다. 신뢰라는 토대 위에 화폐가 있어야만 낯선 곳으로 여행할 수 있고, 종교와 인종이 다르더라도 사회경제에 효율적 협력이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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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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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는가. 우리 집 베란다에도 식물 여럿이 자라고 있지만 바라만 본다. 가끔 중얼거리는 말을 건네긴 한다. 하지만 식물이 알아들을 거란 생각으로 말하진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식물이 어떤 이야기를 내게 전해줄지 궁금하지도 않고 귀 기울인 적도 없다.

'식물학에는 식물을 동물보다 열등한 생물로 보는 이런 집단적 열등 콤플렉스를 지칭하는 '식물 맹시'라는 용어까지 있다. (p. 248)'

언제나 가만히 제자리에 있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라는 '식물맹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과 인간의 진화 역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면?' <뿌리 왕국>의 저자인 독일의 식물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데이비드 스펜서가 우리에게 내놓은 질문이다.

게다가 곤경에 처한 우리 인간에게 그 어느 때보다 식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식량, 에너지, 주거를 위해서는 물론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로서, 팀 동료로서 그리고 멸종과 기후 위기, 제한된 공간 때문에 엄청난 독창성이 요구되는 어려운 미래에 맞서 싸울 동맹자로서 (p. 140)' 식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웅장한 진화를 아직 겪지 않은 태초의 식물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디작은 생명체였다. (p. 19)' 이랬던 식물이 어떤 기술을 습득해 현재 지구를 만들어놓았을까. 동물과 인간이 지구에 등장했을 때는 이미 식물이 지구를 소화하기 쉽게 씹어놓고, 가공하고, 다듬어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인간은 먹거리를 외부에 의존했지만 식물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공생을 택하기도 했다. 한자리에 뿌리내리고 살려고 동물을 지배하는 법도 익혔고, 특정한 것을 기억해 내는 능력을 갖췄으며, 매년 작은 죽음과 작별이라는 재생을 거듭했다.

'얼마 전에 나는 몬테네그로의 바르(Bar) 근처에서 '스타라 마슬리나'라는 아주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보았다. (...) 적어도 2,2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가장 멋지게도 이 나무는 여전히 올리브를 생산한다! (p. 48)'

몸의 90퍼센트를 잃어도 식물은 살아남는다. 거의 죽었다가 부활하는 셈이다. 식물은 인간의 질병을 고쳐주기도 하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능력도 있다. 2000년 전 유대 지방의 누구와 비슷하지 않은가? 신을 숭배할지언정 식물의 지성과 진화적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건, 순전히 인간이 가진 오만함 때문이다.

인간이 들을 수 없을 뿐 식물은 '화학 풍경' 속에서 끊임없이 수다 떨며 식물의 성장, 동물의 행동, 토양의 변화 등 전제 생태계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로 수분을 위해 곤충과 새를 불러들이고, 씨앗을 퍼뜨리려고 잘 보이는 색깔의 열매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도 끌어들인다.

식물 스스로 보호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광합성으로 만들 수 없는 독소, 효소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산불을 내기도 한다.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곤충을 끌어들여 활용하기까지 한다. 초능력에 가깝다.

'"(개미가) 악마의 정원을 만드는 것은 보금자리 구축의 한 예다. 개미는 다른 모든 식물을 죽여, 둥지를 틀 히수타 줄기를 더 많이 확보한다." 프레드릭손은 숲의 현재 성장률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악령의 정원은 800살이 넘었고, 300만 마리의 일개미와 1만 5,000마리의 여왕개미로 구성된 단일 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p. 161)'

식물 군집을 이루어 다양성을 유지한다. 독립적이면서 공동체를 이루면 강해진다는 사실을 식물은 터득했다. 단일 농작으로 생태계 다양성을 무시하는 인간보다 지혜롭다.


땅속에는 인간의 규칙과 다른 자연 규칙이 존재한다. 식물과 다른 구조를 가진 미생물과 논의하고 예측하고 계산할뿐더러, 어떤 것이 유용하고 방해가 되는지도 구분한다. 다른 손을 빌리기도 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상품을 교환하기도 한다. 모든 숲과 밭, 심지어 베란다의 화분 속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식물은 인지능력을 가진 복잡한 생물이다.

인간과 다른 구조를 가진 식물, 식물이 그러했듯이 이제는 인간이 식물과 공진화해야 할 때다. 인간만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서로 다른 말과 규칙으로 생긴 오해를 과학의 힘으로 이해하며 풀고 상대방의 말과 규칙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다.

산책할 때 주변에 보이는 식물을 이제 상호 존중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식물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정보로 식물이 가진 초능력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자연보호라는 용어를 항상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인간 보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태계 서비스라는 쿠션의자에 함께 앉아서, 자신의 엉덩이를 걱정한다. 쿠션을 더욱 푹신하게 하고, 수선하고, 소중히 관리하면, 우리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꺼이 제공해 주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연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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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하다 앤솔러지 2
김솔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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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작가의 소설 <한복 입은 남자> 원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를 관람하면서 2025년 마지막 날은 아내와 함께 마무리했다. 역사에서 사라진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미스터리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이 이야기는 '혹시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그림 속 남자가 장영실이 아닐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완성됐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 조선의 비차와 다빈치 비행기 설계도가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장영실은 역사 기록에서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탐험가인 명나라 정화 장군의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 다빈치를 만난 건 아닐까?
.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두 번째 단편소설집 테마는 <묻다>이다. 김솔, 김홍, 박지영, 오한기, 윤해서 다섯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다.

김솔의 <고도를 묻다>의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고도에 대해 묻는다. 왜 고도라 부르는지 (<고도를 기다리며>이야기를 해줬더니 딸아이도 같은 질문을 했다.ㅎ). 고도가 누군지. 고도를 만나면 어떻게 알아볼지. 왜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고도에 대한 물음을 갖고 묻는다.

김홍의 <드래곤 세탁소> 속 유나는 만나기로 한 날 사고로 죽은 정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계속 생각한다. 그런 유나에게 옻을 안 넣은 옻닭을 팔았던 드래곤 세탁소 주인은 뜻밖에 말을 한다.
'"답으로 사는 게 아니야. 물음이 있어서 사는 거지." (p. 87)'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인다.
'"그러니까 계속 살아." (p. 87)'

박지영의 <개와 꿀>의 주인공 수경 씨는 경계성 지적 장애인으로 전시장 지킴이로 일한다. 관람객들은 힌 가해 보이는 수경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개꿀이네. (p. 91)'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난 수경은 이른바 스스로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개꿀이란 소릴 마땅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내가 정상인 거냐고.

'(네. 괜찮아요.)
(네. 좋아해요.)
(네. 좋아요.)
질문은 달라도 답변은 매번 비슷합니다. (...) 제가 수용과 인정의 정답을 말하지 않으면 저는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틀린 사람이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으니까요. 그래서 제 귀는 어떤 질문도 달게 만드는 꿀 먹은 귀가 됩니다. (pp. 139, 140)'

오한기의 <방과 후 교실>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 주동이 받아온 공포 동화 숙제를 같이 하며 질문한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장 무서워하는 장소는 어딘지...

윤해서의 <조건>에서는 하나하나 모든 일마다 조건을 따져 묻는 우리에게 묻는다. 차마 대답할 수 없는 걸 묻고 있는 건 아닌지.
.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까? 묻고 또 물어야 삶에 의미가 있다. 답을 해줄 사람이 없다고 따라 죽을 순 없는 노릇이다. 삶에는 여전히 물을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물음이 있어서 살아간다.

네 삶이 정상인의 삶이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나에게 개꿀이라고 한다면 들어마땅한 소리라며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니 누군가의 다름을 인정하고 틀렸다는 생각은 버리자.

서로 묻도 답해야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다. 딸아이를 비롯한 가족조차도 말이다. 그리고 물을 때는 답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차마 꺼내지 못해 답할 수 없는 걸 묻는 건 곤란하다.

세상이 내게 묻는다. 나도 세상을 향해 묻는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묻는다. 물음에서 뮤지컬 스토리가 탄생했듯, 묻고 답하는 삶이라야 내 삶의 스토리가 풍성해진다. 묻고 답하는 것이 삶이고 삶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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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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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조카의 쌍둥이 아이 첫돌을 축하하려고 신라호텔에서 가족이 모였다. 로비에 앉아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천장에 반짝거리는 것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역시 외국 정상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썼나 싶었다. 아니었다. 박선기 작가의 작품으로 '조합체 시리즈' 중 하나였다.

'형태가 고정돼 있는 일반적인 조형물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약한 바람 한 줄기에도 어김없이 흔들립니다. 항상 우리 곁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작품으로 보여준 거죠. (p. 117)'


문화부 기자로 일했던 이선아 작가는 <걷다가 예술>에서 공원이나, 호텔 로비, 백화점 그리고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예술작품과 그 작품세계를 안내한다.

광화문 흥국생명 앞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작품을 보면 누구나 '아 이거?'라는 말을 하게 된다.

'"원래 작품명('노동자')에서 알 수 있듯이 <해머링 맨>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해머링 맨>이 반복적으로 망치질을 하는 모습은 쉴 새 없이 일하는 현대인을 뜻한다. 삶의 무게(망치를 든 오른팔만 4톤)가 만만치 않지만, 그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p. 17)'

2014년과 2022년, 잠실 석촌호수에 떠 있던 18미터 높이의 노란색 <러버 덕>은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작품으로 '평등'이라 메시지가 작품에 담겼다. 강서구 마곡의 <LG아트센터 서울>는 여느 공연장처럼 보이지만 '노출 콘크리트', '빛', '물'로 알려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다.

원래부터 놓여있던 것처럼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청역 프레스센터 앞 거대한 철판과 돌 네 개. 우리가 자랑하는 예술가 이우환의 대표 연작인 <관계항 Relatum-만남의 탑>이다.

'그래서 이우환의 세계에서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입니다. "돌과 철판의 만남은 자연과 문명의 대화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이라는 게 그의 얘기입니다. (p. 105)'

천안 아라리오 조각광장에 가면 초라한 행색으로 서 있는 6.5미터 높이 소녀상을 볼 수 있다. 부러진 다리에 자선기금 모금 상자를 든 조각상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채러티>다.

'하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는지 체념한 듯한 표정이죠. 허스트는 이를 통해 자선이 갈수록 외면받고 있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합니다. (p. 153)'


이렇듯 우리는 오고 가는 일상에서 예술작품을 만난다. 건축주가 건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일정 비율(보통 1% 이하)로 미술장식품을 설치하는 (당초 권장사항이었지만 1995년부터는 의무로 바뀐) 법 덕분이다.

작품에는 작가의 집념과 고뇌가 녹아있을뿐더러 처절하게 찾아낸 작가의 창작세계가 담겨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예술품에서 가치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신라호텔 로비에 있던 나처럼 작품인 줄 몰라보고 인테리어 취급을 한다면 말이다. 작품이 선사하는 소중한 순간을 놓친 셈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작품세계를 알고 나면, 거리의 예술작품에서 뜻깊은 순간을 갖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처럼 작품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신라호텔 로비에 전시된 박선기 작가의 작품 <조합체 130121>,

너비 7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투명 낚싯줄에 매달린 5만여 개 아크릴 비즈가 공기의 흐름에 나부끼며 은하수를 연출하는 듯하다. 박선기를 '숯의 작가'로 부른다. 자연을 상징하는 숯을 낚싯줄에 매단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낚싯줄에 매달린 비즈가 은하수라면 숯은 수묵화水墨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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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
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지음, 배효진 옮김 / 리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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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신이 친구 엔키두를 죽이는 걸 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길가메시는 여행을 다니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속에 먹으면 영생에 이르는 불로초를 얻는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에 뱀이 불로초를 가져가 버려 영생의 꿈은 사라지고 만다. 신은 인간에게 경고한다.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영생을 원한다고? 그런 허황된 꿈은 버려라.


생명과학자 로버트 란자가 SF 문학의 거장 낸시 크레스가 함께 쓴 소설 <옵서버>는 양자 역학과 다중 우주론으로 영생이 가능할지도 모르는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여동생 엘렌과 힘겹게 살아가는 신경외과 의사 캐롤라인 소암스 왓킨스 (캐로), 병원 내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처지가 된다. 그때 전혀 알고 지낸 적 없는 노벨상 수상자인 큰할아버지 새뮤얼 왓킨스로부터 자신의 비밀 연구 프로젝트에 함께하자는 제안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은 죽음을 피하는 거죠? 단순히 물리학 실험이나 뇌 지도화 연구를 위해 다중 우주의 다른 분기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잖아요.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그 다른 다중 우주에서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박사님이 존재하는 분기를 '창조'하려는 것 아닌가요?" (p. 167)'

캐로가 해야 할 일은 뇌가 정보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변경하는 첨단 칩을 뇌에 심는 수술이다. 칩을 이식받은 사람들은 각자 의식으로 만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나 위로를 얻는다. 캐로는 마침내 아이를 잃고 괴로움 속에 있는 동생 엘렌에게도 칩을 이식하는 수술을 하기로 맘먹는다.

그리고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선 캐로마저 칩을 이식받고 죽은 다음, 자신의 의식으로 창조한 세계를 마침내 만난다. 새뮤얼 왓킨스가 죽은 다음 메시지를 보내온 그 새로운 세계, 과연 그 세계는 길가메시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도 없고, 삶마저도 두렵지 않는 그런 세계일까?


'그가 창안한 '관찰자의 우위성'이라는 이론은 (...) 그의 생물 중심 이론의 핵심은 물질과 진화가 의식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의식이 물질과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 무엇도, 즉 지구도, 은하도, 부엌도, 심지어 우리 뇌조차도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p. 446)'

이 소설의 공동 저자 로버트 란자는 생물중심주의 Biocentrism을 주장한다. '현실은 관찰에 의해 형성된다'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시간도 공간도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도구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에 두 입자가 얽혀 있다면, 하나를 측정할 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입자가 영향을 받는다는 '얽힘 현상'을 특징으로 한 '양자 역학'과 행동한 사람의 관찰을 포함해 어떤 행동이 관찰될 때마다 우주가 분기된다는 '다중 우주론'이 더해질 때, 오랜 시간 인간이 꿈꿔왔던 영원한 삶이 현실이 되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의식이 모든 걸 창조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의 선택으로 내 삶을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의식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현실을 무수히 바꾸며 살아간다.

실패로 절망스러운 현실에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서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가 빠져나오기도 하고, 부모 품에 의존하다가 독립하기도 하고,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기도 하고.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깨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혹시 나비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비가 내 꿈을 꾼 건지도...

올해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다. 100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약 300년 전에 장자는 양자역학 개념을 과학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의식으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식으로 창조한 인간의 세계와 나비의 세계를 넘나들었겠지. 아니... 장자뿐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는 이미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덧,
양자역학을 알고 싶다면 그 어려운 개념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나가는 이 소설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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