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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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몇 다리 건너건너 들은 배우 김혜자 씨의 일화다. 손주를 본 김혜자 씨는 손주 자랑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무들 바빠 그 자랑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돈을 줄 테니 10분 만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사정사정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털어놓을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런 사회가 됐다. 팬데믹을 겪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변호사, 판사, 그리고 칠십 대 나이에 들어선 다음, 첫 장편소설을 펴낸 늦깎이 작가 앨런 레비의 <테오>는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일 때 일어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포르투갈 출신의 여든여섯 살 노인 테오는 부활절 즈음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도시, 골든에 머문다. 우연히 들른 카페 챌리스 벽에 아흔두 점의 연필 초상화가 잔뜩 걸려있었다. 초상화 속 모습은 연령, 인종, 표정... 모두 달랐다.

'노인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이 92개의 액자가 모두 창문이라면 어떨까? 액자 안의 얼굴들은 이 건물 바깥에 서서 카페 안의 손님들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다. 그러다 밤이 되어 카페가 문을 닫으면 초상화 속 얼굴들이 액자에서 나와 서로 삼삼오오 어울리면서 그날 누구를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 오픈 시간이 되면 다시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p. 21, 22)'

노인은 초상화를 하나씩 사기로 결심한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저녁 7시, 페더 분수대에서 초상화 속 인물들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 그림을 전해주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앞으로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말로 그들을 축복해 주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만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의 특별함이 보인다. 노인 테오는 카페 벽에 걸린 초상화의 얼굴을 보며 그 너머에 있는 상실, 후회, 사랑, 그리움, 말 못 하는 슬픔... 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낯선 그리고 어쩌면 잊고 지냈던 나의 감정이 보인다. 테오에게 초상화를 받아든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감정을 꺼내 놓는다.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때 첫 번째 기적은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고, 열린 마음으로 관계가 맺어지는 기적이 이어서 일어난다.


'그러다 점점 노쇠해 가는 아버지, 형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지아의 농장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벽에 걸린 초상화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그림들을 몽땅 사면 재미있지 않을까?" 앨런은 정말로 그 카페에서 그림을 몇 점 사와 그 그림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pp. 551, 552)'

퇴직 무렵, 집에 쌓여있던 책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맘먹었다. SNS 안에서 책 읽는 사람끼리 책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는 걸 알게 됐다. 프로필과 책 리뷰를 읽으면 그들이 궁금해졌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가 가로막아 섰고, 그 차이로 인한 오해도 두려웠다. 글을 주고받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을,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마음을 내어주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고마운 책 친구들이 여럿이 됐다. 나 또한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게 기적이 진행 중이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분함만 남아 퇴직 후 내 앞에 놓인 미래는 우울했었다.

"요즘 당신 모습이 제일 좋아 보여"
아내로부터 이런 소릴 듣게 될 줄이야. 책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오니 소설 속 주인공 테오처럼 '사심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돈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여린 게 아닙니다, 애셔. 부서진 거지요. (...) 하지만 이 슬픔도 하나의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슬픔과 같이 살아가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일이 삶에 슬픔이 없는 척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서로 잘 어울리며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삶의 또 다른 신비지요... " (pp. 317,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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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의 힘 - 왜 시적인 문장이 살아남는가
유영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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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파스칼의 <팡세>를 옆구리에 끼고 폼 나게 들고 다녔었다. 내용이 어려워서 몇 장 넘겨보곤 다 읽지 않았지만 <팡세>하면 생각나는 글이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읽는 순간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파스칼의 이 짧은 글은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래도 굳이 의미를 살펴보자면,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약하고 작은 존재지만 생각이란 걸 하기에 인간은 위대하다는 뜻의 아포리즘이다.


짧은 글, 3분 안쪽의 짧은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다. 뭐든 짧게 설명하기를 요구하고 요구받는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짧은 문장의 힘>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짧은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짧은 글이라고 해서 단박에 쓸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유영만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시간이 걸린다.

'읽고, 쓰고, 지우고, 다시 묻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몸으로 살아낸 삶이 필요하다. 방 안에서만 만든 문장과 세상과 부대낀 문장은 다르다. (p. 7)'

아포리즘은 머리가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다. 그래서 그 한 줄짜리 글은 우리 삶을 흔들고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팡세>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처럼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띈 아포리즘은 '짧은 문장은 창문이다. (p. 18)'라는 글이다.

짧은 한마디는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아포리즘을 통해 보면 나와 다른 세상이 보이고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니 창문인 셈이다.


'시 쓰기는 '설명'을 버리는 일'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의 <김혜순의 말- 글쓰기의 경이>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시에 대한 그 어떤 부연 설명이 필요할까. 이 짧은 글로 족하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도 있다. 이 압축된 글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글에 넣어 쌓았다가 허물었을까. 책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결국 이런 글 하나가 읽기로부터 시작됐을 텐데. 동사를 고르고, 박자와 호흡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감정을, 독자의 시선을, 맥락을... 이 모든 과정의 반복으로 글 하나가 탄생한다.


숏폼이 지배하는 시대에 AI의 언어까지 가세했다. 그래서 이 책 마지막에서 다룬, 인간과 AI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는 대목이 의미가 있었다. 김성우 박사의 짧은 글은 인간 언어와 AI 언어의 차이를 정확히 가른다.

'"인간은 삶을 통해 말을 배우고, AI는 데이터를 통해 말을 배운다. 인간은 언어를 경험하지만 기계는 언어를 계산한다. 그들의 계산은 우리의 경험을 대체하지 못한다"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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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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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단연코 화제다. 이를 모르면 어떤 대화든 낄 수가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40년 동안 번 돈보다 올 한 해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게다가 앞으로 얼마를 벌지 삼성전자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억대 성과급을 받았다.

'지배층도 불교 논리가 좋았다. 현세에서 양껏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가, 단순한 아빠 찬스를 넘어 전생 때 '내 노력'의 정당한 대가라니. 말하자면 고대 버전 능력주의다. (p. 87 화무십일홍)'

"삼성전자 직원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능력대로 보상받는 게 공정한 것 아냐?"

신자유주의가 뿌려놓은 능력주의가 디폴트 값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한쪽에서 억대의 돈을 챙기는 순간 다른 한쪽에 많은 사람들은 소외를 느낀다.

'온전히 내 것으로 보이는 '능력(자제력, 지능, 노력 등)'엔 이전 세대가 누적해서 쌓아온 삶과 노력이 보이지 않게 녹아 있다. 온갖 마시멜로 실험들이 그 일부를 보여줬다.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토대엔 내 기여분이 전혀 없다. 토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내 성공 요인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이다. (p. 156 능력주의)'

철학과 종교학을 대학에서 공부했고, 과외 강사로 활동하면서 30년 가까이 책과 함께 살아온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대중적인 요리사이자 사업가인 백종원 씨를 예로 들면서 능력주의가 왜 위험한 이데올로기인지 설명한다.

'백종원 씨가 1870년대나 21세기 르완다에서 태어났다면... '

백종원 씨나 삼성전자가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인 건 그간 일궈놓은 산업적 토대가 뒷받침된 결과다. 사소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소외받은 사람들도 그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수익의 일부를 달라고 말이다.

대부분 성공은 내 능력 반, 외부 도움 반인 셈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 모양 그 꼴인 거야."라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탓을 돌리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특히 본격적으로 AI 시대가 되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어느 한 기업이 수익을 독식하는 것을 지켜보지 말고 어떻게 나눌지를 정책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다가올 AI 시대를 살아갈 방법이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시간에 풍화되어 사라진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슬그머니 인과관계가 뒤집힌 것. 그것들이 진실을 낯설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서 악이 더 악해지도록 밑밥을 깐다. 몸통을 흔드는 꼬리처럼. (p. 9)'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조이엘은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 이어서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통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주목하고, 기억하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적어도 세상이 이상해지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성공은 나 혼자 이룬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에서 공동이 노력한 결과라는 쪽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책 '영아돌연사증후군' 편에 소개된 사례다. 1997년 샐리가 낳은 첫째, 둘째 모두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었다. 이를 의심한 영국 검찰을 샐리를 연쇄살인 혐의 기소했다. 확률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게 기소 이유였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살펴보면, 이 기소 사유는 말도 안 된다. 확률로 따져보면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죽을 확률이 영아 살해가 일어날 확률이 보다 17배나 크다. 확률로 혐의를 몰아갈 수 없는 문제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 투표에서 전국 12곳의 상위 후보 2명의 득표수가 일치하는 결과가 나와 논란이 됐다. 이 논란은 부정선거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조금만 더 주목하면 통계적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한 확률이란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일 문제'를 떠올리면 된다. 또한 약 800만 분의 1일이라는 로또 당첨자가 매주 여러 명이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해도 되고. 투표수가 적고, 특정 후보에 표가 많이 쏠릴수록 득표수가 일치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
<찔레꽃>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철석같이 믿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찔레꽃이 붉은색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흰색이었다.


사소한 것에 주목할 때,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데 있지 않고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쳐버리곤 하는 사소한 것에 있다.

2년 전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조이엘 작가의 깊고도 넓은 그리고 재미있는 지식의 향연에 반해 팬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읽고 그 팬심은 더 깊어졌다. <더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도 출간되려나? '더더더 시리즈'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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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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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무료 교통카드를 받으면서 '내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다는 사실 (p. 58)'을 실감했다. 아니 살아갈 날이 더 많으려나? ㅎㅎ 그렇더라도 반가움보다 쓸쓸함이 앞선다.

스콧 니어링이 100세가 된 1983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그의 자서전에서 알게 된 다음 '나도 그렇게 해볼까?'라는 마음을 먹어봤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이유는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조력사를 긍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 <기차의 꿈>으로 알게 된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바다 여인의 선물>에는 그가 간암과 싸우면서 병상에서 완성한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다. 결국 이 소설집은 그가 죽음으로서 유작이 됐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라는 쪽지도 함께 건넸다고 알려졌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억해 낸 과거에 대한 회상에 그 어떤 꾸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이 메모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 삶을 미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라본다면 기이할 것이다. 한 인생을 기리는 데는 필히 장식물이 동원된 단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아서인지 다섯 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대단치 않다.

표제작 <바다 여인의 선물>에서 노년의 광고 작가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조각조각 떠오른 과거는 맥락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 참회의 대상마저 헷갈려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잘못이 무엇인지 갑자기 알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작별 인사를 위해 전화를 걸어, 나로 하여금 진심으로 참회하며 식탁 옆에 털썩 무릎 꿇게 만든 이 여자가 버지니아인지 제니퍼인지 알 수 없었다. (p. 23)'

<아이다호의 별빛>의 알코올중독자는 재활 시설에서 아버지, 누이, 연인 심지어 사탄, 교황... 등에게 횡설수설 편지를 쓴다. 망가진 자신의 삶을 구원해 줄 빛을 찾아 헤매는듯하다.

<교살자 밥>에서 열여덟 살 딩크는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고 수감된 밥을 감방에서 만난다. 환각상태에서 딩크는 밥에게서 살인자가 될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허튼소리로 여긴 그 말이 딩크의 인생에서 실현되고 만다.

<무덤 위의 승리>의 화자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리곤 자신이 죽은 후의 세상을 생각한다.

'아… 몇 주 전에 마린 카운티에 사는 내 친구 낸, 그러니까 죽은 로버트의 아내 낸이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무렵에는 어떨지 모른다. (p. 203)'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에 등장하는 시인 마커스 에이헌은 도플갱어와 폴터가이스트라는 초자연 현상에 빠져있다. 그런 집착의 결과는 우리 아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짜라는 생각이 이르게 한다. 이 음모론을 증명하려고 한밤중에 삽을 들 뿐만 아니라 수천 달러의 돈도 서슴지 않고 쓴다.


단편집을 읽고 난 다음, 언제 어떻게 죽을까라는 생각에 이어 죽음을 앞둔 나는 어떤 회상을 할까? 상상해 봤다.

내 과거 역시 파편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게 그 사람이었나? 헷갈리기도 한다. <바다 여인의 선물> 속 광고 작가와 다르지 않다. <아이다호의 별빛>의 알코올중독자처럼 내 삶의 망가진 부분을 그 어떤 존재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서 고쳐놓고 싶은 욕망도 내 맘속에 있다.

죽음에 초연하다가 요즘 삶에 미련이 조금 생겼다.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의 삶이 궁금해져서이다. <무덤 위의 승리> 화자의 생각처럼 내가 죽은 다음에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 모두들 잘 살겠지. 그래도 궁금하다.

<교살자 밥>의 딩크,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의 시인처럼 허황된 상념에 사로잡혀 공허한 내 삶의 한 부분을 메워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데니스 존슨은 죽음에 이르러 '산다는 게 기이한 여행을 견디는 일'이라고 여긴듯 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을 듯도 하고.

죽음을 앞두고 말이다. 내게도 데니스 존슨처럼 삶을 회상할 정신이 허락되는 축복이 따른다면... 데니스 존스과 같은 고민에 빠져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털어놓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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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데미안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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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나 행동이 어른스럽지 않고 어린아이 같을 때 '유치幼稚하다'고들 말한다. 아이들 세계에 속한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까? 그 세계 나름 그 아이들에게는 완벽한 세계다. 그 세계를 지나고 나서 보니 유치할 뿐이다.
.

'그곳에 두 세계가 얽혀 있었다. 세계의 양쪽 끝에서부터 나온 밤과 낮이. (p. 9)' 열 살 싱클레어가 사는 집에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밝은 세계에 살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크로머를 만난다. 그로 인해 생긴 두려움 때문에 사과를 훔쳤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어둠의 세계를 알게 된다. 괴로워하던 중 데미안을 만나 카인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진실을 깨닫고 크로머가 속한 세계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해 학교 선배인 알폰스 벡을 만나면서 이번엔 싱클레어 스스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가 그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녀가 싱클레어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어둠의 세계를 멀게 했고, 독서와 산책을 즐기게 만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 104)'

데미안이 보내온 쪽지 속 '아브락사스', 피스토리우스와 만남으로 아브락사스는 신이자 악마이고,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을뿐아니라, 어떤 생각도 어떤 꿈도 제외하지 않는 신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데미안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그 조그마한 사진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내 꿈속의 모습이었다! 내 꿈에 나오는 얼굴이 바로 데미안의 어머니 얼굴이었다. (p. 152)'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인 끝에 싱클레어 안에 존재하던 여인, 에바 부인을 만났다. 하지만 또 다른 세계가 싱클레어 앞에 놓여있었다. 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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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지금껏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 이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나 그 길의 끝까지 가려고 애쓴다. (p. 8)'

유치했던 나는 삶이 내게 주는 과제를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해 풀어내려 애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여전히 남았다. 싱클레어가 만난 크로머, 데미안, 알폰스 벡,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금욕에 괴로워하는 크나우어, 에바 부인까지... 내게도 깨달음과 도움을 주는 이들 모두는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

칼 융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나(Self)'를 이루는 '자아(Ego)'이다. 에고는 페르소나와 셀프를 분리해서 보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궁극에 아브락사스의 세계로까지 나를 인도하는 존재도 자아이다.
.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알은 이 세계고, 이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 했다. (p. 191)'

내가 깨뜨려야 할 세계도 있지만,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내 알을 깨부셔 나를 새로운 세계에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유럽이 경험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처럼 말이다.

전쟁은 신이 살아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고, 과학이라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대마저 허물어버렸다. 합리적이라 여겼던 세계관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치한 세계가 되버렸다. 숙명이 지배했던 세계에서 나의 의지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로 발을 옮기게 만든건 누구의 계획에도 없었던 전쟁이었다. 그런 면에서 <데미안>은 개인의 성장 서사이면서 인류 성장의 서사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지 않은 세계라고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던져진 상태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 힘은 질문에서 나온다. '카인은 정말 악일까?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 자체가 죄악일까?'

'"... 그래서 카인 자손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설명한 거야. '표식을 지닌 자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표식을 지닌 자들은 불길해서'라고 말이야. 사실 틀린 말도 아니야. 용기와 개성을 가진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니까. 두려움 없는 강한 족속들이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니 얼마나 무섭겠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나날들을 보상받으려고 그럴듯한 별명과 전설을 붙여서 복수한 거야. 내 말, 이해하겠니?"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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