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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사 1955 2025 - 시민과 더불어 써 내려간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박혁 지음 / 들녘 / 2025년 9월
평점 :
직접세와 간접세가 있다. 어느 세금을 높여야 할까?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까? 소극적 개입을 해야 할까. 개인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이 맞을까? 제한하는 것이 맞을까. 사업가나 투자자와 임금 노동자 가운데 어느 쪽 이익을 우선해야 할까. 일자리 확대와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야 할까. 차등적 분배와 균등적 분배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어느 쪽이 정의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민주연구원 연구원으로 일하는 박혁 정치학 박사의 <민주당의 역사 1955 2025>는 올해 창당 70주년을 맞이한 민주당 이야기다. 역사라고 하니 시간순으로 배열했을 것 같지만, 이 책은 탄생, 분열, 통합, 수난, 저항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민주당 역사를 펼쳐놓는다.
이승만 쿠데타부터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한 민주당 창당까지를 '탄생의 순간'에, 4.19혁명 후 신구파 분열부터 2015년 새정치연합 분열에 이르는 부끄러운 순간을 '분열의 순간'에, 1965년 민중당 창당부터 더불어민주당 출범까지를 '통합의 순간'에,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부터 지난해 1월 이재명 대표 테러까지, 모진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민주당이 보여준 용기와 끈기를 '수난의 순간'에, 1958년 보안법 파동부터 지난해 12월 윤석열 내란까지, 시민들과 같이 저항한 민주화 역사를 '저항의 순간'에 담았다.
박정희가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해 태어난 나로서는 이승만 독재 정권 시절이 희미했다. 그런 이유로 이승만의 친위 쿠데타, 사사오입 등을 자세히 살펴봤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이승만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는 열 살이 채 안 된 어린 내게 좋은 이미지로 각인됐었다. 그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리기까지 삼십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독재자였다는 걸 알아버리는 바람에 좋은 이미지가 이승만보다 빨리 깨지긴 했지만)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오후 6시 국기 하강식과 함께 애국가가 울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내게 유신헌법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제도는 마냥 좋은 것이었다. 박정희는 어질고 인자하고 위대한 대통령이었다.
저항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냈는데,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민주계열은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도 진보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진보 대통령을 이어나가야 된다는 바람이었지만, 그때 역시 민주계열 분열이 이명박에게 정권을 내주는 빌미가 되었다. 뼈아프게도 그 이듬해 노무현까지 잃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은 1952년 이승만의 친위 쿠데타에 이어 우리 헌정 사상 두 번째 친위 쿠데타를 벌였다.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 혁명'이 있었다면 이번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빛의 혁명'이 있었다. 철부지라 여겼던 청년들이 앞장서 윤석열을 탄핵했다. 국회는 국민께 감사 인사를 올렸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떨쳐 일어나 국헌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국민의 위대함과 슬기로움에 대한민국 국회는 감사하며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합니다. (p. 576)'
민주당이 이재명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국회의장을, 당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정치 효능감을 맛보았다. 그 결과 민주당은 당원 중심의 당으로 거듭났다.
'그렇게 뜨거운 가슴과 무거운 어깨로 민주당은 창당 70주년을 맞았다. 사람 나이 칠십을 흔히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가도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나이. 민주당의 70년도, 탄생하던 순간 품었던 그 마음을 따라 걸어온 시간이었다. (p. 582 나오며)'
첫머리에 말한 두 가지 선택 가운데 앞에 것을 더 많이 선택했다면 보수 성향이, 뒤에 것에 더 많이 고개를 끄덕였다면 진보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60대 중반인 내 나이를 감안하곤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내 경우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보수 성향이 강했고 나이가 들수록 진보적 이념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이다.
독재 타도를 외친 20대를 지나 직장인이 되면서 정치와 소원해졌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라는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프로파간다에 매몰됐었다.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정신 차리고 정치 뉴스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문재인 정권 시절, 안심하고 다시 정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사용자 측에 서야 하는 위치이다 보니 더더욱 정치와 무관심한 척했다.
설마설마하다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을 때, 나는 정년퇴직 후 무직자로 첫해를 맞이했다. 앞으로 5년이 암담했다. 내 나이 또래 대통령치고는 너무 무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아들아이의 극우화를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십 대 후반의 아들은 (아빠와 다투기 싫어 내색은 안 하지만) 민주당을 싫어하는 듯하다. 오빠보다 한 살 어린 딸아이는 오빠와 반대편에 서 있다. 자신의 정치적 욕심만 챙기는 정치꾼의 남녀 갈라 치기가 내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민주당의 숙제는 청년들을 품는 것이다. 특히 20대 남자아이들을 말이다. 더 이상 상대적 박탈감으로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더 이상 극우화되지 않도록, 부모를 잘못 만나 가진 것도 없는 아이가 더 이상 재벌 걱정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집단이 정당이다. 정당이 정권을 획득하려는 목적은 그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정당은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유권자들은 투표한다. 투표는 정치인이 아니라 정당을 택하는 행위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방향성을 선택하는 것, 다시 말해 미래 세계의 선택을 의미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민주당이 좀 더 그 아이들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