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기의 결 - 무해하게 행동을 바꾸는 과학적 방법
카렌 프라이어 지음, 조은별 외 옮김 / 페티앙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 시절 단체 기합(체벌) 받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싫었다. 내가 떠든 것도 내가 우리 반 평균 성적을 까먹은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반성하라는데 반성은커녕 반감만 더 커졌다. 좀 빡센 군대인 해병대에 입대해 군 생활을 했다. 거긴 더 했다. 밤에 경계근무하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무슨 잘못인지도 모른 체 집합이란 걸 당해 두드려맞았다. 안 맞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물론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억울함은 여전하다. 처벌하기 Punishment, 이 책에서 알려주는 '원하지 않는 행동을 없애는 여덟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행동을 바꾸는 데 '처벌'은 잘못된 방법이란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처벌은 우리 인간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잘못된 행동을 보면 우리는 처벌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 사실 처벌은 대부분의 경우 전혀 효과가 없다. (p. 176)'


모든 '가르치기와 배우기'에는 '강화 reinforcement' 원리가 깔려있다는 게 행동생물학자 카렌 프라이어의 주장이다. 행동 과학 behavioral science에 근거했다.

'여기서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 강화는 어떤 행동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고 이 두 사건은 시간상으로 연결된다. 둘째, 이 연결 관계가 명확할수록 그 행동은 이전보다 자주 일어난다. (p. 11)'

강화물 reinforcer은 강화를 위해 사용하는 온갖 방법을 말하는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 습관이나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려 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다만 문제는 뭔가를 빼앗아 버리고, (내가 군 시절에 겪었듯이) 처벌하고, 윽박지르고, 언쟁하고, 강요하는 식으로 행동을 바꾸는 여덟 가지 방법 가운데 부정적인 네 가지 방법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그럼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모두 좋아하고 원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그 방법으로 이 책 <가르치기의 결>은 '포지티브 positive 강화물' 사용방법을 설명한다. 성공 사례도 함께 소개해 쉽게 활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소란과 강요 없이 자극 통제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트레이너와 교육 대상 모두의 삶이 훨씬 평온해진다. (...) 그들은 나쁜 반응에 덜컥 화내지 않는다.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잔소리, 꾸중, 투덜거림, 강압, 애원 또는 위협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p. 166, 167)'

동물 트레이닝에서 비롯된 방법이긴 하지만 인간에게도 '강화'는 강력한 도구다. 포지티브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행동 변화를 꾀함으로써 성장은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된다.


퇴직 한 다음부터 아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주 다툰다. 아내가 보기에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의 행동과 말투가 거슬리는 모양이다. 그런 날 바꾸기 위해 아내는 주로 잔소리라는 '네거티브 nwgative 강화' 방법을 사용한다.

온화한 '가르치기의 결'을 가진 '천사의 방법'을 담은 이 책을 슬쩍 아내의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둘 작정이다. 서로를 위해... 아직 같이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무 살에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억만장자 빌 게이츠, 그는 현재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국제 보건 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어머니 메리가 품은 철학이 어린 빌 게이츠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결과가 아닐까?

'어머니는 처음부터 우리 가족을 위한 원대한 비전을 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큰 성공을 이루길 바랐는데, 여기서 성공이란 돈보다는 명성으로, 즉 지역 사회는 물론 더 넓은 범위의 시민 단체 및 비영리 단체를 돕는 역할로 정의되는 것이었다. (p. 62)'


빌 게이츠의 첫 회고록 <소스 코드 : 더 비기닝>은 어린 시절부터 당시 미개척 분야였던 소프트웨어 시장의 잠재력을 확신한 다음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까지 스토리를 담고 있다.

빌 게이츠는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였는데 출생 복권에 당첨이나 된 듯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 수학에 재능이 있었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달은 것도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내가 또래들보다 무언가를 더 잘한다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수학이 쉬웠고, 심지어 재미있었다. 수학의 빈틈없는 확실성이 마음에 들었다. (p. 95)'

누구나 그렇듯 성장과정에 밝은 면만 있지 않았다.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었다. 당시에는 정보 처리 과정에서 특정인의 뇌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다행스럽게도 몰랐던 시대였다. 지금이었다면 그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아 애를 먹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님과의 상상 속 전쟁에서 승리할 운명이었다. 해가 갈수록 내 독립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혼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내(그리고 이후로도 쭉)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전쟁도 이기고 사랑도 잃지 않는다. (p. 125)'

부모님은 컵 스카우트와 같은 활동으로 바깥세상과 어울리도록 빌 게이츠를 돕는 한편 어른들과 접촉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 학교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분야와 사랑에 빠진 후 일정 기간 얼마나 열심히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 기간이 바로 원초적인 관심이 실제 실력으로 전환되는 시기이다. (p. 175)'

열세 살에 무료로 컴퓨터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1만 시간의 법칙'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 이 일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빌 게이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행운의 무료 이용 기회가 없었더라면 그에게 '1만 시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레이크사이드의 선생님들은 나에게 관점 변경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즉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 그것이 바로 세상이 발전하는 방법이다. 이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의 나에게 본질적으로 낙관적인 메시지였다. (p. 206)'

그 밖에도 그가 만난 선생님들, 폴 앨런을 비롯한 친구들, 다트머스 대학의 두 교수가 만든 BASIC 프로그래밍언어, 인텔이 구현한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 MITS 사가 만든 세계 최초의 조립식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

이 모든 것들이 빌 게이츠의 재능을 극대화했고 그의 열정과 더불어 지금 가장 영향력 있고 혁신적인 리더이자 자선 사업가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들어냈다.

'하이킹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 역시 내 나름의 성공의 기준을 정의하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 나와 잘 맞았다.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느냐 내지는 얼마나 멀리 던질 수 있느냐 등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 성공은 한계가 없어 보였다. 길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논리와 집중력 그리고 인내심이 내게는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이킹 그룹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내가 리더였다. (15)'


빌 게이츠의 성공 소스코드는 어린 시절부터 코딩되고 있었다. 회고록을 쓰면서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고 한다. 나 역시 하나의 다른 삶을, 그것도 몹시도 궁금하게 여겼던 삶을, 도저히 살아볼 수 없었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빌 게이츠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하던 시절, 빌 게이츠 현재의 삶과 게이트 재단의 활동까지 두 번째 세 번째 회고록을 쓸 것이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사는 도끼다 -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지성의 문장들
김지수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사란 무엇일까요? 도끼질입니다. 장작을 쪼개듯 암벽을 찍어 오르듯, 오늘 내가 여기 살아 있음을 새기는 도끼질이지요. 흘러가는 언어를 붙잡아 내 인생의 적재적소에 꽂아 넣는 구체적 행위, 그게 바로 필사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나무처럼 두껍고 딱딱한 겉표지에 나무 무늬가 새겨져있다. 그 한가운데 멋지게 도끼질 한 자국이. '책은 도끼다'라고 말한 사람은 카프카였다고 한다. 김지수 기자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해온 400만 자의 인터뷰 가운데 마음에 새기는 도끼질 같은 문장을 고루 가려 뽑았다.

편견은 옅어지고 수용의 넓음으로 가득한 이 시대 대표 어른들의 말,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전하는 지성인들의 언어, 비범한 힘을 가진 탁월한 직업을 가진 장인들의 말, 오르는 삶에서 흐르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안식의 언어 마지막으로 현자들이 들려주는 행복에 대한 말이 이 책에 담겼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자판만 두드리고 눌렀지 펜을 잡고 종이에 한 글자씩 눌러쓴 지 오래돼 펜 끝이 종이를 지나가는 촉감의 기억이 아련하다. 당황스럽기까지 했던 건 손가락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아 글자 끝까지 힘을 주지 못해 글씨가 날렸다. 한때 글씨 잘 쓴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지금 내 필체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을 가져다가 '뭐 이런 책이 있냐'는 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아내 모습을 보고 같이 필사해 보자고 했다. 몇 장을 넘기더니 유튜브 '잘잘법'으로 알게 된, 아내가 좋아하는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적어나갔다. 덩달아 나도 목사님의 글 하나를 필사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문장 하나만 고르라는 말에 아내가 고른 문장은 두 달여 동안 계엄 사태로 마음이 힘들어서 인지 박주영 부장 판사의 글 '그래야 악이 상처받습니다'를 골랐다.

'...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은
'잘못이 외부에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정신 차리려면,
약하고 염치 있는 사람들이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요.
그래야 악이 상처받습니다. (p. 24)'
심성이 고운 사람인데 악에 받쳐있는 듯해 마음 아프다.

언어의 도끼질할 글이 많지만 나도 고심 끝에 한 문장 골라봤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님의 글이다.
'... 40세, 50세가 지나면서
점점 앞날이 아니라 오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다음엔 순간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죠.
60세가 되면 그런 생각조차 안 해요.
70세엔 이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야겠다는 욕심이나 부담이 없어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도 늙지 않았어요. (p. 68, 매일이 극복)'

칠십 대 후반에 들어선 정경화는 매 순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육십 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데, 난 아직 욕심으로 가득하니. 세상 보는 눈도 늙지 않았다는 그와 달리 난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으로 여전히 세상을 보고 있다. 반성하는 의미로 이 글에 도끼질했다.


만년필, 볼펜, 연필까지... 종류별도 모아 놓고 필사해 봤다. 슥슥~ 펜이 지나갈 때 종이와 맞닿은 그 떨리는 느낌이 이 책 필사를 마칠 때쯤에 내 감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내가 필사하는 글도 어깨너머로 엿보며 그의 감각, 그의 감정이 남긴 여운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난 결정 장애인가 봐~'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일이 힘들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저자인 김지혜 교수도 '결정 장애'라는 말이 재미있다는 생각에 수없이 써왔다고 한다. 뭐가 문제일까? '장애'란 부족하고 열등함을 의미하니 장애인을 업신여긴 셈이 된다. 나도 모르게.

'문제는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p. 37)'

장애를 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신체적, 정신적인 기능이 제한되어 고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심지어 동성애마저도 고칠 수 있는 병으로 간주한다. 장애, 동성애가 비정상이란 기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뿐.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p. 11, 프롤로그)'

저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차별이 어떻게 정당한 차별로 둔갑하는지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해법이 될만한 것들을 논의한다.


아내, 딸아이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건 지난해 시월이었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10월 27일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행해질 '동성 결혼 합법화'와 '차별 금지법 제정' 반대 연합예배 참석을 독려하는 광고를 예배시간에 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죄이고, 차별 금지법은 동성애자에게 특혜를 주는 악법이라는 주장이다. 차별 금지법이 통과된 나라에서 아동들의 성전환 비율이 급증했다는 것도 교회가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말라는 정치적인 발언도 이어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떤 차별은 종교적인 이유로 요구된다. 종교에 따라, 교리를 이유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차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리 내에서 차별은 나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p. 128)'

딸아이는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의 화장실 출입 문제 등을 예로 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아내는 선뜻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성소수자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본다면 해결될 문제라며 내 생각을 말했다.

목사님이 광고할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성도들을 쳐다봤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택함 받았다고 여기는 선한 백성인 성도들이 명백하게 성소수자를 차별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생각이 들었다.

성적 취향을 숨기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있을 수도 있다. 드러내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성소수자를 구별해 이방인 취급을 한다. 성적으로 문란한 목회자도 있지만 유독 성소수자의 성적 문란함만 비난한다. 그들에게 교회 문을 닫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대형 교회 목회자 중심으로 10월 27일 집회가 계획됐다. 교회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약자인 성소수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이 파시즘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멘을 외치는 성도들, 예배드리며 같이 있을 때는 다수에 속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면, 직장에서 을의 위치 있다면, 노인이라면, 장애인이라면... 차별받는 소수로 범주화된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어울림의 공포와 싸우는 한 가지 방안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 (p. 209)'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그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인인 나의 신앙고백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그 차별로부터 비롯된 여러 형태의 폭력은 예수님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회에서 배척당한 소수자를 품에 끌어안는 사랑을 예수님은 보여주셨다.

차별하는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차별받는 사람에게는 특별함이다. 담장이 높아 담너머를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사다리를 줄 것이 아니라 담장을 낮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당연한 것도 특별함도 사라진다.

이 책에서 꺼낸 많은 차별 이야기를 아내와 딸아이에게 들려주려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22대 국회에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은 차별 금지법을 왜 우리 기독교인들이 반대하는데 앞장서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봤으면... 그리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를 쓰다, 페렉
김명숙 지음 / 파롤앤(PAROLE&)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번역한 비교문학 박사 김명숙은 <사물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 둘과 파리를 걷기로 했다. <사물들>의 문장과 함께.

'숫자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다. "제롬은 스물넷, 실비는 스물둘이었다."
아무 설명 없이 부러움을 자아낼 숫자다. 그렇긴 해도 그 시기만큼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때도 없다. 빠지지 않는 가난까지. (p. 19)'

설렘, 불안, 가난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러운 나이, 스물넷, 스물둘. 파리와 어울리는 나이다. 파리가 늙지 않는 건 청춘의 한때를 보낸 작가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나는 '다름'에서 '같음'으로 가는 길에 도시를 만났다. 내게 도시는 "아주 깊숙하게 바라볼" 텍스트다. (p. 8)'

저자가 써 내려간 파리의 텍스트를 읽어보자. 눈으로 식도락을 즐기듯... 셰에라자드가 술탄에게 들려준 끝나지 않는 이야기 천일야화처럼 파리 텍스트도 끝이 없다.

좁음에 익숙한 이들이 있는 곳, 카트르파주. 세련된 도시인들 파리지엥. 익숙하고 낯선 사물을 음미하느라 허기에 시달리게 만드는 무프타르 거리.

'영화관은 공간이자 시간이다. (p. 50)' 파리는 어둠 속에서 모두가 바라보는 스크린이다. 욕망의 진열장이기도 하고. 파리에는 휑하니 앞질러 가는 사람, 도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로 늙어가는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품위 있게 돈 자랑을 실컷 할 수 있는 경매도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몽상가들의 도시 파리. '흐릿한 실루엣, 화려하지 만 쓸쓸하고 사랑의 화살이 날아다니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인 듯한 허전함. 화면 가득 빈틈없이 채워져 있지만 공허함이 떠다닌다. 상상의 끝은 그런가... (p. 79)'

우울과 권태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겨워진다. 하지만 파리라는 공간이 지겨움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파리를 떠난 이들은 파리를 다시 보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얼마나 얘기해야 할까? <사물들>에서 고른 문장은 하나하나가 마들렌이었다. 마르셀이 한 입 베어 물자 순식간에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처럼, 실비와 제롬의 문장을 되뇌자 떠오른 작가, 화가, 음악가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서로 멀게만 느껴지던 그들은 잘 어울렸고, 달라서 풍성했다. (p. 101)'

당신에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은 무엇인가? 파리의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 파리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파리는 기억이기에... 내게 마들렌은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파리의 과거를 무작정 동경하게 만드는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