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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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정 장애인가 봐~'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일이 힘들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저자인 김지혜 교수도 '결정 장애'라는 말이 재미있다는 생각에 수없이 써왔다고 한다. 뭐가 문제일까? '장애'란 부족하고 열등함을 의미하니 장애인을 업신여긴 셈이 된다. 나도 모르게.

'문제는 그가 서 있는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p. 37)'

장애를 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신체적, 정신적인 기능이 제한되어 고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심지어 동성애마저도 고칠 수 있는 병으로 간주한다. 장애, 동성애가 비정상이란 기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차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뿐.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p. 11, 프롤로그)'

저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차별이 어떻게 정당한 차별로 둔갑하는지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차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해법이 될만한 것들을 논의한다.


아내, 딸아이와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건 지난해 시월이었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10월 27일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행해질 '동성 결혼 합법화'와 '차별 금지법 제정' 반대 연합예배 참석을 독려하는 광고를 예배시간에 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죄이고, 차별 금지법은 동성애자에게 특혜를 주는 악법이라는 주장이다. 차별 금지법이 통과된 나라에서 아동들의 성전환 비율이 급증했다는 것도 교회가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말라는 정치적인 발언도 이어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떤 차별은 종교적인 이유로 요구된다. 종교에 따라, 교리를 이유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차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교리 내에서 차별은 나쁜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p. 128)'

딸아이는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의 화장실 출입 문제 등을 예로 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아내는 선뜻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성소수자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본다면 해결될 문제라며 내 생각을 말했다.

목사님이 광고할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성도들을 쳐다봤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택함 받았다고 여기는 선한 백성인 성도들이 명백하게 성소수자를 차별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생각이 들었다.

성적 취향을 숨기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있을 수도 있다. 드러내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성소수자를 구별해 이방인 취급을 한다. 성적으로 문란한 목회자도 있지만 유독 성소수자의 성적 문란함만 비난한다. 그들에게 교회 문을 닫아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대형 교회 목회자 중심으로 10월 27일 집회가 계획됐다. 교회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약자인 성소수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모습이 파시즘과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멘을 외치는 성도들, 예배드리며 같이 있을 때는 다수에 속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면, 직장에서 을의 위치 있다면, 노인이라면, 장애인이라면... 차별받는 소수로 범주화된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어울림의 공포와 싸우는 한 가지 방안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 (p. 209)'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그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인인 나의 신앙고백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그 차별로부터 비롯된 여러 형태의 폭력은 예수님의 삶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회에서 배척당한 소수자를 품에 끌어안는 사랑을 예수님은 보여주셨다.

차별하는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차별받는 사람에게는 특별함이다. 담장이 높아 담너머를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사다리를 줄 것이 아니라 담장을 낮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당연한 것도 특별함도 사라진다.

이 책에서 꺼낸 많은 차별 이야기를 아내와 딸아이에게 들려주려 한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22대 국회에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은 차별 금지법을 왜 우리 기독교인들이 반대하는데 앞장서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봤으면... 그리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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