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쓰다, 페렉
김명숙 지음 / 파롤앤(PAROLE&)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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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번역한 비교문학 박사 김명숙은 <사물들> 속 주인공 제롬과 실비, 둘과 파리를 걷기로 했다. <사물들>의 문장과 함께.

'숫자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다. "제롬은 스물넷, 실비는 스물둘이었다."
아무 설명 없이 부러움을 자아낼 숫자다. 그렇긴 해도 그 시기만큼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때도 없다. 빠지지 않는 가난까지. (p. 19)'

설렘, 불안, 가난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러운 나이, 스물넷, 스물둘. 파리와 어울리는 나이다. 파리가 늙지 않는 건 청춘의 한때를 보낸 작가들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나는 '다름'에서 '같음'으로 가는 길에 도시를 만났다. 내게 도시는 "아주 깊숙하게 바라볼" 텍스트다. (p. 8)'

저자가 써 내려간 파리의 텍스트를 읽어보자. 눈으로 식도락을 즐기듯... 셰에라자드가 술탄에게 들려준 끝나지 않는 이야기 천일야화처럼 파리 텍스트도 끝이 없다.

좁음에 익숙한 이들이 있는 곳, 카트르파주. 세련된 도시인들 파리지엥. 익숙하고 낯선 사물을 음미하느라 허기에 시달리게 만드는 무프타르 거리.

'영화관은 공간이자 시간이다. (p. 50)' 파리는 어둠 속에서 모두가 바라보는 스크린이다. 욕망의 진열장이기도 하고. 파리에는 휑하니 앞질러 가는 사람, 도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로 늙어가는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품위 있게 돈 자랑을 실컷 할 수 있는 경매도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몽상가들의 도시 파리. '흐릿한 실루엣, 화려하지 만 쓸쓸하고 사랑의 화살이 날아다니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인 듯한 허전함. 화면 가득 빈틈없이 채워져 있지만 공허함이 떠다닌다. 상상의 끝은 그런가... (p. 79)'

우울과 권태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겨워진다. 하지만 파리라는 공간이 지겨움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파리를 떠난 이들은 파리를 다시 보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얼마나 얘기해야 할까? <사물들>에서 고른 문장은 하나하나가 마들렌이었다. 마르셀이 한 입 베어 물자 순식간에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처럼, 실비와 제롬의 문장을 되뇌자 떠오른 작가, 화가, 음악가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서로 멀게만 느껴지던 그들은 잘 어울렸고, 달라서 풍성했다. (p. 101)'

당신에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은 무엇인가? 파리의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 파리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파리는 기억이기에... 내게 마들렌은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파리의 과거를 무작정 동경하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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