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 - 플라톤의 대화편 마리 교양 1
플라톤 지음, 오유석 옮김 / 마리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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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기원전 399년 봄, 일흔의 나이인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하기 전 법정 변론을 극화한 대화편이다.

'고발장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폴리스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으며 새로운 다른 신적 존재들을 믿으며 죄를 짓고 있다." (p. 41)'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법정을 선 이유를 고발장 내용과 다르게 말한다. 시인들, 장인과 정치가들, 연설가들을 각각 대표해서 송사를 제기한 멜레토스와 아뉘토스, 뤼콘이 품은 적개심이 고발당한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카이레폰은 저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신탁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퓌티아의 무녀가 저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p. 32)'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반감을 갖게 된 까닭은 델포이 신탁의 의미를 밝히려는 그의 행적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탐구하기 위해 지혜롭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즉 정치가, 시인, 장인들을 만나 대화한다.

'소크라테스는 'What is X?'라는 형식의 질문을 대화 상대자에게 던진다. 대화를 통해 해당 개념에 대한 대화 상대자의 정의가 타당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더 나아가 대화 상대자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해서 참된 앎을 열망하도록 유도한다. (p. 152, 153)'
이들은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깨닫게 한 소크라테스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분노한다.

유죄 판결 받은 후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어떤 형량도 자신에겐 무의미하고, 오히려 자신의 공과를 감안하면 올림피아 우승자들을 식사 초대하는 곳인 프뤼타네이온에서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1차 투표에서 소크라테스의 무죄에 찬성하는 표를 던진 220명 중 (약이 많이 올랐을) 80명이 입장을 바꿔 사형이 확정된다.

소크라테스가 가진 죽음에 대한 태도는 죽은 후 이승이 있든지 없든지, 두 경우 모두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입장이다. 자신처럼 훌륭한 삶을 산다면 신들께서 절대 무시하지 않을 테니 죽음에 대해 희망적인 태도를 취하라고 배심원들에 권한다.

변론 마지막에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식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길 경우 꾸짖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긴 의미심장한 말은...

'이제 벌써 떠날 시간입니다. 저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어느 편이 더 나은 운명으로 나아가게 될지 신 외에는 그 누구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p. 98)'


플라톤의 대화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죽마고우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는 논변과 그 논변에 대한 소크라테의 반박이 그 내용이다. 불의를 불의로 대갚음하는 것,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서까지 탈옥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죽음 앞둔 소크라테스가 친구 크리톤을 오히려 위로한다.

자신의 논리에 반박할 것이 더 있는지 크리톤에게 묻고 없다고 하자 그럼 자신을 내버려 두라며 사형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오, 크리톤이여! 내버려 두세. 그리고 신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니, 이대로 행하기로 하세. (p. 143)'


소크라테스의 변론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크라테스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다. 그는 평생 무엇이 옳은 일인가를 탐구한 철학자이다. '자신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소크라테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긴 명제였다. 진정한 앎에 이르르기 위해서 필수 전제 조건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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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진정성 -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36편의 에세이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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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던 장소와 공간은 내가 태어났고 열두 살까지 살았던 고향이었다. 면 소재지였다. 휴전선 부근이라 군인들을 흔했다. 대북 대남방송이 섞여 온종일 들렸고 동산이나 들판엔 북한에서 보내온 삐라가 지천이었다.

'세상 모든 장소와 공간에는 그곳만의 맛과 향기와 모양과 소리와 감촉이 있다. 이를 풍부하게 감각하는 일은 우리 존재의 층위를 깊게 만든다. (p. 5)'

내가 살던 집 건너편에 초등학교가 있었고, 우리 집 장독대 뒤쪽 집에는 고모님 살고 계셨다. 그 뒤엔 옷 장사를 하던 친구네 집, 솜틀집, 멋지게 국수를 널어 놓은 방앗간이 이어졌고 그 앞으로 방첩대가 있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는 서낭나무가 있는 언덕을 지나가야 했다. 무서워 멀찍이 돌아다녔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우물 옆에 자리한 신기료 아저씨와 뻥튀기 아저씨 인기가 제일이었다. 신 깁는 모습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옆에서 뻥 소리가 날 때마다 뛰어가 흩어진 뻥튀기를 주워 먹었다.

고향의 마을에 대한 기억들이 무수히 계속된다. 지도가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언제가 본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냄새도 집집마다 달랐다. 그곳을 기억하는 모든 감각이 되살아났다.


공간 미학을 가르치는 김종진 교수는 공간을 사유하는 서른여섯 편의 이야기를 <공간의 진정성>에 글로 담았다. '거닐고 머무름', '빛과 감각', '기억과 시간'이라는 소주제로 콜라주 했다.

'공간은 이렇게 우리를 거닐고 머물게 한다. 짧은 시간으로 보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머문다. 하루를 보면 아침에 집을 나서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온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땅에서 태어나 한평생 거닐다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p. 45, 46)'

고모님 댁은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 어린 나를 머물게 하는 곳이었다. 시선은 고모님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곱디고운 한복에 고정되어 있지만, 다리 꼬고 누운 내 생각은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늘은 그림자와 다르다. 그림자는 빛과 대비를 이루는 말로, 보통 물체에 가려 빛을 받지 못하는 상태나 부분을 뜻한다. 반면 그늘은 빛이 없는 상태나 부분이 아니다. 그늘은 빛도 어둠도 아닌, 즉 빛과 어둠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상태다. (p. 97, 98)'

가운데 넓은 마당이 차지한 할머니 댁에는 항상 빛도 어둠도 아닌 그늘진 마루와 방이 있었다. 그늘은 서늘함과 약간의 눅눅함을 지녔다. 햇빛이 문에 바른 창호지가 통과하는 순간 검은 먹이 번지듯 만들어진 그늘이다.

'칼비노는 도시 공간과 사물의 의미를 삶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계단 형태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그 계단과 특정 사건의 만남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또 어떤 사람은 조용한 밤, 연인과 그곳에서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에게 계단은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p. 157)'

고향에 다른 아이들 보다 발달이 좀 늦은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아이가 놀아주지 않으니 심심해했다. 그 아이는 우리 집 문지방에 걸터앉아 문지방 틈 고운 흙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흩으며, 그중 내가 제일 만만했던지 날 불러내곤 했다. '~야 빨리 나와'라는 말을 '~야 빵 나와'로 말했다. 우리 집 문지방은 조그만 여자아이가 걸터앉곤 하는 의자로 내 기억에 새겨졌다.


공간에 대한 사색을 어쩜 이리도 다양한 경로로 다채롭게 할 수 있을까? 오감을 동원해 장소와 공간의 경험을 포착한 글이다. 사유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에세이여서인지 큰 울림이 가슴에 전해진다. 저자의 풍부한 글에 덩달아 나의 사유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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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 사용법 - 불안을 다스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100가지 심리 도구
사샤 바힘 지음, 이덕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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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분에 영향을 받아 가족 또는 회사 팀원들 기분이 잡친다면? 혹은 눈치 보며 내 기분을 살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잠시 문 앞에 멈춰 서서 심호흡하며 기분 전환했다. 퇴근할 때는 회사의 기분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표정을 바꾸곤 했다. 물론 늘 이런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수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내 책임이 크다고 여긴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으며, 그 기분이 오래간다. 속으로 혼자 삭히느라 힘들다.

남들은 당차고, 침착하며, 걱정이 없어 보이고, 늘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성격을 다짜고짜 부러워한다.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기분도 결국 습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을 잘 파악하기만 한다면, 그 상황에 맞는 심리 도구를 활용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안을 다스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등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100가지 비밀의 심리 도구를 '마음 주치의' 사샤 바힘은 <내 기분 사용법>에서 공개한다.


내가 흔히 갖는 감정엔 어떤 심리 도구로 처방해야 할까? 몇 가지 소개한다.

나는 약간의 실수도 받아들이지 못해 철저히 준비하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처방전은 그 예상되는 실수를 과감하게 해보라는 것이다. 실수해 보면 결과가 내 걱정과 달리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알게 될 것이고, 완벽주의가 더 많은 실수를 불러올 수 있어 오히려 덜 완벽한 전략이 성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라는 것이다.

잡생각을 쉽게 버릴 수 없다면? 제시한 세 가지 심리 도구 중에 하나는, 비치볼을 물속으로 집어넣으려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더 거세게 떠오를 테니, 밀고 들어오는 잡념을 그냥 순수히 받아들이라는 처방이다. 그러면 역으로 생각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두려움을 직면해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내가 갖고 있는 경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파울 바츨라비크는 그의 저서 <불행으로의 안내>에서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코끼리를 겁주어 쫓아버리기 위해서죠."
"코끼리요? 하지만 여기에는 코끼리가 없는데요?"
"바로 그거죠! 그래서 없어졌잖아요!" (p. 315)'

두려움을 직면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손뼉을 쳐야 하고, 박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 손으로 그 어떤 것도 영원히 할 수 없다.


사샤 바힘이 내놓은 100가지 심리 도구 모두가 현실적인 조언이라 매력적이다. 100가지 처방전인 담긴 구급상자와 같은 책이다. 상자를 열어 내 감정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처방전을 꺼낼 수 있다. 처방을 안다고 바로 처방대로 변화를 꾀해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다스리고 해결하는 처방전을 곁에 비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도구 상자가 잘 보관되어 있다면 좋은 일이다. 살다 보면 '밸브 스템실'을 갑자기 교체해야 할 일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니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보수공사에 대한 참고 자료로 이 책을 대하면 좋겠다. 어쩌면 당신에게 맞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p. 374)'

달라진 삶을 살수 있는 도구,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들어가기 전, 잠시 서서 처방전을 살펴보고 심호흡한 다음 기분을 전환하고 문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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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Man No Man
김선우.조성빈 지음 / 박영스토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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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즉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좋지 않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항상 불편하다. 그런데 <YES MAN NO MAN>에 등장하는 두 청년의 삶이 그 불편함을 약간이나마 해소시켜 주었다. 이 책의 두 저자 조성빈, 김선우는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호기롭다.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1998년 개봉>에서 커리어 우먼인 주인공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지하철을 탔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 주인공 앞에 펼쳐지는 삶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우리 삶은 선택이 쌓여 이루어진다. 선택할 때 그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 이번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야 할지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탈지를. 잠시 유보할 수도 있지만, 결국 선택해야 한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갈림길을 제시한다.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에 두 조성빈은 Yes!를 선택해 안정을, 김선우는 No!를 선택해 도전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고 이와 달리 잘하는 일을 선택했다. 만들어진 길을 선택해 걸어간 반면에 만들어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인생에 잘한 선택, 그렇지 못한 선택을 없다. 다만 선택의 결과를 바라보는 자세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이 책을 읽고 기분이 좋아진 이유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를 바라보는 두 저자의 자세 때문이다. 후회 없는 당당함이 차고 넘친다.

많은 청년들이 이 두 저자의 선택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생에서 좌절을 지워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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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샤우트
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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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관습이다. (...) 노예들은 일요일에 쉬는 시간을 얻으면 샤우트를 하곤 했다. 혹은 몰래 숲속으로 들어갔다. (...) 샤우트는 사실 노래가 아니라 동작이다. 윌 아저씨는 이런 샤우트에 가장 큰 힘이 있다고 한다. 노예 시절에서 살아남고,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그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느님을 부르는 샤우트에. (p. 46, 47)'

여럿이 함께 발을 구르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노래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춤추는 링 샤우트는 평생 힘들게 일만 하다 죽어가는 미국 남부 노예들에게 위로가 됐다.

'노예들은 큰 소리로 노래해 대니얼에게 알렸지! 그 샤우트를 할 때 우리는 대니얼에게 "움직이고" "흔들어"라고 해. 주인의 채찍질을 피하도록!(웃음) 가장 지독한 시절에도 우리는 즐길 줄 알았어.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p. 70)'

주인 창고에서 고기를 훔치는 록 대니얼에게 주인이 창고로 가고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의 샤우트다. 구전과 관습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샤우트 스토리에는 해학과 유희가 담겨있었고, 노예들이 세상에 맞서도록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링 샤우트>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인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넣어 구성한 판타지 소설이다. 흑마술로 만들어진 '쿠 클럭스'가 극성을 부리며 악의 힘을 전파한다. 신비한 검을 가진 마리즈 부드로와 그의 친구들, 셰프 에마와 에마의 동지 셋, 시티와 라이플총을 메고 다니는 세라 그리고 이들 무리를 돕는 진 할머니, 윌 아저씨 등이 쿠 클럭스가 불러들인 괴물과 싸워 물리치는 이야기다.


'클랜은 여전히 존재한다. 쿠 클럭스도 여전히. 이 검은 흑인 모두가 겪은 고통에서 얻은 분노를 품고 있다. (...) 검은 내게 전해졌다. 내 것이 되어 여기서 지금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아직은 이 검을 버릴 때가 아니다. 게다가 내 마음속 몇 가지 복수심은 아직 풀어야 한다. (p. 240)'

클랜과 쿠 클럭스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테러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주인공인 마리즈는 쿠 클럭스로부터 가족을 모두 잃은 흑인 여성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국가의 탄생(1915년)>은 KKK단을 미화하며 사라져가던 이 단체를 다시 살아나도록 영향을 끼친 영화로 알려져 있다. 마리즈와 쿠 클럭스의 싸움은 지금도 미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인종차별에 맞선 유색인종의 저항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차별의 문제는 그 어떤 합리성과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피부색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구실로 삼는다. 이 이야기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불타는 증오심으로까지 번진다. 분별이 없는 증오는 위협이 되질 않는 약자를 향한다.


'하지만 사실 싸움도 안 된다. 내가 지닌 것은 투쟁과 맹렬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가 지닌 것은 증오에 찬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에는 영혼의 흔적도 없다. (p. 219)'

함께 노래하고 외치며 춤을 추는 약자들의 링 샤우트, 조상들로부터 전해지는 영혼이 깃든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즐기며 아픔을 이겨내는 자들의 연대를, 증오는 당해내지 못한다. 증오는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하고 영혼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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