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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샤우트
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6월
평점 :
'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관습이다. (...) 노예들은 일요일에 쉬는 시간을 얻으면 샤우트를 하곤 했다. 혹은 몰래 숲속으로 들어갔다. (...) 샤우트는 사실 노래가 아니라 동작이다. 윌 아저씨는 이런 샤우트에 가장 큰 힘이 있다고 한다. 노예 시절에서 살아남고,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그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느님을 부르는 샤우트에. (p. 46, 47)'
여럿이 함께 발을 구르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노래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춤추는 링 샤우트는 평생 힘들게 일만 하다 죽어가는 미국 남부 노예들에게 위로가 됐다.
'노예들은 큰 소리로 노래해 대니얼에게 알렸지! 그 샤우트를 할 때 우리는 대니얼에게 "움직이고" "흔들어"라고 해. 주인의 채찍질을 피하도록!(웃음) 가장 지독한 시절에도 우리는 즐길 줄 알았어.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p. 70)'
주인 창고에서 고기를 훔치는 록 대니얼에게 주인이 창고로 가고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의 샤우트다. 구전과 관습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샤우트 스토리에는 해학과 유희가 담겨있었고, 노예들이 세상에 맞서도록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링 샤우트>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인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넣어 구성한 판타지 소설이다. 흑마술로 만들어진 '쿠 클럭스'가 극성을 부리며 악의 힘을 전파한다. 신비한 검을 가진 마리즈 부드로와 그의 친구들, 셰프 에마와 에마의 동지 셋, 시티와 라이플총을 메고 다니는 세라 그리고 이들 무리를 돕는 진 할머니, 윌 아저씨 등이 쿠 클럭스가 불러들인 괴물과 싸워 물리치는 이야기다.
'클랜은 여전히 존재한다. 쿠 클럭스도 여전히. 이 검은 흑인 모두가 겪은 고통에서 얻은 분노를 품고 있다. (...) 검은 내게 전해졌다. 내 것이 되어 여기서 지금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아직은 이 검을 버릴 때가 아니다. 게다가 내 마음속 몇 가지 복수심은 아직 풀어야 한다. (p. 240)'
클랜과 쿠 클럭스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테러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주인공인 마리즈는 쿠 클럭스로부터 가족을 모두 잃은 흑인 여성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국가의 탄생(1915년)>은 KKK단을 미화하며 사라져가던 이 단체를 다시 살아나도록 영향을 끼친 영화로 알려져 있다. 마리즈와 쿠 클럭스의 싸움은 지금도 미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인종차별에 맞선 유색인종의 저항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차별의 문제는 그 어떤 합리성과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피부색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구실로 삼는다. 이 이야기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불타는 증오심으로까지 번진다. 분별이 없는 증오는 위협이 되질 않는 약자를 향한다.
'하지만 사실 싸움도 안 된다. 내가 지닌 것은 투쟁과 맹렬한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가 지닌 것은 증오에 찬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에는 영혼의 흔적도 없다. (p. 219)'
함께 노래하고 외치며 춤을 추는 약자들의 링 샤우트, 조상들로부터 전해지는 영혼이 깃든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즐기며 아픔을 이겨내는 자들의 연대를, 증오는 당해내지 못한다. 증오는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하고 영혼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