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새들의 섬
김명진 지음 / 행복우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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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한 번에 세 번 하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시기, 직접 다니며 경험하는 기간, 다녀와서 정리하며 추억하는 순간들. (p. 26)'

앞서 출간한 <오리도 날고 우리도 날고>는 저자가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 여행에서 서로 다름을 알아가면서 둘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지는 값진 선물을 아빠와 아들이 받았다. <날지 못하는 새들의 섬>은 삼대(삼대), 세 남자의 뉴질랜드 일주 여행기다. 삼대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한 달 일정을 계획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해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도 선물을 받았다.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이 섬에는 펭귄, 앵무새 카카포, 타카헤, 푸케코 따위의 날지 못하거나 날더라도 멀리 갈 수 없는 희귀한 새들이 있다. 뉴질랜드 하면 생각나는 새이기도 하고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 새가 날지 못하는 새의 대표격이다.

먼 옛날 뉴질랜드는 포유류도 없고 외딴섬이기도 해 새들의 천국이었다. 새들을 해칠 동물이 없다 보니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다. 날개의 필요도 사라지고 마침내 날개가 퇴화됐다.

김명진 작가는 육아휴직을 하고 아들과 여행했다. 사십 대 초반, 이른 나이에 퇴직하고 아들과 일 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다. 나는 방법을 잊기 전에 날개가 퇴화하기 전에 날개를 펼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저자에게 날개를 물려준, 곧 여든 살에 접어드는 아버지에게 이번엔 아들이 날개를 달아주었다.


손주와 한 달 가까이 날아다닐 걸 생각한 할아버지는 겁이 덜컥 났다. 날갯짓이 힘겨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과 손주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날개를 펴서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날개를 단련했다. 로드 트립에 도움이 되고자 국제운전면허증도 준비해 두었다.

아들과 번갈아가며 운전도 했다.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이 행복했다. 파란 물감을 쏟아부은듯한 푸카키 호수, 장엄한 산과 독특한 호수의 후커밸리, 팬케이크 바위는 창조주의 위대함을 보고도 남는 풍광이었다. 거센 풍랑을 만나 공포에 떨기도 했고, 퉁가리 국립공원에서 난생처음 7시간 걷기도 했다. 손주 뒷바라지를 맡는 바람에 같이 하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썩어 없어질 것에 마음을 두고 무사안일하게 살아왔던 내가 원망스럽다.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현실에 취해 방황했던 과거가 아쉽기도 하다. 아까운 시간들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하니 후회가 된다. 이제라도 주어진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미래를 힘차게 열어갈 것이다. (pp. 213, 214, 할아버지 후기)'


힘들었지만 아버지와 아들, 삼대가 함께한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번 여행에서 아들과 가까워졌다면 이번 여행에선 아버지와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이 준 선물이었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제이다. - 대니얼 브레이크 (p. 217)'


김명진 작가가 가족과 함께 다시 날아오를 꿈을 꾸고 날아올랐듯이 나도 날아볼 꿈을 꿔본다. 퇴직 선물로 받은 여행상품권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앞으로 3년 안에... 딸아이는 올가을이 어떠냐고 한다. 우리 가족도 여행을 한다면... 그 여행에서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벌써 설렌다.

여행은 한 번에 세 번 하는 것이다. 준비하면서, 실행하면서, 정리하면서. 나도 짧게나마 기록하고 추억하며 가족여행을 끝내볼까 한다. 마지막으로 날아오르는 가족여행 일지도 모를 그 여행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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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도 날고 우리도 날고 연시리즈 에세이 9
김명진 지음 / 행복우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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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설렘 속에 계획을 한다. 설렘은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불안함도 생긴다.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마음 말이다.

이와 달리 김명진 작가가 계획한 아들과 함께한 여행은 약간 불안함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불쑥불쑥 엉뚱한 일이 생기곤 하니 책으로 써야 할 만큼 할 이야기도 많다.

쉬는 날 없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뿌듯하게 여겼던, 그래서 아이들과 추억이 없는 나에게, 아이와 함께 한 여행기는 내내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읽을 수밖에...


여행하며 겪는 우여곡절은 짜증, 웃음, 애틋함과 같은 여러 감정을 나누게 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도 아빠와 아들은 다르다. 여행은 그 다름을 서로 알게 한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알아가며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서먹함이 없어지고 둘의 사이는 좀 더 가까워진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아빠 힘들면 도망가!"라는 11살짜리 아이의 한마디로 시작된 여행은 뭔가 얽매고 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여행이 됐다. 누구나 얽매인 삶을 싫어하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는 않는다. 용기 없음을 드러내기 싫어 핑계를 댄다. 우리 인생에 "아빠 힘들면 도망가!"라는 경고를 몇 번이나 듣게 될까? 또 몇 번이나 무시하며 우리는 살까?


육아휴직 1년, 퇴직 후 1년이란 시간을 아들과 7번의 세계여행으로 채우기로 하고 실행에 옮긴 여행 이야기 <오리도 날고 우리도 날고>는 대단한 선택이 담은 책이다. 계획했을 때 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핑곗거리가 생겨 절대 할 수 없는 여행이란 걸 눈치챈 작가는 무모한 여행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꿈을 꾸듯 행복한 여행이었다.

추억은 사랑하는 이와 같이한 시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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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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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SF의 거장 브래드버리는 매일 시를 읽으라고 조언한다. 시가 스스로 코, 눈, 귀, 혀, 손을 계속 의식하게 만들어 '감각을 확장하고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어서 시를 '바람이 부는 날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를 자유롭게 달려가는 말을 눈으로 읽듯' 읽을 것을 권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를 읽을 때조차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라는 뜻이 담겼다.

시를 읽어보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과 나무를 소재로 노래한 시선집이다. 김승희, 김소월, 김영랑 등 우리나라 시인을 비롯해 외국 시인까지 서른세 명의 시를 뽑아 엮었다. 이 시집의 표제로 삼은 '모든 슬픔을 사라진다'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미선나무의 꽃말이다.

김승희는 시 <미선나무에게>에서 미선나무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
산수유가 피고 생강나무가 피고 미선나무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철쭉이 피는...
(p. 15, <미선나무에게> 중에서)'

사랑의 말은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는 그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감정이 아픔이든지, 기쁨이든지, 공허함이든지, 벅찬 마음이든지... 아님 슬픔이든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침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봄날에 꽃이 이어 피듯이 동백에게 못했다면 매화에게 사랑의 말을 전해야 하고, 생강나무에게, 산수유에게...미선나무에게... 전해야 한다. 이어서 피는 꽃과 나무가 있어 봄날이 계속되듯이 누군가에게는 말을 전해야 사랑이 되어 슬픔이 사라진다.

'밀양 덕천댁 할머니가 김말해 할머니가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듯이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고
......
5.18 엄마들이 4.16 엄마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분홍 미선, 상아 미선, 푸른 미선아
......
(p. 16, <미선나무에게> 중에서)'

연인을 떼어 놓으면 떼어 놓을수록 그들 사랑의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듯이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는다면 슬픔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전하도록, 편지를 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슬픔은 사라진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깊은 슬픔이 있다. 충분히 애도할 수 없으니... 슬픔을 내놓을 수 없으니... 그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꽃과 나무에 감각을 실어 노래한 서른세 명의 시는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모든 감각을 끄집어내 이 시들을 읽는다면... 시의 감각들이 건네는 위로가 우리의 슬픔을... 어쩌면 사라지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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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걷는 이 길이 참 좋아 - ‘기승전-딸’을 외치는 딸 바보 아빠의 성장기
이길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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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섯 살 딸아이를 둔 딸바보 아빠다. 어느 날 모처럼 딸아이와 나들이했는데 비가 와 걱정이다. 그러나 딸아이는 그렇지 않다.

'"비가 와서 참 다행이다."
'아이도 내심 비 오는 감성을 즐기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딸아이가 말을 이어갑니다.
"꽃이랑 풀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잖아." (p. 5)'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에 친숙하다. 아이의 생각이 우리의 걱정 반대편에 있는 경우 말이다. 부모는 이런 아이의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신기하게 여긴다. 자신도 그 시기를 지나와서 그런 시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없다. 순수하고 아름답게 세상 보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너랑 걷는 이 길이 참 좋아>는 딸바보 아빠가 여섯 살 딸아이와 함께 걸으며 깨달음을 얻는 성장 기록이다. 아니 성장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동심을 찾아 되돌아가는 탐색 기록 일지도 모르겠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이가 즐겨 부르는 동요의 가사입니다. '산에 피어도, 들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p. 46)'

부모가, 딸바보 아빠가 아이를 향한 걱정은 순수함을 가진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녹록지 않아 보여서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아빠가 본 세상은 희망보다는 절망뿐이다.

산에 피어도, 들에 피어도, 길가에 피어도 모두 다 꽃인데... 사람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모두 다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잣집 아이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난한 집 아이일 뿐이다. 부모의 사정에 따라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정해진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그냥 장애인이다.

아이는 '모두가 다 꽃이야'라고 노래 부르지만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은 '좋은 꽃이 있고 나쁜 꽃도 있다'라고 볼 뿐이다.

내 아이는? 그리 든든한 버팀목이 아닌 아빠를 둔 내 아이는? 그래서 걱정한다. 언젠가 그 변변치않은 버팀목마저 빼내어야 하기에 불안하다. 딸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는 내 마음도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영어 가사의 노래를 듣던 저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노래의 가사가 한글이었다면?
'그렇습니다. 때론 가사를 모르는 무지함이 그 노래가 전해주는 감동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p. 208)'

아이가 마주할 세상을 순수함을 잃어버린 셈법으로 너무 분석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아닌지.

딸아이와 지낸 하루하루를 글로 적다 보니, 저자는 여섯 살 딸아이가 가진 세상을 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 놀러나갈 때 지닌 설렘 한 바구니, 그 아이가 바라보는 희망을 보고 오히려 자신이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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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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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가 글쓰기 이론이나 규칙을 알려주기보다는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담은 책이어서 그렇다.

SF 소설 <화씨 451>, <화성 연대기>로 널리 알려진 '단편의 제왕' 브래드버리는 70여 년 동안 작가 생활을 이어나갔다.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고 단편소설만 300여 편을 남겼다. '글을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불안해지고 이틀이면 몸이 떨리고 사흘이면 미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p. 8)'라고 할 정도로 그는 그의 삶으로 글쓰기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브래드버리가 글쓰기에 가졌던 열정과 사랑을 읽어가노라면 각자 자신들이 글쓰기에 쏟아붓는 열정과 사랑을 덧대며 위로를 얻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들으면서 오히려 글을 쓸때 내가 겪는 힘듦을 친구에게 마구 털어놓고 토닥임을 받는 느낌이랄까?


글감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의 태만을 정당화해온 나에게 브래드베리가 만든 표제 목록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나열해 놓은 단어들은 자극이 되었고 더 좋은 글감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표제 목록에서 단어들을 하나씩 뽑아 열두 살 때부터 매일매일 1,000단어씩 글을 썼다. 그렇게 삶에서 모은 단어들은 그가 쓴 소설에 포함되었다.

'이제 노트, 펜 그리고 표제 목록을 들고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만의 계단 밑에 있어보자. 단어를 떠올리고, 잠재된 자아를 깨우고, 어둠을 느껴라, '나만의 그것'이 저 위 어두운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부드럽게 읊조린다면, 종이 위로 튀어나오려는 오래 묵은 단어들을 써 내려간다면... 계단 꼭대기에 있는 나만의 그것이 나만의 은밀한 밤에... 분명 내려올 것이다. (p. 44)'


뮤즈, 예술가에게 사랑하는 이가 뮤즈라면, 작가에게 뮤즈는 잠재의식이다. 브래드버리는 이 뮤즈에게 음식과 물을 먹였고 뮤즈는 성장했다. 그 과정을 느낄 수 없었지만 변화하는 모습은 가끔 확인할 수 있었다. 뮤즈에게 어떤 음식과 물을 먹였을까?

매일 시를 먹였다. 시는 자주 쓰지 않는 근육을 풀어주었다. 접어놓은 종이꽃 같은 은유를 시를 읽어 활짝 펼칠 수 있었다. 에세이도 뮤즈에게 좋은 음식이다. 색, 소리, 맛, 질감의 감각을 키워주었다. 그 감각은 독자를 자극해 실제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당연히 소설도 먹였다.

'내가 쓰고 싶은 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 내가 생각하고 싶은 식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라. 그러나 또한 전혀 그렇지 않은 작가의 책도 읽어라.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극을 받자. (p. 55)'

뮤즈는 크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좋아해 다양한 인물들이 큰 소리로 부딪혀 대립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뮤즈는 '진솔한 사랑이 이야기를 할 때, 진정한 감동이 시작될 일어날 때, 증오가 연기처럼 몸을 휘감을 때 ( p. 60)' 평생 우리 곁을 지키고 떠나지 않는다.


'세 단어를 다시 보자. 순서는 원하는 대로 놓아도 좋다. 일, 이완, 생각 비우기. 한때는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과정 안에 있다. 일을 하면 결국 이완되고 생각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만 진정한 창조가 일어난다. (p. 175)'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일'이다. 글쓰기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1,000~2,000단어씩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글의 질이 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양은 경험을 가져다준다. 경험이 쌓이면 일 자체에 리듬이 생기고 기술적인 부분이 줄어들어 몸이 주도권을 가진다. '이완'된다. 이완과 함께 생각을 비우게 되고 '더 많은 생각 비우기'는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마주하는 것은 만화를 사랑하던 아홉 살짜리 꼬마다. 만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친구들의 비웃음에 굴복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기로 한 소년 말이다. (p. 203)'

그 소년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래서 좋았고 신났다. 성장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이 때때로 바뀌었지만 열광, 열정,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브래드버리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글을 쓰고 싶었고 열정은 불타올랐다. 쾌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글 쓰는 이유는 생존이었다. 그는 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다.


글쓰기에 용기를 내봄직했다.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몰입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 말이다. 글쓰기는 생존이고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곧 죽음이란 각오를 한다면?... 다시 한번 용기가 생겼다.

'매일 아침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지뢰를 밟는다. 지뢰는 나다. 지뢰가 터지고 난 뒤, 나는 파편을 끌어모으는 데 남은 하루를 다 쓴다. 이제, 당신 차례다. 뛰어들어라!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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