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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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가 글쓰기 이론이나 규칙을 알려주기보다는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담은 책이어서 그렇다.

SF 소설 <화씨 451>, <화성 연대기>로 널리 알려진 '단편의 제왕' 브래드버리는 70여 년 동안 작가 생활을 이어나갔다. 소설, 시,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고 단편소설만 300여 편을 남겼다. '글을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불안해지고 이틀이면 몸이 떨리고 사흘이면 미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p. 8)'라고 할 정도로 그는 그의 삶으로 글쓰기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브래드버리가 글쓰기에 가졌던 열정과 사랑을 읽어가노라면 각자 자신들이 글쓰기에 쏟아붓는 열정과 사랑을 덧대며 위로를 얻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철학을 들으면서 오히려 글을 쓸때 내가 겪는 힘듦을 친구에게 마구 털어놓고 토닥임을 받는 느낌이랄까?


글감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의 태만을 정당화해온 나에게 브래드베리가 만든 표제 목록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나열해 놓은 단어들은 자극이 되었고 더 좋은 글감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표제 목록에서 단어들을 하나씩 뽑아 열두 살 때부터 매일매일 1,000단어씩 글을 썼다. 그렇게 삶에서 모은 단어들은 그가 쓴 소설에 포함되었다.

'이제 노트, 펜 그리고 표제 목록을 들고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만의 계단 밑에 있어보자. 단어를 떠올리고, 잠재된 자아를 깨우고, 어둠을 느껴라, '나만의 그것'이 저 위 어두운 다락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부드럽게 읊조린다면, 종이 위로 튀어나오려는 오래 묵은 단어들을 써 내려간다면... 계단 꼭대기에 있는 나만의 그것이 나만의 은밀한 밤에... 분명 내려올 것이다. (p. 44)'


뮤즈, 예술가에게 사랑하는 이가 뮤즈라면, 작가에게 뮤즈는 잠재의식이다. 브래드버리는 이 뮤즈에게 음식과 물을 먹였고 뮤즈는 성장했다. 그 과정을 느낄 수 없었지만 변화하는 모습은 가끔 확인할 수 있었다. 뮤즈에게 어떤 음식과 물을 먹였을까?

매일 시를 먹였다. 시는 자주 쓰지 않는 근육을 풀어주었다. 접어놓은 종이꽃 같은 은유를 시를 읽어 활짝 펼칠 수 있었다. 에세이도 뮤즈에게 좋은 음식이다. 색, 소리, 맛, 질감의 감각을 키워주었다. 그 감각은 독자를 자극해 실제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당연히 소설도 먹였다.

'내가 쓰고 싶은 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 내가 생각하고 싶은 식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책을 읽어라. 그러나 또한 전혀 그렇지 않은 작가의 책도 읽어라.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극을 받자. (p. 55)'

뮤즈는 크고 열정적인 목소리를 좋아해 다양한 인물들이 큰 소리로 부딪혀 대립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뮤즈는 '진솔한 사랑이 이야기를 할 때, 진정한 감동이 시작될 일어날 때, 증오가 연기처럼 몸을 휘감을 때 ( p. 60)' 평생 우리 곁을 지키고 떠나지 않는다.


'세 단어를 다시 보자. 순서는 원하는 대로 놓아도 좋다. 일, 이완, 생각 비우기. 한때는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과정 안에 있다. 일을 하면 결국 이완되고 생각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만 진정한 창조가 일어난다. (p. 175)'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일'이다. 글쓰기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1,000~2,000단어씩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글의 질이 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양은 경험을 가져다준다. 경험이 쌓이면 일 자체에 리듬이 생기고 기술적인 부분이 줄어들어 몸이 주도권을 가진다. '이완'된다. 이완과 함께 생각을 비우게 되고 '더 많은 생각 비우기'는 창의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마주하는 것은 만화를 사랑하던 아홉 살짜리 꼬마다. 만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친구들의 비웃음에 굴복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기로 한 소년 말이다. (p. 203)'

그 소년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래서 좋았고 신났다. 성장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이 때때로 바뀌었지만 열광, 열정, 즐거움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브래드버리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글을 쓰고 싶었고 열정은 불타올랐다. 쾌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글 쓰는 이유는 생존이었다. 그는 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다.


글쓰기에 용기를 내봄직했다.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몰입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 말이다. 글쓰기는 생존이고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곧 죽음이란 각오를 한다면?... 다시 한번 용기가 생겼다.

'매일 아침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지뢰를 밟는다. 지뢰는 나다. 지뢰가 터지고 난 뒤, 나는 파편을 끌어모으는 데 남은 하루를 다 쓴다. 이제, 당신 차례다. 뛰어들어라!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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