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택배 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김희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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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 김희우는 청년 사업가였다. 믿었던 동료의 배신으로 사기를 당했고 1년 6개월 넘게 방에 틀어박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통장의 돈은 2,000만 원에서 20만 원이 됐다. 그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땀 흘린 만큼 돈을 버는 택배 일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노동으로 그간 입었던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일을 하며 공부도 하고 소중한 꿈을 간직하게 됐다.

'이 책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축소판인 택배 산업 현장에서 일한 육체노동자의 이야기이자, 막다른 상황에 처한 20대 청년의 생존기이다. (p. 8)'


지금 열심히 일하며 스물여덟 살 청년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큰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른 나이에 좌절을 맛봤지만, 스스로 일어나 자본주의 시스템을 땀으로 견뎌내는 청년 김희우에게 더더욱 애정이 생겼다. 큰 아이, 김희우 작가 그리고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는 왜 청년들이 측은해 보일까. 지난 나의 청년 시절을 돌아봐도 그렇다. 큰 아이 그리고 청년 택배기사 김희우를 비롯한 모든 청년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땀을 많이 흘리면 흘릴수록 더 가엾게 여겨진다.

청년 시절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성공을 향해 달렸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는 것이 그 시절 나의 성공이었다. 몸이 잘 받지 않았지만 술을 먹었고, 밤늦게까지 일했고 새벽에 출근했다.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 보며 행동했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다른 곳에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시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도 했다. 딱 그만큼 절망이 유예됐다.

지금 청년들이 안쓰러운 건 청년인 내가 가졌던 성공마저 희미해졌다는 거다. 점점 치밀하게 시스템을 갖춘 자본주의는 아이들의 기회마저 빼앗았다. 거기에 더해 차별까지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고선이라는 자본주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착취까지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난 왜 이리 게으를까.' '내 잘못이지.' '내 노력이 부족한 거야.' 끊임없이 스스로 비난하며 착취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땀을 흘리려고 한다.


'택배는 절박함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택배 기사는 하루에도 수천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는 것은 사치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지금의 고생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필요한 기초 체력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매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그만두기에 나는 너무 절박했다. (p. 255)'

지금도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큰 아이와 청년 김희우, 그리고 모든 청년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절박함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하늘도 좀 쳐다보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주변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걸 눈치챘으면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살지만 그 시스템 너머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청년 시절과 다른 청년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어도 이겨낸 사람이 많구나. 좌절을 딛고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같이 절망했던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도 있구나. 그렇게 나의 뇌는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p. 257)'

땀 흘리는 맛도 있지만 땀이 바람에 식을 때 그 맛도 느껴보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 짐도 무거운데 남의 짐까지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 치는 것 같지만 혼자 짐을 너무 많이 걸머지고 가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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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미나토 쇼 지음, 황누리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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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모든 사람은 죽는다. 다만 언뜻 죽음을 잊고 살 뿐이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 상황을 달라진다. 죽음을 의식하게 된다.

하여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행복하게 살든 불행하게 살든 결국 언제인지 모를 뿐 결국 죽음에 이르른다. 그렇다면 돈의 많고 적음과 달리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어떻게 살다 죽고 싶은가. 행복하게? 불행하게? 답은 뻔한데,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나?


죽을 때를 기다리는 사키무라 리이와 죽을 때를 놓친 무로사키 토우야, 이 두 운명의 이야기다.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할 이들이 죽음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났다. 토우야는 스노보드 경기를 하던 중 큰 사고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리이는 백 끼의 식사가 끝나면 죽는 '여명백식'이라는 병에 걸려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여명백식餘命百食
식사할 때마다 여명지수라는 명칭의 체내 수치가 감소하고, 그 수치가 0이 되면 몸의 기능이 정지하여 죽음에 이르는 기묘한 병. 현재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환자는 오로지 밥을 먹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진단받는 시점에는 대체로 남은 식사 횟수가 백 끼 정도이므로 여명백식이라는 병명이 붙었다고 어디에선가 들었다. (p. 21)'

리이는 기왕 이상한 병에 걸렸으니 남은 백 끼를 맛있는 것만 먹은 다음 죽기로 결심한다. 맛집 여행을 함께 다닐 사람을 찾던 리이는 사고 이후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토우야를 만나 같이 여행하자고 제안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토우야는 자신과 다르게 마지막 식사까지 마음껏 즐기겠다는 리이의 긍정적인 마음이 알고 싶어 같이 다니기로 한다. 리이는 매 끼니 행복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응. 쌍둥이자리 유성군은 10년에 한 번꼴로 극대기가 찾아온대. 예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별이 무수히 쏟아진다나. 그게 올해인 모양인데 나는 못 봐. 예정대로라면 쌍둥이자리 유성군이 피크인 날 점심이 내 마지막 점심 식사거든. 아마 난 그때 죽을 테니까." (p. 104)'


이 둘 앞에 기적이 기다리고 있다.

리이에게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져 있지만 이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 사랑의 힘으로 토우야는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전일본스키선수권대회 하프파이프 종목에서 착지가 흔들려 4위에 그쳤지만 최고 높이 7.5미터를 기록하며 세계신기록 수립한다.

사랑의 힘으로 리이는 여명백식 사상 처음으로 백 끼 수명을 넘어 한 끼를 더 먹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동안 사랑을 키웠던 토우야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며 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쌍둥이자리 유성을 올려다본다. 소원도 빈다. 그리고 리이의 트레이드 마크, 영원토록 들을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아,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어차피 죽는 데 사랑은 무슨...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기적을 외면하고 밥맛이 없다며 억지로 끼니를 때운다면? 그런 삶은 불행하고 어리석은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우리 모두 죽을 거라는 걸 알지만 영원한 것이라도 되는 양 사랑을 한다. 기적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만들기까지 한다. 그저 우리가 외칠 말은 이것뿐이다. 살아서 즐길 수 있음을 감사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는 크게... "오늘 하루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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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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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는 인체 설계도로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이 들어있다. DNA는 원본이어서 안전하게 핵 속에 있다. 반면 mRNA는 생산해야 할 단백질의 레시피를 DNA에서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에 가져다주는 일종의 사본이다.

<돌파의 시간>은 이런 mRNA로 세상을 바꾼 헝가리 출신 커털린 커리코의 인생 스토리다. 자신의 연구가 언젠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학계의 폐쇄적 사고, 권위와 권력, 특권으로 움직이는 문화 속에서 묵묵히 연구를 해온 여성이다.

푸주한의 딸로 태어난 커리코는 어려서부터 꽃, 텃밭의 채소 등 주변 어디에서나 과학을 배웠다. RNA는 다루기도 쉽지 않고 연구 가치가 없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커리코는 RNA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커리코는 딸 수전의 곰 인형에 전 재산 900파운드를 집어넣고 남편, 어린 딸과 함께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에서 추방 협박은 물론 학계의 주목도 연구 지원도 제대로 못 받는 등 어려움을 겪지만 수많은 실험을 통해 마침내 mRNA를 사용해 세포 안에서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나는 이 일을 30년 동안 해왔다. 한 번에 하루씩, 한 번에 한 실험씩, 한 번에 한 연구실씩,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이 모두 여기에 있다.
실험실에서 mRNA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mRNA를 세포에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mRNA가 파괴되지 않게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슈도유리딘을 mRNA에 통합하여 mRNA가 염증성 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훨씬 더 많은 단백질을 번역했다. (p. 312)'

커리코는 그 누구의 관심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관심 가져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과학자의 길에 들어선 다음부터 타인의 인정이 아닌 연구에만 가치를 두었다. 그 결과 최고의 생화학자가 됐다.

'우리는 시험하고 변형하고 다시 시험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했다. 영어로 "연구가research"가 "다시 찾는다re-search"라는 뜻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연구자는 그냥 찾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찾고, 찾은 다음에도 또 찾는다. 계속, 계속, 계속해서. (p. 291)'

커리코가 점점 나아진 비결은 형사 콜롬보가 말하는 "한 가지만 더"였다.
'질문 한 가지만 더, 실험 한 번만 더,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 (...) 또 하고, 또 하고, 한 가지만 더, 한 번만 더. (p. 103)'

2021년 12월 내가 받은 백신 2차 접종은 모더나로 mRNA 백신이었다. mRNA 백신 덕분에 코로나19에서 벗어났다. mRNA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란 한 여성 과학자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커털린 커리코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하기까지 그녀에게 필요한 건 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녀를 향한 (또 누구에게나 필요한) 작은 응원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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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한다!
오스카 파리네티 지음, 안희태 그림, 최경남 옮김 / 레몬한스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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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 영국의 작가이자 미술사가인 호레이스 월폴 Horace Walpole 은 우리가 무언가를 찾다가 실수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을 묘사하기 위해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p. 8)'

<세렌디피티 Serendipity>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유명한 음식과 음료에 관한 이야기다. 실수나 착오, 사고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얻은 위대한 발견으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48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브라우니는 초콜릿 케이크 반죽에 효모 넣는 것을 깜박한 파티시에 덕분에 탄생했다. 아이스크림 서빙용 접시가 동이 났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옆 부스의 요리사 함위가 잘라비아를 콘 모양을 말아서 건넸다. 원뿔 모양의 아이스크림콘은 뾰족한 끝까지 다 먹을 수 있어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가나슈 Ganache!" 어느 유명한 제과 장인이 초콜릿 조각이 담긴 그릇에 무심결에 끓는 우유를 쏟아부은 한 순진한 견습생을 향해 내지른 소리였다. (p. 178, 초콜릿 가나슈)'

콩국을 만들다가 실수로 천일염을 넣는 바람에 두부를, 아몬드 케이크를 바쁘게 만드느라 밀가루를 빼고 만들어 카프리 케이크가 이 세상에 선보였듯 위대한 발명은 우연한 실수나 부주의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쓰는 동안 '궁극의' 세렌디피티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세렌디피티는 아마도 인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p. 9)'

만약 세상에 모든 것이 완벽했다면 어땠을까? 지루할 것이고 성장을 위한 자극제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저자인 오스카 파리네티의 생각이다. 불완전함이 더 나은 것을 만든다. 우리 인간도 이를 증명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세렌디피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왜 언제부터 우리가 두발로 서서 걷는 것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허리 통증, 요통, 신경통 등 여러 통증을 겪게 됐다. 상체를 세움으로써 드러난 머리를 지탱하는 목의 경동맥과 장기가 있는 부드러운 복부는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들이 노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돼버렸다. 출산의 고통도 얻었다. 직립보행은 대표적 불완전함이다.

하지만 직립보행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적응한 결과는 엄청나다.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하고 손과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됐다. 돌연변이도 DNA의 입력 오류라 할 수 있지만 돌연변이가 없었다면 진화도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우연이 우리를 창조했고, 이제 우리는 우연을 이용해 자연을 이해합니다. (p. 408)'

인간만이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것과 스스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 불을 발견해 익혀 먹는 등 문화나 기술 발명으로 유전자를 바꾸기까지 했다. 인간이 지닌 가장 매혹적인 세렌디피티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셈이죠, 문화가 먼저, 생물학이 그 뒤를 따른 겁니다. (p. 411)'
어쩌면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지방과 당분도 적응해 우리 몸에 이롭게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의 세렌디피티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 벌벌 떠는 대신 실수에서 배움을 얻는 열린 마음을 가진 결과다. 공동선을 우선으로 했고, 섣부른 확신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의심을 거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완전하지만 세렌디피티를 거듭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우리, 지금 직면한 기후 위기는 어떤 세렌디피티로 인류 스스로를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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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아이스 에디션)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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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삼성은 임원들의 주 6일 근무를 공식화했다. 주말에 출근해 무슨 일을 할까? 일상 업무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업무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원들 없이 임원 혼자 출근해 그런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창의, 도전이라면 집중력이 필요한 일인데 과연 가능할까?

그런가 하면 지난해 윤정부는 주 69시간(6일 기준)을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했었다. 다행히 제동이 걸렸지만, 주 5일에서 주 4일 근무로 움직이는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240명이 일하는 회사 퍼페추얼 가디언의 대표 앤드루는 주 4일 동안 일하도록 바꾸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한 달의 준비 시간을 준 다음 시행한 결과 직원들의 '정신 산만'을 보여주는 모든 징후가 급격히 줄었다. 소셜미디어를 하는 시간이 35퍼센트 줄었다. 참여도와 협동력은 30~40퍼센트 증가했고, 스트레스는 15퍼센트 하락했다.

'그는 추가로 생긴 휴식 시간이 직원들에게 두 가지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이 시간은 "미쳐 날뛰는 현대 생활에서 사라졌던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게 했다. (...) 둘째로, "직원들은 본인들이 '나만의 시간'이라 부르는 것이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p. 297)'

이런한 연구와 사례가 수두룩함에도 삼성과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사례를 볼 때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개인의 힘으로 맞서는 건 달걀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든다.


2023년 최고의 화제작이며 세계적으로 찬사가 쏟아진 <도둑맞은 집중력>은 집중력을 상실한 이유와 그 집중력을 어떻게 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지를 다룬 흥미로운 분석이 담긴 책이다. 요한 하리는 집중력을 잃게 된 원인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서 살펴본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집중력을 도둑맞았을까? 요한 하리는 그 원인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착각, 잃어버린 몰입의 즐거움, 떨어진 수면의 질, 스크린에 빼앗긴 소설 읽기 능력, 딴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 무한 스크롤로 우리들을 통제하는 거대 테크 기업의 권력, 분노에 빠지게 하는 알고리즘, 과도한 노동시간, 값싸고 형편없는 식사, 놀이를 빼앗아 간 학교 교육 등을 꼽는다.

'사람들이 꼽은 집중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핸드폰이 아니었다. 응답자의 48퍼 센트가 지목한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두 번째 이유는 출산이나 노화와 같은 생활 변화로, 이 역시 48퍼센트의 지목을 받았다. 세 번째는 43퍼센트가 선택한 수면의 어려움 및 수면 방해였다. 핸드폰은 37퍼센트의 선택을 받아 4위에 올랐다. (p. 270)'

이 모든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배후에 사회적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 권력을 개인을 설득하기 위해 잔혹한 낙관주의를 들고나왔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비만이나 우울, 중독처럼 우리 문화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언어로 단순한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p. 233)'

저자는 '잔혹한 낙관주의'는 얄팍한 해결책으로 '문제는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니라 네 안에 있어'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중력을 되찾으려면 개인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인정하고, 모두 협력해서 장애 세력을 하나씩 해체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 높이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 우리도 적용할 만한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사전 약속으로 지나친 전환을 멈추려 노력한다. 스스로 게으르고 부족하다고 자책하기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몰입 상태를 추구한다. 소셜미디어를 주 단위로 나누어 6개월은 사용하지 않는다. 딴생각을 하도록 생각이 배회하게 내버려둔다. 여덟 시간 잠잔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시간을 준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함께 싸워서 얻어야 할 것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알고리즘에 중독된 이상 집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를 통제하는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주 4일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늘 탈진 상태에 있는 한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아이들의 건강한 집중력 발달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금 꼭 집중력을 회복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 위기, 깨끗한 녹색 에너지로 사회에 동력을 공급하려면, 정신없이 3분마다 작업 전환을 하고 알고리즘이 주는 분노로 서로 다툴 시간이 없다. 집중해서 분별력 있는 대화를 나누며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어야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제임스 윌리엄스가 한 말을 떠 올렸다. "나는 중요한 정치적 투쟁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어쩌면 인간 집중력의 해방이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도덕적, 정치적 투쟁일지 모른다. 이 투쟁의 성공이 선행되어야만 사실상 다른 모든 투쟁이 성공할 수 있다." (p.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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