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이 한 달로 성큼 다가왔다.

​

난생 처음 겪는 내집마련,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 아이들의 전학, 대출 갚는 인생으로의 첫 시작 등 모든 것이 겁이 난다.

아이들은 친구들이 우리가 이사 가는 지역에 불량아들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며 놀린다고 한다.

미국에서 발표한 CPI 또한 유가로 인해 예상치 상회했다는 소식에 금리 인상 가능성에 빨간등이 켜졌다..

​​

집을 사기로 결심한 이후 한 순간도 마음 편한 날들이 없다.

​

이게 정말 잘 한 결정일까?

너무 무리한 게 아닐까?

​

하루에도 수십번 드는 걱정에 무언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

그래서 나는 <내 삶에서 비워내고 싶은 한 가지>에 '걱정'과 '불안'을 비워내고 싶다.

​

걱정은 그만하고 내 앞의 일들에 집중하고 싶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 「수면 위로」라는 단편에서 남자 기진의 엄마는 매일 자신이 죽는 꿈을 꾼다.

​

그 꿈이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며 삶의 모든 의욕을 잃는다.

​

점을 잘 본다는 중국집 할머니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며 해몽해달라고 말한다. 당연히 불행을 말해주는 꿈이리라 생각했는데 중국집 할머니는 전혀 다른 해몽을 말한다.

​

"그건 엄청나게 좋은 꿈이야. 마음에 품은 생각은 모두 이뤄지는 길몽이지. 죽는 것만 못 하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어."

​

생각지도 못한 해몽에 불행에 가득찼던 엄마의 삶이 달라진다.

성당을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고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간다.

​

불행에 가득찼다고 믿었던 엄마의 삶이

죽는 것만 못 하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다라는 말에 가능성으로 빛이 난다.

​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

나 역시 모든 일들이 불행이라고 믿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모든 걸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나?

​

나 역시 이제 다 잘 될 거라고 해석을 내려보고 싶다.

걱정과 불안을 비워내고 내 계획에 대한 좋은 해석으로 생각하며 앞길을 비춰보련다.

​

미래는 결국 현실을 해석하는 자의 몫이니까 지금의 현실을 다 잘 풀릴 거라는 해석으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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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 동물원부터 생츄어리까지, 사람과 동물이 마주 선 십 년의 기록
왕민철 지음 / 문예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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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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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니 관심이 있을 리도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들은 존재한다. 단지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게 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게 있다. 보이는 존재를 더 잘 보이게 하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잘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의 실체를 잘 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가제본으로 만나 본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의 에세이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흔히 보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제대로 보게 해 주는 책이었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의 주요 배경은 청주동물원이다. 동물원에서의 동물들과 돌보는 수의사 및 사육사들의 일과를 쫓는다. 그런데 김정호 수의사의 말 한 마디부터가 심상치 않다.

​

전 동물원 반대론자예요.

밥 벌어먹으려고 들어왔지만, 동물원이 싫었어요.


동물원 반대론자이면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수의사. 왜 그는 반대론을 펼칠까?

인간의 돌봄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지내는 동물들의 삶이 괜찮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인간에 의해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동물의 운명.

종의 이름과 숫자로만 기억되고 쉽게 다른 동물들로 대체되는 존재들.

​

우리는 과연 동물원에 가면서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려고 한 적이나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대체 무슨 권리로 동물들의 운명을 정하는가?

인간은 왜 야생으로 자라야 할 동물들을 인간을 위한 관상용으로 꾸며놓는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성경을 말 할 수도 있겠다. 신이 창조할 때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다는 신의 말씀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그들의 본성을 거세하면서까지 다스리라고 하는 명령이었을까?

​

왕민철 감독은 근처에 있는 농장에 있는 감독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서울에 있다가 내려와 농장을 가꾸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얼마 후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에게 매년 돈을 받지만 아버지는 예외였다. 아버지의 농장이 마을 밖에 있고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누군가를 배척하는 건 아주 쉬웠다. 그런 관계에서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세월을 살아도 '이곳 사람' 대접을 안 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왕민철 감독은 생각한다.


과연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곳 사람'이 되는 걸까.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르는 곳


왕민철 감독의 이 질문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 지구 모두에 확장되는 질문이었다.

동물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곳 존재'가 될 수 있는 걸까.

장애인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우리는 과연 답을 찾으며 살아왔던가?

​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존재 취급했으며 보여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대접을 받으며 서서히 잊혀져 가야 했다. 사라져서야 멸종위기동물이라고 또는 멸종동물이라고 이름 붙이는 존재들.. 과연 우리는 인간만 덩그라니 남을 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일까?

​

저자 왕민철 감독은 잊혀진 수많은 존재들을 적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슬퍼한다. 그 존재들이 끝이 없고 끊임없이 덧붙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인 이 행성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를 잊혀지게 만드는 것인가.

잠시 머무는 곳인 이 곳에 사라진 존재가 많을수록 인간 또한 사라져 갈 수 있음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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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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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숱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이토록 좋지 못한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고통에 힘겨워하는 듯했다. 아파하는 엄마에게 힘내라는 흔한 위로도 하지 못했다. 뒤이어 아빠가 전화를 받으시며 잘 지내라는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지난 추석, 친정에 갔을 때 엄마의 증세는 더 안 좋아보였다. 걸음걸이는 더 느려졌고 허리는 구부정해있었다.우리보다 먼저 친정에 가 있던 동생은 엄마가 화를 내면서 "나 아프다고!" 라며 울며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어제 나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 본 '위로의 '눈'에 대한 글을 썼다.



'비운의 에이스'라고 불리우며 쓸쓸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여자 야구 이선희선수.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희생으로 프로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새로운 눈, 즉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위로의 눈'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

'위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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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에게 어떤 위로의 눈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장강명 작가의 글로 아내인 김새섬 대표가 세 번째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마 속에서 '왜 나만'이라는 질문을 갖지 않는 김새섬 대표. 그 김새섬 대표를 인터뷰한 김진경 작가는 『난파선의 선장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사람들은 죽음보다 훨씬 작은 불운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이

왜 죽을병에 걸렸냐고 끊임없이 원망하면서

연민을 갈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사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난파선의 선장들 /23p


엄마 역시 그랬다. 가족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쳤고 주님을 섬겼지만 엄마에게 찾아온 건 무서운 현실이었다. 그 앞에서 엄마는 끊임없이 자신을 힘들게 한 우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이게 엄마의 잘못일 수 없다. 고통 앞에서 찾아온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이니까.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끝없는 자기 연민은 결국 자신만 더 불쌍한 인간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한없는 자기 연민은 더 초라한 불행 속으로 만들어간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혜진 작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12권의 표지와 글을 읽고 쓴 그림 에세이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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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작가는 세계문학전집 340권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에는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던 죄르지라는 인물이 나온다.

​

'여기는 지옥'이라고 알려진 유대인 수용소. 그 곳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장소이다.

​

하지만 소설 속 죄르지는 다르다. 최혜진 작가는 '죄르지'가 순간 순간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죄르지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잘라가면서 살아 낸다.

가혹한 노역 중간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순간, 옆 사람이 베푼 의외의 온정,

가장 좋아하는 순무 수프 냄새의 뭉클함도 느낀다.

자신의 경험을 싸잡아 요약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은 선한 피해자이고 독일인은 악한 가해자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 / 최혜진

​

나는 이 문장이 자기연민을 빠져나갈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자신의 경험을 싸잡아 요약하지 않는 태도.

​

어쩌면 우리가 하는 자기 연민도 '고생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죽을병에 걸렸다'라고 요약하기 떄문에 자신이 더 불쌍해 보이는 건 아닐까?

​

죄르지 역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남들과 같은 고통 속에 살았다.

하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고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불쌍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피해 갈 수 있었다.

​

우리 역시 분명 100% 불행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불행에 초점을 기울이며 고생했는데 죽을병에 찾아왔다고 한다면 이 비극의 우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한 순간, 감사했던 순간 등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장편소설처럼 주목할 때 우리의 삶은 결국 슬픈 비극이 아닌 다채로운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에서 연이은 불행에 억울해하던 장에게 데보라 수녀는 말한다.

​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갬블러들은 모든 운이 자기 것이길 원하죠. 그럴수록 행운은 질색하면서 달아나고요. 나처럼 살아봐요.

언젠가 행운이 특별할 것도 없이 찾아올 거예요."

​

​

자신의 삶을 요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행을 특별 대우해 주는 것 아닐까?

​

나는 엄마에게 이 말을 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건.. 엄마의 삶을 불행하다는 식으로 요약하지 말아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엄마의 삶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요약할 만큼 불행하지 않음을..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 많았음을, 단지 그걸 잊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

하지만 어쩌면.. 엄마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어설픈 위로겠지...

​

김연수 작가는 소설에서 이예린 가수의 <서글픈 위로> 를 들으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 역시 이 글로 엄마에게 서글픈 위로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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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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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던 2014년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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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동안 우리는 한 번도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았었다. 축하한다는 말도, 또는 고맙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 아마도 그건 신혼 시절, 우리가 서로 친밀하게 지냈던 기간보다 싸우며 지낸 냉전 기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혼 초 이혼을 들먹이며 싸우던 시기가 많다보니 평화로운 동안에도 챙기지 않고 지나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

블로그에도 여러 번 밝혔지만 남편과의 불화 시기를 견디게 해 준 건 책이었다.

그 당시 OTT도 흔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남편은 쌍둥이들은 자기가 데려가겠다며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속에서 나는 소외되었고 할 일이 없었다. 마침 서평단 활동을 하며 책을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학창 시절, 책을 읽긴 했지만 성인이 된 후 책을 잘 읽지 않던 내가 다시 책을 찾게 된 건 남편의 공이 컸다.

​

오늘도 무덤덤한 결혼기념일. 책을 읽고 있을 때 남편과 둘째가 들어왔다.

남편은 둘째에게 "네 엄마는 왜 이렇게 책을 자주 읽는 걸까?" 하며 묻자 나는 답했다.

​

"그건 너 때문이잖아. 아이들 어렸을 때 너랑 하도 싸워서 내가 너무 힘들어서 책을 읽었어. 나를 왕따시키니까 내가 할 게 없었으니까."

​

그 말에 남편은 그럼 그 전에는 책을 안 읽었느냐고 하자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남편은 자신이야말로 일등 공신이라며 나에게 차갑게 했던 것도 다 큰 뜻이 있었노라고 큰 소리 친다.

​

신혼 초,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하며 힘들게 했는데 과연 그 시간이 없었노라면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를 읽고 있다.

​항상 그렇듯,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은 너무 좋아 천천히 읽게 된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를 읽고 있다.


항상 그렇듯,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은 너무 좋아 천천히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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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우리 인생의 목격자>에서는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지인의 전화를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

지쳤다는 지인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지 고민하는 소설 속 이선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던 야구소녀에서 자신에게 동경의 선수였던 동명이인의 여자 야구선수 이선희 선수가 '비운의 에이스'로 쓸쓸한 흑역사를 쓰며 선수생활을 마쳐야했던 이야기.

​

진행자는 이선희 선수에게 자신의 공으로 '끝내기 만루 홈런'을 날리게 했던 그 비운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

흑역사를 묻는 질문에 이선희 선수는 개인으로서는 아픔이었지만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걸로 위로했다고 말했다.

​

분명 개인적으로는 수치다. 비운이다. 자신의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도 끝났으니까.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 비록 자신은 쓸쓸하게 마감하지만 덕분에 야구가 한 층 더 발전했다는 것까지를 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볼 수 있는 것을 아는 것.

​

나의 지금을 돌아보아도 그 외로움의 시간이 나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아닐까?

그 시간을 버텼더니 읽고 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김연수 소설의 또다른 소설 <우리들의 실패>에서도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불확정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

우리의 미래가 그렇고 바로 내일의 일도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견디고 버티는 것이다.

버텨야만 멀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고 큰 의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글을 쓴다. 

여전히 읽고 쓰지만 죽도 밥도 아닌 내 상태가 서글프지만

이 불확정의 시간을 다시 견뎌나간다.

비록 아무것도 안 되더라도

소설 속 이선희 선수처럼 나를 더 큰 의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을 견디기를 바라면서 오늘을 견디며 글을 쓴다.

​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오늘, 내일, 그리고 2026년, 27년 불확정의 시간을 견디며

위로의 눈을 가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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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ㅣ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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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딜레마' 라는 주제애 관해 김연수 작가와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 딜레마에 대해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먼저 김연수 작가의  「우리들의 실패」에서의 질문을 들어가본다. 


간절히 원하던 미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의 실패」 에서 두 남녀가 나온다. 남자 손동하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병마는 끝내 엄마의 삶을 앗아갔고 엄마와 함께 벗꽃을 걷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손동하의 삶은 끝내 그가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검찰에 체포될 위기에 처해야 한다. 


소녀가 있었다. 손동하의 친척과 재혼한 정혜인. 그녀는 아빠를 잃고 엄마가 재혼한 새아빠를 좋아하지 않지만 엄마의 행복을 위해 재혼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 모두 원하지 않았다.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였건만 엄마는 결국 새아빠와 헤어지고 둘은 연락이 끊긴다. 


그토록 바라고 기도했건만 미래가 내 생각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진중한 질문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로 인용한다. 자신이 나무에 갇힐 운명인 줄 알면서도 그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멀린. 그는 왜 미래를 알고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그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의 예를 든다. 




처음 본 악보를 연주하는 음악 용어 '초견'. 


우리 모두의 인생 또한 '초견'이다. 우리는 늘 하루 하루 초견의 삶을 살고 있다. 내일은 또 안 가본 미래니까. 


모든 게 완벽하게 연주하면 좋겠지만 한 번 뿐인 초견을 무사히 해내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의 초견을 완성한다. 비록 우리의 미래가 원하지 않는 미래로 다가올지라도 말이다. 그 고통을 장자의 도덕경의 문구처럼, 결국 초라해지고 만 마법사 멀린처럼 그 삶을 끝까지 견디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그러므로 소설 속 손동하의 삶은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가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래도 살아났으므로. 비록 검찰에 잡힐 처지라 하더라도 끝까지 연주하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경하던 사진 작가 사카키 미노루의 유고전을 준비하던 중 존경하는 사카키 미노루가 미성년자의 나체를 찍은 작품을 발견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미성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오래된 일 같으니 그냥 눈 딱 감고 넘어가야 하는가. 특히 이 전시회는 유고전인지라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이미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간 상태이다. 아니면 엄격한 기준으로 부도덕함이 발견된 작가의 작품을 이대로 마무리지어야 하는가. 


김연수 작가의 질문은 보편적인 삶의 질문을 던진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질문은 굉장히 집요한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인 윤리의 척도를 물어본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히라노는 누가 선하고 부도덕한지 비판하지 않는다. 모든 개인들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말해주기 떄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입장을 달리하면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사카키 씨는 '이처럼 무엇이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도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고, 사색에도 시간의 흐름이 있어 어느 지점에 닿았을 때 그 표정이 나타났는지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연수 작가와 히라노 게이치로 두 거장의 만남은 옳았다. 인간의 삶의 본질을 파헤치며 그 삶 속에 겸손하도록 한다. 내게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소설들이 두고두고 떠오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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