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 동물원부터 생츄어리까지, 사람과 동물이 마주 선 십 년의 기록
왕민철 지음 / 문예출판사 / 2026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동물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니 관심이 있을 리도 없었다. 관심이 없으니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들은 존재한다. 단지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게 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게 있다. 보이는 존재를 더 잘 보이게 하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잘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존재의 실체를 잘 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가제본으로 만나 본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의 왕민철 감독의 에세이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흔히 보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제대로 보게 해 주는 책이었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의 주요 배경은 청주동물원이다. 동물원에서의 동물들과 돌보는 수의사 및 사육사들의 일과를 쫓는다. 그런데 김정호 수의사의 말 한 마디부터가 심상치 않다.
전 동물원 반대론자예요.
밥 벌어먹으려고 들어왔지만, 동물원이 싫었어요.
동물원 반대론자이면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수의사. 왜 그는 반대론을 펼칠까?
인간의 돌봄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지내는 동물들의 삶이 괜찮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는 동물의 운명.
종의 이름과 숫자로만 기억되고 쉽게 다른 동물들로 대체되는 존재들.
우리는 과연 동물원에 가면서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려고 한 적이나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인간은 대체 무슨 권리로 동물들의 운명을 정하는가?
인간은 왜 야생으로 자라야 할 동물들을 인간을 위한 관상용으로 꾸며놓는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성경을 말 할 수도 있겠다. 신이 창조할 때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다는 신의 말씀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그들의 본성을 거세하면서까지 다스리라고 하는 명령이었을까?
왕민철 감독은 근처에 있는 농장에 있는 감독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서울에 있다가 내려와 농장을 가꾸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얼마 후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에게 매년 돈을 받지만 아버지는 예외였다. 아버지의 농장이 마을 밖에 있고 제대로 된 집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누군가를 배척하는 건 아주 쉬웠다. 그런 관계에서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세월을 살아도 '이곳 사람' 대접을 안 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왕민철 감독은 생각한다.
과연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곳 사람'이 되는 걸까.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르는 곳
왕민철 감독의 이 질문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 지구 모두에 확장되는 질문이었다.
동물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곳 존재'가 될 수 있는 걸까.
장애인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야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우리는 과연 답을 찾으며 살아왔던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존재 취급했으며 보여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대접을 받으며 서서히 잊혀져 가야 했다. 사라져서야 멸종위기동물이라고 또는 멸종동물이라고 이름 붙이는 존재들.. 과연 우리는 인간만 덩그라니 남을 때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일까?
저자 왕민철 감독은 잊혀진 수많은 존재들을 적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슬퍼한다. 그 존재들이 끝이 없고 끊임없이 덧붙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인 이 행성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를 잊혀지게 만드는 것인가.
잠시 머무는 곳인 이 곳에 사라진 존재가 많을수록 인간 또한 사라져 갈 수 있음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