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그동안 숱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이토록 좋지 못한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고통에 힘겨워하는 듯했다. 아파하는 엄마에게 힘내라는 흔한 위로도 하지 못했다. 뒤이어 아빠가 전화를 받으시며 잘 지내라는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지난 추석, 친정에 갔을 때 엄마의 증세는 더 안 좋아보였다. 걸음걸이는 더 느려졌고 허리는 구부정해있었다.우리보다 먼저 친정에 가 있던 동생은 엄마가 화를 내면서 "나 아프다고!" 라며 울며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어제 나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 본 '위로의 '눈'에 대한 글을 썼다.

'비운의 에이스'라고 불리우며 쓸쓸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던 여자 야구 이선희선수.
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희생으로 프로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새로운 눈, 즉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위로의 눈'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위로의 눈'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에게 어떤 위로의 눈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어제 페이스북에서 장강명 작가의 글로 아내인 김새섬 대표가 세 번째 수술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마 속에서 '왜 나만'이라는 질문을 갖지 않는 김새섬 대표. 그 김새섬 대표를 인터뷰한 김진경 작가는 『난파선의 선장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보다 훨씬 작은 불운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이
왜 죽을병에 걸렸냐고 끊임없이 원망하면서
연민을 갈구하던 이반 일리치는 사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난파선의 선장들 /23p
엄마 역시 그랬다. 가족을 위해 온 몸을 다 바쳤고 주님을 섬겼지만 엄마에게 찾아온 건 무서운 현실이었다. 그 앞에서 엄마는 끊임없이 자신을 힘들게 한 우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이게 엄마의 잘못일 수 없다. 고통 앞에서 찾아온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이니까.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끝없는 자기 연민은 결국 자신만 더 불쌍한 인간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한없는 자기 연민은 더 초라한 불행 속으로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혜진 작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12권의 표지와 글을 읽고 쓴 그림 에세이 《아무것도 간절하지 않은 날의 기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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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작가는 세계문학전집 340권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에는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던 죄르지라는 인물이 나온다.
'여기는 지옥'이라고 알려진 유대인 수용소. 그 곳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장소이다.
하지만 소설 속 죄르지는 다르다. 최혜진 작가는 '죄르지'가 순간 순간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죄르지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잘라가면서 살아 낸다.
가혹한 노역 중간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순간, 옆 사람이 베푼 의외의 온정,
가장 좋아하는 순무 수프 냄새의 뭉클함도 느낀다.
자신의 경험을 싸잡아 요약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은 선한 피해자이고 독일인은 악한 가해자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문장이 자기연민을 빠져나갈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경험을 싸잡아 요약하지 않는 태도.
어쩌면 우리가 하는 자기 연민도 '고생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죽을병에 걸렸다'라고 요약하기 떄문에 자신이 더 불쌍해 보이는 건 아닐까?
죄르지 역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남들과 같은 고통 속에 살았다.
하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고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불쌍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우리 역시 분명 100% 불행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불행에 초점을 기울이며 고생했는데 죽을병에 찾아왔다고 한다면 이 비극의 우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한 순간, 감사했던 순간 등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장편소설처럼 주목할 때 우리의 삶은 결국 슬픈 비극이 아닌 다채로운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에서 연이은 불행에 억울해하던 장에게 데보라 수녀는 말한다.
"불행을 특별 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갬블러들은 모든 운이 자기 것이길 원하죠. 그럴수록 행운은 질색하면서 달아나고요. 나처럼 살아봐요.
언젠가 행운이 특별할 것도 없이 찾아올 거예요."
자신의 삶을 요약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불행을 특별 대우해 주는 것 아닐까?
나는 엄마에게 이 말을 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말하고 싶은 건.. 엄마의 삶을 불행하다는 식으로 요약하지 말아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엄마의 삶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요약할 만큼 불행하지 않음을..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 많았음을, 단지 그걸 잊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엄마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어설픈 위로겠지...
김연수 작가는 소설에서 이예린 가수의 <서글픈 위로> 를 들으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 역시 이 글로 엄마에게 서글픈 위로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