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자주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넌 열심히 쓰면서 이제까지 뭐했냐?"
항상 열심히 한다고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제가 뭐 하나 대단한 성과가 없는 제게 핀잔을 줄 때 하는 말들입니다. 그 말을 듣다보면 저 또한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여태까지 뭐했지?"
어느 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쓰다 말다
불규칙했지만 어느 새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살펴보면 저도 모르게 한 소리가 하게 됩니다.
"난 정말 이제까지 뭘 하고 있었나? 한 게 아무것도 없네..."
이 느낌은 2024년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인지라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제 마음을 압도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뭐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사라지기 쉬운 시간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행 작가 최갑수 작가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에서 작가의
주변에서도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지만 어느 새 보이지 않는 작가들.
포기한 이들도 있고 다른 곳들로 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위에 남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됩니다.
저 또한 자문하곤 합니다.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이 출산 후 심한 우울증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다보니 책을 쓰고 싶어 계속 써나간 지 10년... 저의 게으름 때문에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저보다
늦게 시작한 분들의 출간 소식을 듣게 됩니다. 질투심 반, 부러움
반으로 쳐다보다 나는 이렇게 부러워만하다 사라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나는 이제껏 뭘 했나하며 게으른 저를 탓하곤 합니다.
연말연시인 지금, 아마 이런 생각은 우리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거겠죠.
『매일을 헤엄치는 법』은 바로 지금이야 구독자 80만명의 유명 그림
유튜버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퇴사하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든 1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수영을 하며 버텨나간 기록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회사 퇴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갈 곳이 있거나 계획이 있다면 좋겠지만 어느 것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퇴사가 망설여집니다.
이연 작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하는 말처럼 우연히 겹친 이별, 입원
그리고 퇴사까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쓰러진 인생의 아픔 속에 인생의 혹한기를 통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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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조직에 나를 끼워맞추기보다 나에게 소속되겠다는 마음으로 명함을 파고 그림을 그리는 인생을 다짐합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는 잘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수영'입니다.
매일 할 수 있으면서 저렴하고 재미있는 운동이 바로 '수영' 이였거든요.
저는 수영을 중도에 포기했는데요 수영하면 바로 그 유명한 '음파' 호흡법을 배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육지에서는 숨쉬기는 가장 만만한 운동이지만 수영에서는 숨쉬기는 가장 어렵습니다.
이 숨쉬기가 이토록 어려워서 과연 수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됩니다.
뭔가를 배울 때 의외로 자신에게 잘 맞아서 빨리 배울 수도 있지만 의외로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인생처럼요. 『매일을 헤엄치는 법』 또한 그렇습니다.
숨쉬기부터 시작해서 자유형, 평형,
접영 등 만만치 않습니다.
배움도 그렇듯, 인생도 쉬울 때가 있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궁핍함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합니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여름, 매트리스도 젖고 갈 곳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 작가는 소리지릅니다.
"이게 뭐예요? 제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정상화 …… 정상화하고
싶어.
우리는 모두 뭔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연말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져요. 자신이 해 온 게 모두 부질없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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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멈춰 있지 않아.
그거면 된 거다.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고. 그러니 그거면 된 거라고요...
뭔가를 늘 시도했고 계속한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그 과정을
사랑하라고요.
저와 같은 감정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분들에게 저도 똑같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열심히 하셨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매일을 헤엄치는 법』에서는 인생의 추운 계절을 통과하는 작가의 기록이니만큼 수많은 갈등과 불안 속에서 수영을
하며 조금씩 인생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기록이 나옵니다.
매일 똑같은 수영장을 돌며 반복되는 일상같지만 하루 하루가 쌓여 매일 성장해가고 있음을 알려줘요.
그러니 결코 똑같지 않다고요. 우리가 하는 매일의 몸부림이 어느 순간
돌이켜보면 성큼 성장해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할 거라고 말합니다.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달라져 있어.
그래, 우리도 매일을 살면서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에서 최갑수 작가도 언젠가 사라진 동료들처럼 자기 역시 사라진 작가가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확신합니다.
제게 중요한 건
저는 더 노력할 것이라는 것과
저에겐 아직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아직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연말은 우리에게 늘 시간이 없다,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렀다는 초조함을 줍니다. 그 초조함에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포자기하곤 합니다.
최갑수 작가처럼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하기엔 연말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보다 다른 말을 하고 싶습니다.
백수린 작가의 짧은 소설집의 제목인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에서 임종을 앞둔 장기 입원 노인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곁에는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인이 있습니다. 의사는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임종을 지킬 보호자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두 사정이 있습니다. 세차게 내리는 눈, 해외 여행 등으로 모두 발이 묶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거나 교통
사고로 자꾸 도착 시간이 지연됩니다. 어떻게든 보호자들이 임종을 볼 수 있기 위해 간병인은 할머니께 이야기를 합니다.
할머니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은 열심히 말을 겁니다. 보호자가 오기 전에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어쩌나 조바심에 할머니께 묻습니다. "아직, 아직, 살아 있죠?" 끝까지 할머니를 붙잡으며 간병인은 말합니다. "오늘 밤은 죽지 말아요."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어쩌면 이 말이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과가 없어 힘이 든 우리에게 우리의 목표와 꿈은 어쩌면 우리의 꿈과 목표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처럼 아슬아슬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작할 때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차츰 흐르고 나보다 앞서 있는 누군가를 볼 때면 우리의
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고 인공 호흡으로 겨우 연명하다 사라지겠죠. 그래서 저는 최갑수 작가의 아직 좋은 작품을 쓸 시간이 많다는 다짐보다 임종을 앞둔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인의
말을 붙잡습니다. "오늘은 사라지지 말아요." 오늘 하루만 더 사라지지 말고 버티자. 사라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씁니다. 여러분도 오늘 그리도 또 다른 오늘도 사라지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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