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았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슬픔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애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라는 걸.
사람마다 애도의 시기가 다르다. 누군가는 훌훌 털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는 평생 걸릴 수 있다.
그 기간은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생각한다.
10년째 마음으로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유족들의 삶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일 거라고.
사랑하는 자식과 가족을 잃었고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하지만 정혜윤 PD는 책 《삶의 발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족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희망을 찾는 자들이라고.
희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곳을 바라는 열망이다.
희망은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것들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할수 있는 방법은 변화뿐인데, 더 나은 곳으로의 변화만이 시간과 이야기 밖으로 떨어져 나간 가족들을 다시 시간과 이야기 속에 자리 잡게할 수 있는데.
<삶의 발명> 89page
유족들이 왜 그토록 진상규명을 외치는가?
유족들이 왜 그토록 더 이상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떠나간 가족을 위로하는 방법이 더 이상 그들과 같은 슬픔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변화만이 있기 떄문이다.
비록 자신들은 가족을 잃었을지라도
더 이상 똑같은 슬픔이 없길 바라는 희망.
더 이상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 희망을 위해 그들은 애도를 계속한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아직 그들의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만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세월호 참사 10년 동안 하나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계속한다.
이 세상의 더 이상 많은 눈물이 생기지 않도록.
정혜윤 작가는 세월호 참사, 고 김영균 청년의 죽음, 씨랜드 참사 등 온갖 재해재난의 현장에서 유족을 바라보며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어떤 뜻일까?
유족의 눈으로 세상은 모든 게 무의미한 세상처럼 보여진다는 게 아닐까?
정혜윤 pd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말한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것이다.
<삶의 발명> 91페이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삶.
아직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더 구해지기를 바라는 눈,
아주 사소한 생명이라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
아주 작은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희망의 눈으로 그들은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야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자녀와 가족이 위로받을 수 있기 떄문이다.
비록 세상을 떠났을지언정
이 세상이 더 안전해지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줄었다고 말할 수 있는 희망을 위해서 그들은 끝까지 희망을 붙잡는다. 그 희망만이 그들을 살게 한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의 한 구절을 다시 인용한다.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
"정말?"
"몇백년 전부터 그랬더라. 먼 나라들에서도 언제나 그랬더라."
<피프티 피플> 274p
우리의 거의 모든 안전들은 지난 세월 유가족들의 눈물과 희망 속에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위로해야 하는가?
바로 그들과 같은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더 이상 안타까운 생명을 허무하게 보내지 않는 세상이 되는 희망을 꿈꾸는 것.
세상이 비록 어두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며 함께 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4.16 기념일에 다른 정의를 내린다.
4.16 세월호 참사는 더욱 큰 희망을 품는 날이다.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다시 다짐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