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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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어떤 희망의 상징이다.



시집을 읽어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한 작가만의 시를 모아둔 것이 많았다. 어떤 주제, 맥락을 가지고 여러 시인의 시를 모으는 작업은 상상컨대 몹시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여러 국적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폭넓게 읽어보았어야 할 것이고, 시에 흐르는 여러 섬세한 감정들을 구분할 줄 아는 문학적 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런 능력자가 아니므로, 역량 있는 분께서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양한 시들을 엮어 주셔서 너무 좋았다. 흔치 않고 몹시 귀하게 느껴지는 시집이다. 옮긴이 이루카 님이 비교문학을 공부하셨다고 하는데, 그러한 배경이 돋보이는 편집이었다. 시집의 테마가 꽃이니 꽃의 비유를 빌리자면 아름답게 포장된 꽃다발을 선물받은 느낌이다. 이 시집 하나에 얼마나 많은 공이 들어갔을지 상상하게 된다.



시집에는 수십 명의 시인들이 꽃이나 나무에 대해서 쓴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공통점은 꽃, 나무이다. 꽃과 식물하면 막연히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먼저 떠올리지만, 세계 각국의 시인들이 꽃을 보며 떠올린 것은 의외로 죽음, 슬픔, 희망이 많았다. 사랑하는 소녀의 발에 밟히면서도 여전히 소녀를 사랑하는 제비꽃(괴테 <제비꽃>), 꽃잎들이 피 같이 쏟아져 나리는 서러운 광경(김소월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밭 된다고>), 저주하는 어두운 마음을 헤치고 피어나는 백합(안나 마골린 <가을>), 장미꽃으로 만든 수의(로르카 <가을의 노래)) 등등.


왜 시집의 제목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세상의 빛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도 슬픔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음을 알았던 시인들의 통찰력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꽃과 풀, 나무를 노래하는 그들의 시가 희망으로 더욱 돋보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피어난 꽃은 결국 죽음, 슬픔을 딛고 피어난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개인적으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가 인상적이었다. 로르카의 시가 실제로 제일 많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 중 <가을의 노래>가 강렬하고 마음이 아팠다. '빛이 내 날개를 자른다', '영혼에도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죽음이 죽음이라면 시인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동면하는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구절로부터, 시인이 세상으로부터 심한 고통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책 말미에 수록된 작가 소개에 의하면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 중 재판도 없이 사살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로르카가 꽃들에 대한 시를 많이 쓴 것을 보면 슬픔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찾으려 애썼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시집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들어보았을 리 없다. 내가 방금 지어낸 것이니까.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시집의 제목은, 첫 시로 수록된 김승희 <미선나무에게>로 이어진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미선나무의 꽃말이라고 한다. 이후 수선화, 해바라기, 아몬드꽃, 아카시아꽃, 아네모네, 장미, 코스모스, 풀, 할미꽃, 은방울꽃, 제비꽃 등을 소재로 한 시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온갖 꽃이 모인 화원을 소재로 삼은 윤동주의 산문 <화원에 꽃이 핀다>로 엔딩을 맞이한다.


윤동주가 그려내는 화원은 꽃으로 상징되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화원에는 서로 다르지만 '한 포기 푸른 풀과 한 떨기 붉은 꽃과 함께 웃음이 있'다. 화원의 동무들은 삶에 괴로워하지만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는다.


산문 자체로도 저릿한 감정을 느꼈지만 시집 마지막에 배치되어 더욱 감동적인 글이었다. 완벽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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