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히힉.. 으헉!!!!"

아주 괴기스러운 비명소리는 내 목을 타고 올라와 제법 긴 복도를 따라 달려 나갔다. 그것은 발자국 소리를 죽인채 어두운 복도를 걷는 나를 따라 왔던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내가 엘레베이터를 벗어나, 화장실이 보이는 곳으로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내 뒤에 바짝 붙어 모습을 감췄을 수도 있다.
산중턱 쯔음을 깍아 내려 지어진 건물은 아닐지라도 분명 지대가 높은것도, 건물 뒤편으로 산세가 제법 우거진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지형때문에 그것이 자주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왔었을 때 부터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설마 그것이 나타나겠냐는  안일한 안도감에 나는 그동안 이 곳의 검은 복도를 걸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나의 안일함을 틈타, 그것은 그렇게 내 등뒤에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이다. 엘레베이터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 화장실에 들어 서기까지 나는 그것이 그토록 나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들어서 거울을 보았을때, 거울을 통해 나는 그것과 마주했다. 온몸에 잔털이 서고, 소름은 머리속까지 돋아나는 듯 했다. 이성적인 판단이 채 서기도 전에 입을 통해 괴기스러운 비명이 먼저 터져나갔다. 그리고 나는 내 어깨에 있는 그것을 떨궈내기 위해 온몸을 미친듯이 흔들어댔다. 그러면서도 채 다시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미쳐버릴 지도 몰랐다. 공포란 그런것이다.
그리고 투툭...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리는듯 했다. 하지만 그 미세한 소리가 내게는 순간 유일한 희망이였고, 그것의 존재를 확인할 용기를 주는 소리였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발밑에서. 그것은 유유히 서 있었다.

헙.
두번째 그것을 마주하고 보니 이젠 숨이 들이 마셔지며 채 밖으로 비명을 쏟을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다시 다가오기 전에 필사적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도와줘. 누구라도 좀. 도와줘. 간절하게 외치며 들어서 아직 불이켜진 사무실안으로 벅찬 숨을 들이부었다.

"왜... 왜그래?"

그 밤을 같이 보내주던 동료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떨어져 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동료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겪었던 공포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동료가 그것을 출현을 믿어줄까? 나에게 헛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나를 공포속으로 홀로 밀어 넣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나는 입을 열었다.

 

"귀..

 귀...
 귀...

 귀뚜라미~!!!!!"

 

동료의 눈이 아주 커다래졌다가 실처럼 얄팍해진다.

"웃지 말아요. 완전 컸다고, 화장실 거울로 보니까 내 어깨 위에 있었다구요. 눈이 마주쳤다니까."

동료는 이제 흔들리는 어깨와 새벽을 깨우는 커다란 웃음소리를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산밑이라 제법 커다란 귀뚜라미가 종종 나타나 화장실앞을 지키고 있다는 괴담을 종종 듣기는 했지만, 내가 그것을 마주할 줄이야.
그것이 내 어깨로 올라탈 줄이야.


한동안 그것의 눈동자가(눈동자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귀뚜라미는 없다고 동료가 이야기 했지만)기억을 어른거릴 것만 같다.


그나저나, 이렇게 끈적한 여름밤에는.
이런 책은 못 읽게 법으로 정해줘야 되는거 아닌가?
남자 주인공의 소유욕이, 농도높은 정사씬이, 현실성 없는 사랑이야기가
참 끈적 끈적 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끈적한 여름밤에 로맨스 소설은 역시 에어컨 없이는 읽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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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홍의 이지환 책이군요. 제목이 참 좋다, 폭염이란 제목이.
근데 뭐가 저렇게 두꺼워요. ㅋㅋㅋㅋㅋ
이 책 별로 안궁금한데 '농도 짙은 정사씬'은 좀 궁금하네요? 옮겨 적어 이메일로 좀 보내주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라쟁이 2013-07-18 14:05   좋아요 0 | URL
저 두꺼운 책중에서 한권정도는 정사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메일로 보내기엔 내용이 좀 많은데..제가 요즘 좀 잉여로운지라 노력해볼게요 ㅎㅎㅎㅎ

따라쟁이 2013-07-19 01:51   좋아요 0 | URL
메일로 일단. 맛보기 정도만 보냈습니다. ㅎㅎㅎㅎ

감은빛 2013-07-1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뚜라미가 그렇게 무서운가요?
예전에 농사짓는 마을 빈 집에 들어가 살 때는
집안에서 이름도 알기 어려운 온갖 곤충들과 불시에 마주치곤 했어요.
그때 같이 살던 형이 좀 겁이 많아서 가끔 한밤중에 자기 방으로 저를 부르곤 했지요.
도시에서는 모기와 파리, 바퀴벌레 정도 외에는 볼 일이 없네요.

그 '농도 짙은 정사씬'은 저도 궁금한데요. 저도 쫌! ^^

따라쟁이 2013-07-18 20:14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귀뚜라미가 무섭습니다.
그녀석 때문에 복도 바닥에 주저 앉아 운적도 있어요.

정사씬. 후~

마노아 2013-07-1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드로 치지 말고 사진 찍어서 이메일로 좀 보내봐요! 첨부파일이면 충분해요. ㅋㅋㅋ
예전에 살던 집에 화장실에 귀뚜라미가 꼭 변기 안에 있었거든요. 정말 공포였어요. 쌀 수도 없고 안 쌀 수도 없는 괴로움!!!

따라쟁이 2013-07-19 00:52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다들 이메일이 필요하신거군요. 첨부파일이든 워드든 뭐든 하여튼 보내야 되겠군요,

좋아요, 저의 잉여로움을 한껏 만끽해 보도록 할게요. ㅎㅎㅎㅎ

따라쟁이 2013-07-19 01:51   좋아요 0 | URL
2000자 정도만 메일을 허용하네요, 2000자 안에서 알차게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마노아 2013-07-19 07:22   좋아요 0 | URL
어휴, 어찌나 알차던지, 아침 댓바람부터 코피 퐈! 타이핑 하느라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ㅋㅋㅋ

조선인 2013-07-1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어깨에 귀뚜라미... 납량특집이네요.

따라쟁이 2013-07-19 09:17   좋아요 0 | URL
네. ㅠㅠ 저는지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오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