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DNA -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
앤드루 로버츠 지음, 문수혜 옮김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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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학자 앤드루 로버츠의 <승자의 DNA>, 이 책의 제목이다. 부제는 300년 전쟁사에서 찾은 승리의 도구

 

내 안에 잠든 전략가를 깨우는 책, 이 책은 순응하는 삶보다는 척박한 세상으로 나가 도전하는 삶을 살라는 게 핵심이다. 이른바, 보고 배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뉴욕역사 협회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7인의 지도자 반열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들어있다. 알렉산더 대왕, 프리드리히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한니발 바르카, 구스타프 아돌프, 말버러 공작과 함께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나폴레옹을 비롯하여 넬슨 제독, 처칠 수상, 마셜 미 육군참모총장, 드골 사령관, 아이젠하워와 대처, 그리고 히틀러와 스탈린 이렇게 아홉 사람이다.

 

이들의 품성이나 인간성이 어찌 됐건, 이 책의 주제는 전쟁을 둘러싸고 발휘한 초인적인 힘의 원천이 어딘가, 이들은 한 걸음만 잘못 내디뎠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들에게는 승자그룹의 DNA에는 어떤 요소가 숨겨져 있을까, 지금도 어디선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승자들의 DNA도 그러할까,

 

우선 지은이가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뉴욕역사 협회 연구원으로 대서양을 오가며 영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게다가 2000년에는 역사학계의 노벨상(나는 이 상이 뭔 의미인 줄 아직 잘 모른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다. 아무튼)이라는 ‘울프슨 역사상’을 탔다고 하니, 꽤 기본이 탄탄한 연구자라는 정도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여기에 실은 인물이 왜 승자인지?, 지은이는 단지 전쟁사라는 측면에서 빛을 비췄을 뿐인데…. 우선 지은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무엇이 한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가?

 

지은이가 이 책을 쓴 의도랄까 목적은 과거의 지혜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사람들에게 9명의 이야기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인 듯하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모두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막무가내다. 그런데 이들이 다른 이유 하나는 누구로부터 신뢰를 받고, 신망을 받았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넘쳤다. 거대한 꿈을 꿨다. 심모원려 하였기에 그들은 언행일치, 표리부동,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 이런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끝까지 관철한 삶을 살았다.

아주 전략적이라고 표현하련다. 개개인의 삶에 어떤 계기들을 극복하는 기제가 어떻게 작동했는가 하는 것까지 이 책은 말하고 있지 않기에 때문에 그렇다. 만약 역사 심리 학적인 접근을 했다면 과연 이들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까?, 전쟁의 천재, 전쟁의 신 나폴레옹, 뚝심의 넬슨, 팔삭둥이 처질, 이들과는 조금 성향이 다른 쿨한 마셜을 들여다보련다.

 

 

가벼운 과대망상과 초지일관은 영웅을 만든다?

 

책 속으로 돌아가 보자. 지은이는 나폴레옹은 한 마디로 "가벼운 과대망상증"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반의 성공과 실패의 복합물인가, 뭔 말인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크게 생각했다. 이른바, 대인의 풍모를 지녔다는 뜻이다.

 ‘실력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일관된 행동으로 정실주의의 앙시앵 레짐(프랑스혁명 이전의 구체제) 질서를 철저하게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 동력이 바로 가벼운 과대망상의 효과다. 법전과 체제, 제도의 모든 것을, 핵심은 실력주의다 출신성분도 출세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없고, 논공행상은 정확히, 자신이 걸고 있던 십자가, 훈장도 그 자리에서 떼어내어 공을 세운 병사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준다. 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왜 천재적인 전략가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이를테면 인의예지 즉 싹수가 즉 싸가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불복종의 명수 넬슨, 그는 앞날을 내다보고 있었다.

 

영국해군의 최고의 제독이라는 넬슨, 그 역시도 불복종의 명수다. 즉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 살거나 죽거나(망가지거나), 하지만 이들은 살아남았고 영웅으로 칭송된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점이 바로 심모원려다 그랜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략가이든 아니든, 일에 미치면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면…. 바로 이런 증거 중 하나가 넬슨이다.

 

오랫동안 넬슨을 지켜본 그의 상관 저비스 제독은 “만용은 넬슨 경이 지닌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의 성격과 개인사는 문자 그대로 추했다.” 그러나 넬슨에게는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특별함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마법의 기술을 갖고 있었다(85쪽)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 소신껏 원하는 바를 주장하는 대신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도전을 보류하는 현대인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처칠 또한 근거 없는 망상의 대가다.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나중에 크게 쓰일 제목이라고, 마치 우리나라 김모 대통령처럼 중학교 때부터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글쎄 되더라고, 자신에게 최면은 거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면 옳은 소리다. 처칠은 용기라는 것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강화할 수 있는 자질이라고 여겼다. 출생과 함께 죽음이라는 벗을 곁에 두고 살았던 팔삭둥이 처질에게 전쟁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였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남들이 은퇴할 나이를 넘은 64세 세계 2차대전 일어나자 영국의 전시내각 수상으로 돌아와서,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마셜은 전쟁을 관리 개념으로 본 냉철한 전략가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한 인물

 

마셜?, 미 국무장관 마셜, 마셜 플랜의 그 마셜이 미군의 최고수장이었다고. 아이젠하워나 맥아도 등 유명한 장군들의 상관인 마셜, 그런데 왜 우리는 군인 마셜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기획자였다고, 무대의 배우가 맥아도요, 아이젠하워였다면 그는 연출자, 감독이었다. 전쟁은 승리가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는 사고의 소유자다. 이른바 무식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셜은 전쟁회고록을 쓰지 않았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인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친구이기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공사의 구분이 엄격했다. 또한, 이 최고사령관 마셜은 늘 냉정한 두뇌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피곤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셜은 2차 대전을 결정적으로 끝낼 승리를 기획한 사람이다. 그는 전쟁을 관리했다, 이른바 전략의 핵심 건축가였다.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전쟁터의 지휘관과 이를 조정하는 정치권 사이에서 냉철하게 미래, 즉 전쟁판을 그랜드 디자인했던 사람이다. 그는 절대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절제심으로 명성을 얻어보려는 노력, 즉 전쟁회고록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인물을 찾는다면 아마도 제갈공명이나 사마의, 정도라 할까? 물론 두 사람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 진리가 통하나 보다.

 

지은이는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아니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라 말한다.

 

첫째는 방어벽을 치고, 그 안에 사는 선택과 그 반대로 방어벽을 걷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기 살기로 맞서는 것. 우리는 어느 쪽일까?, 여기에 소개된 9명의 인물은 후자였다. 이판사판으로 즉, 진짜로 심각하게 세상 밖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生卽死 死卽生)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들은 바로 죽을 각오로 매사에 임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맡기겠지만,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 맞게 만든다. 이름 없는 승자의 DNA를 가진 이들이 우리 사회는 많다. 이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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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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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밤의 기억을 누가 일부러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나갔다.몰락의 풍경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반전들,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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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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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 마침내 모습 드러낸 카야. 40대 여성으로 밝혀져” 이 소설의 반전에 반전을, 지성은 카야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 전에 같이 지냈던 채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 놀란다.

 

이야기의 시작은 채리(카야)가 지성이 술에 취해 잡은 택시에 합승했는데, 지성의 목적지, 아마도 집 근처에 도착, 택시기사가 깨워도 인사불성인 지성, 택시기사는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려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 돈을 챙겼다. 이를 말리려던 채리, 기사와 옥신각신, 겨우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어찌어찌 지성의 집까지 오게 됐다(지성에게 채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었는지를 말하는 대목,170쪽~), 이것은 의도된 것이다. 채리라는 문화적 산물을 평론해오던 그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문학평론가, 문화, 시사평론가로까지 변신,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셀럽.

 

카야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 걸까, 아마도 반전에 반전, 지금까지 읽었던 지성의 이야기는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채리가 전소현의 이야기까지 어떻게 안 것일까?, 아무튼, 열심히 읽다 보면, 몇 군데 함정을 눈치챌 수 있다(하지만 리뷰 정도로는 모른다. 직접 읽어봐야 안다.)

 

 

지성은 출판사의 편집위원, 대학의 시간강사 아무튼 꽤 이름을 날리는 평론가다. 그의 아내는 시민운동과 연을 맺으면서 그와 별거, 다른 남자와 산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않았다. 밤새 문인들(민주도 거기에 끼어있었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다음 날 아침, 목이 말라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잠들어 있다. 우렁이 각시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몇 가지 암시를 해두고 있었다. 채리라는 의문의 여인,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점을, 그러나 지성은 자신을 만나 클래식을 듣게 되면서 잠재된 능력, 잠들었던 끼가 깨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유명 문인의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미투가 이어진다. 위선적 지식인들에게 미투는 호재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기회다. 이들은 노림수는 미투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그 순간 어떻게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동료에 대한 신뢰도 의리도 내버린 채 그야말로 정글, 개싸움을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는 유명 문인의 결백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는 여러 남자와 염문을 뿌렸고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 사연 역시 반전이다.

 

이 책 표지에 적힌 문장

“몰락한 풍경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대중의 광기, 지식인의 위선, 그리고 반전하는 진실들” 이 소설의 깔끔한 완결이다.

 

지성의 오랜 동료이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시인 민주는 지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에둘러 지성에게 사랑을 표현하나, 지성은 거절한다. 민주는 제삼자의 입을 통해 지성을 미투의 가해자로 밝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날 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사실인가, 지성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의 기억은 누가 일부러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얼개로 소설이 끝났다면, 그저 그런 소설이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반전의 시작,

 

민주는 믿음을 쉬이 배반하는 지식인의 위선에 질렸고, 이들의 민낯을 까발리기 위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지성과 함께 술 한잔하던 날, 각본을 짠다. 원래 각본은 지성을 미투 가해자로 폭로하고, 대중들의 반응을 본 후에, 내가 꾸민 일이라고 밝힐 참이었는데, 약물 과다 복용으로 계획과 달리 죽어버린 민주,

 

이 틈새에 채리가 있다. 채리는 지성의 민낯을 본다. 지성에게 도발을 한다. 아주 귀엽게 약간 모자란 듯한 모습으로 다가서서, 지성이 미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본다. 좌파진영의 남성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동창이기도 한 현 정부의 교육부장관 이원형의 아들 문제를 TV 토론회에 나와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후, 원고청탁도, 강의 요청도 줄어들면서, 자신이 30대까지 안티운동을 펼쳤던 신화일보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채리에게 묻는다. 나 그 신문에 글을 써야 해? 라고, 쓰겠다고 맘먹고 이메일을 보내려는 순간에 중도의 고려일보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채리는 지켜봤다.

 

이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나는 강간범이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반전

 

지성은 민주와의 하룻밤을 기억하지 못했듯이 20년 전 처음으로 책을 낼 때, 같이 작업했던 편집자 전소현을 완력으로 범한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아니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 버렸다. 서로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전소현을 만나 정말 그때 일을 기억 못 했노라고, 그런 일을 벌인 자신이 부끄러워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소현은 내가 버림받은 이유를 알아야 겠다고, 미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녀는 오로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지성,... 전소현으로 부터 온 문자 "건필하세요 작가님"이란 문장을 보면서 안도의 한 숨을... 지성이 완력으로 어찌해보려 했던 여성은 전소현 뿐만이 아니었다. 또 이름도 모를 어떤 여인에게도 덤벼들었던 기억이 난다.

 

민주의 미투를 계기로 지난날 지성이 기억을 못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이, 그 진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양심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그의 민낯과 그의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소설 <지성인 K 씨의 특별한 나날>을 읽어본 후라면 어떨까?

 

 

할 말은 많고, 놓치고 싶지 않은 대목들이 많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다. 읽는 동안 채리의 모습이 떠오르고, 민주의 모습이, 유경과 그 밖의 군상들이…. 페미니즘의 저열한 이해들을 공박하는 작가의 생각을 유정을 통해서 말한다. 정아은의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그럼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으로 옮겨가 보련다. 사족, 이 소설을 두 번째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정은아 작가는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작가연구를 해봐야겠다. 소설<모던 하트>, <잠실동 사람들>들부터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까지…. 이 소설 참으로 오랜만에 몰입했다. 쉬지 않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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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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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를 비롯 장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 놓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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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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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책, <<어둠의 속도>>의 에필로그, 저 밖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는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른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기뻐한다.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소설의 피날레는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말이다. 이 책의 꼬리에 예전에 읽었던 “장애학의 도전”(김도현,오월의봄,2019)의 한 대목,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 소설의 지은이는 다소 특이한 경험과 경력을 지녔다. 역사학을 공부하다가 해병대 기술병으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생물학을 전공, 직업으로 응급의료원, 교사,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SF소설가로 작품을 쓰고, 이 책으로 2004년 네뷸러상을 받았다. 그는 소수자(장애인, 성소수자)의 권리보호와 신장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실천가이도 하다. 이 소설은 자폐아를 입양 20여 년간 함께 살면서 어머니로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랑이 주인공 루의 세밀한 감정묘사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현실 세계의 차별과 장벽을 SF세계에서는 이를 극복한 자유로운 세계,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옮긴이의 말 중에 책의 제목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어둠의 속도>는 지은이와 그의 아들 마이클의 사이의 대화에서 온 것이다.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물었어요.

"빛의 속도가 1초에 30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일상적인 답을 했죠.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505쪽)

 

 

이 책은 2007년 국내에서 출간, 절판, 푸른숲에서 다시 다듬어 낸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임신 중의 자폐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진 근미래.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자폐인으로, 대기업의 특수 부서에서 근무한다. 'A 분과'라고 불리는 특수 부서에서는 자폐인의 특별한 패턴 분석 능력을 살려 제품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A 분과'의 특성상 부서의 직원들에게는 독립된 사무실과 주방 시설, 운동 기구와 음향 장치 등이 제공된다.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루의 상관 크렌쇼는, 새로운 자폐증 치료 실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A 분과'에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그의 목적은 그들의 능력은 고스란히 살린 채 그들을 정상인으로 만들면 특수 복지혜택은 필요가 없게 되고, 회사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한다. ‘정상화 수술’의 실험대상으로삼으려고 하고, 루와 동료들은 유일한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자폐가 사라지더라도 과연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루는 자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김초엽 작가는 이 소설을 추천하면서 비정상은 정상으로 교정되어야만 하는 상태일까? 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구원할까? 장애는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정체성일까? 라고 묻는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어떻게 우리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공간일 뿐이야.” 에릭이 말한다.

“만약 누가 중력이 1 이상인 세상에서 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린다가 묻는다.

“몰라.” 데일이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무지(無知)의 속도야.” 린다가 말한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해한다. “무지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22쪽)

“자폐증을 역진(逆進)시키는 방법에 대해 누가 연구하고 있대. 쥐인지 뭔지에 실험했을 땐 성공했어. 이제 영장류에 실험한다더라. 틀림없이, 곧 너희들도 나처럼 정상이 될 거야.” 조 리는 늘 그가 우리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음이 이 말로 분명해졌다. 우리는 ‘너희’이고 정상은 ‘나처럼’이다. (23쪽)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니―우리가 자폐증을 없애도 당신은 같은 사람일 겁니다. 그저 자폐인이 아닐 뿐이죠.”(394쪽)

 

소설 속 연구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폐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자폐가 사라져도 정체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공포의 순간은 연구자의 말에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소설의 설정은 간단하다. 자폐인이 수술로 정상인, 아니 비자폐인이 된다. 그렇다면, 자폐인의 특성은 정체성이 될 수 없나,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구별이 왜 필요한가? 장애라는 말은 200년 적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인차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장애, 비정상, 결핍은 우생학적 논의를 통해서 차별을 강조했다(한때, 아예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그래서 이들 열등한 존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엄연히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우생학을 파는 시장과 세련된 이들의 논리가 통용된다. 우생주의적 욕망이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경영적 주체들에게 내면화될 때, 신자유주의적 권력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전학적 서비스와 생명공학 상품을 통해 우생주의적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된다. 굳이 강압적 정책을 펴지 않더라도 말이다(장애학의 도전,152쪽), 즉, 장애를 미리 발견, 예방 혹은 이의 실패 시 원천적인 배제, 제거나 장애 증상의 완화, 악화방지 현상유지 등을 위한 약품 등을 모두 포함한다.

 

장애인은 "차별받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손상은 손상일뿐이나,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이때 특정한 관계란 다름 아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장애인중심사고에 따른 행동의 사회적 결과이기도 하다. (선량한 차별??-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다. 모르는 게 죄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여기서는 별론으로 한다. 하지만 선량한 차별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선량과 차별은 품고 있는 뜻이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자폐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비장애인 중심적 사고는 당연히 비장애인은 정상, 장애인은 비정상, 결핍과 완전, 완성의 구도로 보게 된다. 이 사회는 비장애인중심시스템이다. 장애인은 아예 그 존재 부정이 전제돼 있다. 얼마나 무서운 차별인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장애인의 관점이 아닌, 시좌를 통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뭔가를 만들거나 구축해야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중심사고"에서 "차별없는 사고"로 전환(패러다임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동물과 장애인에 대한 접근(피터 싱어, '동물해방', 연암서가 2012)과, 수나우라 테일러의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잇는 사유(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오월의 봄, 2020) 낸시 프레이저의 정의론(분배와 인정)에서 장애와 인권적 시각 등에 대한 공부 또한 필요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는 자폐(발달장애)이지만, 지적,지체장애 등 모든 장애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사고가 달라져야 함을 제기하고 있다. 자폐, 비자폐의 구분이 왜 중요해,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데...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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