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혁명 -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성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시대의 도래,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급변하는 사회시스템 속에 가치관의 변화 그래도 지켜야 할 인간성, 희망의 혁명은 "인간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세상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은 불편의 원칙임을...아무리 미래사회가 급변하더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혁명 - 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성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리히 프롬의 미래 희망 이야기

 

이 책<희망의 혁명>-인간적인 기술을 위하여- 는 지은이 프롬이 1968년에 쓴 책의 개정판이다. 놀랍게도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기술개발은 자연히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의식적인 선택과 책임을, 가치관과 규범을 바탕으로 발전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다. 프랑크프루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하여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이 3자의 역학에 따라 사회나 문화 변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했다.

 

내가 접한 그의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였고 당시에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소개됐다. <건전한 사회>(1955) <인간의 마음>(1964) <소유냐, 존재냐>과 등, 종교, 인간 본성, 윤리학까지, 그리고, 제2성의 저자 시몬느 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으로 결혼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한 것까지(보부아르와 결혼하게 된 에피소드 또한 흥미롭다)

 

 

 

이 책은 미국 사회 문제를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학으로 융합해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의 인간화를 위해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온 매카시를 지원하기 위해서 다듬은 것인데, 그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사랑, 즉 생명애를 호소할 목적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다. 구성은 7장이며, 교차로, 희망,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나?,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기술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단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설이 실려있다.

 

교차로에 선 인간들

 

인간의 생산 수단과 생활양식이 근본적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는 뜻이다. 교차하는 지점이니, 60년대 말, 미국도 일본도 급속한 고도성장기를 구가하던 시대, 새로운 노동방식, 일자리와 자본 분배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낳고, 인간의 역량과 능력을 대체할 기술사회로 진입, 인간중심의 가치관 충돌문제를 다루면서 기술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희망은 무엇인가?, 산산이 부서진 희망

 

희망이 현실적인 한계(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인간적 문제)에 직면하여 무력해진 상황은 인간을 고통 속으로 내몬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프롬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기준으로 재평가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현실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이해와 대처 능력을 얻게 되며,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자유와 책임,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개인주의와 사회적 분열 등을 문제를 안고 있으며, 프롬은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3차 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 속으로 AI 시대, 기술발전과 디지털화가 중심이 되는 변화로 인간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지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인간은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조직하며, 기술은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고 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다.

 

기술을 인간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다움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도덕적으로 선택하고, 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기술 역시 얼마나 또 고도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기술에 먹혀버리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여전히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자연스럽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적인 기술사회, 기술발전은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반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덕적 문제가 제기된다. 기술발전이 불러온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을 지켜내는 작은 희망의 실현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든,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기계 세계의 자기방어와 자기 재생산 등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한다는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예기치 못했던 결과, 즉 인간을 적으로 돌린 디스토피아적 상상 역시 인간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지 않을까, 미래의 사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프롬은 20년 앞을 내다보며(적어도 90년대 말.) 예측하는 기술사회 즉, AI의 등장과 급속하게 변화할 사회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삶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해서 그 삶을 살아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가능성이 있는 한 그 삶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불변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이것이 희망의 혁명일까, 프롬은 이제는 무력혁명, 쿠데타 등으로 세상을 뒤집어엎는다는 건 실현 불가능의 희망으로 본다(245쪽 이하). 적어도 미국에서는 말이다. 이 대목 또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 최정상급 철학자들이 참가한 투르 드 프랑스
기욤 마르탱 지음, 류재화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과 픽션, 고대와 현대의 철학자들 소환했다.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스포츠와 철학은 어울릴까, 고정관념의 벽을 허무는 시도, 스포츠, 철학은 놀이형식이다. 꽤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 최정상급 철학자들이 참가한 투르 드 프랑스
기욤 마르탱 지음, 류재화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도 여전히 명성을 크게 얻는 철학자들이 사이클 경기에 출전한다.

 

기욤 마르탱의 이 책<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철학자는 사이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차 없이 깨버린다. 스포츠 선수는 생각을 깊이 못 할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도 날려버린다. 마라톤이든 사이클이든 선수는 그 자신과 싸우며, 자신의 한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고투한다. 철학 역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프랑스와 주변 3개국을 도는 총거리 4천 킬로미터 3주 정도 걸리는 사이클 대회“투르 드 프랑스”, 여기에 역사적으로 내놔라 하는 철학자들이 선수로 참여한다. 이 사이클 대회장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 아무튼 철학자들을 소환한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체, 파스칼, 몽테뉴, 스피노자, 마르크스까지도 죄다 불러 나왔다.

 

우선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사이클 대회를 조금 알아야 이 책이 주는 흥미,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뭐가 좀 복잡하다. 최종우승자는 구간별(20~21개, 보통 하루에 한 구간으로 산악, 평지, 저난도, 고난도, 스테이지에 따라 주어지는 점수도, 결론은 구간별 총합 기록 시간이 짧은 사람이 최종우승자, 여기에 산악구간 우승자, 구간별로 우승자에게 색깔별로 다른 경기복을 주는데 종합 선두에는 노란 경기복을, 득점 우승자는 녹색 경기복을 입고 다음 구간을 달린다. 과연 철학자들의 주특기, 사이클과 생각하기는 어느 구간에서 우승자가 될지….

 

 

 

스포츠 선수는 철학자가 될 수 없나?, 고정관념의 벽을 깬다

 

사이클선수, 뭐 운동선수를 대체로 운동신경만 좋지 머리는 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야구 선수인데 꽤 똑똑하네라는 표현 등이 바로 그런 예다.

 

지은이는 기발한 착상으로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라고 제목을 붙였다. 누가 고상하게 연단에 서서 청중을 향해 신중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지혜를 설파하는 것만 상상했지, 반바지에 런닝차림으로 사이클을 탄다고. 바로 일반의 인식, 고정관념의 파괴다.

 

 

 

시클로조프?

 

유명한 철학자들이 대거 사이클 경기에 출전하자 기자들의 관심은 폭발 지경, 기자들이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하는데, 철학자 사이클선수, 사이클을 타는 철학자? 아무튼, 우리는 여러분을 시클로조프(자전거를 타라는 사이클과 철학자를 뜻하는 필로조프의 끝말을 따서)라 불러도 되나요? 예스..예스…. 우리를 사이클선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라고 불러주시오.

 

철학은 시간을 내서 하는 활동이 아니야. 생각하는 건 선언되는 게 아니야. 철학은 솟구치지. 자전거 위에서 생각할 때도 있지. 생각하는 데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사이클이나 철학이나 모두 놀이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에는 두 가지의 형태의 지성이 있다. 주어진 문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추론적 지식 즉, 이론적인 것과 주어진 상황에 직면하여 반응하는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실천적인 것이다. 철학자가 책을 더 이상 읽지 않으면 서서히 사고력을 잃어간다. 이처럼 선수도 계속헤서 두 가지 유형의 지성을 발전시켜야 경쟁에서 이긴다.

 

이 책은 훈련과 경기로 나누어져 있다. 시합 6개월 전부터 훈련을, 이른바 이론적인 지성을 발휘하는 단계다. 그리고 본 경기,

 

재미있는 대목은 스테이지 21, 이른바 구간별, 난이도별…. 경기에 임하는 철학자들의 표정이나 생각들이다. 사이클선수는 지킬과 하이드다. 만성적 지루함. 파스칼의 굴욕, 스테이지가 거듭될수록 마치 사람이 취하면 어떤 모습을 바뀌는지를 동물과 비유해서 설명하는 장면처럼, 돼지, 원숭이, 사자로 변하듯, 스테이지 즉, 난이도가 바뀌고 체력의 한계, 고단함, 피로 등이 겹치면서 어떻게, 스테이지 7, 초기의 암흑 육체적 고달픔에서 벗어나 나름의 페이스를 기억하는 것일까, 각각 열심히 경기에 임하다가 결국 스테이지 17, 즉 보름 정도가 지나서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절감하게 되고, 스테이지 19가 되어서 신화를 생각하게 된다.

 

그럼, 누가 종합우승을 한 것일까?, 산악구간에서는 누가 우승을 했을까, 21개 스테이지 우승자는?, 누가 노란색, 녹색, 붉은 반점의 경기복을 가장 많이 입었을까?,

 

 

 

누가, 어떤 이유로, 왜 최종승자가 됐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도 아주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이 책을 이렇게 읽으면 오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철학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고, 사이클 대신에 현실 장면으로 바꿔 읽어도 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소크라테스, 농장에서, 버스 기사, 비행사 등 어느 것이라도 될 수 있다. 주어진 현실에서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반응하고, 그 일에 열심인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들,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다. 열린 가능성이라 해두자, “고정관념의 벽을 깨자”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하게 사느라 피곤한 사람들 - 피플 플리저를 위한 관계의 기술
화양 지음, 송은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플 플리저, 착하게 사느라 피곤한 사람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을 부르는 심리학 분야의 신조어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 사람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행동과 의견을 억제하는 성향, 다른 사람의 의견에 순응하는 성향. 이는 제2의 성인 여성들이 오래전에 아니 지금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진 성향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남편과 시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식, 미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참고 사는 인내력으로 현모로 양처로 삼는 기준으로 관념되기도.

 

피플 플리저를 간단히 정의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른 사람과의 충돌을 피하며 조화를 유지하려는 목표를 가지기도 하기에, 자신의 필요와 욕구, 가치를 뒷전에 두는 경향을 보이며, 자신을 소홀히 한다. 이것이 내재한 잠재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을 우선하는 태도와 자기 희생정신이 지나친 외형상으로 그리고 내용상으로 조금은 피플 플리저 성향을 보인다고 해서, 그가 피플 플리저인가?, 이런 식의 사고를 하면 피플 플리저를 네거티브(부정적)로 보는 듯한 느낌이다. 흡사한 행동을 하더라도 피플 플리저와는 다른 그 무엇은 우선 별론으로 한다.

 

자긍심과는 어떻게 다른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이 실망하거나 불만족해하면 그 존재감이 엷어질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자긍심의 표상인 남으로부터의 인정, 존재감의 확인 등과는 정도의 문제인가?, 피플 플리저나 자긍심이 저하된 사람이 겪는 증상, 스트레스와 무력감, 자아의 상실, 소실감 등은….

 

피플 플리저의 원인은 뭔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기에 대한 불확실성, 상대로부터 거부된다는, 당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부의 인정과 사랑을 욕구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대체로 드는 이유다.

 

이 책은 핵심은 피플 플리저를 위한 관계의 기술이다. ‘착하게 사느라 피곤한 사람들’을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휘둘리는 피곤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희망을’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피플 플리저에서 벗어나기, 조금은 제멋대로, 때로는 거절도,

 

내가 피곤하게 다른 사람의 눈치, 비위를 맞춰야하나라는 생각보다는 적어도 내가 참으면 평화적인 분위기와 온화한 환경이 될 텐데. 굳이 나서서 살벌 분위기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고…. 물론 맞다. 하지만 맞는다는 조건은 분명한 경계가 존재해야 성립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 봐, 그렇다면 표현을 바꾸면 된다. 부탁을 거절하면서도 상대와 관계를 상하지 않게 하는 많은 책 속(이책 46-47쪽에 형광처리하여 강조하고 있듯이)에 등장한 어드바이스는 우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라고. 서로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는 어떤 경우란 말인가,

 

지은이는 이 책에 피플 플리저의 유형을 8가지로 분류했다. 거절이 두려운 형(나약함), 무조건 동의형(자기 억압), 죽어도 부탁못하는 형(열등감 나르시시즘), 돕지 않고 못 배기는 형(오지라퍼와는 조금 다른 뉘앙스다. 좋은 사람 콘셉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대로 사는 형(인정욕구), 미소를 멈추지 못한 형(안전감), 절대 화내지 않는 형(감정억압), 매일 반성형(자기비난), 이 모두가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들이다.

 

예전에 이런 사람을 호인(好人=좋은 사람)이라 했지만, 요즘은 위의 유형은 호구의 전형이라 할까, 세상 환경과 기준이 변했을 뿐, 사람은 그저 같은데. 아무튼, 상호작용이 없이 일방적일 때는 늘 문제라서, 또, 인내의 범주에서 이런 유형은 빠졌기 때문인가….

 

지은이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셀프테라피를 평생 성장의 비결로 제시한다. 이른바 “만능 자기 치유 방식”이다. 우선 감정을 인식(감정인식), 감정수용, 자원으로 활용한다, 신념의 전환, 기술향상, 경험 습득, 자기애, 최상의 상태 등 8가지이니, 꼭 읽어보길 권한다. 유형별로 하나하나씩 톺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착하게 살았는데 내 인생은 왜 엉망일까?, 자책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

 

선량함이 지혜라고,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평화롭게 조화롭게, 하지만, 안에서는 부화가 치밀기도 하다. 외제적으로 착한 사람 코스프레이를 하는 것 같으면 뭐, 스스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행동하니 그럴 수있다 치자.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불편하고, 또 그렇게 하고나면 나만 호구된 듯한 불편함...

 

이런 심리적 상태가 지속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피플 플리저"증상, 병적이라 할수도 있겠다. 어찌보면 세계가 그 만큼 섬세해지고 다양해진 때문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만능 가지 치유 방식" 8가지를 의식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싶다. 경증인 피플 플리저라면, 조금은 나아질 듯한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